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보석상자] 법조 인생을 밝히는 별의 순간 대법원 재판연구관

人사이드인터뷰

2022.09.06

재판연구관

(왼쪽부터) 권민재 연구관, 윤혜원 연구관, 김도형 연구관(부장판사), 김동희 연구관, 김선형 사법보좌관

내 마음의 보석상자

글과 진행 이재영 사진 안테나스튜디오

열정을 쏟고 지혜를 나누다
법조 인생을 밝히는 별의 순간
대법원 재판연구관

재판연구관의 하루는 길다. 모두 퇴근한 후에도 대법원 재판연구관들의 방에는 불이 환하다. 그들은 상고 사건을 연구하고, 토론하고 보고서를 작성해 대법관에게 의견을 내는 일을 거듭해낸다. 말 그대로 ‘거듭’이다. 매일의 태양이 뜨듯 매일의 사건이 생겨난다. 밤낮도 주말도 없이 일해야만 감당할 수 있는 업무량이지만 그럼에도 재판연구관으로 보내는 시간에 보람을 느낀다. 열정과 지혜, 연구와 경험이 씨실과 날실이 되어 촘촘하고 단단하게 법조인생을 직조해주기 때문이다.

재판연구관의 일
김도형-먼저 인사를 하기 전에 우리 조직에 대해 좀 설명할 필요가 있겠죠?
김동희-네, 좀 독특한 구조니까 독자분들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하는 게 좋겠어요.
김도형-저희는 12분 대법관님의 재판 업무를 보좌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대법관님에게 소속되어 해당 대법관님이 주심을 맡으신 사건을 주로 보는 전속연구관과 특정 대법관님에게 소속되어 있지 않은 공동연구관으로 나뉩니다. 공동연구관은 다시 민사조, 상사조, 근로조, 형사조, 헌법행정조, 조세조, 지재조로 나뉩니다. 민사조, 형사조, 헌법행정조, 조세조 등에는 새로 접수되는 신건을 검토하는 신건조가 있습니다. 처음 재판연구관이 되면 통상 이러한 신건조 중 한 군데에서 1년을 근무한 후 2년 차에 전속연구관이 되거나 각 공동조로 보직이 정해집니다. 전속연구관은 전속조라고도 하고 각 대법관실마다 전속부장연구관 1명을 포함한 2명이 배정되고, 공동조에는 법관 이외에 변호사, 교수, 박사, 파견 온 헌법연구관 등 비법관연구관도 있습니다. 위로는 재판연구관실을 총괄하시는 수석재판연구관과 선임재판연구관이 계십니다. 그리고 3년 전부터는 사법보좌관님들이 일부 재항고 사건에 관한 신건보고서를 작성하여 각 전속조에 보고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설명이 된 것 같은데 각자 보직에 대해 얘기해 볼까요?
김동희-저는 대법관님을 모시고 있는 전속조 연구관이고요. 2년 차가 되면 전속, 공동을 갈지 결정이 되는데 저는 전속조를 선택했어요.
권민재-저는 6개월 전에 들어와서 현재 신건조에 있습니다.
김선형-네, 저는 재항고사건 등의 기초검토를 담당하는 사법보좌관입니다. 2019년 7월에 재판연구관실에 처음 사법보좌관 자리가 생겼는데 처음 들어왔던 2명 중 1명입니다.
윤혜원-원래 재판연구관이 판사 경력 12년 차 이상 되는 분들로 구성되는데요. 저는 로스쿨 졸업 후 청년연구관 제도를 통해 들어왔고, 현재 공동조 연구관입니다.

