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보석상자] 법조일원화 제도를 꽃피울 임용법관 멈추지 않고 걷는 사람들

내 마음의 보석상자

글과 진행 이재영  사진 안테나스튜디오

법조일원화 제도를 꽃피울 임용법관
멈추지 않고 걷는 사람들

조현선, 신은진, 선승혜, 이은숙, 김동현, 황정현 판사

판사의 일에서 중요한 하나는 기록을 살피는 것이다. 판사들은 누군가에게 일어난 사건의 실상을 면밀히 파악하며 매일 새로운 인생을 마주한다. 법조일원화 시행 10년,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한 임용법관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스스로의 인생을 여러 모양으로 조각해 본 사람들이 법관이 된다는 건 여러모로 유리하다. 타인의 생의 기록 또한 다각도로 살피고 헤아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대담을 나눈 조현선, 신은진, 선승혜, 이은숙, 김동현, 황정현 판사의 이력은 다채롭다. 왜 이 길을 선택했을까, 라는 의문은 접어두자. 그들이 선택한 건 특정한 길이 아니라 계속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걷는 일이었다.

단체사진 

 

(왼쪽부터) 선승혜, 김동현, 조현선, 신은진, 이은숙, 황정현 판사

 

단체사진 2 

 

법이 좋아서 시작한 일

이은숙-미리 만나서 간단하게 인사를 나눴는데 임용법관 전에 어떤 이력을 가지고 있었는지 얘기를 좀 나눠볼까요? 저는 경찰공무원이었어요. 경찰대학교를 졸업하고 수사업무를 하면서 경감 승진 후 법조인이 됐습니다.
신은진-보통 경감 전에 진로를 선택하시던데, 결정이 조금 늦으셨네요?
이은숙-제가 법 공부를 하게 된 건 사건의 처음부터 끝을 알고 싶어서였어요. 파출소에 사건이 들어오는데 그게 시작이거든요. 마지막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 가는지 알 수 없는 게 답답했어요. 스스로 법 지식이 얕다는 생각이 들어서 승진한 뒤에 공부를 해보자 했죠. 처음에는 공부해서 지식 쌓고 경찰로 돌아갈 생각이었어요.
선승혜-그런데 어떻게 법관까지 하게 되셨어요?
이은숙-연수원에서 공부하는데 법 공부가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자연스럽게 재판연구원이 되었고 여기까지 오게 됐죠. 사실 처음 공부할 때만 해도 제가 판사가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여기까지 보고 공부를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신은진-저도 그랬어요. 일단 공부를 해보자는 것이었지, 판사를 목표에 둔 건 아니었는데 지금 이 자리에 있네요.
이은숙-연구원이 돼서 생활하다 보니까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선승혜-경감까지 하셨으면 팀장이신데, 쌓은 커리어가 아까웠을 거 같아요.
이은숙-팀장을 오래는 못해봤어요. 연구원 업무를 하면서 판사님들 일하시는 게 너무 멋져서 그때부터 법원에 들어오고 싶다고 주위에 말하고 다녔던 것 같아요. 연구원 시절에 김동현 판사도 함께 했죠. 고등법원에서 같은 방에 있었어요.
