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판장 대법원장
2015년 9월 15일 대법원 전원합의부 판결을 선고하겠습니다.
2013므568, 이혼, 원고, 상고인, ○○○, 피고, 피상고인, XXX.
주문, 상고를 기각한다. 상고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이유의 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사건의 주된 쟁점은 혼인생활의 파탄에 주된 책임이 있는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허용할지 여부에 관한 것입니다. 이혼제도에 관한 각국의 입법례는 이른바 유책주의와 파탄주의로 나뉘고 있습니다. 유책주의는 배우자 중에 어느 일방이 동거나 정조의무와 같은 혼인에 따른 의무를 일방적으로 위반하여 혼인의 파탄을 유발한 경우에 그 혼인파탄에 책임이 있는 배우자에게는 재판상의 이혼청구권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그 상대방에 의한 이혼청구권을 인정하는 제도이고, 파탄주의는 파탄에 대한 책임소재를 묻지 아니하고 혼인을 계속할 수 있는 객관적 사정, 즉 파탄상태에 도달하면 이를 이유로 쌍방에게 이혼청구권을 허용하는 제도입니다.
대법원은 일찍부터 재판상 이혼원인에 관한 민법 제840조 6호의 해석에 있어서 원칙으로 유책주의를 채택하여 혼인파탄에 주된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그 파탄을 사유로 하여 이혼을 청구할 수 없고, 다만 상대방 배우자도 이혼하기를 원하거나 표면적으로는 이혼에 불응하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에 있어서 이혼의 의사가 있음이 명백한 경우와 같이 예외적인 경우에만 혼인파탄에 대해서 책임이 있는 배우자의 이혼청구도 허용할 수 있다고 해석하여 왔습니다.
대법원이 종래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허용하지 아니한 주요한 이유는 파탄에 책임이 있는 측이 이를 이유로 이혼청구를 하는 것은 신의성실에 반하는 행위라는 일반적인 논리와 함께 파탄주의를 취하여 이혼을 널리 허용하면 파탄에 책임이 없는 배우자, 많은 경우 여성 배우자가 이혼 후의 생계나 자녀부양 등에 큰 어려움을 겪는 등 일방적인 불이익을 입게 될 위험이 크므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불허함으로서 사회적 약자인 여성 배우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데에 그 취지가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이미 파탄으로 실체가 없어진 혼인관계를 강제로 계속하게 하는 것은 실제와도 맞지 아니할 뿐 아니라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것이기도 하고, 또 여러 나라의 입법례가 이미 유책주의에서 파탄주의로 바뀌고 있는 추세이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향상과 아울러 민법이 개정되어서 이혼한 당사자에게 재산분할청구권, 면접교섭권이 부여된 점, 이혼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크게 변화된 점 등을 고려해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라 하더라도 이를 허용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선 우리나라에서는 재판상 이혼제도뿐만 아니라 외국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협의이혼제도를 두고 있어서 유책배우자라고 하더라도 성실한 협의를 통해서 재판 외에서 이혼을 모색할 수 있는 길이 열려져 있습니다. 실제로도 2014년 현재 전체 이혼 중에 약 77.7%에 해당하는 정도가 협의이혼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에 유책배우자의 행복추구권을 위해서 재판상 이혼에 있어서까지 파탄주의를 채택하여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으로 파탄주의를 취하는 여러 나라에서는 이혼으로 인해서 상대방이나 그 자녀가 가혹한 상황에 빠지는 경우에는 이혼을 허가하지 아니하는 이른바 가혹조항을 두고 있고, 또 이혼 후의 상대방에 대한 부양책임을 지우는 부양금제도 등도 두고 있어 파탄주의의 채택으로 인한 상대방의 일방적 희생을 방지하기 위한 입법적인 장치를 마련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에 비해서 우리나라에는 파탄주의의 한계나 기준에 관한 아무런 규정이 없고 또 이혼 후의 상대방에 대한 부양적 책임에 관해서도 아무런 법률조항이 없어서 상대방의 일방적 희생을 방지할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아니합니다. 물론 법원이 판례로서 파탄주의의 적용에 관해서 어느 정도 기준을 제시하거나 위자료나 재산분할 실무에서 상대방을 보다 두텁게 배려할 수는 있을 것이지만 그와 같은 사법적인 기능만으로 상대방을 보호하기에는 너무나 불충분하고 한계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각종 보완제도가 미비된 상황에서 섣불리 파탄주의로 전환한다면 많은 경우 그 상대방인 여성 배우자의 이익이 일방적으로 희생되어 사회적 약자가 보호받지 못하게 될 위험이 크다고 할 것입니다.
