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백중현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등기관
‘삐이익~~’ 오늘도 시작됐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네~ 준비해 오신 서류 좀 보여 주세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 중에 눈에 익은 민원인이 보였다. 며칠 동안 찾아와 등기신청서류 준비를 도와달라고 하는 분이다. 처음 방문할 때부터 언짢은 표정과 말투로 언성이 높았던 터라 순간 긴장을 했다.
“아저씨! 제가 지금 몇 번째 오는 건지 아세요?”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내심 짐작이 간다.
“아~ 예~ 제가 신청서류에 대해 충분히 설명했던 것 같은데요?”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보니까 이 서류는 필요 없다고 하던데...”
재판을 받은 사건이라 관련 서류가 필요했는데... 또, 안 가지고 온 모양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판결문대로 등기하시는 거라 반드시 필요합니다.”
“종합민원실에서 서류 발급받아 오세요.”
“꼭 필요하다는 거죠? 확실하죠?”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알겠다고 하며 문을 열고 나갔다. 부동산등기 민원 안내를 받기 위해 방문하는 사람들은 나에게 모두 같은 모습을 원한다. 공손한 태도와 말투 그리고 더 방문하지 않기를 바라는 신청서류 안내를... 조금이라도 본인들 생각과 다르거나 행동이 불친절하면 으레 말을 한다.
‘아저씬 말투가 왜 그렇게 고압적이에요?’
‘공무원답게 하나하나 친절히 말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제가 말하면 다른 데 쳐다보지 말고 정중히 듣고 답해야 하죠?’
매번 느끼지만 똑같은 말투와 행동으로 사람을 대하는 내 모습이 오늘따라 꼭두각시 같다.
항상 밝게 웃는 얼굴로 여러 사람들과 생활을 하고 있지만 등기민원 업무를 하다보면 마냥 웃는 모습을 보일 수 없는 날이 있다. 밖에서 큰소리가 나서 무슨 일인가 보니 젊은 남녀가 싸우고 있었다. 신혼부부인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우리 방금 전에 협의이혼하고 오는 길인데요? 아파트를 제 앞으로 이전하려고요!”
“네~ 그럼... 재산분할 협의서는 작성하셨나요?”
“우리 이혼했다니까요? 귀가 안 들리세요?”
“그럼, 검인 받은 재산분할 협의서와 혼인관계증명서가 필요한데요?”
“이혼했다니까요!”
본인 말만 되풀이하고 내 말은 들으려 하지 않는다.
“이혼하기 전 재산분할에 관해 협의 안 하셨나요?” 하고 묻자,
“아직... 안 했으면... 지금 하면 되죠?”
앞에 놓인 서류를 보니까 이혼 접수만 하고 둘이 곧장 이곳으로 온 것 같다.
“아직 이혼이 된 게 아니고 접수만 하신 것 같아요!”
접수만 하면 자동으로 이혼이 되는 줄 알고 바로 재산분할부터 생각했던 것 같다. 등기 관련 이혼 안내도 하지만 꼭 재산 문제로 말썽이 생긴다. 누구 편을 들어 주고 말고가 아니라 본인들이 협의해야 할 일을 해결하지 않고 이곳부터 찾아온다. 등기절차 안내 업무를 하는 동안은 아침에 일어나 종종 거울을 보고 혼자 중얼중얼 말도 해보고, 웃는 얼굴로 상대방과 대화하는 연습도 해본다. 오로지 민원인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보여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난... 아무래도 웃는 모습을 잃어버릴 것 같다.
나는 등기관이기 이전에 사람이다. 비단 등기 관련 절차만 설명해 주는 것이 아니라 때론 민원인들의 애환도 들어주어야 할 때가 있다.
보청기를 하고 말끔하게 차려입은 할머니가 오시더니, “총각! 뭐 좀 물어볼게!”
“물어보세요!”
“조그만 땅이 있는데 상속등기 좀 하려고...”
할아버지 상속등기 때문에 오신 것 같다.
고무줄로 꽁꽁 동여맨 예전 등기필증을 보니 제법 큰 땅이었다. 자식들과 합의하에 할머니 소유로 하는 것 같다. 보통은 자식들이 자기들 명의로 등기를 하는데...
“할머니! 자녀분들 서류와 필요한 것들은 다 있는 것 같아요!”
“신청서를 작성해서 접수만 하면 될 것 같아요. 혹시, 더 궁금하신 거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 잠시 머뭇거리시더니,
“땅을 팔아서 자식들 다 나눠 주려고...”
“네? 그럼... 자식들 다 드리면 할머니는 어떻게 하시려고요?”
“난, 괜찮아! 자식들만 잘 되면...”
한평생 자식들을 위해 살다가 하나라도 더 주려고 하시는 할머니의 모습에 문득 몇 년 전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나 가슴이 뭉클해졌다. 일 년에 두 번 정도 부동산등기와 관련하여 민원인들을 마주하다 보면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배우게 된다. 그리고 내 자신을 많이 돌아보는 계기도 된다.
‘홀로 남게 되신 그 아주머니는 상속등기 잘 하셨겠지?’
‘그때, 좀 더 상냥하게 대하고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 볼 걸 그랬나?’
‘평생 싸우고 살았어도 오로지 믿고 의지하는 건 아내뿐이구나’
‘하루 종일 입도 아프고 몸도 힘들지만 성취감과 행복을 받기도 하네!’
난 오늘도 누군가를 위해 보여지는 꼭두각시 같은 모습이 아닌 마음으로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하며 민원인들을 만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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