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나누는 만남] 법의 바다 위 아름다운 첫 항해 서울고등법원 재판연구원

단체사진 

 

(왼쪽부터) 서울고등법원 재판연구원 곽호열, 이정민, 이수민, 양소영, 노상균

 

 

 

내일을 나누는 만남

글과 진행  이재영          사진  조인기


법의 바다 위 아름다운 첫 항해

서울고등법원 재판연구원 곽호열, 노상균, 양소영, 이수민, 이정민

생애 첫 항해를 시작한 선원에게 바다는 경이롭다. 그들은 마침내 해변가와는 다른 차원의 풍경을 만나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모든 감각을 연다. 소금기를 머금은 공기, 시시때때로 달라지는 바람, 태양의 조도에 맞춰 변하는 물빛, 춤을 추며 배회하는 갈매기의 노래, 갑자기 돌변하는 파도.
눈부시게 황홀하다가 문득 두려움이 밀려오기도 하는 자신의 첫 항해를 귀와 눈과 가슴으로 몸에 새긴다. 항해를 마치는 순간까지 함께할 그 기억은 배 위에서의 긴 시간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된다. 법의 바다, 그 망망대해를 누비는 사법부에 승선한 재판연구원의 시간은 첫 항해를 시작한 선원처럼 흘러간다.
모든 감각을 열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시간. 선배들이 그러했듯 5명의 재판연구원도 진짜 법조인으로 자리매김할 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재판연구원이라고 느끼는 순간 

