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망설이지 않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적어도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 것 같다. 몇 년 전 유행했던 ‘이상형 월드컵’같이 온갖 후보를 하나하나 지운 후에도, 떡볶이와 칼국수는 항상 마지막 타자로 남아서 나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다만, 앞서 본 바와 같이 떡볶이를 가장 먼저 말하는 점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음식은 떡볶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어느 동네를 가더라도 떡볶이를 파는 분식집 하나쯤은 있는 범용성도 마음에 들고, 모든 동네에 떡볶이집이 있지만 같은 맛을 내는 집이 없는 다양성 역시 다른 음식에 비할 바가 아니다.
떡볶이의 경우 카레 가루만 넣어도 새로운 맛이 나고(신전떡볶이), 후추를 치는 방법으로 새로운 맛을 내는 곳도 있다(대구 윤옥연할매떡볶이). 떡만 하더라도 가래떡을 통으로 넣는 집(대구 중앙떡볶이), ‘밀떡’이라 부르는 대용량으로 파는 밀가루떡을 넣는 집(대부분의 분식집이 이렇다), 치즈가 박힌 떡을 넣는 집, 우동사리처럼 길게 늘어진 면같이 생긴 떡을 넣는 집(청년다방이 처음이고, 아래 나오는 ‘이서방네’도 그러하다)까지, 떡볶이를 파는 곳마다 맛도 다양하고, 떡도 다양한 것이 떡볶이이다.
떡볶이의 다양성으로 말할 것 같으면 조리 형태를 빼놓을 수 없다. 커다란 판에 떡과 채소와 물과 양념을 넣고 끊임없이 끓이면서 수시로 퍼내는 판 떡볶이가 있고, 주문 즉시 작은 프라이팬으로 바로 만들어주는 떡볶이가 있으며, 작은 냄비에 생 재료와 국물이 함께 나와서 끓여 먹는 즉석떡볶이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판 떡볶이는 양념이 떡에 스며드는 시점이 서로 달라서 균질적인 맛이 부족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시중의 수많은 떡볶이 맛집이 판 떡볶이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떡볶이를 좀 먹어본 사람’이라 행세하다가도 유명 맛집은 가보지 못하게 된다는 단점이 있다).
다만 대구의 중앙떡볶이는 판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한 판이 마쳐지면 완전히 새로운 양념과 새로운 떡을 넣어서 영업을 멈춘다는 점에서 판 떡볶이를 좋아하지 않지만 그 맛은 보고 싶은 사람에게 딱 좋은 곳이다. 그리고 인천의 ‘얼레꼴레만두’(구성원이 항상 바뀌는 인천 3대 떡볶이집 중 한 곳이다) 역시 내가 가는 몇 안 되는 판 떡볶이집이다. 이곳은 흔하디흔한 밀떡을 판에 넣어 끓이다가 직접 만든 작은 만두를 함께 떡볶이 양념에 넣어주는 메뉴인 ‘떡만이’가 대표 메뉴인데, 판 떡볶이집인데도 국물 떡볶이에 가까운 외양을 취하고 있어 양념이 떡에 골고루 배기 힘들다는 판 떡볶이의 단점을 극복하였다.
주문 즉시 만들어주는 떡볶이(이하 ‘접시 떡볶이’라 한다)는, 기실 떡볶이 전문점보다는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곁들여 파는 경우가 상당수이다. 물론 대구의 ‘이웃집소녀떡볶이’나, ‘몬나니떡볶이’ 등등, ‘떡볶이’를 이름에 걸고 영업하는 곳의 경우에는 조금 덜한 편이지만, 이름에 ‘분식’이 들어가 있는 가게에서 떡볶이를 주문하는 경우에는 정말 슈뢰딩거의 떡볶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편차가 크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대중적인 형태임에도 떡볶이를 주문하기 전까지는 큰 고민을 거치기 마련이다.
떡볶이의 범용성에도 불구하고 떡볶이를 사랑하는 사람은 혼밥을 면할 수 없다. 떡볶이의 경우 밀가루 사용, 매움의 정도 등으로 인해서 서로 떡볶이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거나, 상대방의 제안을 거절해도 마음이 상하지 않는 관계가 된 후에 제안하는 것이 합당하기 때문이다. 그러하지 아니하고 강력한 제안으로 함께 떡볶이를 먹을 경우, 일행이 화장실을 향해 떠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법원 입사 전의 경험임을 강조하여 둔다). 그 외에도 떡볶이는 소규모 분식집에서 파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 함께 가서 분식집에서 자리가 나기를 대기하기보다 “저 따로 먹습니다” 한마디를 남긴 채 홀연히 사라지는 것이 더욱 신속하기 때문이기도 하다(물론 이러한 판단은 나중에 밝혀지게 될 경우 밥조 구성원들의 정신적 충격- 맛있는 것을 혼자만 먹으러 다녔다니 - 을 유발할 수 있어, 구성원들의 성향에 대한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대구에서 생활하던 초임 법관일 때에는 저녁 떡볶이로 이웃집소녀떡볶이를 즐겼던 것 같다. 평일에는 접시떡볶이에 납작만두를 곁들여서 떡볶이 소스에 납작만두를 찍어먹었고, 주말에 친구들이 대구에 놀러 올 때에는고기를 먹고 2차로 달고떡볶이 등등 대구의 유명 떡볶이집에 가서 떡볶이를 먹었다. 인천의 경우에는 얼레꼴레만두가 한접시를 팔기 때문에 다른 떡볶이 집을 뚫을 이유가 없었다. 서울중앙에서는 “혼자” 떡볶이를 먹기 위해 교대 언덕을 내려갔다 올라올 힘이 없어 조용히 포기했지만, 서울 서부에 온 후에는 다시 접시떡볶이를 본격적으로 즐겼다(그리고 이 선택은 이후 밥조 구성원들의 지탄을 받게 된다).
