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판장 대법원장
2021두59908 경정거부처분 취소
원고 에스케이하이닉스 주식회사.
피고 이천세무서장.
이유의 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국내 반도체 회사인 원고는 미국회사로부터 미국에서 특허침해소송을 제기당한 후 미국회사와 위 소송을 종료하기로 하면서 미국에는 등록되었으나 국내에는 등록되지 않은 특허권에 대해 라이선스를 받는 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원고는 미국회사에 사용료를 지급하면서 과세관청인 피고에게 원천징수분 법인세를 납부하였습니다. 그후 원고는 이 사건 사용료가 국외에 등록되었을 뿐 국내에는 등록되지 않은 이른바 ‘국내 미등록 특허권’에 대한 것으로서 국내에 원천을 둔 소득이 아니라는 이유로 피고에게 이미 낸 세금을 돌려달라고 청구하였습니다. 그러나 피고는 원고의 이러한 청구를 거부하였습니다.
원심은 ‘특허권 속지주의’ 원칙상 특허권이 등록된 국가 외에서는 특허권이 침해될 수 없어 특허권을 사용하거나 그 사용의 대가를 지급한다는 것을 애초에 상정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회사가 이 사건 특허권에 대하여 받는 돈은 국내에 원천을 둔 소득으로 볼 수 없다고 보아 피고의 처분이 위법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는 종전 대법원 판례 법리를 그대로 따른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원심판결에 대하여 피고가 상고하면서 종전 판례가 변경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 사건의 쟁점은 특허의 사용대가로 지급되는 사용료소득의 원천을 해당 특허의 사용지로 정하고 있는 한미조세협약에서 ‘특허의 사용’이라는 말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할 것인지입니다. 즉 종전 판례대로 ‘특허의 사용’을 특허권의 사용으로 이해하여 국내에 등록되지 않은 특허권은 국내에서 이를 사용하는 것을 애초에 상정할 수 없다고 볼 것인지 아니면 협약에 정의되지 않은 용어는 조세가 결정되는 체약국의 법에 따른 의미를 가진다는 한미조세협약 조문을 근거로 국내법인 구 법인세법에 따라 특허권의 특허기술을 국내에서 제조·판매 등에 사용하기만 하면 특허의 국내 사용을 인정할 수 있다고 볼 것인지가 문제됩니다.
결론적으로 한미조세협약의 ‘특허의 사용’은 협약에서 정의되지 않은 용어이므로 그 의미는 협약 제2조 제2항 전문에 의해 조세가 결정되는 체약국인 우리나라의 구 법인세법 제93조 제8호 단서 후문에 따라 해석하여야 합니다. 구 법인세법 제93조 제8호 단서 후문은 국내 미등록 특허권이 국내에서 제조·판매 등에 사용된 경우에는 그 특허권이 국내에 등록되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국내에서 사용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서의 ‘사용’은 특허권 자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특허기술을 사용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구 법인세법 제93조 제8호 단서 후문이 한미조세협약의 문맥에 반하여 이를 근거로 ‘특허의 사용’이라는 용어를 해석할 수 없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조약은 전문·부속서를 포함하는 조약문의 문맥 및 조약의 대상과 목적에 비추어 그 조약의 문언에 부여되는 통상적인 의미에 따라 성실하게 해석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문맥은 조약문 외에 조약의 체결과 관련하여 당사국 사이에 이루어진 그 조약에 관한 합의 등을 포함하며 조약 문언의 의미가 모호하거나 애매한 경우 등에는 조약의 교섭 기록 및 체결 시의 사정 등을 보충적으로 고려하여 그 의미를 밝혀야 합니다. 그런데 한미조세협약의 조항 문언이나 조약 관련 합의, 교섭 기록 및 체결 시의 사정, 나아가 조세조약에서의 ‘문맥’의 개념이나 범위에 관한 다양한 시각들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한미조세협약의 문맥을 살펴보더라도 국내 미등록 특허권을 국내에서 사용하거나 그 사용대가의 지급을 관념할 수 없다고 해석할 근거를 찾기 어렵습니다. 대법원 역시 그동안 한미조세협약에는 규정되어 있지 않은 특허권 속지주의만 반복하여 언급하였을 뿐 그 판단을 뒷받침하는 한미조세협약의 ‘문맥’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밝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음과 같은 이유로 국내 미등록 특허권의 국내 사용은 충분히 관념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한미조세협약 제14조 제4항 제a호의 ‘사용’은 단지 ‘특허’에만 개별적으로 분리되어 조응하는 것이 아니라 이 조항에 제시된 무형자산 일체에 총체적ㆍ포괄적으로 조응하는 개념입니다. 이 조항은 저작권, 특허, 의장, 신안, 도면, 비밀공정, 비밀공식, 상표 및 이와 유사한 재산·권리, 지식, 경험, 기능 등 다양한 무형자산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이중에는 특허, 의장, 신안처럼 등록을 권리의 발생요건으로 하는 무형자산도 있지만 저작권, 비밀공정, 지식, 기능처럼 그렇지 않은 무형자산도 있습니다. 이러한 무형자산 일체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의미의 ‘사용’은 등록을 통하여 독점적 효력을 가지게 된 권리 자체의 ‘사용’이 아니라 무형자산의 내용을 이루는 기술이나 정보 등의 ‘사용’입니다. 이와 같이 ‘사용’을 모든 무형자산에 통일적으로 적용되도록 해석하는 것이 ‘사용’이라는 문언의 통상적인 의미나 조항의 체계에 부합하고, 등록과 구별되는 사용의 본질을 제대로 포착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기술이나 정보 등의 사용에는 국경이 없으므로 등록 국가와 관계없이 어디서든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대법원 역시 지금까지 통상 노하우라고 하는 비공개 정보의 사용료에 대해서는 그 내용을 이루는 기술정보가 국내에서 제품의 제조 등에 사실상 사용되었는지를 가지고 국내에 원천이 있는지를 판단하여 왔습니다. 그런데도 대법원은 유독 국내 미등록 특허권의 사용에 대해서만은 특허권 속지주의라는 원칙을 근거로 ‘특허기술이 사실상 사용되었는지’가 아니라 ‘특허권의 독점적 효력이 미치는 범위 내에서 특허발명이 실시되었는지’라는 관점에서 국내 사용 여부를 판단해 왔습니다.
