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내가 나와 맺는 관계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는 어떤 관계일까? 흔히 ‘관계’라고 하면 타인과 맺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타인과 관계 맺기 이전에 더 중요한 관계가 있다. 바로 ‘내가 나 자신과 맺는 관계’다. 자존감은 내가 나 자신과 맺는 관계를 의미한다.
글. 선안남 상담심리사
자존감이 주목 받는 시대
자존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개인을 붙잡아주었던 집단과 소속, 성공이 지닌 가치는 점차 힘을 잃는 대신, 집단과 소속이 아닌 개인이, 성공이 아닌 성장이 더 중요한 가치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과 믿음, 존중, 신뢰 같은 마음의 힘이 필요한 시대가 온 셈이다.
자존감 형성에 미치는 요소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대표적인 것이 환경과 경험이다. 특히 어린 시절에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자신을 바라봐야 하는지 잘 모르기에, 환경이 우리를 대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스스로 뭔가를 이루어낸 경험 또한 자존감을 단단하게 한다. 하지만 좋은 환경 속에서 많은 성취를 경험했다고 반드시 자존감이 높고, 불우한 환경에서 힘든 경험을 많이 했다고 무조건 자존감이 낮다고 볼 수도 없는 문제다. 그보다는 ‘삶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삶의 모든 한계와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 자신에 대한 존중과 사랑을 키워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높낮이보다 ‘안정성’이 중요해
‘로젠버그 자존감 척도(RSES)’는 자존감을 측정하는 데 가장 널리 쓰이는 척도이다. 총 10가지 문항으로 구성되는데, 각 문항에 자신이 느끼는 정도를 척도로 답하는 방식으로 측정한다. 그런데 이렇게 묻고 답하는 방식으로 측정하는 경우 한계에 부딪칠 수 있다. 무의식적인 행동으로 드러나는 ‘암묵적 자존감’과 의식적인 말로 답하는 ‘명시적 자존감’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는 나를 사랑한다’라는 문항에 ‘정말 그렇다’라고 답했다고 해도 그가 다른 사람의 무리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며 잠 못 이룬다면, 우리는 그의 자존감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또 우리는 보통 자존감을 ‘높다’, ‘낮다’의 개념으로 받아들이지만 자존감 측정에 있어 더 중요한 것은 ‘높낮이’가 아닌 ‘안정성’이다. 삶은 늘 좋은 일만 예비하고 있지 않을뿐더러 우리를 흔드는 이런저런 일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와 자존감이 높은 사람조차도 풍랑 속의 돛단배처럼 마음이 흔들릴 수 있다. 이때 우리를 붙잡아주는 것은 자신과 맺은 관계의 안정성이다. 그래서 자신의 자존감이 어떤 상태인지 알고 싶다면 스트레스를 받거나 삶의 중요한 변화의 갈림길에 서 있을 때 스스로 어떻게 행동하고 결정하는지를 살펴보면 된다. 스트레스야말로 개인의 자존감 상태를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리트머스지라 할 수 있다.
나를 더 아끼고 사랑하는 세 가지 방법
자존감을 살피고 더 탄탄하게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는 다음 세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첫 번째는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노력이다.
우리는 현재를 살고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과거에 붙들려 있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지만 자신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무의식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과거가 현재의 나를 점령하고 있다면 이제라도 그 맺힌 마음을 풀어줘야 한다. 심리치료 영역에서는 이를 ‘무의식을 의식화한다’고 표현한다. 사람들은 과거에 어떤 환경과 경험으로 인해 설정된 ‘나’에 대한 뿌리 깊은 생각을 갖고 있다. 그 생각을 바탕으로 우리는 자신을 평가한다. 하지만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는 같은 사람이 아닐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을 오랫동안 괴롭히는 내 안의 목소리가 있다면 그 목소리의 출처와 기원을 잘 살펴보자. 이렇게 무의식을 의식화하다 보면 내면에서 나를 괴롭혀온 목소리들이 힘을 잃기 시작한다. 동시에 나 자신을 더 똑바로 응시하고 더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넌 한참 부족해’라고 한 누군가의 부정적인 말을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었는지 모른다. 과거는 바꿀 수 없을지언정 과거를 바라보는 마음 상태는 충분히 바꿀 수 있다.
두 번째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 ‘나’라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
모든 영화에 주인공이 있듯 내 삶의 주인공은 나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패라 여겼던 경험에도 작은 성공들이 담겨 있다. 따라서 안정감 있는 자존감을 갖고 싶다면 삶의 주인공 관점에서 다양한 경험에 긍정적인 이름을 붙여주고 자신을 제대로 이해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자신의 경험들에 하나하나 이름을 붙여주고 나만의 의미를 담아낸다면 자존감이 제자리를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세 번째는 스트레스를 건강한 방식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스트레스를 푸는 방식에 따라 자존감이 향후 어떤 식으로 발전할지가 결정된다. 따라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자신이 그것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건강한 방식으로 풀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길티 플레져(guilty pleasure)’라는 개념이 있다. 죄책감과 수치심을 동반하는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폭음, 폭식, 중독에 이르는 컴퓨터 게임, 도박 등과 같은 이러한 해소법은 당장은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것 같지만, 자신을 타인으로부터 고립시켜 결과적으로 더 큰 스트레스로 되돌아올 수 있다. 자존감이 낮을수록 이러한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기 쉬우며, 이 경우 자존감이 낮아지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건강한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푼다는 것은 나를 확장하고 더 보살피는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푼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편한 사람을 만나 뭉친 마음을 풀어내는 것, 평소에 관심이 있었지만 선뜻하지 못했던 것을 나에게 선물로 해주는 것,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으며 내 마음의 부담은 잠시 내려놓고 타인의 이야기에 마음을 올려놓는 것, 이 모든 것이 우리를 더 가볍게 해주고 나 자신과 더 좋은 관계를 유지시킨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기 자신과 매일 하루 24시간, 1년 365일을 함께한다. 그러한 ‘나’의 안에는 스스로가 가진 소중함과 고유함이 있다. 덕분에 그와 맺는 관계는 매우 특별하고 소중하다. 나 자신과 친해지자. ‘나’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선안남 상담심리사
글 쓰는 상담심리사. 이화여자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후 동대학원에서 상담심리학과 석사를 마쳤다. ‘선안남 심리상담 연구소’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마음을 받아쓰며 살아왔다. 「자존감,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 「상처받은 줄도 모르고 어른이 되었다」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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