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뜰] 섬진강마을영화제에 와서 가정에 대해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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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7

글. 최선경 수원가정법원 조사사무관

무척이나 더웠던 여름이 지나 가을로 오는 길목에서 바쁜 일상에 허덕이고 있을 때, 나의 남편이 섬진강마을영 화제에 같이 가자고 제안하였다. ‘섬진강마을영화제?’ 너무 낯설고 신기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영화제 하면 부산국제영화제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떠오르 며, 평소 OTT로 영화를 보기는 하지만 영화제에 참석해볼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섬진강마을영화제는 섬진강을 이웃하여 살아 가는 마을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로 2022년부터 해마다 영화제를 개최하여 올해 3회째이며, 남편의 선배이며 소설가이신 김탁환 작가님이 공동주최를 하고 있었다.

영화 ‘곡성’을 통해 곡성이라는 지역이 궁금했었는데, 이마을에서 영화제를 한다는 것이 상당히 흥미로웠으므로 함께 참가해 보기로 했다.

곡성의 한 이웃마을 동사무소에 있는 강당에서 영화제를 개막하면서 나름 레드카펫도 마련되어 있었고, 밴드의 축하공연도 있었으며 개막작이 상영되었다. 영화제 에는 직접 작품을 출품한 감독이나 관계자들, 영화감독 들, 동네 주민들도 참석하여 정겨운 동네잔치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앞줄에 앉은 어르신들의 호응이 가득한 개막식 축하공연을 보며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동안 극장에서 영화를 보던 것이 전부인데 마을의 회관 같은 곳에서 어르신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영화를 보는 것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어르신들을 보면서 ‘나는 우리 부모님과 영화를 본지 얼마나 되었던가!’라는 생각을 하는 사이 ‘광천동 김환경’이라는 개막작이 시작되었다.

작품의 감독이면서 주인공인 ‘김환경’이 광천동 시민아 파트에 직접 거주하면서 주민들의 삶을 조명해 본 영화 인데, 나에게는 이웃과 사람과의 관계라는 주제를 생각 하게 하며 많은 감동과 눈물을 남겼다.

섬진강마을영화제 레드카펫에서

최선경 조사사무관과 남편, 김탁환 작가님

영화제 둘째 날에는 참가자들이 함께 섬진강을 따라 걸어보는 행사(자박자박 마실)에 참가했다. 약 70여 명의 사람들이 논과 밭, 메타세콰이어 길을 지나 장선 들녘과 장선 습지를 걸었는데, 참으로 오랜만에 경험해 보는 일이었다. 자발적으로 햇살이 따가운 대낮에 노랗게 물든 논길을 따라 걸으며 맑은 하늘과 구름을 바라보는 경험이 얼마 만인가.

섬진강마을영화제는 초등학교 폐교를 개조하여 만든 ‘미실란’이라는 곳에서 주로 진행되었는데, 환경에 대한 인도 다큐멘터리, 곡성에 사는 초등학생들이 직접 출연 하여 제작한 작품(초등학교에 전학 온 소년의 학교 적응 기), 젊은 기후 위기 활동가이자 장래가 촉망받는 음악 가(독일)의 오디션 참석을 위한 이동기(전기를 이용하지 않는 방법) 등 상업적이지 않으며 정감 있는 내 이웃의 이야기가 담긴 영화들이 주를 이뤘다.

섬진강마을영화제 포스터

특히, 섬진강마을영화제의 트레일러가 인상적이었는데, 섬진강에 사는 초등학생 어린이들이 논가와 섬진강 어귀를 해맑은 얼굴로 뛰어가다가 저녁노을이 지는 하늘 에서 반딧불을 보고 행복해하는 모습이 내 마음을 울렸 다. 때 묻지 않고 티 없이 밝은 이 아이들은 실제 섬진강 마을에 사는 아이들인데 도시에서 보는 아이들의 얼굴 과는 사뭇 다른 표정이었다.

