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답족백(洗踏足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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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답족백(洗踏足白)

2016.07.01

나윤민 조사심의관 세답족백(洗踏足白)이란 ‘남의 빨래를 발로 밟아 빨았더니 발이 하얗게 깨끗해졌다’는 말입니다. ‘남을 위한 일이라도 열심히 하다 보면 자기에게 이익이 돌아온다(事雖爲彼利卽在己)’는 뜻이라고 합니다.

법원도서관에서 근무한 지 어느새 1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법원도서관에서 판례공보를 만들고, 종합법률정보에 자료를 올리고, 전국 법원 도서실에 비치할 책을 구입하고, 학술지와 재판자료집 등 책을 발간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법원도서관에서 새로운 일을 하면서 적지 않은 부담을 느꼈고, 특히 제때 하지 못한 일이 쌓여가고, 기한이 임박하여 일을 마치기 위해 허겁지겁 일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작년 여름에 반드시 그날까지 마쳐야 하는 일을 실제로 끝낼 수 있을지 걱정하면서 일하고 있는데, 퇴근 무렵 어떤 분이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 자료를 찾아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저 역시 여유가 없는 상황이었고 알고 지내던 분도 아니었지만, 한 시간 정도 자료를 찾아 메일로 보내드렸더니, 이상하게 기분이 무척 좋아졌습니다. 게다가 저도 모르게 자료를 보내면서 쓴 메일을 서너 번 반복하여 읽으면서 즐거워했습니다. 나중에는 크게 어려운 일을 한 것도 아니면서 기뻐하는 제 자신이 우습고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그날 즐거운 마음으로 계획하였던 일을 모두 마치고 늦지 않게 귀가했습니다.

근래에 제가 그때 기분이 좋아진 것이 ‘헬퍼스 하이(helper’s high)’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헬퍼스 하이’란 남을 도운 뒤 느끼는 심리적 포만감을 말하는데, 이 때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현저히 낮아지고 엔돌핀이 3배 이상 분비되어 몸과 마음에 활력이 넘친다고 합니다.

이와 유사한 것으로 ‘테레사 수녀 효과(mother teresa effect)’가 있는데, 남을 돕거나 또는 단순히 선한 일을 보기만 해도 인체의 면역기능이 크게 좋아진다고 합니다. 법원도서관에서 근무하면서 좋은 점은, 법원도서관에서 하는 일은 법원 가족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바쁘게 일을 하다가 법원도서관에서 일을 하는 궁극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법원도서관의 역할이 무엇인지 잊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제는 법원도서관에서 제가 하는 일이 법원 가족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앞으로 법원도서관에서 법원 가족들을 위한 일을 더 열정적으로 하면 제 몸과 마음이 더욱 기쁨과 활력으로 넘칠 것으로 생각합니다.
세답족백에 관해서 말씀드린 기회에, 오늘은 일상생활에서 많이 사용하는 사자성어나 한자어 중 틀리기 쉬운 것들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1. 이역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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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억만리(二億萬里)(X) → 이역만리(異域萬里)(O)

이역만리(異域萬里)란 ‘다른 나라의 아주 먼 곳’이란 뜻입니다. 여기서 ‘이역(異域)’은 ‘다른 지역’, ‘다른 나라’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역만리를 ‘이억만리(二億萬里)’로 잘못 쓰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이억만리’를 검색하면 신문기사에서도 적지 않게 “이억만리 떨어진 월남에서”, “이억만리 타국에서”라고 쓴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실은 저도 오랫동안 이역만리를 ‘200,010,000리나 떨어진 먼 곳’이라고 생각하고 ‘이억만리’로 잘못 써오다가 다른 사람의 지적을 받고 틀린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 평안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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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감사(平壤監司)(X) → 평안감사(平安監司)(O)

우리나라 속담에 “평안감사(平安監司)도 저 싫으면 그만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억지로 시키기 힘들다’는 뜻입니다.
평안감사(平安監司)는 조선시대에 평양(平壤)과 그 주변 지역인 평안도(平安道)의 관찰사를 가리키는 말로서, 오늘날 표현으로는 ‘평안도의 도지사’입니다.
조선시대에 평양은 ‘도(道)’가 아니라 ‘도호부(都護府)’였고 이곳의 최고 책임자는 ‘도호부사(都護府使)’였다고 합니다.
감사는 평양 도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평안도에 있었으므로, ‘평양감사’는 잘못이고 ‘평안감사’가 올바릅니다.

