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나누는 만남] 나와 너, 이해와 화해의 징검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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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한설혜 상임전문심리위원, 김금남 소액전담조정위원, 배효정 조정전담변호사, 안미영 상임조정위원장, 이종훈 상임조정위원

내일을 나누는 만남

글과 진행  이재영          사진  조인기


나와 너, 이해와 화해의 징검다리

 

반목의 이유는 십중팔구 몰이해다. 재판정에 당도하는 분쟁을 보면 알 수 있다. 한발만 더 나아가면 해결의 실마리가 있을 텐데 한사코 외면하다 골이 깊어진다.
갈등하지 않아도 될 문제로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소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조정제도는 갈등과 반목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나게 해주는 특급열차이자 서로를 이해하도록 이어주는 징검다리다.
조정위원은 갈등 너머의 세계를 상상해 보도록 도와준다. 오직 ‘나’로 귀결되는 세상에서 ‘너’가 있음을, 너를 이해할 때 비로소 내가 존엄해진다는 것을 알려준다. 나와 너의 사이,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조정위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까지 

안미영 I 반갑습니다. 저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있어서 오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는데, 멀리서 오신 분들이 계시죠?
배효정 I 네 제가 부산에서 왔어요.
한설혜 I 고생하셨어요.
이종훈 I 정말 멀리서 오셨네요. 의정부지방법원에서 왔는데 저는 멀다고 하면 안 되겠습니다.
한설혜 상임전문심리위원김금남 I 하하 그러네요. 자기소개를 먼저 할까요? 안미영 상임조정위원장님부터 쭉 돌아가면서 해볼까요?
일동 I 좋습니다.
안미영 I 그럼 저부터 인사를 드릴게요. 서울중앙지방법원 상임조정위원장 안미영입니다. 1995년부터 변호사로 일했고, 2018년부터 조정업무를 시작했습니다. 조정업무와의 인연은 그전에도 있었어요. 2003년 무렵부터 가정법원에서 조정위원을 했었어요. 14년 정도 쭉 해서 조정 업무에 익숙했고 변호사 일보다 조정을 하면서 좀 더 보람을 많이 느꼈죠. 변호사는 한쪽만 대리하는 데 조정은 양쪽의 분쟁을 끝내는 거라는 점에서 매력적이더라고요. 상임조정위원 제도에 대해서 잘 몰랐는데 우연히 법률신문 공고를 보고 도전했어요. 이미 선정된 분들이 계셨는데 한 분이 한 달만에 개인사정으로 그만두셨더라고요. 그렇게 딱 한 자리가 나서 제가 서울중앙지방법원 상임조정위원으로 오게 됐어요.
배효정 I 저는 부산지방법원 조정전담변호사 배효정입니다. 2014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했습니다. 기업 사내 변호사를 거쳐서 로펌 소속 변호사로 일했고요. 주로 지적재산권이나 기업 관련 일을 맡아서 조정과 관련된 일을 하진 않았습니다. 남편이 법원에 있는데 부산으로 발령이 나서 육아 문제 때문에 함께 내려가야 하나 고민하는 중에, 행정처에 올라온 조정전담변호사 모집 공고를 봤어요. 마침 새로 생기는 제도였고 새로운 지역에서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 지원했습니다.
김금남 I 부산에 몇 년에 가신 거예요? 일은 만족스러우신가요?
배효정 I 2020년에 갔어요. 조정전담변호사로 3년 반이 지났는데, 그 동안 했던 일 중에 업무 만족도가 제일 높아요. 좋은 도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안미영 I 조정위원님들과 이야기 나누면 다들 업무에 대해 만족하세요. 저도 자연스럽게 직업을 바꾼 건데 재밌어요. 이혼 전문 변호사로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했고 이혼시키는 것보다 화해시키는 게 보람도 느껴지고 행복지수가 올라가더라고요. 또 상임위도 조직이니까 여러 사람이 함께 일하는 것도 재미있고요. 이제는 변호사로 돌아갈 수 있을까 싶기도 해요.