이수민 I 오늘은 날이 무척 덥네요. 재판연구원 대담이라고 해서 지원했는데  3년 차는 저뿐이네요. 반갑습니다.
양소영 I 3년 차는 또 다를 것 같아요. 오늘 좋은 말씀 많이 부탁드립니다.
이정민 I 같은 방을 써도 일에 대해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는데 오늘 좋은 시간이 될 것 같아요.
노상균 I 좀 쑥스럽기도 하고 무슨 얘기를 해야 하나 고민도 되지만 열심히 하겠습니다.
곽호열 I 기억에 남는 시간이 될 것 같아요. 그럼, 우리 소개부터 하고 시작할까요? 안녕하세요, 저는 곽호열 재판연구원이고요. 지금 형사8부 군사 성폭력 전담부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1년 차 때는 서부지방법원 민사 항소부에 있었어요.
노상균 I 서부지방법원에서 시작하셨군요. 저는 1년 차에 남부지방법원 형사항소부에 있었어요. 안녕하세요, 민사7부 건설 전담부에 근무하는 노상균입니다.
이정민 I 안녕하세요. 형사 11부 성폭력 전담부 재판연구원 이정민이라고 합니다. 1년 차 때 중앙에서 민사 일반에서 근무했었어요.
양소영 I 안녕하세요, 서울고등법원 수석재판부 연구원이고 1년 차 때는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항소부에서 저작권 전담 사건 전담 재판부에 있었습니다. 양소영입니다.
이수민 I 안녕하세요. 서울고등법원 행정4부 토지 수용 전담부에 근무하고 있는 3년 차 이수민 연구원입니다. 1년 차 때는 인천 원외 재판부에서 민사 가사부 했었고, 2년 차 때는 본원에서 형사 성폭력 전담부에 있었어요.
양소영 I 민사, 형사, 행정 다 하신 거네요?
이수민 I 가사까지 했어요. 민사, 가사, 형사, 행정 네 가지를 다 해봐서 너무 좋습니다.
양소영 I 그게 재판연구원의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반적으로 다양하게 두루 경험해 볼 수 있다는 거요. 넷 중 어떤 게 제일 좋으셨어요?
이수민 I 행정이 제일 좋았어요.
일동 I (놀람) 네?
양소영 I 뜻밖이네요. 행정이 일이 많기로 명성이 높은데요.
곽호열 I 그렇게 알려져 있죠.
이수민 I 하하, 맞아요. 업무량이 압도적이예요.
이정민 I 그런데 행정이 제일 좋으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이수민 I 업무량이 많은 만큼 빠르게 성장할 수 있어요. 특히 지금 만족스러운 건 고등법원 부장판사님 3인으로 구성된 AAA재판부에 있거든요. 판사 30년 차인 부장님을 모시고 있는데 그게 너무 좋아요. 감히 제가 어떤 사건을 30년 차 판사님과 밀도 있게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기도 하고요. 어느 직역에서도 할 수 없는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노상균 I 어떤 게 제일 좋으셨어요? 
이수민 I 다 좋지만 특히 사건의 결론뿐 아니라 사건 진행에 있어서 소송 기술, 당사자에게 어떤 인상을 주는지에 대한 것 등 구체적인 조언을 많이 해주셔서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책에 나오지 않는 지혜를 주시죠. 그런데 원장님께서 사법연수원장으로 발령이 나서 곧 떠나셔요. 슬픕니다. 다른 분들은 좋아하는 분야가 있으신지요?
노상균 I 저는 형사가 좋아요.
일동 I (놀람) 네?
양소영 I 1년 차에 형사부에 계셨죠?
곽호열 I 형사도 쉽지 않은데요.
노상균 I 형사, 민사, 행정 적성이 다 다르죠. 일반적으로 법원에서 형사부가 인기가 없고 조금 과장해서 연구원들 사이에서 기피하는 부서이기도 한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형사부 일이 좋아서 이런 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어요. 이미 조직적 정책적 고민을 하고 계시겠지만 더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요.
이정민 I 정말 애정을 가지고 계신 가봐요.
