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세상 X 조사심의관 코너] 수어, 점자와 법원의 장애인 지원 서비스

조사심의관 코너

2024.12.06

조사심의관 코너

백승준 조사심의관(법원도서관)

“손끝으로 글자를 읽고, 손짓으로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요?” 시각장애인은 점자의 오돌토돌한 감촉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청각장애인은 수어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합니다. 이제 점자·음성 변환, 영상 통역 기술이 더해져 장애인들의 정보 접근이 더욱 쉬워지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점자, 수어의 발전과 더불어 법원이 어떻게 장애인들의 정보 접근을 지원하고 있는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조사심의관 코너

수어는 청각장애인들이 손동작, 표정, 몸짓으로 소통할 수 있도록 고안된 언어입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도 청각장애인이 손짓과 몸짓을 통해 소통했다는 기록이 있고, 17세기 프랑스에서 세계 최초로 청각장애인을 위한 공립학교를 설립한 성직자 샤를-미셸 에페(Charles-Michel de l'Épée)가 프랑스 수어를 체계화하면서 오늘날 수어 발전에 큰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수어를 언제부터 사용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이옥(李玉, 1760~1815)의 한문소설 ‘신아전(申啞傳)’에 나오는 농인 대장장이 신탄재(申炭齋)가 손짓과 몸짓으로 고을 아전과 소통을 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후 1909년 의료선교사인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이 평양맹아학교에서 수어 교육을 시작하였고, 1913년 조선총독부가 설립한 제생원(濟生院)에서 일본 수어를 교육하였습니다. 1946년에는 한글 지문자(指文字)가 창안되었고, 2005년에는 한국수화사전(현 한국수어사전)이 출판되었으며, 2016년 2월 3일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되어 한국수화언어(한국수어)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대한민국의 공용어로 지정되면서, 청각장애인의 의사소통과 정보 접근성을 보장하고 사회 참여를 높이는 발판이 마련되었습니다.

조사심의관 코너

점자는 19세기 프랑스의 시각장애인 소년 루이 브라유(Louis Braille)가 창안한 문자 체계로, 손끝의 촉각을 통해 글자를 읽는 방식을 제공합니다. 어린 루이 브라유가 손끝으로 세상을 읽을 수 있는 방법을 꿈꾸던 그 순간, 점자는 탄생했습니다. 군사 통신 코드에서 착안해 6개의 점으로 글자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점자는 시각장애인의 독립적인 문해력을 높이는 발명으로 인정받았습니다. 1932년에는 영어 점자의 표준화가 이루어졌고, 이후 여러 나라에서 자국 언어에 맞춘 점자가 개발되며 전 세계로 확산되었습니다.

조사심의관 코너

로제타 셔우드 홀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한글 점자를 도입했으나, 홀이 개발한 일명 ‘평양 점자’로 불리는 4점식 한글 점자는 기호의 수가 부족해 초성과 종성의 자음이 구별되지 않는 등 글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시각장애인의 세종대왕’이라 불리는 송암 박두성 선생은 이를 안타깝게 생각하여 시각장애인들이 읽기 쉽고 배우기 쉬운 한글 점자를 고안하고 1926년 11월 4일 ‘훈맹정음(訓盲正音)’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했습니다. 박두성 선생이 개발한 한글 점자는 한국어의 자음과 모음을 체계적으로 구분하여 시각장애인들이 손끝으로 한글을 읽을 수 있도록 한 혁신적인 체계였습니다. 이후 한국 점자는 시각장애인 사회에서 널리 사용되었으며, 1997년 12월 17일 한국점자규정이 최초로 고시되었습니다. 「장애인복지법」과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에 점자 및 점자 자료 제공의 근거를 마련하였고, 2016년 5월 29일 「점자법」이 제정되어 점자는 한글과 더불어 대한민국에서 사용되는 공식문자로 인정받았습니다.

