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백승준 조사심의관(법원도서관)
법원도서관은 사법부 중앙도서관으로 재판에 필요한 자료와 정보를 제공하는 중요한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또한 일반 국민들에게도 의미 있는 판결이나 주요 문헌을 소개하는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법원도서관에서는 일반 도서관처럼 도서를 수집・정리・보존・제공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법률 문헌을 직접 발간하고 있습니다.
판례공보의 발간
법원도서관이 발간하는 자료 중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판례공보’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대법원에서 선고되거나 결정한 중요한 판결・결정을 선별하여 제공하고 있습니다. 법원사람들 2017년 8월호에서 이기리 조사심의관이 ‘판례공보와 종합법률정보’라는 제목의 글을 실은 적이 있는데, 시간이 흐른 만큼 다시 한번 소개하고자 합니다.
우선 대법원 판결이 선고되면 2주 내에 대법원 재판연구관실에서 조사심의관실로 ‘판례공보 자료’와 함께 선고된 모든 판결문을 보냅니다. 판례공보 자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판결의 ‘등급’ 표시입니다. 판결의 중요도에 따라 다음과 같이 등급이 부여됩니다.
재판연구관실의 등급 분류를 바탕으로 필요한 경우 협의를 거쳐 조사심의관실에서 최종 등급을 확정합니다. A급과 C급 판결은 판례공보에 실리고, D+급 판결은 사법정보공개포털의 종합법률정보를 통해 외부에 공개되며, 온라인 법고을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D급 판결은 내부용으로 사법정보통합검색의 종합법률정보에 등록됩니다. X급 판결은 참조할 만한 내용이 없는 것으로 종합법률정보에 등록되지 않지만 사법정보통합검색의 ‘판결문 검색’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판례공보에 실릴 판결이 선정되면 조사위원실과 조사심의관실에서 판시사항, 판결요지, 참조조문, 참조판례를 작성합니다. 조사심의관실 부속실에서 판례공보 형식에 맞추어 편집하고, 자료편찬과에서는 맞춤법 교정을 담당합니다. 교정 후에는 다시 조사심의관들이 비실명 처리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비실명 처리 및 교차 확인을 마친 원고는 도서관장님의 결재를 받아 매월 1일과 15일에 코트넷 ‘지식광장’의 ‘대법원 판례공보’ 게시판에 게시하고, 약 3,000부를 인쇄하여 배부하고 있습니다.
대법원 판례해설의 발간
법원도서관이 발간하는 또 다른 중요한 판례자료로는 대법원 판례해설이 있습니다. 매년 6월과 12월, 직전 반년간의 중요 판례 약 70건을 선정한 다음, 민사(가사, 상사 포함), 노동, 일반행정, 조세, 지식재산권, 형사 등 분야별로 나누어 당해 사건을 조사・연구한 대법원 재판연구관이 직접 재판의 요지 등을 적시하고 그에 대한 개인적 의견을 덧붙인 해설논문을 모아 편찬합니다.
대법원 판례해설은 대법원 판결이 선고되기까지의 배경이나 기존 법리의 형성과정, 다른 판례와의 차이점, 외국의 판례와 학설에 대한 비교・분석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법원 최신 판례와 경향을 이론적・실무적으로 가장 빠르고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어 대법원 역량이 고스란히 담긴 발간 작업의 정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발간된 대법원 판례해설은 법원도서관 홈페이지의 법원간행물에서 원문을 제공하고 있고, 수록된 논문은 종합법률정보의 문헌과 법원전자도서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자주 찾는 한글 맞춤법
어느 도서라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법률 문서 작성의 마지막 단계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맞춤법 교정입니다. 법원사람들의 조사심의관 코너에서 가장 많이 소개된 내용도 한글 맞춤법입니다. 법원도서관은 1997. 12. ‘법원 맞춤법 자료집’을 발간한 후 2006. 12. 개정판을, 2013. 2. 전정판을 발간하였고, 2023. 7. 내용을 집약하면서 형식을 새롭게 바꾼 제2전정판을 발간하였습니다. 법원 맞춤법 자료집은 종합법률정보의 문헌이나 법원전자도서관에서 PDF 파일을 다운로드 할 수 있습니다.
아래에서는 지난 한 해 동안 자주 문의가 있었던 맞춤법 몇 가지를 정리하여 소개하고자 합니다.
1. 자(字)
가장 많은 문의가 있었던 맞춤법은 ‘자(字)’의 띄어쓰기입니다. 1999년 발간 당시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표제어 ‘자’에 ‘날짜’를 나타내는 뜻풀이가 없었고 그동안 접사로 보아 붙여 썼는데, 2008년 표준국어대사전 개정판에서 ‘날짜를 나타내는 말’이라는 뜻의 명사가 추가되면서 2021. 9. 1. 자 판례공보에서부터 날짜를 나타내는 ‘자(字)’를 띄어쓰기로 정리하였고, 조사심의관 코너에서도 여러 차례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2. 뿐/(그)뿐만 아니라/-ㄹ뿐더러
‘뿐만 아니라’는 의존명사로서 “기존의 해석에 반할 뿐만 아니라”와 같이 띄어 쓰거나, 조사로서 “법률혼뿐만 아니라 사실혼도 마찬가지”와 같이 붙여 씁니다. 유의할 점은 ‘뿐’은 보조사이기에 앞에 다른 말이 없이 문장 처음에 나올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접속어로 ‘뿐만 아니라’를 쓰는 것은 문법적으로 맞지 않는 표현이기에 “피고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그뿐만∨아니라 여러 사정을 종합하면,”과 같이 써야 합니다.