더 좋은 법조인이 되기 위한 선택
김도형-저는 공동조 중 헌법행정조의 총괄부장연구관을 맡고 있습니다. 공동조 총괄들은 통상적으로 연구관 생활을 하였던 부장판사 중에서 보임됩니다. 저 역시 3년간의 헌법행정조 연구관을 마치고 지방 근무를 1년 동안 한 다음에 다시 오게 되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재판연구관을 선택했어요?
권민재-제가 14년 차가 됐는데, 연수원 때 배웠던 것만으로 업무를 계속 하기엔 밑천이 좀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일선 법원에서 좋은 재판을 하는 법관이 되려면 나의 기본적인 법리를 정비할 필요가 있겠다 싶더라고요. 재판연구관은 일하면서 연구 검토를 할 수 있으니까, 법관으로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했죠. 연구관이 돼서 막상 막내이자 새내기로 6개월을 보내 보니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6개월 전으로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을. 농담입니다. 하하.
김동희-신건조 업무를 하는 대법원 1년차 때가 가장 일이 많은 것 같아요. 조금만 더 힘내세요. 저는 판사로서 15년 차가 되었는데요. 대법원에 오기 직전 특수업무를 하는 회생법원에 근무를 하다보니 일반 민형사 사건 업무에 대해 많이 잊게 되더라고요.판결문도 많이 쓰지 않은 데다가 판례 볼 일도 없고, 판사를 계속 할 텐데 이래서 안 되겠다 싶었어요. 대법원에 가면 판례는 원 없이 읽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지원했어요. 1년 차에 민사신건조에 있었는데 정말 민사 사건 판례를 원 없이 봤어요. 힘들긴 했는데, 그렇게 일하면서 판사 생활 10년 넘게 하면서도 모르는 게 참 많았구나 반성하는 시간이기도 했죠.

김도형 그렇죠. 별별 사건들을 다 보게 되죠. 그것도 그냥 보는 게 아니고 연구하고 토론하고 보고서를 쓰니까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고 배우는 게 많아요.

김동희 네, 판사로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들어왔는데 정말 많은 공부가 되고 있어요. 물론 개인 시간이 없긴 하지만요. 재판연구관 지원한다니까 선배님들이 신변 정리하고 오라고 하시더라고요.
김도형-맞아요. 필요해요, 신변정리가. 하하.
김동희-군입대 앞둔 사람처럼 건강검진하고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 만나고, 학령기 아이 키우는 엄마다 보니까 아이들 학원도 셋업해놓고 집안 정리도 하고요. 그래도 여기저기 구멍이 생기긴 하는데 어쩔 수 없죠.
권민재-울어도 됩니까? 눈물이 나네요.
김동희-눈물 없이 들을 수 없죠. 하하. 첫날이 생각나요. 다 같이 저녁을 먹었는데, 신건조 총괄 부장님이 다 먹고 일어나면서 ‘들어가서 보고서 두 건씩 씁시다’ 하시더라고요. 농담인 줄 알았어요. 첫날이고 보고서 쓰는 법도 몰랐으니까요. 그날 밤에 별 보고 집에 가면서, 선배들은 왜 이 이야기까지 해주지 않은 건가 싶더라고요. 그래도 3, 4개월 지나면서 적응이 좀 됐고, 2년 차에 접어드니 양적으로 좀 나아지고 깊이 연구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보좌관님도 일 정말 많으시죠?
김선형-2019년 7월에 처음 사법보좌관 자리가 생겨 2명을 뽑았어요. 저야말로 뭐 하는지도 모르고 왔죠. 게다가 저희는 처음 생긴 보직이라 인수인계해 줄 사람도 없고 사건만 엄청 쌓여 있어서 처음에는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전속연구관분들이 업무 매뉴얼을 만들어주시긴 했는데 처음 하는 일이다 보니 쉽지 않았고요. 둘이서 서로 의지해가며 하나하나 해결해 나갔죠.
권민재-지금은 인원이 좀 더 늘었죠?
김선형-네, 4명이 됐습니다. 처음 둘이 근무할 때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재정신청사건은 거의 못하고 처리 기간 제한이 있는 항고사건들만 처리하기 급급했는데 마치 망망대해에 표류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육지가 보이지도 않고, 여긴 어딘가 싶고요.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을 했죠. 지금은 업무처리 노하우가쌓여서 많이 나아졌어요. 인력도 충원이 됐고요.
김도형-진짜 쉽지 않으셨겠어요. 연구관
김선형-어려운 와중에도 대법원장님과 대법관님들, 많은 분이 관심 가져주시고 격려를 해주셨고요. 이명철 당시 전속선임부장님 등 여러 연구관님이 저희가 정착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6개월 후에 1명이 더 증원됐는데 그때부터 좀 안정이 됐어요. 올 7월에 한 명 더 들어오면서 많이 나아졌죠.
김도형-윤혜원 연구관은 청년연구관으로 들어온 거죠? 로스쿨 때부터 연구관에 대한 관심이 있었어요?