노상균 I 네, 좀 더 철학적이고 사회과학적인 고민을 해야 하는 게 형사재판이라고 생각해요. 인간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이 녹아 들어가 있는 분야죠. 1년 동안 형사부에 있으면서 작은 벌금형이나 작은 사건까지 부장님들과 고민하고 답을 찾아나가면서 많은 걸 배우고 느꼈어요. 그렇다고 민사가 별로라는 건 아닙니다. 민사도 좋죠. 다만 형사재판에 대해 법원이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문제의식이 있을 뿐입니다.
곽호열 서울고등법원 재판연구원곽호열 I  빨리 종이기록부터 바뀌면 좋을 것 같아요.
일동 I 맞아요!
이정민 I 일 받았을 때 사건번호를 전자기록 뷰어에 쳐서 전자화가 되어 있는 걸 확인하면 그게 그렇게 기뻐요. 하하. 이야기를 좀 더 이어서 해보면 노상균 연구원께서 민사와 형사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요. 저는 1년 차에 민사를 하고 2년 차인 지금 형사 성폭력 전담에 있는데 민사와 형사가 정말 달라요. 사실 2년 차가 되면서 어떤 의무감에 형사부에 지원했거든요. 애정이 있어서 시작한 건 아니었는데 막상 해보니까 나름의 재미가 있더라고요.
노상균 I 그렇죠?
이정민 I 네, 그런데 민사는 정답이 정해진 느낌이었는데 형사는 좀 다르잖아요. 실체적 진실이라는 것을 아무리 알려고 해도 베일에 싸여 있는 느낌이라 스트레스가 훨씬 많긴 해요. 그런 면에서 저를 비롯한 많은 분들이 형사가 더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노상균 I 판사가 결단을 내리기까지 어렵고 고통스럽지만 그 과정이 굉장히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그 과정을 통해 내린 결정이 최종적인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주는 거니까요. 결단을 내리는 과정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어떤 곳에서도 할 수 없는 일이죠.
곽호열 I 저는 이정민 연구원과 비슷하게 느꼈어요. 민사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형사사건에 있어서  ‘이 사람의 의도가 무엇이었을까?’  ‘무슨 목적으로 했을까?’ 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잖아요. 이런 것들이 어떤 때는 결론을 내는데 핵심이 되기도 하고요. 그 부분을 판단해야만 문제가 해결되는데 그 판단이 무척 어려웠어요. 누군가의 인신에 대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경우가 있으니까, 책임감이 더 느껴지고요. 어려운 판단 앞에서 부장님들의 통찰력, 넓은 시야를 통해 정말 많은 걸 배우죠. 그러면서 동시에 판사님들이 엄청나게 많이 고민을 하시는 걸 보잖아요.
이수민 I 맞아요. 판사님들 정말 어렵고 치열하게 고민하시더라고요.
곽호열 I 네, 소속 재판연구원이나 다른 판사님, 법관들과 말씀 나누시면서 합의를 통해 최대한 타당한 결론을 끌어내는 과정을 보면 연륜이 풍부해도 쉽지 않은 일이구나 싶어요. 처음 판결문 초안을 쓰면서 제 이름이 올라가지 않으니까 편하게 생각한 면이 없지 않았는데요. 그런 고민의 과정들을 지켜보면서 책임감이 점점 많이 생겨요.
양소영 I 그런 면에서 부장님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법조경력에서 오는 연륜에 자주 놀랍니다. 같은 기록을 봐도 저는 열심히 읽어도 활자만 보는 식이고 부장님들은 기록 이면의 것을 보시는 게 느껴져요. 사고의 깊이 자체가 다르다는 걸 절감합니다. 아직 표면을 보는데 머무르는 새내기의 부족함을 절실히 느껴요. 그럴 때마다 법원에 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죠. 사건을 깊이 있고 입체감 있게 볼 수 있는 경험을 하니까요. 문득 던지는 말씀에도 생각이 많아지는데, 서울고법에 와서 부장님께서 서울고법이 최후의 사실심이라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때 책임감이 확 느껴졌어요. 그 순간 재판연구원이 이런 직업이지 싶더라고요.