3. 염치 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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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치 불구(廉恥不拘)(X) → 염치 불고(廉恥不顧)(O)

“염치 불구(不拘)하고 부탁을 드립니다.”라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아마도 ‘체면과 부끄러움을 알아야 함에도 불구(不拘)하고 부탁드린다’는 의미로 쓰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염치 ‘불구(不拘)’는 잘못된 표현이고 염치 ‘불고(不顧)’가 올바른 표현입니다.
“염치 불고하고”라는 말은 ‘염치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의미인 ‘불고염치(不顧廉恥)’에 서 나온 말입니다.
‘불구하다’는 ‘무엇에 얽매여 거리끼지 아니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염치 불구(不拘)하고 부탁드립니다.”라는 말은 의도와 달리 ‘염치에 얽매이거나 거리끼지 않고 부탁을 한다’는 뜻이 됩니다.

4. 동고동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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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동락(同居同樂)(X) → 동고동락(同苦同樂)(O)

2000년대 초반에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이란 TV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여러 연예인이 합숙을 하면서 게임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특히 문제를 듣고 방석을 들어 정답을 맞히는 ‘방석 게임’, 노래를 듣고 잠을 잔 후 노래를 정확하게 불러야 하는 ‘비몽사몽’ 등이 인기였다고 합니다. 이 프로그램의 영향인지 알 수는 없으나 저도 ‘동고동락’만큼 ‘동거동락’도 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괴로움과 즐거움을 함께 한다’는 의미는 동고동락(同苦同樂)이 맞고, 동거동락(同居同樂)은 잘못입니다. 다만 요즘 인터넷 등에서 동거동락(同居同樂)을 ‘함께 살면서 즐거움을 같이한다’는 의미로 쓰는 것 같기도 합니다만, 동고동락(同苦同樂)의 의미를 알면서 의도적으로 동거동락(同居同樂)이라고 적은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5. 야반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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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밤도주(夜밤逃走)(X) → 야반도주(夜半逃走)(O)

‘야밤’은 한자어인 ‘야(夜)’와 한글인 ‘밤’이 한 단어로 굳어져 ‘깊은 밤’이란 의미를 갖는 말로서,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표준어입니다. “이 야밤에 어디 가니?”와 같이 쓰입니다.
‘남의 눈을 피하여 한밤중에 도망함’을 의미하는 야반도주(夜半逃走)에서 ‘야반(夜半)’은 ‘밤중’의 의미이고, 이때는 ‘야밤도주’가 아닌 ‘야반도주’로 쓰는 것이 옳습니다.

6. 아연실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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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연질색(啞然窒塞)(X) → 아연실색(啞然失色)(O)

아연실색(啞然失色)은 ‘뜻밖의 일에 얼굴빛이 변할 정도로 놀람’을 뜻하는 말입니다.
아연(啞然)은 ‘너무 놀라 입을 벌리고 말을 못 하는 모양’을 의미하고, 실색(失色)은 ‘놀라서 얼굴빛이 달라짐’을 의미합니다.
‘크게 놀람’의 의미로 ‘아연질색’이라고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질색(窒塞)하다’는 ‘몹시 싫어하거나 꺼리다’는 의미이고, ‘놀라다’는 의미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연질색’은 ‘아연실색’으로 적는 것이 옳습니다.

7. 주야장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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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야장창(晝夜長창)(X), 주구장창(晝구長창)(X) → 주야장천(晝夜長川)(O)

주야장천(晝夜長川)은 ‘밤낮으로 쉬지 않고 흐르는 시내’라는 뜻인데. ‘밤낮으로 쉬지 아니하고 연달아’의 의미로 쓰입니다.
주야장천은 논어의 “子在川上曰(자재천상왈) 逝者如斯夫(서자여사부) 不舍晝夜(불사주야)”, 즉 “공자께서 냇가에서 말씀하셨다.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을 쉬지않는구나”에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다음 호에서 계속됩니다.

글_나윤민 조사심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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