윤혜원-청년연구관 제도가 만들어진 역사가 길지 않아서 재판연구관에 대해 정보가 많지 않았어요. 저는 공고를 보고 법조인 생활을 대법원에서 시작한다는 게 무척 매력적이어서 큰 고민 없이 지원했어요. 로스쿨 3학년 때 지원해서 시험 보고 들어왔어요.
권민재-대법원이라는 공간이 매력적이었던 건가요?
윤혜원-그것만은 아니고요. 상고심 절차를 곁에서 바로 지켜볼 수 있다는 게 흥미로웠어요. 로스쿨에서 판례를 자주 읽게 되는데 최종판결문과 이름만 보잖아요.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궁금했고 간혹 결론에 동의 못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어쨌든 수긍할만한 절차를 거쳐서 나온 거니까 가까이서 보고 싶었어요. 그 절차에 제가 직접 참여한다고 생각하니까 더 매력적이었죠.

김도형-대법원에서 첫 법조 생활을 시작했는데, 어떻습니까?
윤혜원-만족스럽습니다. 사실 막상 들어와서 일을 해보니 막연히 상상했던 것과는 다른 부분이 있었어요. 연구관이라고 하면 혼자 보고서를 쓰는 시간이 길고, 업무의 대부분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협업의 시간이 길더라고요. 공동조 같은 경우는 매주 무조건 토론을 거쳐서 사건 보고가 나가는데 토론 시간이 길어요. 4, 5시간 할 때도 있고요.

