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심의관 코너] Vermeer - 페르메이르? 베르메르!

조사심의관 코너

2019.10.07

Vermeer - 페르메이르? 베르메르!

글. 남기정 법원도서관 조사심의관

Johannes Vermeer(1632-1675)를 아시나요? 그는 바로크 시대를 풍미했던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화가로, 빛을 다루고 사용하는 데 거장다운 면모를 보여준 것으로 유명합니다. 중산계층의 집 내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주로 그렸는데, 특히 그림 대부분은 네덜란드 델프트(Delft)에 있던 그의 집 내부의 작은 방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림에서 동일한 가구나 장식들이 다양하게 배열된 것을 볼 수 있고, 또한 같은 사람들을 그린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여성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제가 좋아하는 그림 중 하나인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Girl with a Pearl Earring, 1665, 아래 그림)”를 그린 화가이기도 합니다. 위 그림은 네덜란드에서 ‘네덜란드의 모나리자’, ‘북구의 모나리자’라고 불리며 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그림으로, 혹자는 ‘네덜란드와도 바꾸지 않는다’고 할 만큼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위 그림에서는, 빛과 어둠의 적절한 대비 속에 환하게 빛나는 소녀의 얼굴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그림에서 흔하지 않은 검은 색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저기는 어디일까?’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고, 관객을 보는 것인지, 관객 너머의 무언가를 보는 것인지 애매한 시선 또한 그림에서 눈을 떼기 어렵게 만듭니다. 무엇보다 소녀의 귀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진주 귀걸이는 그림의 압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귀걸이가 다소 무겁게 느껴지기도 하지만요! 참고로 ‘귀걸이’, ‘귀고리’ 모두 표준어입니다).

위 그림은 작품 이름 그대로 소설(작가 Tracy Chevalier) 및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그중 소설을 읽어보았는데 종종 주변에도 추천하곤 합니다. 위 소설은, 위 그림이 탄생하게 된 가공의 이야기를 그럴 듯하게 그려내고 있어 그림 감상의 폭과 깊이를 더해줍니다.

제가 처음으로 접한 위 화가의 그림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림책을 즐겨보는데, 어느 날 책을 읽던 중 페이지를 넘기자 제 눈앞에 “우유를 따르는 여인(The Milkmaid, 1658, 아래 그림)”이 펼쳐졌습니다.

그때 제가 느꼈던 기분은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그림책을 자주 보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서양미술 관련 책들은 대부분 그리스·로마 ‘신화’ 또는 ‘예수와 성모 마리아’로 시작합니다. 이어서 ‘왕’, ‘귀족’, 옷을 걸치지 않은 남성, 여성들이 마구 등장합니다. 위 그림들 또한 그림마다 작가의 명성, 표현기법, 그림 속의 수많은 상징, 배경 스토리 등이 정말 매력적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다소의 피로감이 쌓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림의 배경이 된 스토리를 알아야 하고, 상징을 이해해야 하고, 그림 속 곳곳에 숨어있는 등장인물들이 누구인지 알아맞히는 것은 한편으로는 즐거운 여정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제대로 본 건가?’ 또는 ‘내가 잘못 알고 있나?’라는 의구심 또한 계속 들게 해서 마음 한구석이 불편합니다(가령 다비드가 그린 “나폴레옹의 대관식”은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알아가는 과정이 흥미롭습니다).

그 와중에 빛과 어둠의 절묘한 대비 속에 일상을 배경으로 한 위 그림이 펼쳐진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따뜻한 느낌을 주고 있어 마음이 절로 안정되는 기분이 들었고, 특히 실제로 우유를 따르는 듯한 실재감에서 누구를 위해 따르는 우유일까하는 매우 현실적인 질문도 생각났습니다. 여인의 묘한 표정(온화해 보이지만 무표정하고 다소 지친 듯 보이기도 하는) 또한 눈길이 머무는 부분이었습니다.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저 그림 속 모습이 17세기 서양 사람들의 일상인가’라는 생각은 ‘신화’, ‘왕’, ‘귀족’으로 점철되던 서양에 대한 이미지를 한결 친근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움베르트 에코는 ‘미의 역사’에서 위 그림 등을 일컬으며, ‘16세기와 17세기 사이에 여성은 관능적 미에서 완고함으로 옮겨 간다. 여성들은 입을 꽉 다물고 어떤 감정의 흔적도 보이지 않은 채 빈틈없는 여주인의 얼굴로 그려져 있다’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Vermeer는 생애를 통틀어 총 50여 점이 채 안 되는 그림을 그렸고, 그 가운데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은 35점 정도에 불과합니다. 방대한 컬렉션을 자랑하는 루브르 박물관 또한 그의 작품은 단 두 점(옆 그림에서 왼쪽은 ‘레이스를 짜는 여인’, 오른쪽은 ‘천문학자’)만 소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부인과 사이에 11명의 아이를 가진 대가족이었음에도 작품 수는 적었으니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는 여러 차례 빚 독촉에 시달렸고, 43세의 나이로 요절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서두가 좀 길었는데, 그럼 Vermeer는 어떻게 적고 읽을까요?

