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보석상자] 경험의 씨앗이 좋은 판결로 무르익도록 풍부한 법조경력으로 판결을 이끄는 전담법관

전담법관 

 

 

내 마음의 보석상자

글과 진행 이재영  사진 안테나스튜디오

경험의 씨앗이 좋은 판결로 무르익도록 풍부한 법조경력으로 판결을 이끄는 전담법관

어떤 경험은 진화의 계기가 된다. 법원 안팎에서 다양한 경험을 한 전담법관들은 자신의 경험이 국민에게 좀 더 나은 판결로 나타나기를 희망한다. 2012년 전담법관 제도가 시작됐으니 벌써 10년이다. 짧지 않은 시간 전담법관들은 민사단독사건 등 특정 사건을 맡으며 재판에 대한 국민 신뢰를 높이고 법조일원화를 안정적으로 정착시켰다. 자신의 풍부한 경험이 의미 있게 쓰이길 바라는 김홍도, 유영일, 이회기 전담법관이 대담을 나눴다.

 

ㅇ(왼쪽부터) 이회기, 유영일, 김홍도 전담법관

 

유영일 저희끼리 이렇게 이야기 나눌 자리가 없었는데 오늘 좋은 기회로 뵙게 됐습니다. 독자들을 위해 제 소개를 하면 1985년에 법관으로 임용돼서 19년 동안 판사로 일했고요. 이후 11년간 변호사로 일하다가 법조인 생활 31년 되는 2015년 1월에 전담법관으로 임용됐습니다.

이회기 저는 막 코로나19가 시작됐을 때 임용이 돼서 개인적으로 만나 뵐 기회가 더 없었습니다. 저도 1995년도에 판사직을 시작했고, 2008년에 변호사가 되어 12년 일하고 2020년 임용돼 3년 차에 들어갑니다. 전담법관으로 임용돼 들어왔을 때 김홍도 부장님께서 이것저것 잘 알려주셨는데 이 자리를 빌려 감사 인사드립니다.

김홍도 제가 이회기 부장님께서 들어오시기 1년 전에 임용이 됐죠. 저도 잘 모르지만 먼저 시작한 입장에서 알려드렸습니다. 저는 1990년부터 2012년까지 23년간 판사로서 법원 생활을 하다가 변호사로 6년을 일했습니다. 전담법관으로 임용된 건 2019년 2월이고요. 두 분 판사님과 마찬가지로 민사 중액 업무를 주로 하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두 분은 지적재산권 분야에서 아주 유능한 변호사셨고, 전문가시잖아요. 전담법관이 되기 전에 같은 재판에서 만나기도 하셨죠?

이회기 네, 그랬습니다. 그땐 서로 상대 변호인석에서 뵈었죠. 그렇다고 서로 감정이 있거나 하진 않습니다. 하하.

유영일 그럼요. 이회기 부장님은 따뜻한 동료였기에 전부터 참 좋아했습니다. 지난해 법원 식구들 몇 명이 울릉도에 갔는데 경치 좋은, 높은 곳에 오를 일이 있었어요. 저는 조금 걷다 보니 무릎이 아파 본의 아니게 민폐를 끼쳤는데, 먼저 올라간 이회기 부장이 대나무를 지팡이처럼 손질해서 가져다주셨잖아요. 지금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홍도 서로 좋은 이야기해 주기인가요? 아마 저라면 업고 내려갔을 텐데요. 하하하.

이회기개인적으로 법원 동료들과 법정에서 부딪히면서 상처를 받는 일이 없지 않았습니다. 법원에서 만났을 때와는 아주 다른 태도로 맞서게 되는 경우가 생기곤 했는데, 유영일 판사님은 상대 변호사였지만 항상 품격이 있으셨던 게 기억납니다.

