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공감 / 전성실 작가] 나눔은 목적이 아닌 수단

공감

2024.12.06

나눔은 목적이 아닌 수단

ⓦ- 전성실 작가

나눔을 생각하면 대부분 기부나 봉사와 같은 단어들을 떠올립니다. 아마도 나눔은 뭔가를 가진 사람이 가지지 못한 사람에게 도와주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가진 게 별로 없거나 남이 필요로 하는 능력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눔을 하기 어려워합니다. 특히 남에게 받기만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더욱 가진 게 없으니 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나눔이란 가진 사람이 가지지 못한 사람에게 뭔가를 주는 것일까요?

나눔은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제주도 애월에 살고 있는 저는 요즘 일이 없으면 아내와 함께 한담해변을 같이 걷습니다. 걸으면서 바다도 함께 보고, 주위에 핀 꽃들도 함께 보고, 산책로에 나온 사람들 구경도 하면서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때 저와 아내 중 누가 나눔을 하는 사람이고 누가 나눔을 받는 사람일까요? 처음 산책을 하려고 할 때 제가 먼저 나가자고 졸랐습니다. 이를 아내가 응하면서 같이 산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럼 나가자고 먼저 제안한 제가 나눔을 한 것일까요? 아니면 처음엔 나가기 싫어했지만 마지못해 그에 응해주었던 아내가 나눔을 한 것일까요? 분명 둘 다 시간을 나누었으니 둘 다 나눔을 한 것일까요? 먼저 나눔은 누가 하는 것인지 살펴볼까요?

나눔은 목적이 아닌 수단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을 구분하는 순간 주는 사람은 주기만 해야 할 것 같고, 받는 사람은 받기만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주는 사람 중에도 누군가에게 받고 싶은 게 있을 수 있고, 받는 사람 중에도 누군가에게 주고 싶은 게 있을 수도 있습니다. 특히 늘 받기만 하는 사람 중에는 자신이 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받으려고만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상대가 아무리 좋은 것을 줘도 고맙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당연히 주는 사람이 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나눔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경계가 없어야 합니다. 그래야 기부나 봉사가 아니어도 주위에서 주고받을 수 있는 것들을 일상적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나눔은 가진 사람만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나누고자 하는 생각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서로의 불완전함을 채우기 위해서는 주고받아야 합니다. 나눌 물건이 없더라도 상관없습니다. 마음을 나눌 수도 있고, 생각, 관심 등 서로 소외된 현대 사회에서 나눌 수 있는 것은 많습니다. 그래야 일상적인 나눔이 가능합니다. 이처럼 나눔은 누구나 줄 수 있고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나눔은 목적이 아닌 수단

제주도 해녀는 물질을 한 기간과 나이에 따라 상군, 중군, 하군으로 나뉩니다. 물질을 잘하는 해녀를 상군, 중간을 중군, 신입이거나 나이가 고령이어서 물질하기가 불편한 해녀를 하군이라고 합니다. 보통 상군과 중군은 먼 바다로 나가서 물질을 하고, 하군은 실력이 좋지 않기 때문에 먼 바다까지 가지 못하고 가까운 바다를 지정해서 그 곳에서 물질을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하는데 이를 할망바다라고 합니다.

실력이 좋은 상군이 가까운 바다에 있는 해산물을 독점하는 게 아니라 실력이 아직 부족한 하군에게 해산물이 풍부한 바다를 양보합니다. 하군이 해산물을 잘 잡지 못하니까 불쌍해서 상군들이 많이 잡아다가 나눠주는 게 아니라 하군에게 많이 잡을 수 있는 바다를 양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을에서 일이 있을 때 하군들도 잡은 것들을 나눌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함께 살 수 있는 기반을 만들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마을의 불쌍한 사람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마을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비슷한 개념으로 할망장터라는 게 있습니다. 제주도에서 5일마다 열리는 오일장의 입구에는 주로 동네 할망(할머니)들이 자리를 배정받아 적은 임대료를 내고 장사를 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배려 대상인 할망들에게 불쌍하니까 생활비를 주는 게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일을 해서 생계를 꾸려갈 수 있도록 배려를 하고 있습니다.

나눔은 목적이 아닌 수단

나눔은 주기만 하는 것일까요? 일방향으로 주기만 하면 받는 사람은 줄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집니다. 나눔이란 행위를 주는 것이라고만 생각하면 줄 것이 없으면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는 것만이 아니라 받는 것도 나눔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좀 더 다양한 나눔을 할 수가 있습니다. 상대가 주고 싶은 것을 받아주는 나눔을 할 수도 있고, 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상대를 줄 수 있는 존재로 만드는 나눔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할망바다와 할망장터는 전형적인 받는 나눔입니다. 불쌍하니까 도와주는 게 아니라 같이 살아가야할 이웃이니까 그들도 나눌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나누는 것입니다.