김동현-그래서 오늘 익숙한 분이 한 분 계셔서 좋습니다. 저는 과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카이스트에 진학했었는데요. 그때까지만 해도 법 관련 일을 할 거라고는 생각 못했죠.
황정현-그러셨겠네요. 과학 분야 전공하셨으니까.
김동현-네, 과학자가 되고 싶었지만 대학에서 공부를 썩 잘하지 못했어요. 하하. 대학원에 원서를 냈는데 떨어졌어요. 고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평소에 과학기술정책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관련 일을 하려면 법과 경제를 알아야 해서 법을 공부하는 수단으로 로스쿨에 들어갔죠.
조현선-법조인이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법 공부를 하려는 목적으로 가신 거네요?
김동현-그랬었죠. 하지만 로스쿨 때 의료사고로 시력을 잃으면서 다시 고민을 시작했어요. ‘뭘 할 수 있을까?’ 지금 부산지법에 계신 최영 판사님이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판사가 될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어요. 그리고 예전에 공익인권법학교 프로그램에 참가한 적이 있는데 강사로 오신 한 변호사님께서‘인권감수성이 풍부한 사람들이 판사를 했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어요. 공익변호사만 생각하지 말고 법원에 가서 할 수 있는 일을 해보라는 말에 준비했고 연구원 임기를 마치고 서울시 장애인권익옹호기관 변호사로 일하다가 판사가 되었습니다.
신은진-노경필 부장님 통해서김동현- 판사님 이야기를 듣긴 했었어요. 이렇게 직접 뵈니 반갑습니다. 저는 기자 생활을 했고, 인터넷 포털에 콘텐츠를 제공하는 사업체도 잠깐 운영했어요. 직장 생활도 하고 창업도 하고 여러 일들을 접하면서 보니 어떤 직종이든 변호사 자격증이 있으면 도움이 되더군요. 마침 로스쿨 제도가 생겼을 때라 과감히 도전했죠. 법을 공부하겠다는 생각으로 들어갔는데 지도교수님께서 법관 출신이셨어요. 로스쿨 나와서 뭘 하겠냐고 물으셔서 농담처럼 변호사 되어서 돈도 많이 벌어보겠다니까 엄청 꾸짖으시더라고요. 법원을 목표로 공부를 하라면서 진짜 법 공부에 대한 가르침을 주셔서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이은숙-좋은 스승님이셨네요.
신은진-제가 계속 그렇게 좋은 분들을 만났던 것 같아요. 연구원을 지원해서 갔는데, 한 방에 같이 계시던 배석 판사님 두 분이 너무 좋은 분들이셨어요. 함께 판결문 의논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저분들의 동료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죠. 그분들 영향으로 로펌보다는 조금 더 법원과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되는 국선전담변호사를 하게 됐고요. 이후에 지원해서 임용됐습니다.

