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세상 X 낭만필객①;] 오늘의 일기, 나의 사법정책연구원

법원 핫이슈

2024.09.06

글. 조성민 실무관(사법정책연구원)

" 2022년 7월 1일 금요일, 부푼 기대를 안고 경기도 일산 사법정책연구원에

첫발을 내딛었다. 코로나19 시국이라 행사가 없어, 매일 칼퇴근 후 한 달에 책을

10권씩 읽었다는 전임자 선배님의 말에, 당장이라도 출근하고 싶은 맘을 꾹 참고 있었다.

아무래도 취업 사기를 당한 것 같았다. 코로나19 제한은 풀렸고, 행사는 많아졌다.

여기저기서 “성민 씨~”, “성민아~”하고 나를 찾았다. 그렇게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유임도 하게 되었고, 이제 과에서 전입 최고참이 되었다.

이제는 막내가 아닌 ‘터줏대감’의 지위로서, 지난 나의 연구원 생활을 되돌아보고자 한다.

사법부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는 사법정책연구원의 소개도 곁들이면서! "

사법정책연구원은 단순히 연구 업무만 하는 기관이 아니다. 연구 자료들을 세간에 공표하고, 사법 정책에 조금이라도 더 실질적으로 반영이 될 수 있도록 기여하고 있다. 그 활동들의 핵심이 바로 ‘학술 행사’이다. 나는 그런 중요 행사들을 기획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 물품 업무도 겸임을 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이 두 업무의 조화가 나를 이렇게 유명인으로 만들어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행사 업체에서도 나를 찾았고, 직원분들도 나를 찾았다.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하루에 기본 2만 보씩은 걷게 되었다. 그만큼 식성은 늘어갔고 살은 피둥피둥 쪘다.(사실 원래 잘 먹기도 했다.)

학술 행사 유튜브 방송을 하면, 법조계에 종사하는 친구들에게 홍보도 열심히 했다. 인사 댓글이라도 하나 달아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중회의실 연구원 로고 설치 작업 때, 철근이 엘리베이터에 들어가지 않자, 술이 덜 깨신 업체 사장님, 운전기사님, 나 이렇게 3명이 낑낑대며 10층까지 나르기도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적응해 나갔다. 정신이 없는 것도 익숙해지는 것 같았다. 그날 하루 무엇을 했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지만, 학술 행사는 잘 진행되었고, 필요한 물품들은 직원들에게 잘 전달되었다.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알아봐 주셨다. “성민 씨가 없으면 연구원이 안 돌아가”하는 선심성 말씀에, 부끄러웠지만 감사함을 느꼈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 기대를 받는다는 것이, 중압감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가슴이 설레기도 했다. 그러한 두근거림이 다음 날 아침의 나를 또다시 회사로 이끌었다.

우리 사법정책연구원은 전임 홍기태 원장님, 이재권 수석위원님, 송필량 국장님 때부터 현재 박형남 원장님, 이규홍 수석위원님, 곽재창 국장님까지. 그 어느 곳보다도 가족 같은 분위기라고 자부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워크숍, 실무연구회 같은 행사들은 기관의 화합과 소통을 도모하기 위해 진행된다. 우리 연구원의 경우 전체 인원이 보통 60명 안팎이다. 예산을 짤 때, 40명 정도 참석 예상을 하면, 50명이 훌쩍 넘는 분들이 참석한다. 작년 실무연구회 때는 100%에 가까운 참석률을 기록했다.

행사 분위기도 매우 좋다. 회식을 하다 보면, 서로가 서로의 눈에서 꿀이 떨어지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소소하게 그날 하루 일과 얘기, 좋았던 경험 등 오순도순 얘기하다 보면, 이것이야말로 연구원에서만 느낄 수 있는 행복이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한 가지 더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다. 우리 연구원에도 2022년 9월, 이제 막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 같은 이채은 실무관이 발령됐다. 첫 직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밝고 씩씩하게 생활했다. 성실하며 업무도 빠르게 터득하고, 거기에 말까지 예쁘게 하니, 모두가 그런 막내 실무관을 좋아했다.

