항공기의 지상 이동 경로는 항로에 포함될까?

최신판례

2017.12.28

[대법원 2015도8335]

▣ 사안의 내용[각주1]

⊙ 항공기 항로 변경으로 인한 항공보안법 위반 공소사실 요지[각주2]

■ 피고인은 당시 A항공 부사장으로, 2014. 00. 00. 미국 존 에프 케네디 국제공항에서 자사 여객기 일등석에 탑승함

■ 피고인은, 스튜어디스가 정해진 일등석 서비스 방식과 다르게 견과를 내왔다면서 심하게 화를 내고, 서비스 설명서를 잘 모르는 승무원은 데리고 갈 수 없다면서 ‘당장 기장에게 비행기를 세우라고 연락하라’고 여러 번 소리침

■ 이때 피고인이 탄 비행기는 탑승구를 떠나 푸시백(계류장의 항공기를 차량으로 밀어 유도로까지 옮기는 과정) 중이었음

■ 기장은 객실사무장으로부터 피고인의 요구를 전해 듣고 위세에 눌려, 계류장 통제소의 승인을 받아 비행기를 탑승구로 되돌아가게 함

⊙ 위 공소사실에 대한 사실심의 판단

■ 제1심 : 유죄 (그 밖의 유죄 판단된 죄와 경합범으로, 징역 1년)

■ 항소심 : 무죄 (그 밖의 유죄 판단된 죄로,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

▣ 대법원의 판단

⊙ 사건의 쟁점

■ 항공기의 지상 이동 경로가 항공보안법 제42조의 ‘항로’에 포함되는지 여부

● 항공보안법 제42조는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운항중인 항공기의 항로를 변경하여 정상 운항을 방해한 사람은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라고 규정함

● ‘항로’가 무엇인지는 항공보안법에서 정의하고 있지 않음

⊙ 다수의견(10명) : 항공기의 지상 이동 경로는 ‘항로’가 아님 → 상고기각

■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따른 법률해석방법

● 어떠한 행위든 법률에 범죄로 정해져 있어야 처벌할 수 있고, 범죄를 규정한 법률의 내용도 의미를 엄격하게 해석해야 함

● 법률 문언의 의미가 명확한데도 그 뜻을 벗어나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해석할 수 없음

● 법령에 쓰인 용어가 정의규정이 없다면, 원칙적으로 사전적 정의 등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 의미에 따라야 함

■ ‘항로’는 하늘길이라는 뜻이 분명하므로, 항공기의 지상 이동 경로는 포함하지 않음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항로는 ‘항공기가 통행하는 空路’로 정의되어 있음

● 다른 법률이나 실제 항공기 운항 업무에서, 항로가 하늘길이라는 뜻에서 벗어난 의미로 사용된 예는 찾을 수 없음

● 그런데도 유달리 항공보안법에서의 항로는 지상 이동 경로를 포함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고 볼 입법자료를 찾을 수 없음

▪ 법 제정 과정에서의 국회 논의를 보면, 우리나라가 가입한 국제협약에 따라 민간 항공기 대상 범죄에 대한 가중처벌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입법된 것임

▪ 그 국제협약(이른바 도쿄 협약, 헤이그 협약, 몬트리올 협약) 중 어느 것도, 지상의 항공기 경로를 변경하는 행위를 항공기 대상 범죄로 언급하지 않음

▪ 우리 입법자가 그러한 행위를 처벌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면, 지상의 길이라는 뜻이 없는 항로 대신 다른 용어를 사용하거나 명확한 정의규정을 두었을 것임

● 지상의 항공기가 본죄의 객체가 된다고 하여, 통상의 말뜻을 벗어나 항공기가 지상에서 다니는 길까지 항로에 포함된다고 해석할 수는 없음

▪ 본죄는 ‘운항중인 항공기’를 대상으로 하는데, 항공보안법은 항공기가 승객을 태우고 문을 닫으면 ‘운항’이 개시되는 것으로 정의하였음(제2조 제1호)

▪ 그러나 ‘항로’는 그 자체로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엄격히 해석해야 할 별개의 용어이므로, ‘운항중’의 의미가 넓어졌다고 하여 항로까지 본래의 의미에서 벗어난 뜻으로 읽을 수는 없음

● 지상에서 이동하는 항공기의 경로를 변경하는 행위는 기장에 대한 업무방해죄 등으로 처벌할 수 있으므로, 처벌의 공백이 생기는 것도 아님.