조사심의관 코너

장애인의 정보 접근을 위한 주요 수단으로 점자와 수어, 문서 음성변환이 있습니다. 점자는 시각장애인의 손끝으로 문장을 체계적으로 따라가면서 문법 구조와 단어의 세부 구성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깊이 있는 독서를 지원하는 반면 문서 음성변환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통해 간편하게 자료를 들을 수 있어 빠르고 편리한 접근을 가능하게 합니다. 수어는 청각장애인들이 손과 표정으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여 소통하도록 보장합니다.1)

조사심의관 코너

점자는 전자 점자 디스플레이와 점자 변환 소프트웨어의 발전으로 디지털화되고 있고, 수어는 영상 통역 서비스와 인공지능 수어 번역 기술의 도움을 받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있습니다. 음성변환 기술도 인공지능과 자연어 처리기술의 발전으로 더욱 정교해지면서, 다양한 언어뿐만 아니라 억양까지 지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의 발전은 장애인들에게 더 많은 정보 접근 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

조사심의관 코너

법원은 장애인들이 재판절차에서 겪는 어려움을 덜어주고, 모든 사람이 법정에서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2013년에 ‘장애인 사법지원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했습니다. 이로써 장애인들이 사법절차에서 정당한 편의를 요청할 수 있는 ‘장애인 사법지원(편의제공) 신청제도’가 도입되었습니다. 가이드라인은 재판 단계별로 장애 유형에 따른 지원 방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에게는 점자와 음성변환 서비스를, 청각장애인에게는 수어 및 문자통역을 제공하고, 지체장애인에게는 법원시설의 접근성을 높여 불편 없이 사법절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조사심의관 코너

이후 법원은 제도를 지속적으로 개선해 왔습니다. 2014년부터는 장애인과 함께 법원에 온 협조자에게 협조자수당을 지급하는 제도를 도입하고, ‘우선지원창구’를 마련해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에게 우선적으로 상담을 제공하여 법적 조언과 지원을 더 빠르게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한 돋보기, 독서확대기, 휴대용음성증폭기와 같은 보조기구를 법정과 민원 부서에 비치하고 점차 구입을 확대하였으며, 2019년부터는 우선지원창구에서 제공하는 법률상담에 더해 노무사회, 세무사회 등 유관기관과의 상담까지 통합 제공하는 ‘사법접근센터’를 운영하여 장애인들이 다양한 법률서비스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조사심의관 코너

2020년은 장애인 사법지원 제도가 한 단계 발전한 중요한 해였습니다. 기존 가이드라인의 한계를 보완하고, 관련 법령 개정 사항과 법원 내 연구 결과를 반영하여 ‘장애인 사법지원을 위한 가이드라인’ 개정판을 발간하였습니다. 또한 청각장애인이 부담하던 수어 통역 비용을 국고에서 부담하도록 개선하였고, 방청인에게도 수어 통역을 지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에 더하여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재판에서 사용되는 법률용어를 쉬운 표현과 표준화된 수어로 정리한 ‘법률용어 수어집’을 배포하여 청각장애인들이 재판 용어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시각장애인에 대한 맞춤형 지원도 강화되었습니다. 2020년부터 판결문과 기일통지서를 점자나 음성 파일로 제공하는 ‘점자판결문 등 제공 서비스’를 시작하여 시각장애인도 사법절차에서 필요한 정보를 더욱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조사심의관 코너

2024년에도 법원은 장애인의 사법 접근성을 더욱 확대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판결문 등 제공서비스의 범위를 확대하여 소장, 준비서면, 증인신문사항 등 더 많은 소송서류를 점자로 제공받을 수 있게 하였습니다. 또한 무학농인을 위하여 각급 법원별로 청각장애인 통역사(농통역사)를 확보하였고,2) 2024년 7월 문을 연 법정통역센터에서는 영상재판을 통해 전국 법원에 균질한 통번역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수어 통역도 지원합니다. 한국장애인개발원 등 전문기관과 업무협약을 통해 기관 내 중계시설을 활용한 영상재판 시범 운영도 시작했습니다.

조사심의관 코너

2024년 8월에는 ‘발달장애인, 언어장애인의 사법접근권 강화를 위한 알기 쉬운 자료와 보완대체의사소통 개발 방안 연구’ 보고서가 발간되었고, 2024년 11월에는 문해력 수준이 낮은 장애인 등을 위한 이해하기 쉬운 ‘이지리드(easy-read) 판결서 작성을 위한 시각 자료 개발 연구’ 보고서도 발간되었습니다.