조현선판사

ㅇ 

 

 

 

법이 향한 시선, 사람

 

조현선-저는 M&A 전담 변호사로 일해서 형사사건을 변호사 시절에 접해보지 못했어요. 국선전담변호사는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겠네요.
신은진-국선전담 사무실은 다양한 사람들이 오고 가는 곳이에요. 피고인들이 거침없는 경우가 많죠. 구치소에 가서 직접 접견도 해야 하고. 해보지 못했던 경험을 그때 많이 했어요.
황정현-대단하시네요.조현선 판사님도 굉장히 특별한 이력을 가지셨다고 들었습니다.
조현선-법대를 졸업하고 3년 정도 광고기획사에 다녔어요. 업무도 재밌었고 사람들도 유쾌하고 좋았는데, 그곳에서 임원이 될 때까지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사법시험을 봤고 변호사가 되었어요. 운 좋게 처음부터 실력 있는 파트너와 같은 팀에서 일하게 되었어요.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분의 일에 대한 몰입과 헌신을 무척 존경했어요. 저분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했고 오직 그쪽만 봤어요. 그러다 로펌의 지원으로 LL.M. 과정 유학을 가게 되었는데, 전 세계에서 온 친구들이 법 관련 일을 하는 이유가 제각각이었어요. 환경에 관심이 많아서, 인권에 관심이 많아서 법률을 공부하고 법조인, 사회단체활동가가 되었는데, 그러한 커리어가 법조인으로서 상당히 일반적이고 통상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 공공의 영역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저만을 향해 있던 시선이 처음으로 밖을 향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 세상에 대한 관심이 생긴 거죠. 유학 다녀온 다음 해 법관임용 메일이 온 걸 발견했어요. 매년 메일이 왔을 것이고, 일하면서 그 메일이 눈에 띈 적이 없는데 그때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이은숙-마치 때가 됐다는 듯 판사님 눈에 띄었군요. 결정에 주위의 반대는 없었나요?
조현선-가족, 그리고 저와 오랜 기간 같이 일한 회사 파트너 변호사 모두 다소 의아하다는 반응이었어요. 파트너 변호사는 제가 법관을 지원하겠다고 하니 무엇을 결정할 때 그에 따른 장단점을 생각하지 않느냐고 하면서 다시 생각해 보라고 했어요. 쉬운 일이 아니라면서 현실적인 이야기를 했는데, 저와 같은 기수에 이미 판사가 된 친구들은 곧 부장이 될 텐데 괜찮겠냐는 말씀을 하셨어요. 저는 법관이 하는 일이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고 중요하구나…, 그런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결정의 ‘전부’였고, 그 외 제도적이거나 부차적인 것들은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선승혜-일하면서 준비하셨나요?
조현선-오랜만에 재판실무책을 다시 봤죠. 힘들었는데 또 괜찮았어요.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서 내 능력과 경험·지식으로 누군가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찾다 보니 이 길이 보였어요. 거대한 사건만이 아니라 소소해 보이는 사건이라도 그에 대한 판단을 하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 거죠. 대단한 사명감으로 시작했다기보다 사회에서 사법제도는 매우 중요하고 거기에 일조하고 싶다는 정도였어요.
선승혜-후회하신 적은 없나요? 가지고 계셨던 커리어에 정점을 찍었을 수 있잖아요.