 

재판연구원을 택한 이유

이정민 I 맞아요. 아! 내가 재판연구원이구나, 느끼는 순간이 있어요. 그런데 다들 지원하신 동기가 있으신가요?
이수민 I 저는 심플했는데요. 법조경력 1년 차에서 3년 차에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 법원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얼마 전에 정리해보니까 2년 2개월 동안 사건을 350건 정도 검토했더라고요. 165건의 판결문 검토 작업을 했고요. 이것만 봐도 단기간에 많은 사건을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곳이라는 걸 알 수 있잖아요. 실제로 겪어보니 내 생각이 다르지 않았구나 싶어요.
곽호열 I 저도 법조생활을 시작하기엔 법원이 가장 좋다고 생각했어요. 덧붙이자면 짧은 시간에 많은 사건을 볼 수 있고, 또 누구 편에 서서 보지 않고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곳이라는 것도 매력적이었습니다.
양소영 서울고등법원 재판연구원 양소영 I 변호사 일도 엄청 재미있을 것 같고 최근에 듣기로는 주도적인 역할도 많이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것들이 저희와 좀 다른데, 법원은 논리적 정합성이 뚜렷한 글을 많이 보고 쓰면서 공부가 많이 됩니다. 법조생활을 시작하면서 양질의 교육을 받아서 능력치가 쌓여가는 기분이랄까요. 일을 하면 할수록 만족스러워요.
노상균 I 기본적으로 직업을 선택할 때 성격이나 기질이 중요하잖아요. 모든 직업이 그렇고 법조 직역도 마찬가지로 어울리는 성격 기질이 있다고 생각해요.
로스쿨 다닐 때 법관 출신 교수님이나 법원을 지망하는 친구들을 보면 스마트하면서 겸손하고 책임감이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어요. 공익에 대한 생각도 남달랐고요. 그런 사람들과 일하고 싶었습니다. 법원에 와서 연수원 동기, 부장님들을 직접 만나면서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았죠.
이정민 I 저는 노상균 연구원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얘긴데요. 모든 법조인이 그렇겠지만 특히 법원에서의 일은 혼자 시간을 들여서 해내야 하는 일이잖아요.
그런 점이 저와 잘 맞았어요. 혼자서 하는 일을 잘하는 성향이라 로스쿨 가기 전부터 법조인이 된다면 법원에서 시작하고 싶다고 희망했었어요.
양소영 I 성향에 대해 말씀하셔서, 공무원들 MBTI 조사하면 대부분 I가 나온다잖아요. 비슷한 결인 거죠.
곽호열 I 양소영 연구원은 그 중에 E이신데 생활하기 어떠신가요? 하하
양소영 I 가끔 심심하죠. 하하. 조용히 혼자 하는 일이라 대부분 혼자 보내는 경우가 많아서 처음엔 낯설었어요. 본인이 시간을 관리하는 중요한 직업이라 훈련이 필요하더라고요. 거듭된 훈련으로 계속 나아지고 있고요. 하지만 와중에 연구원들끼리 교류하는 시간도 있고, 뭐랄까 학교 다니는 느낌이 들기도 해요. 여전히 학생 같은 느낌이랄까.
일동 I (공감) 맞아요, 맞아요.
이정민 I 또래 동료들과 많이 소통할 수 있는 직역은 연구원뿐인 거 같기도 해요. 변호사로 일하면 주로 파트너 변호사님과 논의하지, 동료들과 할 거 같진 않거든요. 같이 일을 하진 않지만, 동료들과 생활을 공유하니까 그런 점에서 특별한 경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다들 MBTI가 어떻게 되세요?
양소영 I E 손들어 볼까요?
이수민 I 저요. 제가 대문자 E여서, 법원을 지원했다니까 다들 놀라더라고요. ISTJ가 법원형 인재라면서요. 법원 내 설문조사에서 압도적으로 I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양소영 I 그 압도적 I 속에 ENFP가 한 명 있는데 그게 저예요. 법원형 인재와 모든 게 반대죠. 부장님들이 이 사실을 아시면 안되는데….
이수민 I 법원형 인재는 아니지만 수석부의 인재가 되시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법원이라는 공간의 장점