조사심의관 코너

2024년 10월에는 장애인 접근권 관련 국가배상사건의 공개변론이 열리면서 대법정에 새로운 휠체어 리프트를 설치하고 휠체어를 탄 방청객을 위한 공간을 추가했습니다. 또한 법정, 민원실, 조정실 등 법원에 특화된 시설들을 장애인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표준법정모델 연구’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법원행정처와 사법정책연구원에서 장애와 관련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 중입니다. 이러한 노력은 장애인이 사법절차에서 소외되지 않고 편리하게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자 하는 법원의 의지를 잘 보여줍니다.

조사심의관 코너

법원도서관도 장애인의 정보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지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일산 법마루 열람실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정보단말기와 독서확대기, 청각장애인을 위한 소리증폭청취기, 지체장애인을 위한 수동 및 전동 휠체어와 전동 높낮이 조절 책상 등 다양한 독서보조 공학기기를 갖춘 장애인 열람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서초동 대법원열람실에도 장애인 전용 열람석을 마련하여 시각장애인용 프로그램(센스리더) 및 헤드셋, 독서확대기, 점자프린터를 구비했습니다. 또한 사법정보 콘텐츠를 다각화하고 텍스트 형태의 판례정보를 이용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판례공보 오디오북’을 제작하여 법원TV 홈페이지 등에서 제공하고 있습니다.

조사심의관 코너

2020년부터는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과 협력하여 도서관 방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필요한 자료를 택배로 무상 제공하는 ‘책나래’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2024년 9월에는 일산 법마루 정문을 자동문으로 교체하고 로비에 장애인 상담석을 갖춘 안내데스크를 설치하여 장애인 접근성을 한층 강화했습니다. 법원도서관은 장애인들이 도서관을 편리하게 이용하고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조사심의관 코너

점자와 수어에서 점자·음성 변환, 인공지능 수어 번역에 이르기까지 장애인을 돕고 차별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 발전해 왔습니다. 헌법상 재판을 받을 권리는 기본권 보장을 위한 기본권으로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보편적 권리입니다. 장애인의 재판받을 권리 역시 장애인이 아닌 사람과 동등하게 보장되어야 하기에 법원은 장애인 사법지원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연구하고 발전시켜 왔습니다. 앞으로도 법원이 기술의 발전과 함께 장애인의 사법 접근성을 꾸준히 개선해 나가며, 모든 시민이 공정하게 법을 마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기를 기대합니다.

조사심의관 코너

각주

1) ‌ 국립장애인도서관은 장애인의 정보접근권 확대를 위해 장애유형에 따라 제작, 수집한 대체자료를 제공합니다. 시각장애인을 위해서는 ‘전자점자도서’, ‘데이지자료(디지털음성도서)’[국제 표준의 시각장애인용 멀티미디어 콘텐츠 포맷(DAISY, Digital Accessible Information SYstem)으로 제작된 도서] 등을 제공하고, 청각장애인을 위해서는 도서의 내용을 한국수어로 변환하여 제작한 ‘한국수어영상도서’, 기존 영상물에 한글자막을 삽입하여 제작한 ‘자막영상자료’ 등을 제공하며, 발달장애인을 위해서는 그 문해력을 고려하여 쉬운 단어를 사용하고 문장을 간결하게 수정한 ‘읽기쉬운책’과 발달장애인을 위해 제작된 책, 안내문, 영상 등을 총칭하는 ‘읽기쉬운자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2) ‌ ‌농인마다 수어를 이해하고 사용하는 정도가 다양하고, 농인의 언어·사회·문화적 특성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만 정확한 수어통역이 가능한데, 농인 당사자인 농통역사는 청인(비장애인) 수어통역사에 비하여 농인의 특성을 더 잘 이해하기에, 법정 수어통역에 수어통역사(청인)와 함께 청각장애인 통역사(농인)를 함께 참여하도록 하여 중계통역 형태로 진행합니다.

"조사심의관 코너" 카테고리의 다른 글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