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보석상자] 법원의 역사에 포개진 33년 5개월 화학사무직렬 박창수 사무관

박창수 사무관 

 

내 마음의 보석상자

글과 진행 이재영  사진 안테나스튜디오

법원의 역사에 포개진 33년 5개월
화학사무직렬 박창수 사무관

 

박창수 사무관은 33년 5개월간 화학사무직렬로 근무하다가 지난 2021년 12월 31일 퇴직했다. 소수 직렬의 자리에서 법원의 33년 역사를 경험했다.

자그마치 33년, 누구에게는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누구에게는 겨우 닿아있는 시간. 당시엔 느끼지 못했지만 반복되었던 하루하루를 길게 펼쳐놓고 보니 무척 변화무쌍했다. 같다고 느꼈으나 분명한 차이를 만들어낸 세월이었다. 법원에서 보낸 성실한 시간들은 남은 세월을 지혜롭게 보낼 여유를 선물해줬다.

 

박창수 사무관님 33년 5개월을 근무하셨습니다. 지난해 12월 31일에 퇴직하셨죠.
네, 벌써 두어 달이 흘렀네요. 아쉬운 마지막 시간이었습니다. 코로나 시국이라 조용히 대법원장님께 녹조근정훈장을 받고, 처장님과 식사를 하며 마무리했습니다. 훈장은 30년 이상 근속해야 자격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동안의 시간에 대한 보상 같아서 참, 뜻깊었습니다.

시간이 빠르네요. 어느새 33년 5개월하고도 두 달이 지났네요. 혹시 입사 날도 기억하시나요?
그럼요. 1988년 7월 10일에 처음 출근했습니다. 다른 기업체에 다니다가 모집 공고를 보고 전직을 했지요. 성장시대였던 당시에는 취업이 어렵지 않았고 사기업보다 공직의 급여가 크게 낮았습니다. 십몇 대 1의 경쟁을 뚫고 합격은 했는데 박봉이라 고민을 좀 했습니다.

ㅇㅇ 화학직렬의 경쟁이 치열했군요. 합격의 비결이 무엇이었습니까?
퇴사하는 사람이 있어서 마침 한 자리가 났는데 지원자가 몰렸죠. 경력직을 뽑는 자리였고 당연히 자격증이 있어야 했어요. 자격요건은 다 비슷하게 갖췄는데 그때 제가 뽑힌 이유는 한자 성적 덕분인 것 같습니다. 당시에 사용하던 폐쇄등기부는 한문이 많이 섞여 있었습니다. 면접을 보는데 한자를 물으시더군요. 어렵지 않게 대답했고 합격을 했죠.

그렇게 합격을 하고도 박봉이라 고민을 하셨군요. 계속 남기로 한 이유가 있었나요?
1988년도에는 법원이 서소문에 있었습니다. 현재 덕수궁 옆에 있는 서울시립미술관 자리가 법원이었어요. 법원 사람들은 점심시간에 덕수궁을 무료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그런 여유가 좋았습니다. 사기업에 비해 시간이 여유로운 편이었고, 내 일만 확실히 하면 크게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스트레스가 적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서 만족하며 근무했습니다.

화학직렬 화학사무관으로 들어오셨는데 정확하게 어떤 업무를 하셨습니까?
1980년대만 해도 폐쇄등기부가 부책(簿冊) 형태로 되어 있었습니다. 협소한 등기소에 폐쇄등기부 장부를 수용할 공간이 부족하다 보니 제가 입사하던 때 등기부를 마이크로필름화해서 보관하고 책을 폐기하도록 개정이 됐습니다. 장부 하나하나를 촬영해서 마이크로필름으로 만들어 보존하고, 열람하고 프린트할 수 있도록 만드는 작업이었죠.

촬영, 인화 등의 필름 작업을 해서 화학직렬이었군요. 그런데 필름도 자리를 꽤 차지하지 않나요?
그렇죠. 전산화를 거쳐 이제는 데이터로 보존하고 있죠. 1993년도에 전산화가 시작되면서 폐쇄등기부라는 건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신속한 전산화 구축을 위해 마이크로필름화하는 것도 외부업체에 용역을 주게 됐죠. 사실상 제가 하던 일이 없어졌었어요.

 

ㅇㅇ위기였네요. 소수 직렬은 전문가 집단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일 자체가 사라졌다는 건 큰 변화였겠습니다.
33년 5개월 일하면서 두 번의 큰 변화를 겪었는데 첫 번째 땐 그렇게 크게 변하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일이 더 많아졌지요. 지방 출장을 다니면서 지방 법원의 필름을 관리하고 지방에서 촬영한 필름들이 올라오면 검수하는 일을 하면서 일반 업무도 병행했습니다.

일반 업무라면 어떤 것들이었습니까?
원래 일이 없어지면서 질의서 접수나 등기 관련 책자를 만드는 일을 맡게 되었죠. 새로운 일을 해서 좋으면서도 일의 강도가 높아 스트레스를 좀 받기도 했습니다. 법학과를 졸업한 게 아니기 때문에 법률적 지식이 부족한 게 문제였죠. 부동산등기법, 민법 등을 책을 보면서 공부했습니다. 변화된 세상에 맞추려면 새로운 지식이 필요했으니까요. 조금 힘들었지만 보람된 시간이었습니다. 새 업무 때문이기도 하지만 법원에서 일을 하는데 기본지식을 갖춰놓으니 어쩐지 든든하더군요.