배효정 I 맞아요. 배우는 점도 정말 많고요. 한쪽을 대리하면 숙련도가 늘고 변호사로서 필요한 덕목이 쌓이긴 하는데, 조정위원처럼 양측의 입장을 듣고 중재하는 경험을 할 수는 없잖아요. 법률가에게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이종훈 I 다양한 사건을 접할 수 있고, 당사자들의 실정에 맞는 창의적인 대안을 모색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이죠. 한설혜 위원님은 오늘 모인 위원 중 유일하게 전문심리위원이시네요.
이종훈 상임조정위원한설혜 I 네 그러네요. 안녕하세요, 서울고등법원 상임 전문심리위원이자 조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설혜입니다. 저는 내과 의사고요. 병원과 보건소 등 의료기관에서 근무했죠. 상임전문심리위원이 된 건 코로나19 때였어요. 그때 너무 지쳐서 석달정도 휴직중이었는데 의사들 구직 사이트에 상임전문심리위원 모집 공고가 있더라고요. 저도 새로운 것에 도전을 해볼까 하는 마음도 들고 해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업무내용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르셨습니다 하하
안미영 I 행정 쪽에서 자세히 설명해 드리기 쉽지 않으니까요.
한설혜 I 맞습니다. 어쨌든 저도 뭔지 정확히 모르고 의료 관련해서 알려드리면 되나보다 하고 지원했어요. 살면서 법원에 한 번도 와본 적이 없었거든요. 판사, 변호사도 이렇게 많이 만난 게 처음이고 모든 게 신기했죠. 제가 오기 전에 하시던 분들이 이미 나가셔서 인수인계를 받을 수도 없었고요.
김금남 I 처음에 많이 어려우셨겠어요.
한설혜 I 사실 의사들은 인수인계가 없는 직업이에요. 현장에 투입되면 바로 할 일을 하는 거라. 이것도 비슷하게 생각했는데 많이 다르더라고요. 다행히 건설위원분들이 절차 등을 알려주셔서 일을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까 약간 소논문을 쓰는 일이더군요.
이종훈 I 그런 면이 있죠.
한설혜 I 펠로우 때 하는 일을 다시 하는구나 싶었어요. 하하. 그동안 환자 보면서 학회도 나갔지만 채우는 시간보다 소비하는 시간이 많았는데, 오랜만에 공부해서 좋더라고요. 책도 많이 읽고 논문도 많이 보고요. 그러다가 중앙조정센터에서 의료조정위원으로 참여하라고 하셔서 하게 됐고요, 지금은 남부도 가고 북부도 가고 필요한 곳은 다 가고 있습니다.
김금남 I 엄청 바쁘시겠어요. 전혀 다른 일을 하시는 건데, 어떠세요?
한설혜 I 제 입장에서는 환자에게 설명하는 일은 다르지 않더라고요. 의사가 설명하면 좀 더 신뢰를 가지고 받아들이시니까 저희도 조정에 참여하는 거잖아요. 그런 면에서 비슷하면서 다른 일을 하고 있죠.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일이라 완전 재미있고 보람 있어요.
안미영 I 언제 오셨어요?
한설혜 I 3년 차에요. 2020년도에 시작했습니다. 재위촉으로 연장했죠.
이종훈 I 내년이면 임기가 만료되시는데, 다시 지원하실 생각이 있으신가요?
한설혜 I 지금 생각으로는 다시 지원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진짜 오랜만에 편한 마음으로 전공뿐 아니라 다른 여러 과 공부를 하는데 즐거워요. 처음에는 사건 보는 데 정말 오래 걸렸거든요.
김금남 I 그럴 수 있죠. 법률용어도 생소하고요.
한설혜 I 환자는 한명씩 진료하는데 반해, 원고, 피고가 입장이 다른 두분이라 어떤 걸 중점으로 봐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이제는 속도도 빨라지고, 일에 능숙해졌어요. 일을 하면서 정말 조정이 활성화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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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의 실마리를 찾는 보람을 주는 일  

