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뜰] 카라바조, 이중성의 살인미학 서평 ㅣ 김상근, 카라바조를 따라 종교와 인간 본성에 관한 고찰을 시도하다

테마가 있는 글

2025.06.05

생각의 뜰

글. 심용아 대구가정법원 판사

2024년 11월,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린 <빛의 거장 카라바조 & 바로크의 얼굴들> 전시를 다녀왔다. 빛은 어둠 속에서 더욱 선명해진다는 걸 처음 깨달은 건, 연세대 신입생 시절 김상근 교수님의 교양 강의에서 카라바조를 처음 만났을 때였다. 그의 그림들은 고요한 눈빛 하나로 숨을 멎게 하고 마음을 뒤흔들었으며, 지금껏 캔버스를 넘어 내 안의 기억과 감정을 두드리며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그 감동의 여운을 안고, 다시금 김상근 교수의 『카라바조, 이중성의 살인미학』을 펼쳤다.

인류의 역사는 거의 모든 방면에서 주체적 자유를 구현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다. 먼저 이를 비교적 가시적으로 입증해 주는 것이 바로 정치발전의 과정이다. 과거 절대 군주의 횡포와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한 인류의 ‘타는 목마름’은, 미국독립 전쟁과 프랑스 혁명의 전통을 이어받아 점차적으로 번져나간 세계적 민주화의 물결로 인해 오늘날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보상받을 수 있었다. ‘문제설정과 극복’이라는 측면에서 인간의 삶을 닮은 학문인 철학 역시 주체적 자유를 고심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이러한 양상은 특히 근대 철학에서 두드러졌는데 중세 시대를 지배하던 이데아와 보편자를 넘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통해 인간의 주체의식을 확립했던 데카르트, 인류 역사를 자유의 실현 과정이라고 보고 튀빙겐 숲에 자유의 나무를 심었던 헤겔의 사상은 이를 잘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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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비오 레오니 <카라바조의 초상> 1621~1625

인간 정신의 비합리적 요소까지도 모두 포괄하는 예술의 세계 역시 이러한 흐름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과거 고객의 주문에 전적으로 종속되었던 작품 세계에서 벗어나 예술가 개인의 고유한 주관성이 곧 작품의 본질로 파악되면서, 예술은 점차 정치적, 종교적 권력으로부터 해방되어 왔다. 이러한 예술의 자율화에 역사적인 공헌을 한 인물이 있으니, 그는 바로 17세기 바로크시대를 연 이탈리아 천재화가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이다. 시대를 앞서간 천재였던 그의 미술 철학은 당대에는 높이 평가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고전주의 전통에 신선한 개혁의 붓질을 더해, 종교와 인간 본성의 원초적인 단면들에 대한 깊은 고찰을 화폭에 담아내었다. 게다가 늘 불안정했던 그의 일상은 인간 이중성의 상극 사이에서 끝없이 고뇌했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면에서 매력적이다. 이런 카라바조의 인생 행적과 미술 철학을 신학 교수 김상근은 ‘카라바조, 이중성의 살인미학’이라는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내었다.