나눔은 목적이 아닌 수단

나눔을 특별한 행위가 아니라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행위가 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우리도 일상에서 친구가 고민이 있어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도 있고, 친구가 공연을 하는데 초대하고 싶어 하면 기꺼이 가서 친구의 공연을 보고 응원해줄 수도 있고, 동네 이웃이 혼자 밥 먹기 싫을 때 같이 점심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 좀 더 확장해보면 마을에 도서관이 생기면 도서관을 잘 이용해주는 것도 받아주는 나눔입니다. 도서관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는 이것만한 나눔이 없습니다.

나눔은 누구나 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주고받을 수 있으며 심지어 받기만 해도 나눔이 될 수 있습니다. 나눔의 행위는 이처럼 다양한 방법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눔은 누구나 서로 주고받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런 나눔이 우리 사회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나눔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눔이 목적이 되는 순간 나눔을 통한 관계가 무너지면서 나눔 안의 존재는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나눔이 목적이 되면 주위에 함께 사는 이웃을 이웃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나눔을 해야 할 대상으로 보게 됩니다. 나눔을 통해 관계를 맺는 게 목적이 되기보다는 나눔 자체가 목적이 되면서 그들과의 관계는 잊어버리고 맙니다.

나눔은 목적이 아닌 수단

마을공동체 동아리 선발 심사를 가면 대부분의 동아리들이 연말 사업으로 장터를 열어 그 수익금으로 마을에 있는 보육원이나 장애인 시설에 기부를 한다고 계획서를 제출합니다. 그와 관련해서 제가 늘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ㅇㅇ동아리 대표님은 연말에 장터를 열어서 보육원에 기부하신다고 했는데 대표님에게 보육원 아이들은 이웃인가요? 아닌가요?”

대부분의 동아리 대표들은 순간 말문이 막힙니다. 왜냐하면 마을에 함께 사는 보육원 아이들을 이웃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나눔의 대상으로만 생각했던 것입니다. 사실 서로 얼굴 마주칠 일도 별로 없고 서로 잘 모르기 때문에 이웃으로 생각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나눔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것도 좋은 것은 아닙니다.

나쁜 의도는 아니지만 자신들은 주는 사람이고 그들은 받는 사람이라고 경계 짓고 구분합니다. 자신은 가진 자이고 주는 사람이니 나누어서 그들에게 도움이 되려고 하지만 그로인해 그들은 마을에서 주고받는 주민으로서 살기보다는 받기만 하는 불쌍한 사람으로만 살려고 합니다. 그래서 주는 사람 중에도 사고나 질병으로 받는 사람이 되면 자존감이 바닥을 치면서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합니다.

“가족 돌봄이 나에게 주는 기쁨은 없다. 누구는 가족 돌봄 청년이 책임감이 강하고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나고 어른스럽다고 칭찬하지만, 다 필요 없다. 우리 모두는 다 자기 나이에 맞게 사는 것이 제일 좋은 것이 아닐까? 아동 청소년이라면 어른의 보호를 받고 돌봄을 받아야 한다.” <나는 돌봄하고 있습니다. 97쪽>

요즘 영케어러라고 어린 나이에 가족들을 돌보는 아동 청소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들은 돌봄을 받아야할 나이에 가족을 돌봐야만 하는 상황에 빠지면서 자신이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버린 채 주기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돌봄을 받아야하는 존재가 가족을 돌보며 돌봄을 목적으로 하는 순간 가족들과의 관계보다 돌봄이 우선이 되면서 관계는 사라지고 자신도 돌봄을 받아야하는 존재라는 자체를 무시하거나 잊어버립니다.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학교를 짓는다고 할 때 그들을 위한 기부는 하는데 그 학교를 자기 동네에 짓는 것은 반대하는 것도 비슷한 사례입니다. 발달장애인들이 불쌍하니 그들을 위해 기부를 해서 학교를 지으면 그들에게 도움이 되니 좋고, 자신도 좋은 일을 했으니 좋다고 생각하는데 그 학교를 자기 동네에 지어서 이웃이 되는 건 싫은 것입니다. 나눔을 목적으로 자신은 이미 나눔을 통해 착한 일을 했고 좋은 사람이 되었으니 굳이 함께 살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눔이 목적이지 나눔을 통해 그들과 관계 맺고 함께 살고 싶은 생각까지는 없습니다.

나눔은 목적이 아닌 수단

나눔은 누구나 주고받을 수 있으며 나눔 자체가 목적이 되기보다는 나눔을 통해 관계를 맺고 공동체를 이루며 함께 사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 되어야겠습니다.

글쓴이 소개 | 전성실

나누다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전국을 다니며 나눔을 말하고 듣고 배우고 있다. 또한 개인과 개인의 나눔만이 아닌 개인과 집단, 집단과 집단, 공동체 안의 나눔을 만나 나눔활동가로서의 삶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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