유영일 법원 안에서의 동료애가 계속되면 좋지만 변호사로서 각자의 입장이 있으니 그럴 수 있겠지요. 그 점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김홍도 저의 경험을 말씀드리면 법원에서 동료였던 분인데 변호사로 만나며, 대세에 큰 영향이 없는 사안에 대해 핑계를 대면서 요구를 들어주지 않더라고요. 그럴 땐 좀 야속했어요. 그런 것들이 법원 안과 밖의 차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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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법관으로

유영일_같은 법조계지만 다른 면이 분명히 있죠. 각자의 장단점도 존재하고요. 저는 19년 동안 법원에 근무했는데 전반적으로 상당히 좋은 기억으로 남았었습니다. 업무 자체가 변호사 일과 다르기도 하고요. 양쪽 모두 사람을 위한 일이지만 어느 한쪽을 위하는 일이 아니라 정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법관이 제 정서와 더 맞더군요.

김홍도_비법조인이 볼 때는 변호사나 판사나 비슷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죠. 직업적으로 역할을 바꾸는 데 문제되지 않는다고요. 제가 두 가지를 해보니 전혀 달라요. 어떤 분들은 변호사가 더 잘 맞지만 저는 판사를 할 때보다 스트레스가 심했습니다. 중립적 입장에서 사건을 보는 것과 의뢰인의 입장에서 해석하는 건 아주 큰 차이였죠. 그럼에도 책임감 있게 의뢰인에게 최선을 다해야 했고요. 경쟁의 분위기가 저와는 좀 맞지 않았는데 전담법관으로 임용돼 다시 판사로 일하게 되니 만족도가 훨씬 높습니다.

이회기_저도 김홍도 부장님과 비슷한 이유로 다시 법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여러 곳에서 왜 다시 돌아왔느냐는 질문을 받았었는데 솔직한 심정을 말씀
드리면 공정한 재판에 대한 열망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변호사로 12년을 일하면서 다양한 재판부를 거쳐 보니까 생각도 천지 차이고 결과도 다르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좋은 재판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러다 어느 시점에 들면서 앞으로 정년이 10년 정도 남았는데 그 기간에 보람 있는 일을 하고 마치자는 생각으로 전담법관이 됐습니다.

유영일_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굉장히 의미 있는 것 같습니다. 전담법관이 된 각자의 이야기는 법원 밖의 경험을 통하여 바라보게 되는 법관, 법관직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변호사를 하다가 다시 판사를 하겠다고 지원한다는 것이 쉬운 결정이 아니지요. 가족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요. 아내는 제 정서를 잘 아니까 다시 법관이 된다고 했을 때 아주 흔쾌히 지지해줬는데 두 분은 어땠나요?

김홍도_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판사로 재직할 때 늘 법원 밖의 세계를 경험해보고 싶어했던 걸 아내도 알았기 때문에 변호사로 나서는 길도 찬성해줬고, 또 그 일로 스트레스를 받는 걸 아니까 다시 법관으로 지원할 때도 적극적으로 지지해줬어요.

이회기_저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실 누구는 경제적인 부분에 대해 말을 하는데 그렇게 큰 차이는 없습니다. 변호사일 때 경제적으로 약간 더 여유로운 정도지 삶의 질이 크게 바뀌지는 않거든요. 유영일 부장님 말씀처럼 저희 셋의 의견이 다르면서도 또 비슷한 부분이 있네요.

 

 

보이지 않는 것까지 살피는 시선

유영일_사법서비스의 수요자와 공급자로서 모두 경험을 해보았기 때문에 재판에서 많은 도움이 돼요. 그래서 더 신중해지는 것도 있고, 나름의 고충도 있고요. 연륜이 있는 사람을 다시 법관으로 임용한 취지에는 성숙한 재판을 하라는 묵언의 요구도 있다고 봐요. 그 무게감을 알기에 재판 하나하나에 무게를 싣다 보면 밀려오는 사건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아요. 신속하게 처리하고 싶지만 사법서비스의 수요자로 경험한 입장에서 공급자가 어떻게 해줘야 충족되는지 알기에 충실한 심리와 설득력 있는 판결을 위하여 더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신속과 적정의 균형을 맞추기란 매우 힘든 일이죠.

김홍도_동의합니다. 사건의 실체랄까, 이면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다른 입장에 서 봤던 경험으로 알게 됐습니다. 그전에도 최선을 다했지만, 을이 되어보니 갑의 자리가 보였달까요? 하하. 더 경계하고 한번 더 숙고하다 보니 신속이 힘들어집니다.