조현선-후회를 잘 안 해요. 후회할 것 같으면 안 왔겠죠. 저와 같은 커리어가 이례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세계적으로 봤을 때 통상적인 법조인의 삶이라고 생각해요. 외국의 경우 보통은 변호사를 하다가 판사가 되겠다는 의사결정을 하고 법관이 되잖아요.
신은진-저도 조 판사님 의견에 동의해요. 특이한 결정이 아니잖아요. 마음 가는 흐르는 대로 했을 뿐인데, 특이하다고들 해요. ‘프로 이직러’라는 이야기도 들었고요. 그럴 땐 조금 부담스럽기도 해요.
선승혜-저도 그래요. 갑자기 직장을 옮겼다는 의미보다는 제가 하고 싶은 것들에 닿아 있었거든요. 저는 학창 시절부터 글 쓰는 직업을 원했어요. 어렸을 때는 순수문학을 하고 싶었는데 재능이 그 정도가 아니라는 걸 알고, 언론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했어요. 신문사에 들어갔는데 신입 시절 출입처가 국회였죠. 연차가 낮아서 정무 취재는 못하고 정책 취재를 주로 했거든요. 재미 없고 지루하고 딱딱한 일이었는데, 입법 취재를 하다 보니까 법이 재미있더라고요. 기자 생활하면서 많이 들은 이야기가 신문방송학, 언론정보학은 참 보낼 데가 없다는 거였어요. 경제학이나 법학 같은 전문분야가 있으면 그걸 하면 되는데 맞춤으로 시킬 게 없다는 거죠. 그때 법학 공부를 하지 않은 게 아쉬웠는데 마침 로스쿨 제도가 생겨서 도전했어요. 해보니 법학이 엄청 어렵더라고요.
이은숙-용어부터 생소하잖아요.
선승혜-어렵게 공부해서 변호사시험에 합격하고 로펌에 갔는데 송무가 적성에 잘 맞아서 변호사 일을 5년 동안 했어요. 글 쓰는 게 재미있었어요. 시원하게 서면 써서 승소하는 것도 짜릿하더라고요. 그런데 로펌에 있다 보니 아무래도 대기업을 주로 대리했는데, 상대방이 법률적 조력을 제대로 받았더라면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겠다 하는 사건들이 많았어요. 그런 게 마음에 걸리던 와중에 경력 법관 제도가 눈에 들어와서 지원했어요. 법관들은 단일 커리어를 이어오신 분들이 많으니까, 직업을 전환한 데 대해서 질문을 자주 받았는데, 돌이켜보니 제가 선택했던 커리어들은 ‘글’을 쓰는 직업이라는 공통점이 있더라고요. 저는 그냥 지나온 길인데, 이렇게 돌아보니까 정리가 되네요.
황정현-저도 그랬어요. 저는 헌법재판소에 있다가 와서 그런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는데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늘 고민이었거든요. 그런데 오늘 이렇게 말씀을 들으면서 제 생각도 많이 정리가 됐어요. 저는 법대를 나와서 고시 보고 무난하고 평탄하게 연수원 끝나고 바로 재판소 가서 5년 8개월 정도 있다가 나왔는데요. 대단한 계기 때문은 아니었고 헌법재판소에 있으면 연차에 비해 과분한 사건을 많이 맡게 되거든요. 그런 사건들을 맡으면서 평생 이것만 해도 괜찮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경험도 좋고 재판도 좋은데 소수만 할 수 있는 일이라 좀 아쉬웠죠.
김동현-그래도 쉬운 선택은 아니셨을 것 같아요.
황정현-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지만 내가 앞으로 모든 일을 그만두고 생각했을 때 재판소 경력만 가지고 있으면 부족함을 느낄 거 같았어요. 모르고 지나가는 게 훨씬 많겠구나 싶었죠. 공부를 할 의지는 없으니 일로라도 다양하게 배워보고 싶다고 생각해서 지원했는데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았어요.
이은숙-이직이라는 건 쉽지 않죠. 저는 다행히 경찰 선배님들이 장난으로 연수원 졸업했을 때부터 이 판사라고 부르셨어요. 하하. 지금도 법적으로 궁금한 게 있으면 연락 주시고 도움도 드려요. 그런데 판사 업무를 하면서 어떤 것들이 가장 힘드세요?


