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연결사회, 오지로 떠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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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결사회, 오지로 떠나는 사람들

2017.09.01

초연결사회

오지는 주요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문화적, 문명적 혜택을 받지 못하는 곳을 말한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요즘은 오지가 누구나 한번쯤 들어가고픈 그런 장소가 되었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는 세상, 그래서 고립을 꿈꾸는 현대인들에게 오지는 다른 의미가 된 것이다.

<나는 자연인이다>, 그 오지가 주는 로망
MBN <나는 자연인이다>는 2012년부터 지금껏 방영되고 있는 장수 프로그램이다. 사실 이 프로그램 제작팀은 기획 단계에서 그다지 대박을 낼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오지 깊숙한 곳에서 살아가는 이른바 ‘자연인’을 찾아가 그들과 함께 지내며 그 삶을 체험해보는 것은 이미 KBS <6시 내 고향> 같은 프로그램에서 줄곧 보여준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자연인’이라는 생소한 표현이 하나의 관용어가 될 정도로 주목받았다. 그리고 최근 들어 그 관심은 점점 커지고 있다. 7월 초 4%대에 머물던 시청률은 8월 중순까지 지속적으로 올라 6.5%에 육박했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놀라운 힘을 만들어낸 걸까.
우리가 느끼는 ‘오지’라는 표현에 담긴 뉘앙스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덧붙어 있다. 그것은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소외된 곳이란 뜻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오지에 대한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가 달라지고 있다. 한 예로, 우리는 tvN <삼시세끼> 어촌 편에 나오는 득량도 같은 섬을 오지라 부르면서도 그곳을 소외된 곳으로 부정적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저 모든 걸 잊고, 관계의 피곤에서 벗어나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 즉 로망의 대상으로 여기게 됐다는 것이다.

부쩍 늘어난 오지를 담은 프로그램들
오지에 대한 긍정적 시선은 이미 2008년도에 화제가 된 <MBC스페셜> ‘곰배령 사람들’ 같은 방송 프로그램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곰배령은 산세가 너무 깊어 들어가면 휴대폰조차 터지지 않는 오지로 유명하다. 도시에서 살던 이들이 하나둘 그곳으로 들어가 친자연적인 삶을 살기 시작했고, 그 삶이 방송을 통해 소개되었다. 시청자들은 그 고적함과 평온함에 빠져들었다.
<나는 자연인이다>는 이러한 오지의 매력을 그곳에서 살아가는 자연인들의 삶을 통해 확인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이 시작할 당시만 해도 자연인들은 어딘지 기인 같은 느낌을 주었지만, 지금은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대안적인 삶이 되었다. 이 프로그램의 성공 덕분인지 최근에는 오지를 소재로 꽤 많은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고 있다.
<SBS 생방송투데이>에서 월요일마다 방영되는 ‘오지기행 어디로’ 같은 코너에서는 은퇴한 이들이 오지에서 새 삶을 시작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최근 KBS에서 여름특집으로 방영된 6부작 <그 섬에 살고 싶다>는 가파도, 비양도 같은 오지라 불리는 섬에서 살아가는 삶의 자취들을 담아냈다. 이는 오지에서의 시간이 단지 고생만이 아니라 도시인들에게는 로망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초연결사회, 고립될 권리
오지를 담은 프로그램들이 우리에게 전하는 것은 거꾸로 우리가 사는 도시의 삶이 과연 어떤가를 관조하는 것이다. 사실 하루하루 바쁘게 살다 보니 우리는 스스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다. 여기서 벗어나 혼자 동떨어진 오지에 서게 되면 그제야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확인된다는 것이다.
‘오지기행 어디로’에서 자식 대신 닭, 개, 염소 등을 키우며 살아가는 부부가 들려준 깜돌이라는 염소의 이야기가 그렇다. 초유를 먹지 못해 죽어가는 걸 무려 백만 원을 들여 살려놓았는데(당시 염소 한 마리 가격이 몇만 원이었단다), 그 염소가 새끼를 쳐서 집 안이 염소들로 가득 채워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모든 게 돈의 가치로 환산되는 도시에서의 삶과는 완전히 다른, 생명을 우선으로 하는 자연의 삶이 어떤 식으로 진짜 행복을 가져다주는지 잘 보여준 사례였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모든 게 연결되어 있다. 스마트폰만 켜면 내가 얼마나 많은 거미줄 같은 관계망에 얽혀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사회를 이른바 ‘초연결사회(Hyper-Connected Society)’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저마다 관계망을 통해 정보를 얻기 때문에 그 고리가 끊어지지 않도록 네트워크에 집착하곤 한다. 그런데 이런 집착은 오히려 자신의 정체성을 잃게 한다. 오지는 이렇게 초연결사회에서 상실하게 되는 자기 정체성을 회복시켜주는 공간이 된다. 기꺼이 오지로 떠나는 사람들에게 오지는 소외된 곳이 아니라 초연결사회의 피난처가 되는 셈이다.

글_정덕현(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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