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상언 광주지방법원 해남지원 사무과장 (전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민사과장)
광주 사람이 부산에 과장 발령을 받기까지
얼마 전인(약 30여 년 전) 초임 실무관 때 회식자리에서 과장님께 술을 한 잔 올렸더니 “자네는 있는 듯 없는 듯빛은 나지 않지만 제 역할을 묵묵하고 성실하게 해나가는 모습이 대견하다”면서 “자네 같은 사람이 조직에서는 필요한 법이다”라는 말씀을 해 주셨는데 당시에는 대수 롭지 않게 여기면서도 “어찌 저리 한눈에 사람을 알아보 지?”라는 생각에 놀람과 감사함이 교차했던 기억이 생생 하다.
이후 아마 그런 마음으로 살아왔던 것 같다. 늘 존중과 배려라는 생각을 품고 직원 및 민원인을 대하려 하였고 기본에 충실하고 조직에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업무에 묵묵히 임하였던 것 같다. 때가 되어 시험을 거쳐 계장으로 승진을 하고 또 사무관으로 승진을 하고 다시 시간이 흘러 2024년 1월 1일자로 많은 분들의 배려와 도움으로 아득하게만 느껴졌던 영광스러운 서기관 승진을 하게 되었다.
부산이라는 낯선 곳에 과장 발령을 받게 되면서 ‘내가 과연 과장이라는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까? 영호남 갈등이 심한데 전라도에서 왔다고 텃세는 부리지 않을까?’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부산에 오게 되었다. 개미 여러 마리가 코끼리에 올라타 각자가 만져보고 느낀 생각을 이야기하며 자신들이 경험한 부분이 마치 코끼리의 전부인 양 이야기를 했던 우화가 생각난다. 이전에 부산이라는 곳에 두어 번 여행을 다녀갔지만 유명하다는 해운대와 태종대, 광안리 해수욕장을 둘러보 고는 ‘부산 별로 볼 것도 없는데 왜 이리 요란들이지?’라고 우화 속 개미처럼 생각을 했었다.
갈맷길 이야기
새로운 업무와 환경에 적응해 갈 즈음 갈맷길을 돌아보 자는 동료 과장님의 제안으로 얼떨결에 트레킹을 시작 하게 되었는데 막상 권유했던 과장님은 개인적인 사정 으로 도중에 멈추고 이후에는 혼자서 걷게 되었다. 갈맷길은 부산의 대표적인 새인 ‘갈매기’와 ‘길’을 합성한 말로 ‘갈매’는 순수 우리말로 ‘깊은 바다’라는 뜻 또한 가지고 있는데, 사표지향(바다, 강, 산, 온천)인 부산의 지역적 특색을 담고 있어 바닷가를 걷다보면 어느덧 산속이 고, 산을 벗어나면 강이 있고, 몸이 노곤하면 온천이 반겨주는 부산에만 있는 길이다.
9개의 코스에 23개의 구간으로 총 278.8킬로미터의 아름다운 트레킹 코스로 기장군의 임랑해수욕장에서 시작 하여 해안선을 따라 일광해수욕장, 송정해수욕장, 해운 대, 광안리, 오륙도, 송도, 영도를 거쳐 다대포해수욕장을 지나고 낙동강을 건너 명지신도시와 신호항을 지나서 신공항이 예정되어 있는 가덕도까지 진행을 한다.
이후에 낙동강 하굿둑에서 출발하여 낙동강을 따라 올라가다 구포에서 백양산을 지나고 성지곡수원지를 가로 질러 금정산으로 올라가 남문과 동문, 북문을 거쳐 범어사 방면으로 내려온 후 회동수원지에서 수영강을 따라 내려와 민락교에서 멈추고 다시 회동수원지 상류에서 기장군청으로 회귀하면 일주를 마치게 된다.
처음에 시작을 할 때는 설마 이곳을 다 걸을 수 있을까 엄두도 내지 못하였지만 트레킹을 시작하면서 동해안의탁 트인 푸른 바다와 맑고 시원한 바람, 감탄사가 절로나오는 멋진 풍경에 놀라움 자체이었고 경이로움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설마 앞으로도 이렇듯 아름답고 멋지지는 않겠지라는 생각으로 가고 또 가게 되면서 점점 더 앞으로의 코스가 궁금해지고 보고 싶어졌다.
아름다운 풍경과 자연을 벗 삼아 혼자서 걷고 또 걸으며 지나온 날들을 생각하며 반성할 점은 없는지, 후회스러운 점은 없는지 되돌아보고 어느 날은 그리운 이도 떠올려 보며 찬 바람이 불어대는 추운 날도, 한여름 뙤약볕이 내리쬐는 무더운 날도 고독과 함께, 때로는 음악과 함께 행복하게 걷게 되었다.