▪ 이 사건에서도 피고인은 기장에 대한 업무방해죄로 처벌받게 되었음

⊙ 반대의견(3명) : 항공기의 지상 이동 경로도 ‘항로’에 포함됨 → 파기환송 의견

■ 항공기 ‘운항중’의 의미를 확대한 취지에 따라, ‘항로’의 의미도 넓게 새겨도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나지 않음

● 입법 취지와 목적, 법의 체계와 구조 등을 고려하여 법문의 뜻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은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부합하는 해석방법임

● 본죄의 행위는 ‘운항중인 항공기의 항로’를 변경하는 것이므로, ‘항로’를 따로 떼어 해석할 것이 아니라 위 어구 속에서 의미를 파악해야 함

▪ 항공보안법에서, ‘항로’는 오로지 본죄 처벌규정에서만 사용된 말임

● 항공보안법이 지상의 항공기도 ‘운항중’이 된다고 의미를 넓혔으므로(제2조 제1호), ‘운항중인 항공기’가 다니는 길이면 지상과 공중을 불문하고 항로로 새겨도 해석 가능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음

▪ 배와 달리, 비행기는 이륙 전과 착륙 후에는 당연히 지상을 다닐 수밖에 없음

▪ 입법자가 ‘운항’을 본래의 말뜻보다 넓게 정의한 것은, 지상의 비행기도 범죄로부터 보호하려는 명확한 의도가 있었기 때문임

● 지상의 항공기 경로를 함부로 변경하는 과정에서 다른 항공기나 시설물에 부딪혀 대형 참사가 야기될 위험이 크므로, 안전운항을 위협하는 행위를 엄벌(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하기 위해 마련된 본죄로 처벌할 필요가 있음

⊙ 검사의 나머지 상고이유와 피고인 여○○의 상고이유에 관해서는 관여 법관의 견해가 일치하였음

■ 원심판결에 각 상고이유 주장과 같은 잘못이 없음

▣ 판결의 의의

■ 처벌의 필요성이 크더라도 법률에서 범죄로 규정하지 않았으면 처벌할 수 없다는 죄형법정주의 원칙을 다시 확인하고 선언함

● 죄형법정주의와 그에 따른 법률해석의 방법론이라는 형사법의 기본이론에 관한 본질적 논의가 주된 쟁점이 되었음

■ 읽기 쉬운 판결서를 위한 개선

● 사건의 주요 경위, 소송경과와 쟁점, 관련 법률 규정과 그에 대한 해석론을 적는 방식을 채용함

● 그동안 법원 안팎에서 오랜 기간 이루어진 개선방안 논의, 외국 최고법원 판결례 등에 관한 실무연구 등을 반영

● 앞으로 지속적인 논의와 사례가 축적될 것으로 예상함

[각주1] A항공 전 부사장 ○○○가 일으킨 이른바 ‘땅콩 회항’으로 널리 알려진 사건임. 이후 이 사건을 무마하려는 시도와 관련된 ① ○○○, ② A항공 임원, ③ 국토교통부 항공안전감독관의 행위도 기소 내용에 포함되었으나, 주된 쟁점이 아니므로 생략함

[각주2] 피고인 ○○○가 기내에서 승무원들 상대로 저지른 ① 항공기 안전운항 저해 폭행으로 인한 항공보안법 위반, ② 업무방해, ③ 강요 부분은 원심까지 유죄로 판단되었고, 이에 대하여 위 피고인이 상고하지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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