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사람] 디지털 노마드 이미 흐름은 시작되었다 - 도유진 감독

도유진감독 

 

디지털 노마드 이미 흐름은 시작되었다


『디지털 노마드』 저자이자 다큐멘터리 영화 <원 웨이 티켓(One Way Ticket)> 제작자
도유진 감독

 

2017년에 공개된 <원 웨이 티켓(One Way Ticket)>은 전 세계 여러 도시에서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담아낸 최초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화제를 모았다. 당시 제작자인 도유진 감독은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디지털 노마드를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세상은 바뀌고 있고, 이를 받아들여야 할 날이 올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3년여가 지난 2020년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해 ‘반강제’적으로 원격근무를 통한 디지털노마드를 경험했고, 경험한 이상 디지털 노마드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 되었다.

 

글. 민경미 사진. 홍승진


디지털 노마드에 대한 오해 혹은 환상
어떤 단어는 발음과 동시에 환상이라는 프레임을 두른다.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도 그런 단어 중 하나다. 휴양지 느낌 물씬한 바다를 배경으로 무릎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여유롭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장면은 미디어가 연출해온 디지털 노마드의 대표적인 이미지다. 이는 디지털 노마드에 대한 왜곡이라고 지적한 도유진 감독은 여행하며 일도 하는 한가로운 라이프스타일에 방점을 찍을 게 아니라 인터넷의 보급과 IT기술의 발전으로 가능해진 ‘원격근무’를 통한 하나의 일과 삶의 형태로 디지털 노마드를 바라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원격근무는 출퇴근 없이 내가 원하는 공간에서 일할 수 있는 업무 형태를 의미해요. 디지털 노마드의 본질은 바로 이 원격근무에 있습니다. 원격근무가 가능한 제반 시스템을 전제로 자신이 원하는 장소로 옮겨 다니며 일 할 수도 있고, 한곳에 머물며 재택근무를 할 수도 있죠. 중요한 건 자신에게 적합한 환경을 직접 찾아 나서고 선택할 수 있는 자유예요.
코로나 시대가 만든 신인류 같지만 사실 디지털 노마드의 등장은 꽤 오래전에 예고됐다. 1970년대 캐나다의 미디어 이론가 마셜 매클루언(Herbert Marshall Mcluhan)이 자신의 저서에서 ‘노마디즘’을 거론한 데 이어 1997년에는 히타치그룹의 전 CEO 마키모토 쓰기오와 작가 데이비드 매너즈(David Manners)가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2007년 티모시 페리스(Timothy Ferriss)가 쓴 『4시간(The4-Hour Workwee)』은 ‘장소로부터의 해방(location independency)’을 핵심 키워드로 내세워 디지털 노마드의 열풍을 키웠다.
“실질적인 확산은 2010년 전후 실리콘밸리에서 IT기업들의 부상과 함께 스타트업 붐이 일면서부터였어요. 회사가 있는 샌프란시스코에서 개발자를 구하지 못하는 기업이 다수 생겨나면서 먼 거리의 능력 있는 개발자에게 이른바 협상력이 부여됐고, ‘원격근무’라는 아이디어가 적용되기 시작했어요. 저 또한 그즈음 원격근무를 시행하는 샌프란시스코의 IT기업에 국제마케팅 직원으로 입사했는데, 디지털 노마드의 출발점이었죠.”
도유진 감독 원격근무를 시행하는 미국과 호주의 기업의 일원으로 전 세계 30개 이상의 도시에 머무르며 일했다. 세계 곳곳의 도시에서 살아가는 디지털 노마드와의 인터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원 웨이 티켓(One Way Ticket)>과 책 『디지털 노마드』를 펴냈다. 2019년부터 새로운 주제의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이며, 올해 공개를 목표로 마무리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도유진감독 

 