먼저 이에 관한 외래어 표기법(네덜란드)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① ‘v’가 어두에 올 경우에는 ‘ㅍ, 프’로 적고, 그 외에는 모두 ‘ㅂ, 브’ 적음

② ‘ee’는 ‘에이’로 적음

위와 같은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Vermeer”를 적으면 아래와 같습니다.

‘페르메이르’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동일하게 등재)

미술 관련 많은 책들이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외국 작가 등을 표기하기 때문에 처음에 ‘페르메이르’라고 적힌 미술책을 보면서 ‘이게 누구지’, ‘이런 이름을 가진 작가도 있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Vermeer”를 ‘페르메이르’라고 적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이럴수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그림이 제게 주었던 밝고 따뜻한 이미지에 ‘페’라고 하는 센 이미지의 파열음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유를 찾아보니 기존 외래어 표기 세칙에서는 ‘베르메르’라고 표기했었고, 저 또한 당연히 ‘베르메르’라고 알고 있었는데, 2005년 네덜란드 외래어 표기 용례집(이하 ‘용례집’이라고만 합니다)이 마련되면서 ‘페르메이르’라고 변경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을 존중하는 외래어 표기법의 ‘기본 원칙’을 감안할 때 왜 굳이 ‘베르메르’를 ‘페르메이르’라고 변경해야 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실제로 현재까지도 많은 미술 관련 책들은, ‘베르메르’를 ‘그 이름이 널리 통용되는 화가의 명칭’으로서 관용적인 표기로 보아 그대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다만 ‘베르메르’가 관용적인 표기인지에 대하여는 충분히 반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럼 여기서 잠시 다른 화가를 불러보도록 하겠습니다.

Gogh, Vincent Willem van(1853~1890)

설명이 필요 없는 화가입니다. 네덜란드 후기 인상파 화가로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 등 수많은 걸작을 남겼고, 그림뿐만 아니라 화가의 인생 자체가 주목받는 세계적인 화가입니다.

용례집을 보면 ‘고흐, 빈센트 반’이라는 이름 앞에 ‘*’ 표시가 있는데, ‘*’ 표시는 ‘외래어 표기법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좀 더 살펴보면 고흐는 이름 대부분이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지 않고 관용을 존중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관련 외래어 표기법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① ‘g’는 ‘ㅎ’로 적음

② ‘v’가 어두에 올 경우에는 ‘ㅍ, 프’로 적고, 그 외에는 모두 ‘ㅂ, 브’ 적음

위와 같은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원래 ‘고흐, 빈센트 반’은 아래와 같이 적어야 합니다.

‘호흐, 핀센트 판’

우리나라 사람 중에 누가 ‘빈센트 반 고흐’를 ‘핀센트 판 호흐’라고 적고, 읽고 싶을까요? 이미 굳어진 외래어의 익숙함이 이러합니다. 그래서 용례집에서도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왜 베르메르는 ‘페르메이르’로 되었을까요? 고흐와 베르메르를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의견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그럼 한 사람만 더 불러보도록 하겠습니다.

Advocaat, Dick

딕 아드보카트.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우리나라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었던 네덜란드 출신 감독입니다. 용례집에는 ‘아드보카트’ 앞에도 ‘*’ 표시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외래어 표기법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먼저 관련 외래어 표기법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 유성 파열음 b, d가 어중에 올 경우에는 앞이나 뒤의 자음이 유음(ㄹ)이나 비음(입안의 통로를 막고 코로 공기를 내보면서 내는 소리, ‘ㄴ’ , ‘ㅁ’ , ‘ㅇ’ 따위)인 경우와 앞 모음이 이중 모음이거나 장모음(같은 모음을 겹쳐 적는 경우)인 경우에는 ‘브, 드’로 적음. 그 외에는 모두 받침 ‘ㅂ, ㅅ’으로 적음.