체력, 겸손, 스스로에 대한 의심

김동현-체력적인 것이 제일 힘들어요. 오늘도 밤을 새워서 판결문을 작성해서 내고 왔거든요. 매일은 아니지만 가끔 이런 일이 생겨요. 판결문을 어떤 기일까지는 써야 하니까 잠을 줄여서 쓰게 되더라고요.
이은숙-맞아요. 예상했던 것보다 항상 1.5배에서 2배 정도 걸려요. 저는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판사에게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이게 결론일 거라고 단정 짓는 순간 디테일이 보이지 않더라고요. 의심하면서 다른 내용을 찾고 하다 보니 오래 걸려요. 겸손함과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계속 가지고 일해야 하는 직업인 거 같아요.
조현선-동의해요. 사실 체력은 변호사할 때도 필요했던 거니까요. 가끔 배경지식이 부족해서 좀 답답할 때가 있어요. 예를 들어 현실적으로 인터넷도박사이트가 어떤 식으로 개설, 운용, 관리되는지에 대해 잘 모르니 관여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잘 안 오는 거죠. 그런 것 외에도 일상에서의 특정 경험에 대한 갈증 같은 것들이 좀 있어요. 다른 분들은 어떻게 하세요?
이은숙-유튜브를 찾아봐요. 얼마 전에도 컨베이어 벨트 관련 영상을 열심히 봤어요.
선승혜-가끔 법리나 사실관계에 매몰돼서 다른 길을 가고 있을 때가 있어요. 부장님들이랑 합의하다 보면 ‘아, 연륜이 이래서 필요하구나’ 싶어요. 법리를 떠나서 결론이 일반인에게 합리적이고 받아들일만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하는데 거기까지 못 미치는 거죠. 미아처럼 헤매다가 부장님께서 한마디 해주시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곤 하는데요. 그럴 때마다 법원 내에서의 경험과 시간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황정현-잘 듣는 것도 필요하고 결단력도 중요한 거 같아요. 재판할 때 듣는 것뿐 아니라 그 입장에서 이해하고 어느 순간에 내가 잘 결정해야 하잖아요. 그 결정이 힘든 거 같아요. 대부분 사안이 애매하고 복잡한 게 많아서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으니까요.
김동현-쉬운 사건은 법원으로 잘 안 오더라고요.
이은숙-명백한 것들은 쉽게 승복하죠. 법원까지 안 오고. 저는 작년에 처음으로 당직을 하는데 영장 실질이 들어왔어요. 그게 제가 스스로 하는 첫 재판이었어요. 아직까지는 배석이니까 혼자 할 일이 없잖아요. 같이 살던 여자를 때려서 머리카락 몇 개 빠진 사건인데 이게 왜 영장이 들어오지 싶더라고요. 이상해서 경찰 친구에게 전화를 했어요. 그랬더니 얼마 전에 데이트 폭력 가해자를 그냥 놔줬다가 남자가 여자를 죽인 사건이 있어서 그 후로 데이트 폭력 사건은 무조건 영장을 신청한다더라고요. 그러면서 그 친구가 그런 사건들을 걸러 내는 게 너의 역할이라고 하는데 굉장히 큰 책임감이 생기더라고요. 기록을 아주 꼼꼼하게 보고 여러 번 검토해서 기각을 했는데요. 이후 며칠 동안 마음 졸이게 되더라고요. 혹시나 추가 사건이 벌어지는 건 아닌가 해서요. 그때 친구의 말이 잊혀지지 않아요. 그때 내가 판사가 됐구나 느꼈어요.
조현선-들은 얘긴데, 기록에 답이 있대요. 로펌에서 마지막 날이었는데 법원에 계시다 오신 분이 계셨어요. 그분이 저에게 “조 판사님, 아무리 어려운 사건을 만나도 기록에 답이 있습니다.” 한마디 해주시더라고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보고 또 보면 답이 있다고요.
이은숙-기록을 보는 것도 중요하고요. 작년에 저희 부장님은 서면으로 봐도 안 나오는 건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부장님과 현장 검증을 다녀오면서 판사들이 현장을 보는 것에 적극적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구원 시절에 살인사건인데 소요시간이 중요한 사건이었어요. 검사는 집과 사체가 묻힌 곳이 1~2분 거리라고 하고, 변호사는 5분 이상이 걸린다고 주장해서 검증을 갔는데 1분 30초 걸리더라고요. 철저하게 확인하면 결론에 대한 설득도 되고 만족감도 주는 거 같아요.
신은진-그렇게 하고 싶지만 정말 시간이 없기도 하잖아요. 사건도 많고김동현- 판사님 말씀처럼 판결문도 기일 안에 처리해야 하고요. 제가 지금까지 가진 직업 중에 가장 움직이지 않는 직업인 거 같아요. 신체적으로 전혀 움직임이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김동현-저는 그게 적성에 맞더라고요.
조현선-필요하면 현장도 가고 싶은데 시간이 부족한 게 아쉬워요. 인원이 좀 더 충원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ㅇ 신은진 판사

 


 

 

 

 

 

 

 

 

 