책을 이해하고 분석하기 위해 가장 먼저 천착한 부분은 왜 저자가 하필 카라바조라는 인물을 집필 대상으로 선택하였으며, 그를 통해 독자들에게 던지고자 하는 소통의 메시지는 무엇인지 살펴보는 일이었다. 이 지점에서 저자가 신학자의 길을 걸어 왔음을 염두에 둘 때, 카라바조 예술 미학의 전성기였던 16세기 말이라는 시대적 배경은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는 점에 주목하게 되었다.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16세기 말 종교개혁의 움직임과 그에 대한 반종교개혁 세력의 각축 사이에서 예술이라는 언어를 가지고 ‘고도의 냉소’를 보낸 ‘비극적’ 천재 카라바조의 예술 철학을 통해 종교의 본질에 대한 독자의 고찰을 유도하고 있고, 종교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도전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반종교개혁 세력은 (어느 정도는) 기득권에 눈이 멀어 성(聖)과 속(俗)을 철저히 분리하고 신앙을 더욱 신성화하여, 대중과 같은 눈높이의 종교란 존재할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그러나 이는 종교를 격상시키기는커녕 오히려 폭력적으로 만들었다. 일례로 종교의 숭고함을 강조하기 위해 순교라는 테마가 유행하였으나, 순교라는 이름 아래 ‘죽음 앞에서의 공포’라는 인간의 솔직한 감정은 거세당하는 폭력이 난무했던 것이다. 하지만 카라바조는 이러한 시대적 현실에 환멸을 느꼈으며, 저자 역시 분명 이와 같은 카라바조의 선구적 깨달음에 깊이 감명받았을 것이다. 종교로 인해 일개인이 겪는 소외에 대한 포착, 종교의 몰개인성에 대한 안타까움과 고뇌가 카라바조와 저자를 만나게 하였던 것이다.

카라바조 <성 도마의 의심> 1602

저자가 독자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로서 카라바조를 선택한 것은 ‘사람이 종교를 위해 존재하는 역리’가 만연했던 16세기의 시대적 현실에 대해 카라바조가 느낀 환멸이 오늘날까지도 유효하다는 점에서 더욱 깊은 의미를 갖는다. 본래 인간이 종교를 창조한 것이지만, 오히려 종교가 인간을 질식시키는 경우는 오늘날에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해방을 위해 성립한 종교가 사람을 구속하고 인간성을 말살하는 경우가 흔한 것이다. 특히나 종교가 인간 소외의 가장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는 것은 흔히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통해 종교가 초인간적인 ‘권위의 구속복’을 입기 때문이다. 명백한 모순과 비리가 있더라도 종종 종교에 대한 비판은 신앙심의 부족으로 치부되거나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비난받기도 하는 것이다.

카라바조는 시대에 대한 비판을 테네브리즘이라는 양식과 이중성이라는 주제를 통해 화폭 위에 거침없이 구현해 냈다. 그는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어둠에 한 줄기 빛을 비추어 과감한 생략과 강조를 하였다. 그의 칠흑처럼 어두운 화폭은 그리스 신화의 천지창조에 거론되는 ‘태초의 어둠’을 떠오르게 한다. 그러나 카라바조의 어둠은 단순한 암흑이 아니다. 그의 어둠은 어둡기 때문에 또한 솔직하다. 빛 한 줄기가 어둠을 뚫고 지나가는 곳에 서게 되는 것은 근본적으로 정직함의 옷만을 걸치고 원시적인 부끄러움을 드러낸 나체의 인간 본성이다. ‘나는 모든 살아 있는 존재의 심층으로 가라앉기를 원한다’고 말했던 에곤 쉴레의 말을 되뇌게 하는 그의 그림은, 이렇듯 테네브리즘을 통해 종교라는 테제 앞에 선 인간 존재의 가장 솔직한 근원을 파헤치는 깊이를 얻을 수 있었다. 이리하여 카라바조는 이상화된 미로부터 벗어나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의 성모 마리아를 그리고, 바울의 회심을 지극히 내면적인 사건으로 재현해 낼 수 있었다. 즉, 카라바조의 그림에서는 종교라는 거대 담론 앞에 개인이 말살되는 일이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책 전반에 걸쳐 ‘테네브리즘’을 언급하며 저자가 카라바조의 명암법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보인 것은 작가의 식견이 매우 뛰어남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가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기제였다고 평할 수 있다.