양소영 I 그렇게 봐주실까요? I 세상에 E이지만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하하. I건 E건 같은 방 동료들이나 판사님들 누구든 함께 있으면 시야가 넓어지고 좋은 것 같아요. 가벼운 티타임하면서 대화 나눌 때도 많이 배우죠. 같은 방 연구원들과 친하신가요?
노상균 I 적당히 친하다고 해야 덜 부담스러우실까요? 하하. 아무래도 같은 방이니까 의지도 하게 되고 그래서 든든하죠.
곽호열 I MT도 갔었다면서요?
노상균 I 그건 연수원 같은 조원들끼리, 강릉에 다녀왔어요.
이수민 I 폭우는 잘 피하셨나요?
노상균 I 저희 있을 때만 오지 않았어요. 운이 좋았어요.
이수민 I 동료들과 시간이 뜻밖의 추억이 되죠. 저도 1년 차 때 인천 원내 재판부에 있었는데 그때 동료들이랑 추억이 많아요.
양소영 I 인천은 분위기가 엄청 좋다고 들었어요.
이수민 I 부장님들도 함께 은행나무 단풍 구경도 가고, 차이나타운도 가고, 바다 보러 송도도 가고 인천 시내 관광지를 다 가봤어요. 2년 차 때는 형사부가 특유의 끈끈함이 있어서 재판부 다 같이 뮤지컬도 보러 가고, 관악산 등반도 하고요.
이정민 서울고등법원 재판연구원이정민 I 정말 추억거리네요.
이수민 I 3년 차인 지금은 저희 재판부가 좀 들쑥날쑥해서 그런 게 없어서 아쉬워요.
양소영 I 그런 시간들이 기억에 진짜 남죠. 올해 수석 재판부에서 수석부장님이 예술에 조예가 깊으셔서 같이 미술 전시회에 다녀왔어요. 부장님 세 분과 전시 보고 맛있는 거 먹고 왔는데 소풍 다녀온 기분도 들고 좋더라고요. 
 이정민 I 맛있는 거 사주실 때가 진짜 좋죠. 하하. 저희가 쭉 이어지는 일상이라, 그런 것들이 좋은 자극이 될 것 같아요.
양소영 I 맞아요. 추억을 쌓는 것도 있지만 특별한 이벤트가 한 번씩 있으면 좀 환기도 되죠. 다른 분들은 특별한 추억 없으신가요?
노상균 I 저는 이번 재판부에서 부장님 세 분과 연구원 셋이 함께 회식하고 노래방까지 갔는데 색다르고 재미있는 기억이에요. 부장님들이 연구원을 후배이자 재판부의 가족같이 생각해 주신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고 할까요. 업무적인 측면에서도 배려해주시지만, 인간적인 측면에서도 많이 챙겨주세요. 연구원들은 제도적으로 지위가 불안정한 면이 있는데 부장님들께서 인간적으로 챙겨주셔서 그게 업무의 즐거움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양소영 I 동감해요. 굉장히 존중해주시잖아요. 까마득한 후배인데 극존칭 해주시면서 존중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책임감이 생기기도 하고요.
곽호열 I 처음엔 대선배님들께서 극존칭으로 대해주시니까 약간 부담스러웠는데, 익숙해지니까 좋더라고요.
양소영 I 바깥의 경우는 상호존중이 안 되는 경우도 많은데 저희는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어서 자부심도 느껴져요.
이정민 I 로스쿨 입학 전부터 법원이 막연하게 동경의 장소였는데, 로스쿨 법관 출신 교수님들도 그렇고 법원에 와서 만난 분들도 그렇고 다들 존경할 만한 점이 많으셨어요. 그래서 자신을 옥죄는 면이 없지 않았는데요, 막상 일을 하고 보니 여기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자연스러운 일터라고 받아들여지더라고요. 그걸 알고 긴장이 풀리면서 조금 더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곽호열 I 그렇죠. 법을 다루는 곳이지만 사람이 있는 곳이기도 하니까요.