첫 번째 변화는 잘 극복하셨군요. 그렇다면 두 번째 큰 변화에는 어떻게 대응하셨습니까?
필름 작업 관련 일들이 점점 줄고 완전하게 디지털화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일반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공부
했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어요. 등기 관련 예규, 선례를 만들고 온라인상의 부동산 등기과 질의에 회신하는 일을 퇴직 때까지 맡아서 했습니다. 처음 업무가 바뀌었을 땐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묵묵하게 할 수 있는 일들을 했어요. 디지털이다 인공지능이다 변화의 시대라고 불안해하는데 어느 상황이든 일하겠다는 의지로 공부하며 최선을 다하면 길이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책자 형식의 폐쇄등기부에서 카드화, 전산화의 과정을 다 거친 등기과의 산증인이시네요. 바뀌고 적응이 되기까지 여러 에피소드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특별한 에피소드는 떠오르지 않지만, 변화의 순간마다 민원의 주체인 국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한다는 걸 바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종이로만 보다가 모니터 화면으로 보기 시작하면서 실무자들은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는데 그런 불편을 상쇄할 만큼 보람이 있었어요. 변천 과정에서 조직이 방대해지고 인원도 늘고 일도 많아졌지만, 점점 국민 중심으로 나아갔습니다. 대법원장님께서 ‘섬기는 법원’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지난 33년을 돌아보면 법원이 그렇게 국민을 섬기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고 생각합니다.

답변을 들으니 새삼스럽게 33년이라는 시간의 무게가 와 닿습니다. 사실 우직하게 한곳에서 자리를 지키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혼자 일하는 게 아니니까요. 새로운 관계들이 시작되고 사라졌을 텐데요. 동료들과의 관계에 대한 노하우가 있으시다면 알려주세요.
특별한 건 없습니다만 하나 이야기하자면 제가 인사를 참 잘했습니다. 저는 낙관적인 사람이고 인생을 긍정적으로 바라봅니다. 그런 성향 때문인지 누구를 만나든 반갑게 인사하는 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처음 봐도, 어느 과인지 잘 몰라도 인사를 건넵니다. 마스크를 쓴 요즘은 눈인사라도 건넸습니다. 습관 같은 거라 그게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퇴직하면서 깨달았습니다. 인사하는 습관이 박창수 사무관이라는 직업인에게 큰 영향을 줬다고 말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분들이 축하 인사를 건네줬어요.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그동안 고생 많으셨다,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쉬우면서도 어려운 노하우지만 한 번쯤 노력해볼 만하네요. 좋은 습관을 지녔음에도 관계라는 게 쉽진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물론 다 좋진 않았지요. 다툼도 있고 화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좋은 사람이 훨씬 많았습니다. 그래서 순간순간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젊었을 때는 같은 이야기도 삐딱하게 듣곤 했습니다. ‘소수 직렬이라 무시를 하는 건가’ 생각하기도 했죠. 당시에는 화가 많이 났지만 지금 생각하면 괜한 자격지심으로 오해를 했던 것 같아요. 지금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그때 굳이 예민하게 굴지 않아도 됐을 텐데 왜 그랬나 생각하기도 합니다. 쭉 그랬던 건 아니고, 제 일에 집중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다 좋아졌습니다.

소수 직렬로 법원 내에서 어떤 역할을 했다고 보십니까?
법원의 일이라는 게 모든 걸 법관이 해결할 수 없는 구조이지 않습니까? 법원이 아니라 어느 곳이든 마찬가지죠. 대부분의 소수 직렬은 자격증이 필수인 전문가 집단입니다. 일반 직원들이 다 채우지 못하는 틈 사이사이를 정교하게 메우는 역할을 소수 직렬들이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크게 표시 나지 않지만 없어서는 안 될 사람들
입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예전엔 승진의 한계 등으로 자격지심도 있었지만 오래 지나고 보니 필요한 일을 했다는 뿌듯함이 남습니다.

이 글을 보고 있을 후배들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을까요?
제가 음악을 참 좋아해서 옛날 팝송을 즐겨 듣습니다.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던 취미예요. 그중에서 엘튼 존의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를 자주 듣는데요. 미안하다는 말은 하기 힘들다는 그 말이 참 맞는 말 같습니다. 미안하다는 말은 누구나 하기 힘듭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또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많은 걸 해결할 수 있지 않습니까? 서운하더라도 좀 참고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고 또 받는 거보다 먼저 주려고 노력하면 직장생활이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겁니다. 33년, 긴 시간 일해보니 그거 하나 알겠더라고요. 내가 이만큼 오랫동안 법원에서 일할 수 있었던 건 나한테 먼저 미안하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였다고 말입니다. 그게 33년을 견딜 수 있었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ㅇ 

이제 새로운 일상을 시작하셨는데 새로운 계획이 있으신가요?
함께 일해보자는 제의를 받기도 했는데 우선은 시간을 제 마음껏 써볼 생각입니다. 계획한 대로 재미있게 살아보고 싶습니다. 형제들과 여행도 다니고 가족들과 시간도 보내고요. 당장 계획한 것 중 하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전국 곳곳에 있는 100대 사찰을 방문하는 겁니다. 새해가 시작되고 논산, 태백, 양수리에 있는 사찰에 버스와 기차를 타고 다녀왔는데 100개를 다 채워보고 싶습니다. 제가 60대인데 60을 가려들을 수 있는 나이라고 해서 이순이라고도 합니다. 이제 남은 생은 좋은 얘기만 듣고 좋은 말만 하고 좋은 일만 하면서 지혜롭고 건강하게 지내는 게 바람입니다. 33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금의 여유로운 저를 만들어줬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시간에 미안하지 않도록 앞으로 더 행복하게 살아보겠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인사를 드리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지면을 통해 뒤늦게 새해 인사 전합니다. 법원 여러분들 모두 복 많이 받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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