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형순 서울북부지방법원장
제가 서울북부지방법원으로 전입한 시기는 코로나-19가 맹위를 떨치던 2021년 2월이었습 니다.
서울 북쪽 끝, 도봉에 위치한 북부법원, 처음에는 정말 낯선 곳이었지만 2년간의 재판업 무에 이어 법원장으로 2년을 더 근무하면서 다른 곳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훌륭한 자연환경과 오랜 세월이 깃든 지역의 스토리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제게 너무도 과분한 자리였지만 함께 했던 훌륭한 북부법원 가족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법원장 임기를 마치고 이제는 정들었던 북부법원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제가 4년 동안 북부법원이 자리 잡은 도봉 지역의 자연과 문화유 산을 틈이 날 때마다 답사하고 체험한 경험을이 글로 남기게 되었습니다. 혼자만의 추억으로 마음속으로만 간직하기 아쉬워 북부법원에서의 행복했던 여정을 변변치 않은 글 솜씨로나마 기록하고 사진을 담아 법원 가족들과 함께 공유 합니다.
서울 안의 호젓한 시골 무수(無愁)골
무수골은 북부법원의 후문을 나와 20분 정도 도봉산 계곡물이 흐르는 무수천을 거슬러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유서 깊은 마을입니다. 우선 무수골에서 볼 수 있는 명소는 원통사 방향으로 계속 올라가면 맑은 물이 흐르는 도봉산 계곡이 나오는데, 그곳에는 갈겨니와 버들치와 같은 1급수에 서식하는 물고기가 흔히 보이고 천연기념물인 원앙이 가족을 비롯한 청둥오리, 왜가리 또한 흔하게 구경할 수 있습니다.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면서 도봉산의 그윽하고 멋있는 풍경에 취해서 걷고 있노라면 기록에 파묻혀 어지러워진 마음이 절로 차분해지면서 근심이 사라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무수골 안쪽으로 훌쩍 들어간 윗말 쪽에서는 아직도 토박이분들이 논농사를 짓고 계십니다. 서울 내에서 오전 근무를 마치고 점심시간에 산책을 통해 무수골의 자연과 농촌 마을을 지켜볼 수 있는 점은 북부법원 근무가 주는 가장 큰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무수골 에서 수백 년 세월 마을을 지켜 오신 분들께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끝으로 무수골에는 무수아취라는 글램핑장과 도봉구에서 운영하는 녹색복지센터라는 이름의 복합산림치유공 간이 있고 사전 예약을 통해 이용이 가능합니다. 또한 산책으로 지친 다리를 쉬어갈 수 있는 휴식공간으로 희서 커피, 무수울과 같은 예쁜 카페도 있는데, 특히 희서커피의 경우 인자하신 주인 할아버지(마을 통장)께서 정성들여 훌륭한 풍미의 커피를 내려주시고 평생 수집하신 하이엔드 오디오 시스템(무려 빈티지 진공관 앰프가 있습 니다)을 통해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게 해 주십니다.
도봉산
도봉산 탐방
평소 산행을 멀리해 오다가 법원장으로 취임하면서 산악회 활동을 통해 새로이 등산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습 니다.
도봉산 정상(왼쪽부터 안재광 서기관, 권영섭 총무과장, 이진학 사무국장, 필자)
북부법원은 그 이름도 유명한 불수사도북(불암산,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의 앞 글자로 약칭)의 한가운데에 입지하고 있고 특히 수려한 풍경의 도봉산은 출근길에 맨 처음 변함없이 푸르른 모습으로 법원 구성 원들을 반겨주고 있습니다. 도봉산은 많은 분들이 다녀 가셨겠지만 제 경험으로는 서울에 있는 산 중에서는 가장 등반 난이도가 높지 않을까 합니다. 특히 포대능선과 Y계곡을 통해 정상에 오르는 경우 스릴 넘치는 바위산 등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제 경우 워낙 등반경력이 일천하여 포대능선의 일부만 경험하였고 Y계곡은 “사람이 다니는 길이 아닌 산양이 다니는 길”로 판단하고 미련 없이 우회로로 통과하였으니 아직까지 도봉산을 제대로 체험하였다고 말씀드리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쌍둥이전망대
정상 등반에 자신이 없으시다면 상대적으로 수월한 둘레길을 지나면서 뛰어난 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쌍둥이 전망대를 찾아가는 것도 추천할 만합니다.