전 세계 디지털 노마드를 만나다
중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원격근무를 시행하는 미국 기업에 들어간 후 원하는 곳에서 일하고 살아가는 자유를 경험한 도 감독은 단순히 개인의 만족에 머물지 않고 좀 더 원대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원격근무 시행 기업의 경영진을 포함해 세계 여러 도시를 누비며 살아가는 디지털 노마드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제작한 것. 디지털 노마드와 원격근무에 대한 세계 최초의 다큐멘터리 영화 <원 웨이 티켓(One Way Ticket)>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국내외에 공개됐고, 미국의 <포브스>를 비롯해 세계 여러 나라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다.
“해외에서 더 뜨거운 응원과 호응을 받았지만, 영상 제작의 직접적인 계기는 국내와 좀 더 닿아 있어요. 2015년 무렵 국내 한 매체의 요청으로 원격근무에 대한 내용을 기고했는데, ‘일은 안 하고 여행만 다닌다’, ‘금수저 출신에게나 가능한 이야기다’, ‘말도 안 되는 허황된 소리다’ 등등 반응이 싸늘했어요. 우리나라처럼 조직문화가 경직된 사회에서는 좀처럼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글로만 전달하는 데 한계를 느껴 영상 제작을 시도하게 되었죠.”
영상에는 도 감독과 전 세계에서 원격으로 그녀와 협업한 크루들이 2년여 동안 만난 디지털 노마드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담겼다. ‘워드프레스’ 개발사면서 전 직원의 원격근무를 도입한 오토매틱(Automattic)의 창업자이자 CEO인 맷 뮬렌웨그(Matt Mullenweg)가 최고의 글로벌 인재를 채용하는 법과 이들이 온라인으로 어떻게 협업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협업 관리 소프트웨어 ‘베이스캠프’ 개발사인 베이스캠프(Basecamp)의 창업자이자 CTO인 데이비드 하이네마이어 핸슨(David Heinemeier Hansson)은 비용절감 등 원격근무를 통해 효율의 극대화를 실현한 노하우를 공개했다. 또한 디지털 노마드로
살고 있는 개인의 인터뷰도 실렸다. 그중에서도 도 감독에게 각별한 인상을 남긴 변호사 리 로센(Lee Rosen)과 작가 리사 로센(Lisa Rosen) 부부는 은퇴까지 기다리지 않고 여생 동안 새로운 곳을 탐험하며 살기 위해 20년 넘게 운영해온 로펌을 3년여에 걸쳐 원격근무 체제로 바꾼 경험을 공유했다.
“전 세계 25개 도시에서 만난 70여 명의 디지털 노마드가 공통적으로 한 말은 ‘다시는 출퇴근하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거였어요. 그만큼 디지털 노마드의 경험이 자신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매력이 있다는 의미죠.”

 

도유진감독 

 

상상했던 삶을 살아갈 자유
도 감독은 영화 공개 후 쇄도했던 호평 중에서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반응만 유독 결이 달랐다고 말한다. 디지털 노마드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은 크지만 원격근무 시행 기업의 부재와 영어 의사소통 능력에 대한 두려움 등 현실과의 간극에서 오는 체념이 묻어 있었다고.
“우리나라는 IT 인프라를 비롯한 제반 시스템만 보면 원격근무를 시행하기에 최적의 환경이라도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업무 형태는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해 유럽과 서구 선진국들이 원격근무의 비중을 늘려가는 와중에도 더디기만 했죠. 그러다 코로나19로 대면 업무가 불가능해지면서 원격근무라는 실험을 하게 된 것이죠.”
경험하기 전에는 상상에 불과하지만, 일단 시작하면 현실에 가까워지는 법. 최근에는 원격근무 관련 흥미로운 분석과 조사 결과도 속속 발표되었다. 한국은행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재택근무 확산’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코로나19가 종식되어도 재택근무는 늘어날 전망이라는 분석과 함께 재택근무에 대한 경영진과 직원의 인식 개선을 이유로 들었다. 또 한국경제신문과 글로벌 경영 컨설팅 기업 커니가 공동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기업 구성원들의 93%는 코로나19 이후에도 재택근무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퇴근 스트레스 해소와 업무 효율성 향상이 그 이유였다.
이런 결과가 반가운 도 감독은 조직이 꾀할 수 있는 원격근무의 장점으로 인재 유치를 들었다. 채용조건에서 지역이라는 필터를 제거함으로써 좀 더 능력 있는 인재 채용이 가능하다는 것. 대도시에 사업장을 둔 기업이라면 임대료 등 비용절감 효과도 빼놓을 수 없다.
개인 차원에서는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났듯 출퇴근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평균 2시간 가까이 소요되는 수도권 직장인들의 출퇴근 시간을 비롯해 수도권 생활을 위한 집값과 생활비 등에서 얼마간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일의 능률을 높일 수 있는 자신만의 환경을 선택할 수 있어 생산성과 효율성 면에서도 효과적이다. 무엇보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늘릴 수 있고, 일과 일상의 자유로운 분배로 여가를 보내는 방식도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물론 이를 위한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시급한 건 원격근무를 위한 조직 차원에서의 시스템 마련과 정비예요. 원격근무 시행에 필요한 가이드라인 제공과 교육도 조직의 몫이죠. 개인 또한 자발적인 동기부여는 물론 성과로 말하고 명확하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도 감독은 원격근무를 위한 준비를 마치고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간다고 해도 처음부터 순조로우리란 기대는 금물이라고 지적한다. 자신을 포함해 앞서 경험한 디지털 노마드의 사례를 통해 일정 기간의 번거로움과 업무 진행 과정에서의 버퍼링은 감수해야 한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 감독과 관련 전문가들이 이를 받아들이고 실험을 계속해나가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흐름은 이미 시작되었고, 더는 거스를 수 없을 만큼 변화의 물결이 거세기 때문. 도 감독은 국가적으로도 이 흐름에 탑승해 사회적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주길 기대한다는 메시지를 잊지 않았다.

 

  • facebook
  • twitter
  • daumblog
 "人사이드인터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