이회기_처음 법관이 되어서는 사건에 대해 기록하고 법정에서의 말만 듣고 중립적인 위치에서 판단하는 것에 중점을 뒀었죠. 그런데 변호사를 하면서 당사자들과 만나서 회의도 하고 인터뷰도 하다 보면 ‘실체’에 대한 느낌이 오거든요. 법원에서 사건의 이면까지 보고 판단해주면 고맙고 존경의 마음이 들었어요. 그때 가졌던 마음을 지금까지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시 판사가 됐으니 이젠 저도 이면까지 제대로 봐야겠다 다짐하죠.

김홍도_맞습니다. 그래서 법원 외부에서의 경험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곳에만 있었다면 알 수 없었던 것들을 맞닥뜨리게 되고,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게 되죠. 지금 저희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처럼요.

 

경험이 주는 생각의 확장 그리고 배려 

유영일_맞습니다. 저는 약 2년 전부터 법정에서 사건번호를 호명한 뒤 출석관계를 확인하기 이전에  소송 대리인이나 원고, 피고를 자리에 앉으라고 권해요. 시작부터 앉아서 하자는 겁니다. 서 있으면 아무래도 더 긴장하게 되지 않습니까? 언어도 법정의 위엄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경어를 쓰려고 하고요. 변론에 집중하고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 불필요한 긴장을 배제하자는 의미에서 그렇게 하고 있어요. 예의를 갖춘 범위에서 유연하게 하는 게 재판에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김홍도_좋은 방법이네요. 판사로 위에 있을 땐 몰랐는데 재판정이 긴장되는 공간이더군요. 변호사 시절에 한참 후배가 재판장으로 배석하는데도, 의뢰인이 지켜보고 있으니 무척 긴장이 됐죠.

이회기_저도 그 마음 잘 압니다. 변호사 시절에 혹시 재판정에서 말 실수를 하면 어쩌나 하는 고민과 긴장 때문에 법정에 들어가기 전에 담배 피는 습관이 생길 정도였어요. 법관을 지냈던 저도 그러한데, 일반 국민은 더 하겠죠. 좋은 취지인 것 같습니다.

유영일_대단한 건 아니지만 긴장을 덜어드리고 싶다는 재판부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거죠. 법정에 들어서시는 분들은 기본적으로 위축되어 있잖아요. 가끔 서 있는 게 불편하신 연로한 분들도 계시고요.

이회기_재판부에 대한 예의라고만 생각했는데, 유영일 부장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긴장을 누그러뜨리고 편안하게 할 수 있는 효과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시도해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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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가야 할 길을 간다 

김홍도_저도 한번 생각해봐야겠네요. 유영일 부장님이 그렇게 하고 계신지 몰랐습니다. 가까이 있으면서 이런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참 없었네요.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건 좋은 일이군요.

이회기_아무래도 좋은 것, 힘든 것들을 서로 이해할 수 있어서이지 않을까요? 두 분 부장님께서 이해해주실 것이라 생각하고 제 애로사항에 대해 좀 말씀을 드리면 솔직히 판결문 작성이 현실적으로 제일 어렵습니다. 변호사 시절에 제가 열심히 변론했던 쟁점에 대해서 정면으로 판단 받기를 원했는데, 제가 반대 입장이 돼서 그런 판단을 하려니 많은 품이 들어가더라고요. 유영일 부장님께서 신속과 적정을 말씀하셨는데, 사건은 밀려오고 시간은 부족하니 참 힘듭니다.

김홍도_현실적으로 전담법관들이 나이가 어느 정도 있지 않습니까? 우리 나이 정도 되면 힘에 부치는 게 사실입니다. 선택과 집중을 한다고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고요. 전반적으로 과부하가 걸리게 되죠.

유영일_기억나는 사건이 있는데, 판결문 작성에만 만 5일이 넘게 들었어요. 사건의 쟁점에 답변해주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정들이 있잖아요. 그걸 건너뛸 수는 없으니 회피하지 않고 가야 할 길을 가다 보면 시간이 그만큼 걸릴 때도 있습니다. 쓰면서 비명이 나오죠. 다른 사건도 기다리고 있는데 이걸 어쩌나 싶고요. 시간이 갈수록 숙련되면서 더 많은 사건을 처리하나 그럼에도 여전히 기일지정 신청이 쏟아져 들어오니 스트레스가 되는 면이 있습니다.