그러나 ‘특허권 속지주의’는 특허권 효력 발생지 또는 침해지와 관련된 원칙일 뿐 특허기술의 사용지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원칙이 아닙니다. 즉 특허권 자체는 등록된 국가 내에서만 효력을 가지고 그 효력 범위 내에서 침해될 수 있을 뿐이지만 그 특허기술은 특허등록 여부나 등록 국가와 무관하게 어디서든 사용될 수 있습니다. 특허권 속지주의는 그러한 특허기술의 국내 사용이 국내에서 국외 특허권자에 대한 특허침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할 뿐, 그로부터 사용의 대상인 특허기술에 재산적 가치가 없어 그 사용대가를 지급하는 것을 상정할 수 없다는 논리가 도출되지는 않습니다. 또한 계약자유의 원칙에 따라 국내 미등록 특허권의 특허기술을 국내에서 사용하고 국외 특허권자에게 그 사용대가를 지급하는 계약을 체결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고, 이러한 계약을 체결할 경제적·법률적 동기를 가지며, 그러한 계약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강행규정에 반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특허권 속지주의에 기초하여 국내 미등록 특허권의 국내 사용이나 그 사용대가의 지급을 관념할 수 없다는 관점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와 달리 특허권 속지주의에 기초하여 국내 미등록 특허권의 국내 사용이나 그 사용대가의 지급을 상정할 수 없다고 본 종전 판례를 이 판결의 견해와 배치되는 범위에서 변경하기로 합니다.
이상의 법리에 따라 이 사건의 결론에 관하여 봅니다.
국내 미등록 특허권에 관한 사용료라도 그것이 그 특허권의 특허기술을 국내에서 제조·판매 등에 사실상 사용하는 데에 대한 대가라면 국내에 원천을 둔 소득에 해당합니다. 한미조세협약에 의하더라도 우리나라가 원천지국으로서 세금을 매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원심은 이 사건 사용료가 단지 국내 미등록 특허권에 대한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특허기술이 국내에서의 제조·판매 등에 사실상 사용되었는지를 살피지 않은 채 곧바로 국내에 원천을 둔 소득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러한 원심 판단에는 한미조세협약상 국내 미등록 특허권 사용료의 국내원천소득 해당 여부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의 잘못이 있습니다.
이상의 다수의견에 대하여 대법관 노태악, 대법관 이흥구, 대법관 이숙연의 반대의견,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권영준, 대법관 노경필의 보충의견, 반대의견에 대한 대법관 노태악의 보충의견이 있습니다.
그중 반대의견의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문언의 통상적 의미나 구 법인세법을 비롯한 관련 법령의 문언과 체계에 따르면 한미조세협약에서 말하는 ‘특허’는 등록으로 효력이 생기는 ‘특허권’이라는 권리 자체를 의미합니다. 그 보호대상에 불과한 ‘발명’이나 ‘기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특허권은 법에 의해 비로소 발생하는 권리이므로 그 효력이나 사용이 이루어지는 모습 역시 법에 의해 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특허권 속지주의 원칙상 ‘특허의 사용’은 그 특허권이 등록된 나라 내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고, 종전 대법원 판례는 타당한 것이어서 유지되어야 합니다.
한미조세협약에 따르면 특허의 국내 사용에 대한 ‘대가’로 지급되는 돈만이 국내에 원천을 둔 소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포함해 대부분의 국내 미등록 특허 사용료 사안에서 라이선스 등 계약이 체결된 이유는 우리나라 회사가 만든 제품을 미국에 수출하는 과정에서 미국회사와 사이에 발생한 특허침해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경위에 비추어 보면 그 사용료는 미국 특허권을 미국 내에서 사용하는 것에 관한 대가일 뿐 특허권의 대상인 발명의 국내 사용에 대한 대가라고 볼 수 없습니다.
다수의견에 따라 다음과 같이 판결합니다.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상으로 오늘 판결 선고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25.9.18.(목) 아래 사건의 판결선고를 실시하였습니다. 본 동영상은 이 사건의 판결선고 과정을 녹화한 동영상입니다.
▶대법원 2021두59908 경정거부처분 취소 (재판장 대법원장 조희대, 주심 대법관 권영준)
[재생시간 : 12분17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