법조일원화 제도, 국민적 관심을 더 끌어냈으면

선승혜-사실 선발 절차가 까다롭고 현업을 하면서 도전하기 쉽지 않을 정도의 난이도잖아요. 조금 간소화 돼서 더 많은 분들이 법원으로 들어오셨으면 해요.
이은숙-외롭고 힘든 시험이라 두 번은 못한다고 했어요. 하하.
신은진-선발 절차가 좀 유연하게 바뀌어도 좋을 것 같아요.
조현선- 조심스럽게 말하면 바뀌기 힘들지 않을까요? 우리 교육 자체가 시험 위주이고 그게 공정하다고 믿기 때문에 다른 걸 시도하는 게 어려운 것 같아요. 최근에 읽는 책에 ‘비자발적 헌신’이라는 표현이 있었어요. 헌신의 대상이 사회, 가족이 심어 놓은 성공이라는 거죠. 때문에 일, 직업의 내용이나 실질이 내가 원하지 않는 것임에도 또는 내가 원하는지 여부에 대해 생각할 겨를 없이 사회나 가족이 원하는 걸 위해 헌신하는 거예요. 그다음으로 자발적 헌신의 단계로 간다고 합니다. 내가 전념하고 싶은 것을 직접 선택하고 그것에 헌신하는 것이죠. 법조일원화가 자발적 헌신의 어떤 시작이 아닐까 싶고 그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법관의 업무의 의미나 그 중요함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를 가지고서 그것을 하겠다고 스스로의 의사결정으로 선택하는 거니까요. 다만 현재의 법조일원화 제도 자체는 지향하고 나아갈 바인데 제도 초기단계라 시스템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좀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지만, 지향점이 있으니 맞춰 나가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이은숙-법원에 들어와 보니까 이 업은 정말 하고 싶은 사람이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조현선-자발적 헌신이 필요한 직업이죠.
황정현-뽑아봤자 나가겠지, 이런 생각도 안 하셔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나름 자신들의 목표와 지향으로 선택한 일이니까요.
선승혜-지금이 딱 과도기인 것 같아요. 법조일원화가 소명감이든 자신의 성향이든 판사라는 업의 무게를 느끼고 간절하게 원하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는 제도로 발전해 나갔으면 해요.
이은숙-판결은 어디서 받든 평균적이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균질성이 매우 중요한데, 다양성까지 갖추려다 보니까 선발 과정이 쉽지 않은 것 같아요.
황정현-가끔 그런 생각하는데요. 경력이 있어서 왔는데 신입과 내가 다를까, 아웃풋이 더 좋을까? 이런 의심이 드는데 확인이 안 되니까요.
조현선-비슷하지 않을까요?
황정현-경력이 5년이나 되니 뭔가 달라야 하는데 그게 어느 지점이 다른 걸까 싶어요.
이은숙-황 판사님 말씀 듣고 생각났는데 법조 경력으로 치면 7년 차인데 법원 경력으로는 병아리잖아요. 실은 2년 차는 이 정도만 해도 되는 걸 수도 있는데 7년 차인데 이것도 못하나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 생기는 거예요. 왜 이런 실수를 하고 있나, 나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와 남들의 평가도 갭이 있고요. 요즘은 그래서 7년 차이지만 2년 차라고 스스로 되뇌어요.
김동현-저도 하는 고민이에요. 오늘 아침에 부장님께 판결문 건네고 왔는데, 내일 가서 무슨 얘기를 듣는 건 아닐까? 그런 걱정도 하죠.
신은진-우리가 모두 법조일원화 제도로 들어왔으니까 긍정적일 수밖에 없고, 장점도 알고 제도가 맞다는 건 동의하는데 경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가에 대해 늘 고민해요. 좋은 의도로 제도를 만들었는데 그런 것들이 판결문에 담기고 있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사건이 너무 많아서 기록을 한 번 더 볼 수 없는 것도 안타깝고요. 또 개인적으로는 국민적 관심을 좀 끌어냈으면 해요. 일반 대중들에게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요.
김동현-동의해요. 그렇게 되면 저와 같은 좀 특별한 이력을 가진 사람들도 더 많이 지원하지 않을까도 싶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면 법조일원화의 취지를 잘 살릴 거 같고요. 제 입장에서는 장애를 가진 판사나 인권 활동 했던 분들이 법원에 오면 좀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황정현-사실 오늘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싶었는데요. 스스로를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됐어요. 그동안 왜 지원했냐는 이야기 정말 많이 들었는데 여러분들 이야기를 들으며 답을 찾았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해요.
선승혜-서로 상황이 같은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니 즐겁네요. 일이 아니어도 다시 뵈었으면 합니다.
조현선-처음에 메일 받고 ‘특별할 것이 없는데…’ 하고 망설였어요. 그런 마음으로 왔는데 경험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분들을 만나서 좋았어요.
신은진-저도 오늘 밤을 새워서 판결문을 써야 하는 상황이라 올지 말지 고민스러웠는데요. 밤샐 가치가 있는 자리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동현-저도 즐거웠습니다. 우리끼리 단톡방이라도 하나 만들어 보죠.
이은숙-김동현 판사님이 <뭐든 해봐요>라고 책을 내셨는데, 그것도 축하할 겸 다시 한 번 뵈면 좋겠네요. 다른 경력이지만 같은 경험을 가진 분들과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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