이정민 I 처음 들어와서 한 달은 지나치게 야근을 많이 했어요. 그 정도의 업무량이 아닌데요. 지방법원에서 짝꿍 없이 지내서 혼자 잘하고 있는지, 맞는 건지도 판단하기 어려웠고요. 함께 논의할 동료 연구원이 없으니 답답하더라고요. 시간이 지나면서 재판 실무 과목을 들으면서 공부했던 어떤 구체적인 법리도 중요하지만 세부적인 사실관계나 증거관계가 현실에서 더 중요할 때가 많다는 걸 알게 됐고, 실무 경험의 중요성을 깨달았어요.
이수민 I 비슷한 맥락으로 저도 첫 출근 할 때 캐리어 가득 기본서를 다 챙겨왔거든요. 그런데 한 번도 열 일이 없었어요. 공부와 실전은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곽호열 I 저도 처음 재판부가 지방법원이라 짝꿍이 없었어요. 잘하는 건지 아닌지 알고 싶은데 부장님께 저 잘하고 있나요? 물을 수도 없고 답답했죠. 첫 재판부에서 몇 개월을 민사 1심 합의부에 있었는데 부장 판사님께서 업무량을 조금 줄여주시면서 메일을 길게 써서 보내주신 적이 있어요.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잘해주고 계셔서 조정을 하면 좋을 것 같다면서요. 따뜻한 마음이 담긴 메일에 엄청나게 감동했었죠.
양소영 I 재판연구원 업의 특성이 부장님께 사건을 받아서 작성하고 소위 납품한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늘 자기 일에 대한 불안감이 있어요. 잘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일의 큰 축을 이루죠. 저는 작년 부장님 세 분 중 한 분이 연필로 첨삭을 해주셨어요. 지금은 정말 귀한 경험이라고 생각하는데 처음에 첨삭된 걸 돌려받았을 땐 ‘죄송합니다’라고 먼저 말했죠. 그 죄송한 일이 거듭되면서 저도 많이 배우고 익히고 조금씩 나아지더라고요. 사실 자필로 고쳐주시는 게 부장님의 시간을 들여야 하는 거잖아요.
연구원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해주신 거라고 생각해요. 그 마음을 아니까 더 감사하게 되고, 죄송한 결과물을 보면서 죄송함을 줄여야지 마음먹게 되고요.
이정민 I 바쁜 중에 그게 쉽지 않으신 일인데요.
양소영 I 그러니까요. 처음엔 돌려받는 순간이 너무 무서웠는데 반복되면서 조금씩 줄고 실력은 조금씩 늘고요. 그럼에도 항상 불안감을 가지고 살지만 그래도 열심히 하는 거죠.
노상균 I 연구원이라면 누구나 어느 정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그런 불안감이 있죠. 공감합니다. 변호사들이라고 다를까 싶기는 한데, 부장님들께서 워낙 점잖고 우리를 존중해 주셔서 평가를 안 하셔요. 실수나 지적도 에둘러 하시고 칭찬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다들 이런 순간 있지 않아요? 가끔 한마디 칭찬을 들으면 아, 내가 잘하고 있구나 하고 안도하는. 그래서 말인데 저희는 지적이나 칭찬이나 모든 걸 감내할 수 있으니까 표현 많이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일동 I 공감합니다!
이정민 I 그중에서 특히 칭찬을 적극적으로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다양한 사건을 통해 성장하다