3개월여가 지나고 이채은 실무관도 무사히 시보가 해제되었다. 통이 크게도 연구원 전체 직원분들을 위한 작은 간식을 준비했다. 양이 워낙 방대하다 보니, 내가 카트를 끌고 도와줄 수밖에 없었다. 한 분, 한 분 찾아뵐 때마다 까르륵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연구원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이채은 실무관의 사회 첫 발걸음을 축하해주고 있었다. 부모님의 마음으로, 형제의 마음으로, 그리고 친구의 마음으로.

나는 운이 좋게 유임이 결정되었다. 2년을 넘어버린 일산 생활. 이제는 눈을 감고 걸어도 찾을 수 있는 나의 사무실. 나는 정신없던 기존 업무에서 벗어나 원인행위 업무를 맡고 있다. 선비처럼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유유자적한 삶아가고 싶었지만, 역시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여러 사정이 생겨 1년 동안 물품 담당자가 3번이 바뀌었다. 덕분에 나는 1년 동안 인수인계를 3번을 해 준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헷갈리는 게 많다는 것은 물품 업무가 그만큼 방대하고 어렵다는 뜻일 것이다. 그렇게 격동의 시기를 보내고, 이제는 어느 정도 사무 분담이 안정화가 되었다.

총무과에는 실무관이 총 6명이 있다. 자칭 연구원의 진(眞), 선(善), 미(美)를 맡고 있는 여자 실무관 3명(이수연, 김유진, 이채은), 그리고 묵묵히 맡은 바 최선을 다하는 김대호 실무관님, 원장님 차량 운전으로 많이 바쁠 텐데도 오히려 우리를 챙겨주시는 정상용 실무관님,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바로 나, 조성민 실무관까지!

우리 실무관들은 철저히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수연 선배님과 상용 실무관님의 엄마, 아빠 같은 따뜻한 보살핌 속에서, 채은이가 항상 물건을 잃어버리면 내가 찾아주고, 내가 오타를 내면 유진이가 찾아준다. 유진이가 사오정같이 말귀를 못 알아먹으면 대호실무관님이 찰떡같이 알아들어 주고, 대호 실무관님이 심심해하지 않도록 채은이가 옆에서 쉴 새 없이 떠들어 준다.

또한, 아무래도 여자 실무관의 비율이 더 높기에, 원하지는 않았지만, 내 자리도 같이 핑크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아기자기한 소품들, 장식품들, 모두 날 위해서 준비했다고 한다. 항상 내 자리 앞에 모여서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이때가 아니면 언제 이렇게 미모의 여성분들에게 관심을 받아볼 수 있을지, 항상 감사할 따름이다.(라고 쓰도록 협박을 받았다.)

내가 이 원고를 쓰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원고를 작성해 주면, 시험감독을 1회 면제해 주겠다는 서무계의 달콤한 유혹이 있었다. 사실 어느 정도 타의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너무 싫거나 힘들지는 않았다. 정말로 많은 일들을 경험했기 때문에 막힘없이 술술 써 내려갈 수 있었다. 글을 쓰는 내내 2년여의 연구원 생활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즐거웠다. 업무적으로 힘든 시기도 있었으나, 그 시기는 나를 더 단단하게 했다. 잘못된 업무 습관이나 태도들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었고, 하나씩 고쳐나갔다. 아직까지도 부족한 점은 많지만, 그 시기들은 쓰러지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키워준 터닝포인트가 되었으리라 확신한다.

30년 후, 치열하게 법원 생활을 불태우고, 하얗게 남아버린 재가 머리칼 위에 듬성듬성 흩뿌려져 있을 때, 이곳 사법정책연구원에 다시 찾아오고 싶다. 지금의 나는 정말 행복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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