인터뷰

가장 중요한 건, 협업
권민재-저도 그 점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판례를 볼 때 그냥 쉽게 읽었는데 요즘은 그 한 줄 한 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담겼는지, 만들어지기까지 어떤 노력이 들어갔는지 알겠어요. 협업의 과정을 통해서 힘들게 나오는 것이더라고요.
김동희-맞아요. 공동조는 특히 더 협업이 필요하겠지만 전속조도 전속조 연구관끼리는 물론 공동조와도 협업을 하게 되지요. 말씀하신 대로 판례 한 문장에 얼마나 많은 고민이 담기는지 연구관 생활을 통해 실감했어요. 저희가 하는 일이 대법관님이 사건을 한눈에 보실 수 있게 사건과 쟁점을 정리해서 보고서를 작성하고, 또 그에 기초해서 의견서도 작성하는 일이잖아요? 그런데 보고서는 적게는 30페이지, 많게는 100페이지까지 작성해도 의견서는 보고서에서 검토했던 법리들이 응축되어 들어가도록 쓰지요. 의견서에 담길 한 문장, 한 단어를 위해 온종일 고민할 때도 있어요. 일선에서 판결문을 작성할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을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대법원판결 한 줄이 왜 이렇게 쓰였는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이제는 그 한 문장을 위해 몇 명의 연구관이 며칠을 고민했을까 하는 것을 보는 눈이 생겼죠.
권민재-어떤 문학작품보다 더 감동받을 때도 있어요. 공보가 문학으로 보이는 경지랄까요. 하하.
김도형-언론에서 제일 많이 문제 삼는 게 ‘심리불속행 기각’이잖아요. 대법원에서 한 줄짜리로 ‘이유 없음’으로 심리불속행을 한다, 성의가 없다는 식으로 비판을 많이 하는데, 대법원 안에 들어와서 심리불속행 판결 하나를 위해 얼마나 많은 양을 검토하고 토론을 거치는지 알게 됐어요. 대충 보고 문제 없다가 아니라 프로세스에 맞춰서 단계별로 아주 꼼꼼하게 살펴본 뒤에 내리는 결정인데 그걸 많이 모르죠.
김동희-정말 그렇습니다.
김도형-들어와서 보고 정말 놀랐어요. 신문기사에 보면 그 부분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도되고, 또 국회의원들이 많이 지적하기도 하잖아요.
김동희-판결을 받아보는 당사자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많은 연구관들이 매일 별 보고 퇴근하면서 고민하고 검토했던 내용이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해요.
김도형-연구관이 법관이긴 하지만 본인 이름으로 판결문을 쓰는 사람들이 아니거든요. 대법관님들의 합의를 위한 기초자료를 만드는 일을 하는 건데, 무책임하게 대충 하지 않죠. 공동조는 무조건 토론을 합니다. 모두 모여서 한 명이 발제하면 문제점 등에 대해 각자 의견을 내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까 의견이 1, 2, 3, 4까지 갈 수 있고 여러 측면을 고려하게 돼요. 한 사람의 개인적인 가치관에 따라서 편향된 보고가 안 되게 하기 위한 제도죠.
권민재-공동조에 각계 전문가 분들이 계시잖아요. 변호사로 근무를 하셨거나, 대학교수 등 외부기관에 있다가 오신 분들이 계신 것도 좋은 제도라고 생각해요. 그분들의 새로운 시각이 전해지고 새롭고 다양한 의견이 담길 수 있으니까요. 병아리가 알을 깨려면 밖에서 도와줘야 부화하듯이 우리가 안에서 할 수 없는 것들을 해주시는. 줄탁동시라고 할까요.
김동희-내외부 소통은 중요한 것 같아요. 밖에서 근로자 측 입장을 대변하다가 연구관이 된 분이 계셨어요. 판결이 경직되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연구하다 보니 이유를 알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지를 바깥 분들이 내부에서 보면 생각이 변하고 저희도 영향을 받는 부분이 있고 서로 좋은 영향을 준다고 봐요.
김선형-저 역시 처음 접하는 사건이 많았어요. 법원에서 오래 근무했는데 이런 사건들도 있구나,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했던 일이 아니고 형사사건을 제외하고 전 범위를 다 다루니까 사건의 종류가 다양해서 공부할 것도 많고 찾아봐야 할 것도 많아요. 너무 모르는 게 많았구나 라고 실감하고 있습니다.
김도형-사법보좌관님들이 정리해주셔서 전속연구관님들께 전달하시면 의미 있는 사건들은 공동조로 내려오기도 하죠.
김선형-네, 저희가 신건조 연구관 역할을 하니까 최종은 아니지만 최전방 수비수라고 생각하면서 일하고 있어요.
김도형-그런 식으로 협업하고 있죠. 민사사건이나 형사사건이더라도 헌법행정조에서 검토할 때도 있고 그 반대인 경우도 많이 있고요, 대법관님의 지시에 따라 다른 공동조에 관련 쟁점에 대해 토론의뢰를 보내기도 합니다. 공동조 사이에 굉장히 낮은 칸막이가 있어 서로 협업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권민재-하급심은 여러 법원이 있고 다양한 판결이 나올 수 있는데 대법원은 하나의 목소리로 나와야 하니까요. 대법원이 다른 소리를 내면 신뢰가 흔들릴 테니 하나의 입장을 내기 위해 끊임없이 소통하는 거죠.
김도형-똑같은 사건이 민형사로 다르게 올라와도 통일적인 결론이 나야 하죠.
김동희-그래서 신건조 연구관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게 ‘관련 사건 찾기’잖아요. 쟁점이 동일하거나 동일한 사실관계에 바탕을 둔 하급심 사례들을 빠짐없이 발견하는 게 정말 중요해요. 그래야 서로 다른 결론이 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지요.
윤혜원-그런 것들을 찾아서 실수 없이 하는 것도 중요한데, 저는 청년연구관이라 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법리가 어떻게 되느냐도 어려운 문제지만 판결이 나갔을 때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나 사정거리를 가늠하는 게 제일 어려워요.
김도형-그렇겠네요. 아직 재판을 안 해봤으니까.
윤혜원-아무래도 상대적으로 경험이 많지 않잖아요. 하다못해 부동산 거래 경험도 없는데, 이런 것들도 해봤으면 어떤 영향을 미치겠구나 가늠할 수 있을 테니까요. 공부로 채우는 것에는 한계가 있어서 많이 여쭤보고 도움받고, 특히 토론 때 배우는 게 많아요.
김도형-그래서 부장판사 되기 직전 사람들이 연구관으로 부임하는 이유가 일선 법원에서 재판을 10년 이상 하면서 경험을 쌓은 게 도움이 되거든요. 대법관님들은 저희보다 훨씬 뛰어나시고요. 보는 범위가 다르시죠. 저희가 눈높이에서 본다면 대법관님들은 머리 위에서 보시는 거죠.
김동희-연구를 해서 가져갔을 때 대법관님께서 한 마디 툭 던지신 말씀에 놀랄 때가 있어요. 제가 미처 보지 못한 것까지 보시더라고요.
권민재-우주에서 지구를 보시는 거고, 저희는 숲 정도 보는 걸까요?

