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세상 X 낭만필객③] 차도남 정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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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글 정혜윤 실무관(인천지방법원)

그를 처음 만난 건 작년 여름 때였나, 한창 비가 많이 쏟아질 무렵이었다. 크고 맑은 눈망울의 그는 내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던 나, 얼굴 보는 사람이었네…. 나를 설레게 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밥은 또 얼마나 우걱우걱 복스럽게 잘도 먹는지. 다소 무표정한 생김새의 그는 차도남 같았다. 차가운 도시 남자가 아닌, 차 타고 온 도시 남자.
그 남자의 정체는, 내가 작년에 입양한 고양이 춘식이다. 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어 봄 ‘춘(春)’에, 잘 먹고 건강하라고 밥 ‘식(食)’을 써서 춘식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그런데 왜 차 타고 온 도시 남자냐고?

인천 등기국에서 근무할 때였다. 직원 중 누군가가 고양이를 주웠다며 헐레벌떡 뛰어왔다. 대충 이야기를 들어보니 친한 후배 언니가 데려온 모양인데 사연은 이렇다.
후배 언니가 운전을 하면서 출근하고 있는데 차 안에서 야옹-소리가 나더란다. 잘못 들었나, 고양이 소리가 날 리가 없는데. 그런데 계속 야옹-야옹-소리가 나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일단은 등기국에 도착하여 주차를 했단다. 그런데 웬걸, 차를 세우고 나니 바퀴 사이에서 새끼고양이가 튀어나와 직원들이 겨우 잡았단다. 이 고양이를 어쩌지 못하고 일단은 이동장을 구해 넣어 사무실 안에 둔 것이다.
이 녀석을 어떻게 해야 하나, 다들 고민하다가 혹시 키워줄 사람이 있는지 찾아보기로 했다. 만약 데려갈 사람이 없다면 보호소로 보내야 하는데, 대부분은 안락사로 생을 마감한다고 했다. 끝내 입양할 사람을 찾지 못한 후배 언니는 나에게 임시 보호를 부탁했다. 한 생명체를 책임져야 하는 일에 자신은 없었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으므로 결국 고양이를 집으로 데려오게 되었다. 미혼의 자취생이라 누구의 허락도 필요 없었고 그렇게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고양이를 처음 키워보는 나에게 육아, 아니 육묘를 하는 일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일례로 고양이는 화장실이 따로 있어야 하고 모래를 부어주어야 배변 후 모래로 파묻어 마무리하는데, 화장실도 모래도 종류가 여러 가지라 고양이가 어떤 것을 선호하느냐에 따라 화장실에 쌀 수도, 내 침대에 쌀 수도 있는 모양이었다. 고양이를 데려온 날 결국 침대 커버를 손빨래하게 되는 불상사가 일어났고 나는 점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고양이를 키우는 분에게 얻어온 모래를 박스에 부어줬는데 왜인지 아무리 고양이를 박스에 넣어줘도 용변을 보지 않고 뛰쳐나오는 것이었다. 추후에 춘식이가 커다란 화장실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춘식이 몸집의 몇 배는 더 큰 초대형 화장실을 마련해 주었다. 화장실이 집으로 배송되어 온 날, 춘식이는 하루 종일 모래놀이를 하며 신나게 뛰어다녔다. 그 후로 춘식이가 대소변 실수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사방팔방 튄 모래를 매일 쓸고 닦는 건 모두 내 몫이 되었다.

생후 1개월 남짓 된 춘식이는 힘이 넘쳐 생각보다 더 가만히 있지도 않았고, 생각보다 더 조용하지도 않았다. 내가 출근한 낮에는 늘어지게 자다가 내가 퇴근 후 잠자리에 들면 밤새 울어대며 관심을 보여주길 바랐다. 고양이는 강아지처럼 분리불안이 없다고 알고 있었는데 사실은,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게 아니라 혼자 있는 걸 비교적 잘 견디는 것일 뿐이었다. 혹시 이웃에 민폐가 되지 않을까 걱정도 됐고 매일 야옹대는 소리로 잠을 자지 못한 나는 수면 부족에 시달리며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퇴근 후 혼자 조용히 내 시간을 보내며 피로를 풀던 나는 엄청난 수다쟁이와 같이 살며 조금씩 소모되어 갔다.

