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세상 X 낭만필객 ①] “평범에 대한 고찰”

테마가 있는 글

2024.11.07

“평범에 대한 고찰”

글. 김유정 조사관(수원가정법원)

법원에서 계장으로 일을 하다 보면 다양한 업무를 접하게 됩니다. 참여관의 법원 업무는 민사, 형사, 가사, 신청, 경매 등 업무 외에 조사관, 등기관 등 다양한 업무를 하게 되는데 새 업무를 숙지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면이 있기도 하지만 새로운 업무에 대한 기대감과 새로움이 있어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게 해주는 순 역할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근무 연차가 있다 보니 다양한 업무를 하면서 각 업무마다 특수성으로 인해서 힘든 부분도 있지만 업무를 통해서 내 삶의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 것 같은데, 작년 수원가정법원에 와서는 또 다른 신선함이 있었습니다.

민원인의 삶을

다양한 측면에서 고려

가정법원에서 제가 담당하는 업무는 후견 관련 업무인데, 후견 업무를 하면서 민원인들의 삶의 모습들을 좀 더 들여다보고 다양한 측면들을 고려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후견 업무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직접 그들의 삶을 경험하지 못하다 보니 공감을 해 주는 데 한계는 있지만 우리 모두에게 동떨어진 이야기들도 아닌 것 같습니다.

치매, 조현병, 사고 등으로 인한 뇌 손상으로 인해서 후견개시심판청구를 통해서 후견개시와 후견인 선임이 되고, 선임 후에는 법원에 후견사무보고를 해야 하는 업무들 속에서 후견인, 피후견인의 가정사와 후견인과 가족 간의 소통과 갈등의 양상들을 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중 가장 안타까운 부분은 미성년후견선임 사건인데 미성년들이 이혼 혹은 부모의 사망(안타깝게도 사망의 원인은 자살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등 다양한 이유로 인한 부모의 부재로 미성년후견인을 선임하는 경우에 미성년의 조부모, 사촌, 혹은 사망한 부의 지인이 후견인 선임심판청구를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과거보다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본능적인 모습에서 희망을 보기도 하고 그들에게 무언가 힘이 될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합니다.

매일 다양한 사연들을 접하고 그 사연들 속에서 피후견인의 복리를 위한 최선의 방법을 모색하고 때론 가족들 간 갈등을 직접적으로 접하면서 그 갈등 속에서 피후견인을 위한 최선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과정들이 지금까지 법원에서 해 왔던 업무와 결이 달라 방향성을 잡기 어렵기도 했지만, 차츰 다양한 사례를 접하면서 노하우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조사를 하다 보면 가족 간의 갈등의 중심에 서게 되고 누구의 말이 더 진실에 가까운지 혼란스럽고 갈등이 양상은 너무나 다양해서 당황스러운 순간들도 있습니다.

많은 경우 갈등의 시작은 작은 곳에서 오는 경우가 많고 갈등의 누적은 소통의 부재를 낳고 부재는 다시 오해를 낳고, 오해는 다시 미움과 증오와 반목을 키워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소통의 부재는 소통의 연결고리가 없으면 소통하기 너무나 어려워지고 그 소통의 부재로 화해가 되지 못한 채 가족 간에 10년 이상 얼굴도 보지 않는 경우를 보면서 안타깝기도 하고 어느 한편으로 상황들이 이해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태풍 같은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당사자들을 대면하고 조사를 하면서 그들이 상대방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질투, 반감 등의 감정들을 고스란히 들어야 할 때도 있으며 그들의 마음을 살피다 보면 상처가 보이기도 합니다. 진작 어루만져졌어야 하는 상처들을 안고 살아가는 그들은 어느 순간 상처를 분노로 표현하기도 하는 것 같았습니다.

평범, 상대방에 대한 무관심과

나처럼 살 것이라는 주관적인 판단

후견개시나 부수사건 조사를 하면서 저는 청구인에게 상대방의 성격에 대해서 묻곤 하는데 많은 분들이 상대방에 대해서 “평범했다”라고 답변을 합니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떠오르는 이미지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 그냥 무채색 같은 느낌입니다. 사실 저도 저 자신을 남들에게 표현을 할 때 평범한 집 안 환경에서 평범하게 자랐다고 말을 많이 합니다.

‘평범’이라는 것은 무엇을 규정하고 있을까요?(사전적인 의미는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이 보통이다는 의미입니다.)