이회기_이러한 과부하에 대해 근본적인 해결을 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 보완이 필요하죠. 재판연구원을 확충해서 보조 인력을 배정해주는 방법도 있을 것이고요. 돕는 인력이 있으면 판단과정이나 심리에 좀 더 집중해서 더 좋은 재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홍도_재판연구원 인력이 투입된다면 재판의 질이 확실히 올라갈 겁니다. 초임 판사 때는 판결문을 쓰는 것조차 증거가치를 비교하고 중립적인 문장이 뭔지 진도가 안 나가서 애를 먹기도 했죠. 지금은 연륜이 쌓여서 과감하게 취사 선택하고 부딪힘 없이 결론에 도달하긴 합니다. 하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물리적인 어려움이 있어요.

유영일_전담법관뿐 아니라 모든 법관의 생물학적 나이가 고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보조 인력을 배정해주시면 감사한 일이고 훌륭한 해결책이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연령별로 사건 수를 좀 줄여주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지요. 예를 들어 60세가 되면 10%, 63세가 되면 15% 이런 식으로 줄어들게 말이죠. 평생법관제를 시행하는 시점에서 이것은 전담법관에게만 해당되는 사안은 아닐 겁니다. 법관의 커리어는 시작부터 끝까지 유기적인 단일체예요. 35년을 잘했어도 남은 5년 동안 체력이 모자라고 사건이 많아 하나라도 실수를 하면 40년이 다 불명예일 수도 있어요. 모든 직업이 그렇지만 특히 법관은 명예롭게 퇴직해야 하는 직업이잖아요. 제대로 된 재판을 끝까지 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변화하는 세상 속 다양한 사건들

이회기_요즘은 사건도 워낙 다양화되어 해야 할 일이 더 많아지기도 했죠.

유영일_그래요. 예전의 단독사건과 지금의 단독사건이 같지 않죠. 재판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데 시대의 변화 속에서 소송 내용도 진화하고 전자소송 이후 파일로 자료를 제출하니 읽어야 할 자료의 양도 많이 증가했지요.

김홍도_예전엔 대부분 법리만으로 해결할 수 있었어요. 요즘은 연예인들의 매니지먼트 계약 관련 분쟁이나, 암호화폐 등 어려운 사건들이 많아졌죠.

유영일_세상이 빠르게 바뀌고 변하면서 그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감각을 가져야 하고 실제 사건화 된 그 사안에 대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요. 얼마 전 김홍도 부장님은 전국적으로 관심이 컸던 사건 맡으셨죠?

김홍도_네, 수능 관련 사건이었는데요. 사실 예전 같으면 그냥 지나갔을 사건일 수 있어요. 수능시험일에 교사가 종료 시간 알람을 잘못 설정해 3분 먼저 답안지를 걷었던 사건이에요. 학생들이 교사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죠. 여러 정황을 참고해서 국가가 개인에게 200만 원 씩 배상하도록 판결을 냈습니다. 판결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새로운 사건들이 쏟아지고 이를 해결하면서 더 두루 살피게 되고 그러면서 요즘 세상에 대한 적응력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유영일_저도 학교 관련 사건이 하나 떠오르네요. 일명 왕따 사건이었는데요. 약간의 폭력이 동반된 왕따 사건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는데 부모들이 당사자가 된 사건이었어요. 3대 3의 소송이었는데 아이들의 갈등 상황에 부모들이 개입하게 된 것이었죠. 본소와 반소가 경합하는 상황에서 가해 학생 부모의 법적 책임 인정 여부와 총체적인 손해인정액수가 첨예했습니다. 부모가 학교폭력심의위원회에 참석해 왕따의 진행 경과를 알고 있으면서도 가해 학생의 가해가 계속된 점 등을 이유로 부모의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손해배상액으로 3,000만 원을 판결했어요. 인격 모독적인 가해 행위 등 상황이 간단하지 않다고 판단했죠.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 존중이 아니겠습니까? 오로지 내 자식이 좋은 학교에 가서 성공하는 것만이 지상목표인 분위기에서는  당연히 존중되어야 할 인간의 본질적 가치가 훼손될 위험이 존재합니다.

