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 나의 삶3] 태안 유류피해 사건(12년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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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7

태안 유류피해 사건
(12년간의 기록)

글. 이기운 행정관(서산지원)

대한민국 법원의 당사자수 최대 사건인 유류피해사건이 종결되어 우리 법원 가족에게 그간의 진행상황이나 결과를 알리기 위하여 이 글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2007. 12. 7. 평상시와 다름없는 오전을 마치고 점심을 먹기 위하여 내려간 구내식당에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당시 계장이던 조성훈 사무관이 말했다.

“기운아, 우리 놀이터가 유류 피해를 입었단다”라고 말했다.

야근에 시달리던 일상에 그나마 작은 행복을 주던 게 직원들과 짬을 내어 다니던 갯바위 낚시였다. 태안 구름포에서 바라보면 멀리 밤하늘 아래에서 조명을 내뿜는 유조선이 정박해 있곤 했는데, 그 자리에서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해양선박사고가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막연하게 낚시를 못 가게 되었다는 어린애 같은 투정을 하던 나는 이 사건이 전대미문의 우리나라 최악 해양오염사고라는 것을 알게 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모든 생명체를 삼켜버릴 것 같은 검은 원유, 그리고 변해버린 바다! 국민 모두가 빠져버린 검은 바다보다 깊은 절망감. 그러나 연일 이어지는 방송과 국민들의 관심으로 피해 극복을 위해 연 207만 명의 방제 인력(자원봉사자 123만 명)이 투입되고 국가의 특별재난구역 선포, 유류오염사고 지원 특별법 제정·공포 등 적극적인 정책이 시행되며 태안 앞바다는 빠르게 회복, 이듬해 7월에는 만리포에서 국제수영대회를 개최하는 등 사고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런 대형 해양오염사고를 겪은 바다가 초단기간에 사고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기적이라는 외신 보도처럼 당시 사건은 위기에서 발휘되는 우리나라 국민의 위대한 DNA를 확인할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돌멩이 하나하나 닦아내던 우리 국민의 애정으로 자연은 빠르게 원상복구되었고 그 안의 생물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 활기를 찾았지만, 법원의 사건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사고 당시의 상황은 이랬다. 삼성중공업 주식회사가 임차하여 운항 중이던 주예인선 삼성 티(T)-5호와 보조예인선 삼호 티(T)-3호, 크레인바지선 삼성 1호, 앵커보조선 에이(A)1이 하나의 예인선단을 이루어 항해하던 중 2007. 12. 7. 06:52경 충남 태안군 원북면 신도 남서방 6마일 해상(북위 36° 52′10″, 동경 126° 03′10″)에서 삼성 1호의 예인줄이 끊어졌다. 이로 인해 같은 날 07:06경 원유 약 263,994톤을 적재한 상태로 그 자리에 정박 중이던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M.V. Hebei Spirit, 총 톤 수 146,848톤)와 충돌, 유조선 왼쪽 앞부분에 있는 원유탱크 세 곳에 구멍이 뚫리면서 약 10,900톤의 원유가 인근 해상에 유출됐다.

이 사고로 유출된 원유는 북서풍을 타고 해안으로 들어와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구름포 해안에 닿은 것을 시작으로, 나흘 동안 이원면 내리 만대항 해안에서 원북면 방갈리, 소원면 모항리, 파도리 해안에 이르기까지 총 70km 구간에 걸쳐 빠르게 확산되었고, 이후에도 태안군 남면, 안면읍의 일부 해안과 보령시의 일부 해안까지 도달하였다. 해안에 닿지 않은 원유는 타르로 변해 해류를 타고 이동하면서 9일째에는 충남 서천군 해상까지, 11일째에는 전북 군산시 해상까지, 31일째에는 제주 조천읍 다려도 해안까지 도달했다.