카라바조 <성 마테오와 천사> 1602

또한 카라바조는 일생 동안 근본적으로 성과 속은 분리될 수 없음을 붓 끝으로 고발하였다. 종교란 반종교개혁 세력들이 오용하는 바와 같이 천상의 전유물이 아니라, 바로 속되고 평범한 우리 삶 속의 깨달음에서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는 리얼리티 미학을 그려내었던 것이다. 물론 그 역시 인간인지라 생계 문제의 해결과 시대가 요구하는 흐름에 일정도 편승하여 반종교개혁적인 모티프를 차용하긴 했으나, 그의 그림은 종교적 가치를 절대적으로 미화시키지 않았다. 이는 그의 종교적 작품 속의 주인공들이 ‘정체불명의 아웃사이더’들이었다는 점에도 반영되어 있다. 그리고 바로 이와 같은 ‘이중성의 미학’은 종교의 파괴성을 자각도록 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저자의 집필 의도를 다시금 읽어낼 수 있었다. 저자는 종교의 본질을 생각하기 이전에 종교를 만들어낸 인간의 본성을 먼저 탐구하여 종교라는 거대 구조 아래에서 말살되기도 하는 인간 내면의 진정한 해방을 구하였던 것이 아닐까.

그러나 성과 속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은 인간 존재의 근원적 모순(인간 본성의 내재적 이중성)으로부터 발생하는 영원히 풀리지 않을 딜레마라는 점을 상기할 때 카라바조의 작품에 감도는 ‘비장미’를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카라바조, 이중성의 살인미학’은 단순한 평전이나 예술사상서의 차원을 넘어 문학적 깊이까지 겸비하게 된다. 저자는 ‘이중성’에 초점을 두어 카라바조가 문학의 천재였던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현대 수학과 과학의 일대 전환점을 가져온 천재 파스칼의 ‘팡세’에서 드러난 문제의식을 자신의 화폭에 담아내며 진정한 천재성을 발휘하였음을 포착해 내었다. 먼저 ‘파우스트’에서 메피스토텔레스는 “당신이 하늘에 빛을 비춰 주지 않았더라면, 그들의 생활은 지금보다 좀 더 나았을 것입니다. 사람은 그것을 이성이라고 부르며 오로지 어떤 짐승들보다 더 짐승답게 사는 데만 그것을 쓰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괴테가 그리고 있는 인간은 완전한 도덕성이 구현된 신성과, 도덕성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는 동물적 본성 사이에서 분열되고 방황하는 모습이다. 인간에게 이성의 희미한 빛(즉 하늘의 빛의 허상)이 주어졌기에, 그의 본성에는 완전한 신성을 향한 갈구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하늘의 빛이 실체가 아니고 허상이기에, 즉 불완전하고 미약한 이성이기에 신성에 대한 갈구는 동물적 욕구 충족의 본능을 넘어서지 못하고 이 본능과 갈등 관계에 놓이게 마련이다. 완전한 도덕성과 철저한 야수성, 이 양자 사이에서의 방황이야말로 인간 고통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파스칼 역시 ‘팡세’에서 ‘한 편은 정욕을 버리고 신이 되기를 원하고, 또 다른 편은 이성을 버리고 짐승이 되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어느 편도 될 수 없었다.’라고 언급하였다. 그리고 카라바조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테네브리즘과 이중성의 조화를 연출하였다. 책을 읽는 내내 가슴 한 구석에서 나에게도 카라바조가 내려 준 한 줄기 빛이 임하였으면 하고 구원을 갈망하게 되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인간의 존재론적 부조리에 대한 깨달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당시 곤궁한 삶을 살았던 수많은 로마인들도 카라바조의 그림을 보며 자신들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했을 것이다.

카라바조 <메두사> 1598

전반적으로 저자와 카라바조 그림의 우연한 만남으로부터 기획된 이 책은 단순히 카라바조라는 인물에 대한 평전이 아니요 서양 미술사의 한 획을 잡아내어 엮인 개론서도 아니거니와, 종교와 인간의 근본적이고도 존재론적인 고뇌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는 철학서로까지도 읽힐 수 있는 저서였다. 이제 다시 카라바조의 그림을 하나 펼쳐두고 가만히 감상해 보자. ‘종교의 환상적이고 현혹적인 인간성’에 대한 카라바조와 저자의 탄식이 하나의 음성으로 오버랩되어 들려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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