임시 보호 중 춘식이에게 관심을 보인 분들이 몇 있었다. 입양을 보낼 수도 있었는데 환경이 바뀌면 춘식이가 힘들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마음에 보내지 못했다. 그리고 데려가겠다는 사람들이 춘식이로 인해 과연 행복하기만 할까, 하는 염려도 조금은 있었던 것 같다.
결정의 대가는 혹독했다. 퇴근하면 고양이 밥그릇, 물그릇을 씻어 밥과 물을 채워주고, 화장실을 치워주고, 놀아주고, 빗질 후 눈곱과 코딱지를 떼어주고, 청소하고, 나도 밥을 먹고, 씻고, 자는데 잠조차 제대로 자지 못했다. 내 시간의 대부분은 춘식이에게 신경을 쓰는 것으로 채워지는데도 불구하고 지치지 않는 춘식이는 내 몸을 포함한 집안의 물건들을 물어뜯으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듦이 쌓여가던 어느 날 나는 집을 뛰쳐나와 소리를 지르며 응어리를 토해냈다. 여력이 되지도 않으면서 왜 덥석 키우겠다고 했는지 후회가 밀려왔고 한편으로는 예뻐하기보다 많이 혼내기만 한 것 같아 미안하기도 했다. 이제라도 좋은 환경과 좋은 사람이 있는 곳으로 보내야 하나.

춘식이를 데려온 시기는 엄마가 돌아가신 후 찾아온 우울함을 모두 떨쳐내지 못한 때였다. 나의 모든 게 가라앉아 있던 때 만난 춘식이는 달리는 차 안에서도 살아남은 생명력으로 나를 끌어당긴 것이다. 차 안에서 사투를 벌인 춘식이의 몸은 더럽고 꼬질꼬질했지만 삶의 의지가 담겨있는 눈빛은 초롱초롱 빛이 나고 있었다. 아직 엄마의 보살핌을 받을 때인데 어떤 사정으로 엄마를 잃어버리고 차 안으로 들어가게 됐을까?

한번은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은 마음이 물밀듯이 밀려와 혼자 흐느끼고 있을 때였다. 춘식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한참을 그렇게 나를 지켜보던 춘식이는 가만히 다가와서 눈을 맞추고 무릎에 앉아 품에 안겼다. 어떤 위로의 말이 오가지 않았는데도 작고 따뜻한 털 뭉치가 주는 체온의 안정감에 신기하게도 슬픔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춘식이는 평소에 자신을 쓰다듬거나 만지는 걸 좋아하지 않았는데 참으로 묘한 기분이었다. 나는 춘식이를 포기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영악한 춘식이.

춘식이가 나를 웃음 짓게 하는 소소한 순간들도 많았다. 우리 집은 2층인데 1층에서 올라가는 순간부터 어떻게 알았는지 야옹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정확히 야옹이라기보다는 야---옹! 야---옹! 소리를 지르는 것에 가깝지만 어쨌든 격하게 환영해 주는 마음이려니, 고맙긴 하다. 그렇게 현관문을 열면 이미 마중을 나와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반기는 것이다.
또 하나 내가 밥을 먹을 때마다 다가와서 ‘야옹’ 대길래 배고픈가 해서 사료 그릇에 사료를 부어줬는데 먹지 않는 것이었다. 왜 자꾸 야옹거릴까, 혹시나 해서 사료 그릇을 내 밥상에 놓아주자 그제야 사료를 먹는 것이었다! 뒷다리만 바닥에 두고 앞다리를 밥상에 두고 서서 사료를 먹는 춘식이의 모습은 다소 기괴해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춘식이는 불편한 자세로 기어이 겸상을 마쳤다.

이제 한 살이 된 춘식이는 갈수록 얌전해지긴 하지만 여전히 말이 많고, 여전히 호기심이 넘치고, 여전히 사람과 같이 있는 걸 좋아한다. 지금의 나는 춘식이에게 모든 부분을 맞추려 애쓰지 않고 있다. 춘식이 또한 그럴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지혜롭게 공존하는 법을 배워나가는 중이다. 아직 서툴고 어려운 부분이 많지만 귀여운 춘식이를 보면서 힘을 내야지. 때로는 좋고 때로는 힘들겠지만 인생이, 묘생이, 그런 것 아니겠니.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자, 춘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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