양소영 I 네, 이왕이면 칭찬을 좀 더 해주시길 바라요. 하하. 그런데 다들 기억에 남는 사건 있으신가요? 저는 1년 차 때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사건을 했는데 항소 기각이 됐거든요. 그때 모두가 고민을 정말 많이 하고 내용도 다 다르게 써보자고 하셔서 그렇게도 하고 정말 여러 당사자 관점에서 고민해서 판결이 나갔는데, 선고된 다음 언론보도에 내용에 대한 건 없고 ‘항소가 기각됐다’라는 한 줄만 나오더라고요. 기사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한 사건마다 재판부 여러 사람의 많은 고민이 녹아 있는데 국민에게 재판부의 마음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 게 아쉽더라고요.
이수민 서울고등법원 재판연구원이수민 I 저도 성폭력 재판부에 있을 때 특성상 기사가 자극적으로 나가니까 억울하거나 답답한 경험이 많았어요.
곽호열 I 형사 성폭력은 어떨 때 짧게 양형 이유를 설명하는데 그 전에 합의하는 과정이 엄청나게 길 때가 많잖아요. 자료조사도 많이 하고 다른 판례나 사건들도 조사하고 부탁하셔서 노력도 많이 하고 품도 많이 드는데, 선고 나갈 때 정제된 언어로 필요한 말들만 나가니까 우리의 노력이 드러나지 않는 게 아쉬울 때가 있어요.
노상균 I 작년에 형사부에서 위헌볍률심판제청신청에 대한 검토보고서를 썼는데요. 법률위헌성에 대해서 법원이 고민해 볼 수 있는 사건이라서 굉장히 흥미로웠고 어렵기도 했어요. 형식이 정해져 있지 않았고, 위헌성이라는 건 조금 더 사회에 대한 인식과 감각이 필요한 것이라 재미있기도 했고요. 양심적병역거부사건도 기억에 남는데, 결론이 정해져 있어서 법리를 바꿀 수는 없었는데 유무죄는 못 바꿔도 양형을 통해서 그 사람의 상황과 이야기를 전할 수 있잖아요. 피고인이 기록 수천 페이지에 걸쳐 자신의 의견을 내고 증거를 제출하고, 양심적병역거부 같은 정치적 사건은 법원이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인 거죠. 다 받아들일 순 없지만 양형 이유를 통해서 피고인이 이런 주장을 하는데 사회는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질문을 던진 게 기억에 남아요. 당장 바꾸지는 못하지만, 변화를 시작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는 것도 법원의 역할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한계와 동시에 가능성을 가진 일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죠.
이정민 I 정형화된 것들의 반복 속에서 조금씩 변화가 있으면 그런 방향으로 어느 순간 나아가게 되는 것 같아요. 다른 양식의 판결문이 나왔다고 하면 다운 받아서 읽어보기도 하는데 제가 최근에 이지리드라고 해서 쉽게 쓰인 판결문을 봤어요. 판결문은 뒤에 있고 판결문 앞에 법률적인 언어를 쉽게 이해하지 못할 당사자를 위해 왜 그 청구를 기각할 수밖에 없는지 굉장히 편한 일상적인 용어로 요약해 놓으신 건데요. 판결문에 쓰이는 언어가 한국어지만 법을 모르는 사람들은 정확히 알기 어렵잖아요. 그걸 보면서 법원이 그런 당사자 혹은 나아가 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보다 잘 이해가 되는 방향으로 변화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적도 있어요.
양소영 I 박주영 판사님이 내신 책을 좋아하는데요. <어떤 양형 이유>도 좋았지만 그 이후에 펴내신 <법정의 얼굴들>도 많은 걸 느끼게 해주었어요. 특히 그중에 작년 저희 부장님의 글이 있어서 더 좋았는데요. 윤웅기  부장님께서 청소년들과 나눴던 편지가 실렸어요. 그중에 사건을 겪고 자활하면서 네일 아트를 배운 친구에게 보낸 편지가 있었어요. 그 친구에게 윤웅기 부장님께서  ‘너를 생각해서 손톱 끝까지 신경 쓰마’ 라고 편지를 보내신 게 있는데 그게 진짜 마음에 오래 남더라고요. 판결문에는 당사자 이름 몇 글자만 기재되지만, 다양한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들의 마음을 하나씩 헤아려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이수민 I 저는 1년차 때 인천국제공항공사가 회센터에 토지를 임대하였다가 토지 반환 및 지상물 철거를 구하고, 이에 회센터가 지상물매수청구권의 행사를 주장한 사건이 있었어요.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려 보고드렸는데, 부장님께서 기록의 이면에서 생각해 보자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기계적으로 법적 논리만을 따져 내린 결론이 아니라 합리적인 결론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 보라면서요. 그때 배웠죠. 옳은 결론을 내리고 거기에 맞춰 쓸 필요도 있는 것이라는 걸요. 저는 순서대로 논리대로 따져서 했지만 더 넓게 보신 거죠. 과연 그 결론이 사회적으로 타당한 게 맞는지 생각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기억에 남아요. 좀 다른 얘긴데 배우는 것도 많지만, 가끔은 저희가 도움이 되기도 하잖아요.
성폭력 전담부에 있을 때 피해자가 제 또래니까 피해자의 입장에 대해 조언을 구하시기도 하세요. 저희 사건 중에 피해자가 성관계를 하고 집에 가는 길에 피고인에게 하트를 누른 게 문제가 됐는데, 그게 피해당한 사람의 태도가 아니라는 말이 나왔어요. 판사님께서 그 의미를 물으시길래, 우리는 대화를 종료하고 싶을 때도
‘좋아요’를 누른다고 말씀드렸죠. 좋을 때만 ‘좋아요’를 누르는 게 아니라고요.
곽호열 I 저는 좀 전에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요. 트위터에 피해자 사진을 올리는 사건이 있어서 점심 먹고 사건 관련 이야기를 나누는데, 부장님께서 트위터를 모르시니까 얼마나 파급력이 있는지 물으시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SNS와 비교해서 설명해 드렸어요.
이정민 I 법원에서 사건을 보는데 시각이 다양할수록 좋은 판단을 내릴 수 있죠. 좋은 판단, 다양성을 담보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세대의 다양성이니까 젊은 연구원들이 재판에 배치되는 게 좋은 일이 아닌가 생각해요.
양소영 I 사회는 매일 바뀌니까요, 저희의 특성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저희 의견이 즉각적인 결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재판 판단의 주체에게 물음표 하나 던질 수 있으면 새로운 시각의 전환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곽호열 I 법원에 와서 좋았던 것 중 하나는 물음표를 띄우며 궁금해 하신다는 거죠. 최대한 이해하면서 받아들이시려는 것, 제 경험이 길진 않지만 대부분 그러셨어요. 