이 유류피해사건으로 시골의 조그마한 법원에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증거보전, 형사, 민사 등 각종 사건이 연이어 접수되었다. 형사사건 상황을 보면 서산지원 형사단독 재판부 두 개 중 제2형사단독을 유류피해 전담재판부로 지정하여 매주 2회 공판기일을 열었고, 5개월에 걸쳐 제출된 문건만 400여 건에 이르는 사건을 진행하였다. 신속한 진행을 위하여 매 기일 야간까지 재판이 계속되었다. 언론과 피해주민의 관심이 집중된 사건이라 담당자들은 힘든 내색 한번 못하는 어려운 상황의 연속이었다. 결국 해양오염방지법을 적용하여 예인선단 선장에게 징역 2년 3월, 보조 예인선 선장에게 징역 8월, 크레인선 선장에게 징역 1년 3월, 허베이스피리트호 선장과 일등 항해사에 대해서는 업무상과실선박파괴죄에 대해 무죄 선고를 확정하였다.

민사사건은 증거보전사건을 시작으로 책임제한, 책임제한과 관련하여 별소로 제기한 민사사건 등이 있다.

증거보전사건도 일반적이지 않았지만 생소한 책임제한이 눈에 띈다. 책임제한사건은 해양선박사고 시에 청구 원인 여하를 불문하고 선박 톤수에 따라 일정 금액을 한도로 책임을 제한한 것이다. 마치 자동차책임보험과 비슷하게 보험을 가입한 선박 톤수에 따라 정해진 최고한도까지 금액을 보험금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2008책1호 유류 오염 손해배상 책임 제한사건을 보면 신청인은 허베이 스피리트 쉬핑 컴퍼니 리미티드로 이 사건 유조선의 소유자이고, 참가인은 1992년 유류오염 손해보상 국제기금01, 상대방은 피해 어민 및 방제작업에 관련된 채권자 등으로 최초 신청서상의 당사자 수는 1,284명이었지만, 추후 피해를 신고한 제한채권자는 모두 127,483명에 이르게 되었다. 2008. 1. 15에 책임제한 절차개시 신청, 2009. 2. 9. 책임제한 절차개시결정을 거쳐 법원에 신고된 제한채권은 127,483건, 4,227,148,488,408원으로 3회의 채권조사기일과 증빙자료, 감정인의 검증서를 종합하여 2013. 1. 16.에 사정재판을 하였다.

이에 제한채권자, 선주 및 국제기금이 122,552건 불복신청을 하여 사정재판에 대한 이의의 소 183건을 2018. 6. 말에 6년여 걸쳐 제한채권자의 피해손해배상액이 432,900,000,000원으로 확정되었으며, 2018. 11. 13.에 공탁보증인인 아슈란스포레닝엔 스컬드(곈지디크)가 공탁 신청하였다. 다음날 대한민국(소관: 해수부)에서 협약에 따라 공탁금 230,861,609,34602원을 현금으로 납입, 이에 2018.12.12. 배당표에 대한 이의신청 후 2019. 8. 20. 대법원의 재항고기각결정으로 배당표를 확정했으며, 관리인은 2019. 9. 2. 배당실시 후 완료보고서를 제출하여, 재판이 12년 만에 종결되었다.

12년 동안 진행되며 6개의 전담 합의재판부가 구성되고, 부장판사 8명, 평판사 17명, 직원 26명이 관여한 이 사건은 재판사무 시스템에서는 당사자 입력이 불가능하여 전산등록절차의 제도를 개선하고 법원 서버의 용량을 확대해 진행해야 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또한 다수당사자 처리를 제한채권자들이 허베이 센터에 신고한 청구번호와 법원에 신고된 채권을 127,471건으로 일치시키는 매칭 작업을 두 달에 걸쳐 완료한 뒤 시작하게 되었는데 워낙 당사자들이 많아 중복채권만 8,000건, 사망자만 4,550명(상속관계 정리만 만 2년 정도 걸림), 이를 전산화한 자료가 400만 장에 이르는 등 실무상에도 법원에 큰 부담이 발생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당사자가 대규모일 경우 특히 해양오염사고에 있어 처리방법이나 재판 경험을 축적하게 되었다. 또한 법원이 피해민들에 대한 합리적인 배상·보상이 이루어질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 결과물인 재판 관련 기록을 보존하여 향후 유사사고가 발생할 경우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될 수 있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고 할 것이다.

이제 서산지원은 유류피해사건을 종결하여 장기미제 최다보유 지원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겠지만, 피해민들의 상처가 빨리 아물고, 이 시간 이후로는 이 세상 어디에도 인간의 이해관계로 인하여 자연과 우리 스스로가 피해를 입는 일은 없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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