섬진강이 주는 자연의 풍요로움과 따스함은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과 관계와 모두 이어져 있는 것 같이 느껴졌고,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나 자신과 나의 주변의 사람들, 그리고 매일 만나는 사람들과 그들의 가정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내가 가정법원에 입사하여 가사조사관으로 근무한 지어느덧 만으로 23년이 흘렀다. 조사관을 계속 할수록, 가정과 관련된 연구(이혼, 가정폭력, 소년사건, 아동학 대)를 볼수록 느끼는 것은 당사자들의 분쟁과 갈등은 시대가 지남에 따라 그 정도가 심해져가고, 자녀에게 미친 영향은 대를 이어가며 심화되어 간다는 점이다. 20년 전에 만났던 부부의 갈등 양상과 요즘 부부들의 모습이 상당히 다르지만,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며 헤어지려고 하는 부부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자녀를 둘러싼 부부 간의 다툼은 그들의 이기심에서 비롯되어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또한 요즘에는 무수히 많은 정보를 쉽게 습득할 수 있어 타협이나 조정이 더욱 어려워진것 같다.

개막작<광천동 김환경> 포스터

그동안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의 복잡하고 괴롭고 힘든 인생사를 접하여 그들의 고통과 슬픈 심정을 마주하였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에게 관계와 자기문제의 복잡한 퍼즐을 잘 풀어보도록 조언하였다. 단순히 듣고 공감하여 마무리하면 좋겠지만, 재판에 필요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조사관으로서 그들의 삶의 이야 기를 분석하고 평가하며 정리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매일매일 만나는 당사자들의 삶이 특별하게 느껴지기보다는 무미건조하게 느껴지게 되고 업무가 되어버려 그들의 복잡함과 토로는 나의 업무량을 가중시키고 부담감 으로 변환되며 나의 심신이 지쳐가는 것이 느껴지기도 한다. 아마 거의 모든 조사관이 비슷한 과정을 겪었을 것이다.

조사관을 오랫동안 하고 있는 선배로서 많은 후배 조사 관들을 대할 때면 미안해지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이일을 오래 했다고 해서 조사를 아주 잘한다거나 당사자를 만나는 것이 수월하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요즘 들어 이 일을 더는 하고 싶지 않다는 후배들이 늘어나고 있다. 어떤 조직이든 발생할수 있는 일이며, 오랫동안 이 일을 하는 것이 쉽지 않기에 그들의 선택은 존중받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한 명의 조사관이 성장하고 자리 잡기까지는 다른 많은 조사 관들의 관심과 교육, 애정이 있었기에 가능할 수 있고, 그 조사관 자신의 피땀 어린 노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 었기에 조사관의 이탈은 큰 손실이며 남아있는 이들에게 큰 상실감을 남기기도 한다.

상영장 <조류를 거슬러> 포스터 자박자박 마실 행사

이번에 섬진강마을영화제를 보면서 한가지 든 생각은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진리에 대한 것이다. 조사관이 만나는 아이들은 부모가 이혼하려고 하거나 부모의 폭력성향으로 어려움에 처하거나 청소년 시기에 비행을 경험하며 좌충우돌하고 있어, 슬프거나 짜증내거나 화가 났거나 두려움에 가득한 모습이다. 이영화제의 트레일러에 나온 아이들처럼 해맑게 웃는 모습을 우리가 만나는 아이들에게서도 보고 싶다. 이를 위해 우선적으로는 아이들의 부모가 도와야 하겠지만 그부모 또한 난관에 부딪혀 있으므로 부모를 돕는 것이 결국에는 아이들을 돕는 일이 된다. 따라서 조사관이 만나 는, 가정법원이 만나는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서는, 조사관이 부모와 아이에게 손을 내밀어 안정되도록 도와 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사관이 그들에게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지원하고, 단순히 일로 대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장기간 같은 일을 하면서 분쟁과 욕설이 난무하는 당사자들을 꾸준히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따라서 조사관들에게도 마을이 필요하다. 조사관이라는 가정법원의 복지 영역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이 기본 적으로 지켜야 하는 가치를 지속적으로 지니며 지치지 않고 힘을 낼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는, 법원이라는 마을이 잘 지켜주고 지지해 주면 좋겠다. 그래야 조사관도 법원이라는 든든한 울타리에서 튼튼하게 성장하여 그 힘을 우리의 당사자들에게 더 쏟을 수 있을 거라고 본다.

마을의 힘과 사람들의 관계를 돌아보면서 영화제가 끝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발걸음이 좀 더 가벼웠다. 나의 일상을 낯설게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진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내년에도 섬진강마을 영화제가 개최된다면 다시 가보고 싶으며, 이 지역의 분위기와 마을의 따스함을 느끼며 영화를 보고 싶은 분들 에게 영화제 참석을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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