마지막까지 불을 밝히는 등대지기
김동희-대학 때 법철학 교수님께서 ‘법관의 덕목은 경험이 아니다. 경험이 많은 것보다 경험에 열려있는 법관이 좋은 거다’라고 말씀해주셨어요. 경험이 많아지면 시각이 넓어지지만 또 한편으로는 경험했던 느낌대로 재판을 할 수도 있거든요. 열려 있는 게 연구관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 같아요. 열린 자세로 사건을 보고 열심히 조사하는 것.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하는 호기심과 어떻게 하면 더 잘 처리할 수 있을까 라는 끊임없는 궁리가 있다면 괜찮지 않을까 싶어요.
권민재-맞아요. 찾아보면 됩니다. 마인드가 중요하죠. 당사자에게는 마지막, 유일한 한 건이니까 혹시라도 억울함이 없도록 조사 잘 하고 토론 잘 해서 보고서 잘 써야죠. 옛날부터 엉덩이 무거운 판사가 훌륭한 판사이고 연구관이라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그래서인지 살이 많이 쪘어요.
김동희-운동할 시간이 없긴 하죠.
권민재-저녁이 되면 운동복으로 환복은 해요. 일하기 편하려고요.
김동희-작년 신건조에서 일할 때 세 명이 방을 썼는데 저 혼자 여자였어요. 한 분은 정장으로 출근해서 바로 편한 옷으로 환복하시고 다른 분은 운동할 시간이 없으니까 집에서 운동복 입고 걸어와서 출근해서 정장으로 입으셨어요. 다들 각자의 작업복(?)이 있더라고요. 신건조의 경우 대법관님을 대면해서 뵐 일이 많지 않기 때문에 복장이 조금 자유로운 편이죠. 공동조의 경우 대면보고를 할 때는 복장을 좀 잘 갖춰 입어야 하고, 전속조의 경우엔 대법관님과 상시 마주칠 수 있으니 복장을 신경쓰게 되더라고요.
김도형-모든 연구관들이 출동대비 검정 재킷과 구두를 방에 두고 있죠.
윤혜원-저는 아주 늦은 밤에 일 끝내고 운동을 일부러라도 하려고는 해요. 운동할 시간이 정말 없어서요.
김도형-우리의 유일한 운동 있잖아요. 탑돌이.
김동희-탑돌이가 다 같이 식사하고 잠깐 대법원 한 바퀴 도는 건데, 언제부터 해온 거예요?
김도형-선배들이 해 오던 건데, 우리가 워낙 화석 같은 조직이라 언제부턴지는 잘 모르겠네요.
권민재-사실 처음에 이렇게까지 힘들 줄 모르고 지원을 했는데요. 사흘 지나니까 내가 이걸 끝까지 할 수 있을까? 싶더라고요. 그런데 옆에 보니까 나랑 똑같이 힘든 동료가 있는 거예요. 만약 저들 중 한 명이 그만두면 그때 따라가자 했는데 다들 잘 버티더라고요. 하하.
김도형-동료들이랑 함께니까 하지 혼자만 하면 못하죠. 군대랑 비슷해요. 어, 쟤도 하네, 상대방은 날 보고 그렇게 느끼고.
김동희-민사 신건조가 서관 위 제일 끝 방인데 우리가 등대방이라고 부르잖아요. 언제나 불이 켜져 있는 방. 제가 작년에 등대방에 있었어요.
권민재-올해 등대지기는 접니다.
김도형-가끔 신건조를 거치지 않고 바로 공동조에서 심층업무를 맡는 분들도 계시잖아요. 그러면 저희들끼리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고생 제대로 안 했다고 놀리기도 하죠.
김동희-그렇죠. 하하.
권민재-신건조는 예를 들면 홍수가 났을 때 주먹으로 둑을 막는 사람들이에요. 둑이 무너지지 않도록 신건조가 최대한 막고 있으면 뒤에서 정비도 하고 준비도 하는 거죠.
김도형-딱 맞는 비유네요. 신건조 연구가 제대로 안 돼서 모든 사건이 심층, 전속으로 가면 연구실 자체가 마비되겠죠.
권민재-실제로 이번 폭우 때 둑을 막진 않았지만 동료는 비가 새는데도 옆에서 보고서를 쓰고 있더라고요.
김동희-작년에 어느 주말에 1박 2일 전산 점검을 했잖아요. 보고서 더 쓸 수 있는데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그날 미뤘던 워크숍을 다녀왔던 기억이 있어요.
김선형-저희도 정해진 기간 내 신속하게 처리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시간 압박을 상당히 받아요. 최소한 한 달 반 전에는 대법관실로 넘겨야 하는데, 시간이 촉박한 사건들이 올라오면 정신이 없어요. 항고사건이다 보니 대리인 없이 개인들이 문건을 작성해 내는 경우가 많은데 주장 정리가 잘 안 되고, 가끔 100장 이상 길게 썼는데 도대체 무슨 주장을 하는지 파악하기 쉽지 않고요. 특히 수기로 쓴 건 해독이 힘들 때도 있어요.
권민재-저희끼리 농담으로 말이 안 되는 주장을 말이 되게 만들어서 결국 말이 안 된다는 주장이라는 걸 대법관님께 드리는 거라고 해요.
김동희-보좌관님과 전속조가 가까운 사이잖아요. 저희가 제일 먼저 보는데, 정말 신기한 사건이 많아요. 특이한 사건 부호들, 예를 들어 동터, 으, 아, 스, 므 이런 신기한 사건 부호들이 많더라고요. 정말 어려우실 거 같고, 그걸 충실하게 검토해주셔서 항상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김선형-저희 역할이 대법관님, 전속연구관님을 편하게 해드리는 거죠. 사실 일선에서 사법보좌관이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결정을 하는 것과 다르게 여기서 진짜 명칭 그대로 보좌관 역할을 하고 있어요.
김동희-보좌관님이 많이 도와주시고, 제가 지금 아방궁에 있어서 신건조 때보다 행복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김도형-아, 김동희 판사는 아방궁에 있죠? 대법관님 방을 가방, 나방, 다방 이렇게 부르는데 아방이 전통적으로 분위기가 좋아서 아방궁이라고 부르죠.
김동희-네, 신건조 마치고 갔는데 계장님께서 아방궁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라고 해주시더라고요. 대대로 대법관님들도 좋으시고 비서실 분들도 밝다고 해요. 지금 아방 대법관님이 여성대법관이신데 여성 전속이 처음이라고 친근하게 잘해주세요. 편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