나아가서 두 개의 혼인관계를 동시에 유지하는 이른바 중혼은 법적으로 허용되지 아니하는 것이고 이를 범죄로 처벌하는 나라도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사실상 중혼을 방지하는 장치로 간통죄가 있어서 간통죄가 사실상 중혼을 금지하는 형법적인 기능을 해왔지만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에 의해서 간통죄가 폐지되고 그 이후 중혼죄를 형법적으로, 형사적으로 처벌할 길도 없어졌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무런 대책이 없이 파탄주의를 도입한다면 법률이 금지하는 중혼을 결과적으로 인정하는 모양이 될 수도 있고, 극단적으로 이중관계를 유지하다가 이를 이유로 이혼을 청구하는 이른바 축출이혼으로 발전할 위험도 적지 아니합니다. 또한 가족과 혼인생활에 관한 우리 사회의 가치관이 크게 변화하였고, 여성의 사회진출이 대폭 증가하였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가 취업, 임금, 자녀양육 등 사회경제의 모든 영역에서 만족할 수준의 양성평등이 실현되었다고 보기에 미흡한 것이 현실입니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여 볼 때 민법 제840조 6호의 이혼사유의 해석에 있어서 유책주의로부터 파탄주의로 전환하여야 한다는 주장은 경청할 가치가 있기는 하지만 앞서 거론한 여러 가지 상황을 비추어 볼 때 현 단계로서 아직은 받아들이기가 어렵다고 판단됩니다.
이러한 법리에 따라서 이 사건을 살펴보면, 이 사건은 배우자 아닌 자와 사이에 혼인 외의 딸이 출생하자 집을 나가는 등 혼인생활의 파탄에 대해서 주된 책임이 있는 원고가 민법 제840조 6호의 이혼사유에 의한 재판상 이혼청구를 한 사안입니다.
앞서 본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고는 혼인생활의 파탄에 대해서 주된 책임이 있는 유책배우자이고, 혼인관계의 여러 사정을 두루 고려하여 보아도 원고의 유책성이 그 이혼청구를 배척해야 될 정도로 남아있지 아니한 그런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가 없습니다. 원고의 이혼청구는 허용될 수 없다고 보입니다.
원심이 같은 취지에서 원고의 이혼청구를 기각한 제1심 판결을 유지한 조치는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반해서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민법 840조 6호의 이혼사유 또는 유책배우자의 재판상 이혼청구에 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의 잘못을 발견할 수는 없습니다.
이상의 다수의견에 대해서는 대법관 민일영, 대법관 김용덕, 대법관 고영한, 대법관 김창석, 대법관 김신, 대법관 김소영의 반대의견이 있습니다.
반대의견의 요지는 혼인생활의 회복이 불가능해서 법률이 예정한 부부공동생활체로서의 혼인의 실체가 완전히 소멸하였다면 이는 실질적인 이혼상태라고 할 것이고, 그에 맞게 법률관계를 확인·정리하여 주는 것이 합리적이고, 혼인생활이 회복할 수 없을 정도의 파탄상태에 이르러 혼인의 실체가 소멸된 이상 귀책사유가 그 혼인해소를 결정짓는 판단기준이 되지 못하므로 회복 불가능한 상태의 파탄에 이르게 된 주된 책임이 있는 배우자라는 이유만으로 민법 840조 6호의 이혼사유에 의한 재판상 이혼청구를 허용해서는 아니된다는 종전의 대법원 판례는 변경되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다수의견에 따라서 상고를 기각하기로 하고 주문과 같이 판결을 합니다.
이상으로 오늘 판결선고를 마치겠습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5. 9. 15.(화) 아래와 같은 사건의 판결을 선고하였습니다. 본 동영상은 이 사건의 판결선고 과정을 녹화한 동영상입니다.
▶ 대법원 2013므568 이혼 사건(재판장 대법원장 양승태, 주심 대법관 김용덕) [판결문]
[재생시간 : 9분 30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