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고민정 춘천지방법원(전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민사신청과) 실무관
작년 1월, 신규임용으로 법원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 제 마음속은 기대와 동시에 두려움으로 가득했습니다. 모든 것이 낯설었고, 이 법원에서 제 역할을 하면서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했습니다. 그랬던 저의 마음속에 새로운 가능성을 움트게 한 건 바로 옥상의 작은 텃밭이었습니다. 작고 소박한 공간이었지만, 그곳에서의 시간은 제가 스스로를 돌아보고, 법원의 구성원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게 해주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습니다.
작고 약한 배추가 전한 가능성
지난겨울 옥상 텃밭에서 심었던 것은 배추 모종 다섯 포기였습니다. 그런데 그중 하나는 눈에 띄게 작고 약해 보였고, 함께 텃밭을 키우던 계장님께서도 그 약한 모종이 잘 클 수 있을지 확신이 없으셨습니다. 저 역시 “그래, 말라버리면 다른 네 개를 넓게 키워야겠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약한 배추도 조금씩 힘을 내며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물을 주고 잡초를 뽑으며 정성을 들이자, 어느새 다른 배추들과 나란히 설 만큼 튼튼히 자랐습니다. 결국 다섯 포기 모두가 알차게 여물었고, 배추 속을 끈으로 묶으며 다섯 개체가 모두 살아남은 것을 보고 뿌듯했던 기억은 지금도 제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그 경험은 단순히 배추의 성장을 넘어서는 감동을 주었습니다. 약하고 작아 보이는 것도 적절한 관심을 받으며, 시간을 버틴다면 끝내 힘차게 자라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그 과정은 저에게 큰 위로와 깨달음으로 다가왔습니다. 아직 많이 작고 미약하더라도, 저 역시 시간이 지나면 법원의 여엿한 구성원으로서 제 자리와 역할을 만들어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제 마음속에 움트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옥상 텃밭, 일상의 위로가 되다
회사 생활은 때때로 숨 가쁘고,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지칠 때도 많았습니다. 그런 날, 옥상 텃밭은 쉼과 여유를 주고, 다시 업무로 돌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특별한 공간이었습니다.
햇살 아래에서 초록빛 잎사귀를 살피고, 물을 주고, 계장님들과 잡초를 뽑으며 나누는 담소들은 일상 속 소소한 즐거움이자 큰 위로였습니다. 흙을 만지고, 바람을 맞으며 잠시라도 업무의 긴장감을 내려놓을 수 있는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모릅니다.
키‘움’, 함께 자라다
옥상 텃밭은 단순히 채소를 키우는 곳을 넘어, 제가 회사 생활에 적응하고 동료들과 가까워질 수 있게 도와준 특별한 공간입니다. 흙을 만지며 배우는 소소한 재미와, 동료들과의 웃음이 스며든 시간이 저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더운 여름 텃밭을 가꾸기 시작해 주중에는 매일같이 보러 가서 물을 주었지만, 주말에 말라버리면 어떻게 하나 주말 내내 걱정을 하며 지내기도 했습니다. 월요일 아침 일찍 출근해서 텃밭을 확인하러 갈 때 푸릇한 잎을 보며 안도하고,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그렇게 버텨준 여름상추와 루꼴라, 바질들을 보며 저 스스로도 걱정하는 것보다 강할 것이라는 믿음과, 힘든 계절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움트는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이 텃밭에서 더 많은 추억을 쌓고, 또 새롭게 움을 틔울 후배들과도 함께 가꾸어나가고 싶습니다.
옥상 텃밭의 푸른 잎들처럼, 제 법원 생활도 점점 더 푸르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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