그렇게 알게 된 집이 서울서부지법 건너편의 ‘이서방네’와 아현시장의 ‘마포분식’이다. 이서방네의 경우 점심시간에 사람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아침에 머릿속으로 ‘떡-볶-이-’라는 계시가 떠오르는 순간 친구도 밥조도 버리고 1인 식사로 먹고 오는 것이 적절하지만, 떡볶이 자체는 1인분으로 먹기엔 맵고, 다른 것을 곁들이기엔 많아서 한 명 정도 떡볶이 짝꿍을 만들어 두면 더욱 즐거운 식사를 즐길 수 있다(혼자 일때는 순대볶음 1인분을 먹으면 그 안에 떡볶이용 떡이 아주 조금 들어간다). 아현시장의 ‘마포분식’은 비트를 기반으로 한 양념으로 바로 조리해 주시는 떡볶이가 더할 나위 없이 맛있고, 순대와 튀김도 어떤 다른 집보다 맛있지만, 자리를 잡기 어렵다는 것이 단점이다.
마지막으로 즉석떡볶이는 유명 떡볶이집들이 취하는 가장 대중적인 형태이다. 2인 이상을 모으는 경우에만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을 강제로 조성하는 효과가 있고, 대부분 ‘떡볶이 먹으러 갈래?’라는 제안의 종착지가 된다.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간 정독도서관 앞의 ‘먹쉬돈나’ 또는 신당동 떡볶이가 즉석떡볶이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즉석떡볶이는 다양한 재료를 첨가할 수 있어 상대방에 대하여 많은 (쓸데없는) 것을 알 수 있다는 점과 여름에는 에어컨의 세기로 이 떡볶이집의 CS 정신을 알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서울중앙에서 나의 떡볶이 지수를 채워준 ‘광해즉석떡볶이’ 역시 즉석떡볶이 형태였다. 교대 언덕을 하산하고 등산해야 한다는 점에도 불구하고, 이미 약속을 정했다는 점에서 ‘약속은 지켜져야 하니까’를 중얼거리며 내려가서 맛있게 먹고 돌아온 기억이 난다. 한편, 서울서부에는 ‘공덕닭발왕’이 있다. 한동안의 혼밥떡볶이를 즐기고 다니다가 발각된 이후 밥조 내부에 떡볶이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소개받은 즉석떡볶이 맛집이다. 이 곳은 원래 닭발집이나 특이하게 낮 시간에만 즉석떡볶이를 판다. 식사 후 부근의 로컬 커피집에서 달달한 커피를 들고 회사에 돌아오면 적당히 만족스러운 점심시간이 된다.
장 미셸 그르니에의 <섬>에서, “우리가 어떤 존재들을 사랑하게 될 때면 그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지게 마련이어서, 그런 것은 사실 우리들 자신에게밖에는 별 흥밋거리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적절한 순간에 늘 상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 떡볶이에 대해 써보자고 마음먹었을 때에는 떡볶이로 분량을 채울 수 있을지 걱정이었지만, 사랑하는 존재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지는 것이 정말 맞는 것인지 사진 한 장 없이 분량을 채워버려서 당황스럽다.
떡볶이 같은 흔한 음식을 좋아하는 일은 얼핏 생각하기엔 좋아하는 음식을 자주 먹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오히려 흔한 음식이니만큼 가게 사이에도 맛의 차이가 있어서 진짜 취향에 맞는 맛있는 떡볶이를 먹게 되는 일은 정말로 기쁘고 감격스러운 일이다. 아마도 내 떡볶이를 향한 여정은 위장이 떡볶이를 소화할 수 있는 한 계속될 것 같고, 언제 어느 법원으로 가더라도 나는 떡볶이를 파는 곳이 그 근처에 있으리란 확신을 갖고 그 곳의 떡볶이를 맛볼 생각에 항상 희망과 꿈에 부풀어 살아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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