‘-ㄹ뿐더러’는 (‘이다’의 어간, 받침 없는 용언의 어간, ‘ㄹ’ 받침인 용언의 어간 또는 어미 ‘-으시-’ 뒤에 붙어) 어떤 일이 그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나아가 다른 일이 더 있음을 나타내는 연결 어미로서 “신의칙에 반할뿐더러 현저히 형평에 반한다.”와 같이 붙여 씁니다.
3. 그
‘그것에 뒤이어 오는 때’라는 뜻의 ‘그다음’은 표준국어대사전에 한 단어로 등재된 합성어이므로, 붙여 씁니다.
4. 다음
‘다음날’은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하나의 단어로서 ‘정하여지지 아니한 미래의 어떤 날’을 뜻합니다. 따라서 판결문에 자주 쓰는 “그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그다음∨날”로 쓰고 있습니다.
5. 총(總)
고유의 의미를 뜻하는 관형사이면 띄어 쓰고, 접두사(합성어)이면 붙여 씁니다. 따라서 전체의 합을 뜻할 때 쓰는 ‘총-’은 접두사이기에 “총 합계”, “총 비용”이 아니라 “총합계”, “총비용”으로 붙여 써야 합니다.
6. -에 관(關)하여 / -에 대(對)하여
‘-에 관하여’와 ‘-에 대하여’는 일본어의 ‘-に対して’, ‘-に関して’나 영어의 ‘about’, ‘as regards’, ‘regarding’ 등을 그대로 옮긴 어형(語形)이 정착되어 우리말처럼 쓰이는 대표적인 번역 투의 표현입니다. 따라서 ‘관하여/대하여’를 사용하지 않고도 문장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경우 삭제하거나 문맥에 따라 간단한 조사 ‘-는’, ‘-을/를’, ‘-에’, ‘-에는’, ‘-에게’, ‘-에서’ 등으로 바꾸어 쓰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예컨대 “위자료의 액수에 관하여”는 “위자료의 액수는”으로, “피고에 대하여”는 “피고에게”로 바꾸어 쓰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다만 ‘관하여/대하여’가 문장에서 사전상 의미대로 쓰일 때는 그대로 살려 씁니다. 이 경우 ‘대하여’는 ‘대상이나 상대로 삼다’, ‘against’의 뜻으로, ‘관하여’는 ‘말하거나 생각하는 대상으로 하다’, ‘about’의 뜻으로 ‘결정하고, 판단하고, 주장하고, 증명하고, 확인하고, 규정할 때’ 주로 쓰이므로 의미에 맞게 구분해서 써야 합니다. 따라서 “제1심판결에 대하여 항소하고”나 “결함에 관하여 증명하여야 하고”와 같이 쓸 수 있습니다.
마치며
좋은 법률서면은 정확하고 쉬운 단어를 사용하고, 단락을 적절히 구분하며, 어법에 맞는 간결한 문장으로 작성하여 빠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작성해야 합니다.
한글전용 판결문(최초)
광복 이후 한복을 입은 한국인 판사가 우리말로 재판을 시작하였지만, 해방 직후의 판결문은 한지에 펜으로 한자와 한글을 혼용해 띄어쓰기 없이 세로쓰기 방식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이후 1961. 12. 29. 법원공문서규칙이 대법원규칙 제90호로 제정되어 1962. 1. 1. 시행되면서 한글전용 가로쓰기 판결서를 전면 시행하였습니다.1) 당시에는 “가로 띄어쓰기 한글전용 판결문을 작성하면 의미를 오해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중대한 결과를 가져온다.”라는 외부의 반대도 있었지만, 이제는 누구도 한글 판결문의 필요성이나 가치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일산에 있는 법원도서관 8층 조사심의관실 앞에는 한글로 된 훈민정음 서문이 걸려있어 매일 출근할 때마다 보게 됩니다. 우리글을 바르게 사용하고 누구든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을 작성해야 한다는 선배들의 다짐과 당부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앞으로도 조사심의관 코너를 통해 많은 분들의 글쓰기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릴 수 있었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1) 제3조(문서형식) 모든 문서의 표준말인 한글 국어체로 간명하게 기술하고 정자로서 가로쓰되 띄어 쓸 것이며
뜻의 전달이 곤란한 것은 괄호 안에 한자를 넣어 쓴다. 숫자 표시는 ‘아라비아’ 숫자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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