 

성실하게 묵묵히 마지막까지

이수민 I 바쁜 만큼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다들 많이 바쁘시죠?
양소영 I 적지 않게 바쁘죠. 하하.
노상균 서울고등법원 재판연구원 이정민 I 확실히 고등법원이 지방법원보다 일이 많은 것 같아요.
곽호열 I 맞아요. 훨씬 많죠.
양소영 I 주말에 출근하면 한 방에 11명인데 5명은 나와 있어요. 평일에도 야근 많이 하고, 그래서 더 친해지는 것 같아요.
이수민 I 일이 많아서 더 끈끈한 느낌?
양소영 I 그렇죠. 오늘 점심 먹으면서 일에 매몰되지 않게 환기할 수 있는 본인만의 채널이 있는 게 좋다는 얘기가 나왔어요. 다들 스트레스 관리 어떻게 하세요? 저는 운동을 좋아해서 한강 달리기를 해요. ENFP가 뇌가 꺼지지 않는다고 해요. 한동안 소원이 뇌를 끄는 거였거든요. 그래서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서 아무 생각 들지 않는 러닝이 제게는 스트레스 풀기 딱 맞아요.
이수민 I 저는, 저녁 시간에 서초역에 방송댄스 학원을 다니면서 풀고 있어요.
일동 I 우와 !
이수민 I 하하, 그 외에 지금 저희 방이 5명인데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방이에요. 라꾸라꾸에서 돌아가면서 자고요. 늘 불이 켜져 있어서 집보다 법원이 안전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죠. 방 사람들과 삼시세끼 함께 먹는 가족 같은 사이인데 우리끼리 수다 떨면서 간식 먹을 때 스트레스가 풀려요. 바깥 친구들과는 공감이 아무래도 떨어지니까요. 전원이 여성이어서 여고 느낌으로 재미있어요. 다른 분들은 어떻게 푸시나요?
곽호열 I 저는 혼자 집에서 영화 보는 걸 좋아하는데, 사실 스트레스를 원껏 풀 수 있는 시간이 없어요. 요즘은 연구원들끼리 잠깐이라도 얘기 나누는 시간이 좋아요. 고등법원에 처음 와서 한방에 많은 사람이 있는 게 북적거리고 이상했는데, 지금은 여럿이 있어서 좋죠. 처음엔 파티션이 높아서 누가 자리에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는데, 친해지면서 다들 자기 자리에서 나와 같은 일을 하는구나 생각하니까 의지도 되고요.
이정민 I 저는 법원 근처에서 요가를 하는데요. 요가 동작을 마치고 나면 사바아사나라고 생각을 아예 안 하는 송장 자세를 해요. 시체처럼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있는 그 시간이 참 좋아요. 하고 나면 낮에 법원에서의 나와 저녁의 내가 분리되는 것 같고요. 주말에는 가족들과 함께 드라마 몰아보거나 영화를 보면 스트레스가 많이 해소되죠.
노상균 I 흠, 저는 성격이 특이해서 일하면서 스트레스를 별로 안 받아요.
일동 I (놀람) 네?
노상균 I 아니 제가 좀 이상해요. 글이 잘 써지면 기쁘고 스트레스가 풀리고요. 안 써지면 스트레스는 받는 그런 스타일이에요. 야근하는 것도 좋아하고. 개인적으로 시대에 뒤떨어진 옛날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어쩔 수 없이 저는 일하는 걸 좋아합니다. 아침에도 일찍 나오고 야근도 좋아하고, 주말에도 법원에 나오는 게 좋아요. 법원 공간이 좋아서 나와서 책 읽으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요. 작년에 남부지방법원에 있을 때 법원 검찰청 불이 다 꺼져 있는데 내가 마지막으로 불을 끄고 나올 때 스트레스가 풀렸어요. 일이 많이 몰려서 밤새워 일하고 씻고 바로 와서 일할 때 굉장히 기쁘고요.
일동 I 그런 말씀 하시면 저희가 뭐가 됩니까! (웃음)
이수민 I 스트레스를 받건 안 받건 길지 않은 시간이잖아요. 모두 열심히 잘 마무리하셨으면 합니다. 3년이 지나고 다양한 곳에서 인간관계가 생긴다는 장점이 있잖아요. 어느 자리에서든 모두 건승하시길 바랄게요. 이제 마무리 인사를 할까요?
양소영 I 재판연구원이 두드러지는 역할은 아니지만 꾸준히 그 자리에서 성실한 게 우리들의 특징인 것 같아요. 남은 시간 최선을 다하고 해당 재판부의 든든하고 믿음직한 연구원이 되고 싶습니다.
곽호열 I 부장님들의 평가는 어떠실지 모르지만 스스로 조용히 묵묵하게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일을 대하는 태도도 더 다듬고 실력도 키워서 남은 연구원 생활을 잘 마무리하는 게 당장의 목표입니다.
이정민 I 2년 차를 시작할 때 부담이 컸어요. 1년 차 때랑 또 다르더라고요. 3년 차는 어떨까 조금은 여유롭지 않을까 기대해 보기도 하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나가는 날까지 도움이 되는 연구원으로 생활할 수 있었으면 해요.
노상균 I 연구원이라는 제도가 법조일원화와 함께 급작스럽게 만들어졌다가 과도기를 거치고 지금은 안정기에 접어들었잖아요. 결국 법원으로 올지 부장님들도 궁금해하시곤 하는데요. 법원을 사랑하는 만큼 고민이 많습니다. 많이 생각해 주고 계시지만 연구원을 소모적으로 쓰시기보다는 현실적인 대안을 생각해 주십사 조심스럽게 부탁드립니다.
이수민 I 아직 9개월이나 남았지만 제일 먼저 떠날 제가 마지막으로 말씀드릴까요? 처음에 배운다는 말을 쓰지 말아라, 배우러 온 게 아니라 일하러 온 거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많이 배웠고요. 남은 기간도 많이 배워서 부장님들 휴식 시간을 늘릴 수 있는 연구원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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