보았던 모든 코스들이 경이롭고 놀라웠지만 그중에서도 기억나는 곳을 꼽으라면 오시리아 해안(1-2구간, 연오랑세오녀의 전설이 깃든 오랑대와 벗하여 기장팔경의 하나인 시랑대를 잇는 해안길), 이기대공원(2-2구간, 왜장을 끌어안고 바다에 투신한 두 명의 기녀를 기리기 위한 공원으로 모퉁이를 돌 때마다 해안절경이 나타나고 치마바위의 호탕함과 박골새 사이로 몰려오는 파도 떼, 그리고 농바위에서 오륙도 방향의 정경이 이기대의 진수임), 회동수원지(8-1~2구간, 회동수원지길은 부산 갈맷길 축제 길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받은 길로 남녀노소 누구나 이용할 수 있을 만큼 평탄하고 쉬운 길인 동시에 수영강과 회동호의 수변이 제공하는 경관이 뛰어남) 등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도토리 모임을 결의하며
요즘에 골프를 하지 않으면 왕따가 된다는 정설이 있었 지만 나는 배드민턴이나 철인 3종 경기의 재미에 푸욱 빠져 외면하던 차에 더 이상 미루면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비슷한 생각과 실력을 가진 골린이 이경만, 공민희 사무관님과 동반성장을 목표로 도토리라는 명칭으로 모임을 결성하고 첫 모임을 스크린 골프장에서 가졌는데 오후 6시경에 시작한 경기가 11시까지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직원으로부터 영업이 끝날 시간이니 그만 끝내달라는 부탁을 받고 뻘쭘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후 에는 퇴근 이후 열심히 레슨을 받고 연습을 하며 부산 동부지원 스크린동호회와 국과장님들과의 정기모임을 통해 이제 어느 정도 공을 띄울 정도의 실력은 갖추게 된것 같다. 늘지 않는 실력과 시간적 한계로 주춤하던 중, 도토리 회원들의 제안으로 달리기 하프코스 완주를 새로운 목표로 삼아 도전해 보기로 하였다.
부산 ‘걷고 달리기 동호회’의 일원으로
부산법원에는 ‘걷고 달리기 동호회(회장: 최희영 부장님)’ 가 있는데 회원 수만 약 80여 명이고 매주 월요일 오후 6시 40분부터 7시 40분까지 걷거나 달리기를 한 후 간단하게 식사만 하고 마치는 동호회로 매주 참석하는 회원만 30~40명이나 될 정도로 활성화되어 있다. 또 봄과 가을에는 인근 지역에서 실시하는 마라톤 대회에 단체로 참석하여 서로 격려하고 응원도 하며 체력관리도 하고 스트 레스도 해소하는 아주 건강하고 좋은 모임이다.
처음에는 부회장인 박진호 국장님의 강추로 시작을 하게 되었는데 나중에는 점점 재미가 붙어 위 도토리 회원 들과 하프코스를 목표로 거리를 점점 늘려 나갔다. 그리고 추운 겨울날이나 푹푹 찌는 여름날, 시원한 가을 밤에도 울창한 나무숲과 고즈넉한 호수, 그리고 피톤치드가 가득한 산책로가 있는 성지곡수원지에서 회원님들과 함께 행복하게 달리기를 하게 되었다. 남창(양산시)으로 원정을 떠나 시원하게 불어오는 밤바 람을 맞으며 하천 뚝방을 달렸던 그때, 수영강변을 따라 동백섬과 해운대, 미포를 지나 송정해수욕장까지 뛰고땀 흘렸던 그때의 기억은 오래도록 좋은 추억으로 남을것 같다.
무엇보다 모든 일에 솔선수범이고 배려심 많은 허준영 사무관님과 달리기에 진심이고 열정적인 김문수 재무님은 동호회의 큰 보물인 것 같다. 이렇듯 열심히 땀 흘리고 연습하여 지난 12월 1일 동호회 회원님들 약 40여 명이 인근 양산하프마라톤 대회에 참가하였고 각자 선택한 코스를 완주한 후 뿌듯함과 벅찬 감동을 나누었다. 우리 도토리 회원 중 이경만 사무관은 제기차기를 열심히 하다 무릎부상으로 마라톤대회에 참석을 하지 못해 아쉽지만 다음 기회에 함께 하기로 약속하였고, 공민희 사무관과 나는 우수한 성적은 아니지만 적지 않은 나이에 무사히 완주하였음이 매우 자랑스럽고 뿌듯했다.
부산 동부지원을 떠나며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부산이라는 곳에 오게 된 날이 엊그제 같은데 글을 쓰는 지금, 이제 부산 생활이 불과 2주도 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지금의 마음은... 아쉬움이다. 많이 아쉽다...
이 외에도 대마도에 다녀온 이야기나 가족들과 울릉도와 독도를 여행했던 이야기, 금정산이나 장산을 산행하고 목포 유달산이나 내장산 단풍구경 등의 추억들도 많으나 지면상 생략하기로 한다. 이곳 부산에서 너무 많은 것을 얻어 가는 느낌이다. 아름 다운 많은 추억들, 멋진 경치, 강해진 체력, 무엇보다 따뜻하고 훌륭한 부산 사람들 모두가 그리울 것 같다. 이 지면을 빌려 늘 자애롭고 인간미 넘치는 박주영 지원장님, 강직하지만 따뜻하신 박진호 국장님, 솔선수범의 리더십과 어머니 같은 섬세함이 빛나는 이원일 총무과 장님, 함께 많은 즐거움과 고뇌를 나누었던 각 과 과장님 들께 감사드리고 무엇보다 부족하고 서투른 과장을 믿고 잘 따라 준 우리 부산 동부법원 민사과 후배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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