이회기_인간 존중에 대한 말씀을 하시니 저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 법률신문에도 실렸는데요. 한 여성이 강아지 산책을 나갔다가 빌딩 청소하는 할머니에게 잔소리를 들었답니다. 할머니는 강아지가 함부로 오줌 싸게 하지 말라고 한 마디 하고 청소하러 갔는데 여성이 돌아와서 할머니를 폭행했어요. 재판정에서도 잘못을 부인하고 뉘우치지 않아 법정구속까지 됐다가 항소심까지 갔는데 할머니에 대한 위자료를 보통의 경우보다 좀 많게 판결했습니다. 폭행의 정도도 심했지만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대한 보상도 필요하다고 판단했어요.

 

안과 밖의 노하우가 결집된 자리

유영일_전담법관 제도의 장점이랄까요?
전담법관은 그동안 사회적 경험이 많았던 분들이라 하나의 원칙만 보는 게 아니고 분쟁의 실효적 해결, 사회적 정의의 관점에서 사안을 입체적으로 보는 것 같아요. 그것이 법리 안에서 새롭게 찾을 수 있는 해결책인지를 굉장히 고민하고 그것이 판결에 묻어나오기도 하고요.

김홍도_그래서 저는 전담법관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법원 밖에서의 경험과 노하우를 가지고 다시 법원에 들어와 일하니 분쟁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분명히 도움이 됐거든요. 그런 경험들이 일선 판사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는 것 같고요.

이회기_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법원이라는 조직이 개방적이지는 않잖아요. 입관하여 경력을 쌓고 법원 안에서 경쟁하는, 그래서 외부와는 단절이 불가피한 조직이죠. 그런 면에서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사회를 과연 따라갈 수 있을까, 포괄하면서 올바른 재판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세상사가 변화무쌍하니 법원도 어느 정도 개방을 통해 포용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하고 그 연장선에서 전담법관이라는 제도도 이해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장기적으로 외부의 경험들이 법원 내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보거든요.

유영일_조금 더 직접적으로 얘기하자면 전담법관이 결코 쉬운 자리는 아닙니다. 그러나 법관으로서 귀한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동료집단이라는 동질감은 여전히 살아 있고 그것을 느끼며 생활하는 것이 큰 기쁨이기도 합니다.

김홍도_예전 동료나 선후배가 제 근황을 물으면 할만하다고 말합니다. 유영일 부장님 말씀처럼 쉽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괜찮다, 지낼 만하다고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실제로 그렇습니다. 법조인으로서의 마무리는 판사였으면 하는 게 제 소망이기도 하고요.

이회기_저는 코로나19가 막 정국에 들어설 무렵 임명돼 3년 차가 됐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유영일 부장님이 말씀하신 동료애와 법원에 대한 향수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주로 낯선 얼굴들이 많고 정식으로 인사할 기회도 없었거든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무엇보다 국민을 보고 좋은 재판을 하면서 임기를 마쳐야겠다는 각오가 커집니다. 법관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면서 사는 게 지금 전담법관이 된 좋은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영일_‘맏형의 역할’, ‘호연지기의 나눔’ 등이 제가 전담법관 임용 시에 제도의 취지와 관련하여 전해 들었던 키워드들입니다. 이런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밥조’를 통해 같은 민사단독재판을 하는 젊은 세대 법관들과 마주하면서 동료로서 대화하고 고민되는 쟁점과 법리에 관하여 의견을 나누는 과정은 늘 신선하고 즐거웠습니다. 법관으로서 ‘나이 들어감’에 분명 어려운 점도 있지만 좋은 판결을 내리는 본질적 사명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홍도_가지고 있는 장점을 살려서 정년까지 좌고우면하지 않고 직분에 충실해야겠죠. 조용히 이름 없는 판사로 법조 행로를 마무리했으면 합니다.

이회기_저는 아직 3년 차라 앞으로 좀 더 정진해 나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영일_모두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본분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려 하고 있고 마지막까지 그렇게 노력할 겁니다. 우리 앞으로도 지금처럼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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