평범은 평균적이며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살았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서 나오는 단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사람들의 상황들을 알고 싶지도, 관심이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상대방에 대한 진정한 관심은 없으며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살았을 것이라는 주관적인 판단이 ‘평범’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평범에 대한 고찰”

자기 자신을 남들에게 ‘평범’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나를 나타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기도 합니다.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숱한 말들이 있지만 ‘평범’이라고 규정하면 상대방은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쩜 상대방을 ‘평범’이라고 규정하면서 갈등을 외면하고 싶은 건지도 모릅니다. 상대방을 ‘평범’이라는 틀에 가두고 우리는 정작 남들의 성향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큰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으면 ‘평범’이라고 규정하면서 갈등을 외면하고 그 테두리에 가두고 상대방을 멋대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성격은 소심하고 섬세하며 작은 말에도 다른 사람보다 상처를 많이 받는 사람이기도 할 것이며, 누군가는 대범한 성격으로 모험심이 많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은 성향일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조용하고 혼자 고독을 좋아하고 책을 읽거나 사색을 좋아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신체적으로 힘쓰는 것을 좋아하고 성격은 단순하며 인간관계도 심플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런 각자의 성향에 대한 관심이 낮았던 것이 사실인데 요즘은 MBTI라고 해서 성향에 관심들을 가지려고 하지만 그 전에는 성향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평범’이라고 규정하면 상대방의 모난 행동은 그 사람의 성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테두리를 벗어난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 테두리라는 것도 각자가 만들어 놓은 테두리이지 않을까요.

‘평범’의 가면, 성향을 외면하고

갈등 해소를 피하고자 하는 방어적 표현

사람들은 너무나도 다양한 성향을 가지고 태어나며 그 성향 안에서 다양한 개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 각자의 개성들을 테두리에 맞추어야 한다는 강박감으로 살다 보면 그 과정에서 갈등과 아픔들이 생기게 되고 그 갈등과 아픔은 또 다른 형태의 모습으로 변하기도 하며 그 모습은 반항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고 때론 아픔이 폭력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평범’이라는 가면을 씌우면 자신의 관점에서 자유롭게 상대를 비난할 수 있는 빌미가 되며 상대의 성향을 존중해 줄 필요가 없게 됩니다. 특히나 갈등 중에 있는 당사자들은 상대방의 성향에 대해서는 관심이 크게 없습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이지만 가족의 성향에 대한 관심보다는 자신들의 기준에서 벗어나는지에 따라 평가하고 비난을 합니다. 그 비난의 깊은 곳엔 가족에 대한 성향의 외면이 있고 그 외면의 모습은 ‘평범’이라는 규정 속에서 합리화됩니다.

‘평범’이라는 평범한 단어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성향에 대한 외면과 그 외면에 그치지 않고 각자의 틀에서 벗어남을 비난하고 그 비난이 합리화되어 가는 것은 아닐까요.

그 후 조사를 하면서 당사자가 상대방에 대해서 “평범한 성격입니다.”라고 하면 그 말속에서 여러 가지 의미를 찾으려고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을 ‘평범하다’라고 하는 것은 상대를 배려하는 것도,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는 것도 아닌 정말 무채색 같은 말이며 그 말은 무관심과 갈등의 해소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방어적인 표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평범에 대한 고찰”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과 만납니다. 가족, 친지, 직장 동료, 지인들을 만나면서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얼마나 했는지, 그리고 그들의 아픔과 상황에 대해서 귀담아 들었는지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평범하다”라고 규정한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과연 그들에게 나는 얼마나 애정이 있었는지…. 애정과 관심을 쏟고 싶지 않은 나의 마음이 ‘평범’이라고 규정하고 비난을 자유롭게 한 것은 아닌지…. 그들의 성향과 기억과 추억들에 관심이 있었는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평범’이라는 틀 안에 가두고 그저 내가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들의 각 성향에 대한 존중은 있었는지…. 서로의 성향에 대해서 교류하고 같이 공감해 주었는지…. 상대방의 성향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려고 했는지…. 서로가 서로에게 바라는 것만을 요구하지는 않았는지…. 이런 생각들을 해보게 됩니다.

만남을 통해서 많은 기억과 경험을 갖고 그 속에서 갈등과 교류가 있었지만, 상대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평범’이라는 말은 흔한 단어이지만, 일을 하면서 그 안에서 많은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법원에서 일을 하다 보면 우리는 좋은 모습보다는 갈등의 모습을 더 많이 보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우울해 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끔은 작은 단어 속에서 잠깐이라도 나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싶어서 나의 이야기를 적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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