위 외래어 표기법에 따를 때, ‘Advocaat’에서 ‘d’는 ‘브, 드’로 적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받침 ‘ㅅ’으로 적어야 하고, 그에 따르면 원래 ‘아드보카트’은 아래와 같이 기재해야 합니다.

‘앗보카트’

그러나 ‘아드보카트’를 관용적인 표현으로 보아 외래어 표기법과는 다르게 인정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한 번 했다고 ‘관용적인 표현’으로 보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용례집에는 이미 통용되어 굳어진 외래어 표기를 인정하는 한편 본래의 발음에 가깝게 정리해 주는 순기능이 아주 많지만, ‘베르메르’를 ‘페르메이르’로 바꾼 것만큼은 동의할 수 없다는 제 생각이 굳어져 버렸습니다.

이하에서는 용례집에 따른 다른 네덜란드어 표기법을 몇 가지 더 소개하여 드리면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ㅎ
1. ‘Heineken’ 이번 여름밤을 어떻게 보내셨나요? ‘Heineken’은 우리나라에서도 인기 있는 네덜란드 맥주 브랜드입니다. 흔히 ‘하이네켄’이라고 불리고, 종전 외래어 표기 세칙에도 ‘하이네켄’이라고 되어 있었지만, 용례집에서 ① ‘ei’는 ‘에이’로 적고, ② 어말의 ‘e’는 모두 ‘어’로 적도록 함에 따라 ‘헤이네컨’이라고 표기하도록 변경되었습니다. 앞으로 즐거운 사람들과의 좋은 자리에서 “헤이네컨 주세요”라고 말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정리> 헤이네컨 (O)
2. ‘Holland’ ‘Holland’는 네덜란드의 서부 해안 지역을 일컫기도 하고, 나아가 네덜란드를 일컫는 다른 말이기도 합니다. 종전 외래어 표기 세칙에는 ‘홀란드’로 되어 있었지만, 용례집에서 유성 파열음 b, d가 어말에 올 경우에는 각각 ‘프, 트’로 적도록 함에 따라 ‘홀란트’로 표기하도록 변경되었습니다. <정리> 홀란트 (O)
3. ‘Edgar’ 흔히 ‘에드가’로 발음할 것처럼 보이고, 종전 외래어 표기 세칙 또한 ‘에드가르’였지만, 앞서 ‘Advocaat’에서 보았듯이 이 경우에도 ‘d’를 ‘브, 드’로 적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받침 ‘ㅅ’으로 적어야 하고, 그에 따르면 이는 ‘엣하르’로 표기하여야 합니다. <정리> 엣하르 (O)
4. ‘Eindhoven’ 네덜란드의 지명인 ‘Eindhoven’은 외래어 표기법을 적용하면 ‘에인드호번’이지만, 이 단어는 eind(에인트)와 hoven(호번)이 결합된 말로 원지음(原地音, 원래의 지역에서 사용되는 음)이 각 형태소(뜻을 가진 가장 작은 말의 단위. ‘이야기책’의 ‘이야기’ , ‘책’ 따위)의 발음이 유지되어 나오므로 ‘에인트호번’으로 표기합니다. <정리> 에인트호번 (O)
5. ‘Hague’ 헤이그는 각종 국제기구들이 모여 있는 네덜란드의 도시입니다. 법원 또한 매년 헤이그에 있는 국제기구에 법관들을 파견하고 있어서 우리에게 더욱 친숙한 도시이기도 합니다. ‘Hague’를 ‘헤이그’로 표기하는 것은, ‘원지음(原地音, 원래의 지역에서 사용되는 음)이 아닌 제3국의 발음(영어)으로 통용되고 있는 것은 관용을 따른다’는 외래어 표기법의 원칙에 따른 것입니다. 네덜란드에서는 헤이그를, ‘Den Haag’ 또는 ‘s-Gravenhage’로 표기하고, 이를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읽으면 각각 ‘덴 하흐’, ‘스흐라벤하허’입니다. ‘s-Gravenhage’는 17세기부터 공식적으로 사용되던 명칭이지만, 현재는 출생 및 결혼증명서 등 몇몇 공식 문서에서만 사용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Hague’를 ‘헤이그’로 표기하는 것이 원래 네덜란드 발음이 그렇기 때문은 아니랍니다[참고로 제가 만났던 일본 사람들은 ‘Hague’를 ‘하-그’(ハ-グ)라고 발음해서 처음엔 무슨 말인가 어리둥절하기도 했습니다]. <정리> 헤이그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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