쌍둥이전망대에서 도봉산 설경(점심 산책길 총무과장과 함께)
쌍둥이전망대로 향하는 길은 앞서 본 무수골로 산책을 하다가 녹색 복지센터 앞의 삼거리에 난 둘레길 진입로로 찾아가게 되는데, 등산 난이도가 어렵지 않은 편이라 누구든지 편하게 방문하실 수 있습니다. 제 경우에도 법원 구내식당 에서 점심식사를 빨리 마치고 운동 삼아 조금 빠른 걸음 으로 걸어가면 1시간 내에 다녀올 수 있는 정도였습니 다. 무엇보다 눈이 온 후 설경을 감상하는 것도 적극 추천드립니다.
원당샘 공원 권역
정의공주묘
쌍둥이전망대 구경을 마치고 북한산 둘레길 방학동길을 50분여 걸어가면 둘레길 19코스가 종료되면서 정의공 주묘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곳은 한글창제에도 기여하 였다고 알려지는 세종대왕의 둘째 딸인 정의공주와 부마인 안맹담 부부의 묘소입니다. 현재에도 묘역은 잘 관리되어 있고 혼유석, 석등, 문인석과 신도비 등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습니다. 도봉구 쌍문동에는 정의공주의 이름을 딴 정의여고도 있을 만큼 지역의 상징이 되는 명소 입니다.
연산군묘
1506년 연산군이 중종반정으로 폐위되어 강화도로 유배를 간 후 같은 해 세상을 떠났고, 그 묘는 부인인 거창 군부인 신씨의 청으로 방학동에 위치하게 되었습니다.
실제 둘러보면 연산군 부부의 묘 외에도 연산군의 딸인 휘순공주, 사위인 구문경의 묘가 함께 있어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을지라도 묘소 자체는 외롭거나 쓸쓸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다만 묘제 자체는 폐위된 왕인 관계로 소박한 편입니다.
방학동 원당샘 공원
도봉구 방학동의 원당샘이 위치한 일대에는 원래 파평 윤씨의 집성촌이 600년 전부터 내려왔었고 마을 이름이 원당마을이었다고 합니다. 무수골의 집성촌이 현재 까지 존속하는 것과는 달리 원당마을은 과거 택지로 개발되어 이름만을 남기고 사라진 상태이지만, 오랜 세월 마을과 함께 했던 “방학동 은행나무”와 마을우물인 “원 당샘”만이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 마을의 옛 모습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중계동의 한글비석 _이윤탁 한글영비 (李允濯 한글靈碑)
이번에는 노원구로 넘어와서 중계동에 위치한 국가문 화재인 “이윤탁 한글영비”를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중계동 한글비석은 조선 중종 때인 1536년 때 건립된 것으로 이윤탁이라는 분의 부부 묘를 이장하면서 그 아드 님이 새로 조성된 부모님의 묘가 훼손되는 것을 경계 하는 내용을 새긴 것으로, 한문을 모르는 일반 백성들 에게 알리기 위하여 한글로 비석을 새긴 자료로서 보물 제152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비문의 내용은 원문은 “녕 비라 거운 사 지화 니브리라. 이 글모 사려 알위노라”로서 이는 “신령한 비석이므로 훼손하는 사람은 화를 입으리라. 이를 글 모르는 사람을 위해 알리노라.”라는 뜻입니다.
1. 한글 비석, 2. 근래 복각한 비석
제가 4년 동안 점심시간이나 각종 행사 등의 기회를 이용해서 북부법원 일대를 답사한 내용을 간략하게나마 소개해 드렸습니다. 항상 점심 산책길에 동행해 주신 이진학 사무국장님과 권영섭 총무과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제는 저도 북부법원을 떠나지만 서울 안에 서도 전원의 풍경과 유서 깊은 마을의 내력, 그리고 많은 문화·자연유산이 살아 숨 쉬는 곳에서 한층 더 내면의 성장을 이루었음을 느낍니다. 부디 북부법원 구성원 모두가 앞으로도 근심 없이 건강과 평안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끝으로 북부법원은 시설도 좋고 자연의 풍광은 더 수려했지만 함께 일한 분들이 가장 훌륭했다고 존경의 마음을 담아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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