재판연구관

귀하고 소중한, 반짝이는 시간들
권민재-대법관님들이 여러모로 많이 신경 써주시죠. 먹을 것도 많이 사주시고, 밥도 잘 사주시고요. 연구관들 배려해서 12층에 간식 먹을 수 있게 라운지도 만들어주시고요.
김도형-방한복으로 경량 패딩도 주시잖아요. 밤에 일할 때 추우니까.
권민재-야근을 많이 해서 아이들이 눈 뜨고 있는 걸 본 지 정말 오래된 건 조금 아쉽지만 요즘 바빠서 술을 안 마시니까 오히려 건강해진 것도 같고요. 무엇보다 많이 배울 수 있어서 좋아요.
김도형-우리 조원들한테도 하는 얘기인데 판사에게 연구관 시절은 별의 순간이라고 생각해요. 일선에서 재판만 하다가 해보지 않은 경험을 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능력에 비해 과분한 평가를 받는 시기가 이 시기고요. 대법관님들과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잖아요. 대법관님께서 내 이름 불러주고 이야기하는 순간이 일선에서 존재하기 어렵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고되지만 가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권민재-끝나고 나면 더 좋은 법관으로 환골탈태하지 않을까, 살짝 기대해봐요.
김동희-김도형 부장님께서 ‘과분한’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맞는 말 같아요. 특히 과분할 만큼 좋은 동료 사이에 둘러싸여 있던 기간이라는 게 참 좋습니다. 동료 법관, 전문가 모두 모여서 협업하면서 그들의 지혜를 나누고, 수많은 세월 재판을 엄청나게 하신 대법관님들의 혜안을 가까이서 배우는 좋은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진짜 공부도 많이 되고요. 재판연구관으로 보내는 시간이 정말 귀하고 소중하다는 걸 시간이 갈수록 깨닫고 있어요.
김선형-20년 가까이 법원에서 근무했는데, 대법원에서의 3년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가장 보람된 시간이었습니다. 미력하지만 판례 형성에 기여한다는 데 자부심을 느끼고 장기적으로 사법보좌관 업무영역 확대에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윤혜원-대법원에 있으면서 거대한 도서관에 있다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연구관만 볼 수 있는 보고서도 정말 많고, 고견을 청할 수 있는 분들도 많이 계시고요. 마음껏 꺼내 볼 수 있는 책에 둘러싸인 기분인데, 처음엔 중압감 때문에 지레 겁먹고 못 열어 본 게 많아서 아쉬움이 커요. 3년 차라 곧 나가는데 마무리할 때까지 최대한 많이 보고, 배우려고 해요. 최선을 다해서 나중에 꼭 다시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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