이종훈 I 동의합니다. 조정제도가 더 많이 활성화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의정부지방법원 상임조정위원 이종훈입니다. 송무변호사로 일하던 중 ADR(대체적 분쟁해결 수단)에 관심을 갖게 되서 외부민사조정위원으로 활동하다가 2020년부터 수원지방법원 조정전담변호사로 근무했고, 올해부터 의정부지방법원 상임조정위원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안미영 I 조정과 인연이 있으셨네요.
이종훈 I 네. 조정을 진행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었어요. 조정은 재판과 달리 양 당사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제3의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어서, 수년간 지속된 분쟁이 종국적으로 종결되기도 하고, 특히 가족, 친구 등 가까운 사람들 사이의 분쟁의 경우 관계가 회복되기도 하잖아요. 일례로 제가 진행했던 사건 중 이웃간 담장철거 및 손해배상 청구사건이 있었는데, 조정기일을 진행하면서 원고의 의사를 탐색해보니, 원고는 그동안 피고의 토지와 경계역할을 했던 수목에서 위로를 받아왔었는데, 피고가 일방적으로 수목을 제거하고 콘크리트 담을 설치한 것에 대해 감정이 상해서 소송을 제기했던 상황이었죠. 그래서 담장의 바깥인 원고의 토지에 기존의 수목을 옮겨 심고, 담 위에 정원을 조성하는 내용으로 조정이 성립된 적이 있습니다. 이웃 간 몇 년간 계속될 뻔했던 사건이 창의적인 방법으로 잘 해결된 사례였죠.
김금남 I 그렇지요. 양쪽의 관계가 더 좋아지는 걸 보면 뿌듯해지는 마음이 있어요. 저는 법원 공무원 출신으로 현재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소액전담조정위원인 김금남입니다. 명예퇴직 하면서 다시는 법원에 걸음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다시 법원에 왔네요. 하하.
안미영 I 언제 퇴직하셨어요?
김금남 I 2018년에 서울행정법원 사무국장으로 퇴직했어요. 재직 중 민, 형사,행정, 가사 등 재판 사무를 많이 했었죠. 말씀드린 것처럼 퇴직 후엔 법원 일과 거리를 두고 싶었어요.
배효정 I 왜요?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셨어요?
김금남 I 그런 건 아니고요.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해서 이제는 전혀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지요. 인권 강의도 하고 연극을 시작해서 아마추어 극단 활동도 했었어요.
안미영 I 와, 극단을 만드셨어요?
김금남 I 네, 퇴직 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었어요. 하하. 저 혼자 만든 건 아니고 함께 연극 배운 사람들끼리 뜻을 모았죠. 무대 경험도 하고, 강의도 하면서 재미있게 살고 있는데 코로나19가 딱 시작된 거죠. 강의도 무대도 다 할 수 없게 됐잖아요. 어쩔 수 없이 쉬고 있는데 우연히 조정위원 모집 공고를 보게 된 거죠. 60세 이상, 변호사 또는 법무사, 조정 경력 3년 이상이 자격조건이었어요. 그걸 보는 순간, ‘어머 이건 딱 나야!’ 싶더라고요.  
배효정 조정전담변호사배효정 I 진짜 딱 맞춤이었네요.
김금남 I 네, 그래서 마감 직전에 서류를 냈는데 2명 뽑는데 22명이나 왔다더라고요. 경쟁이 만만치 않았던 거죠. 다행히 변호사님 한 분과 제가 최종 합격되었고 전 5년만에 법원으로 다시 출근하는 행운(?)을 얻게 되었습니다. 가정법원에서 조사관, 수석 조사관을 하면서 조정했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고요.
미영 I 그렇다면 뭐 조정의 달인이시겠네요.
김금남 I 달인까지는 아니고 조정이 낯설지 않다는 얘기죠. 재판업무경험도 많아서 별 두려움 없이 시작하기는 했어요.
이종훈 I 잠시 법원 밖에서 생활해 보셨잖아요. 그 경험들이 조정을 진행하시는데 도움이 좀 되셨나요?
김금남 I 그럼요. 조정이 단순히 업무의 효율성이나 숙련도로 따질 수 있는 문제는 아니잖아요. 법원 밖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부딪히고 일을 해본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어요. 조정을 하면 할수록 공감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되는데 제 경우는 특히 연극을 하면서 타인이 되어보는 경험, 그리고 다른 사람과 합을 맞춰보는 경험이 좋았어요.
당사자의 입장에 공감하며 이제는 어떻게든 일이 원만하게 풀리는 지점을 찾아내려고 노력하는데 나이에 따른 삶의 이력도 상당히 도움이  되더라고요.
안미영 I 연륜이라는 게 신뢰도 주고 안정감도 주죠.
김금남 I 그렇더라고요. 내 삶의 경험 중에 가치 없는 건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특히 또래 분들 오시면  “살아봐서 알잖아요. 당장 몇 푼의 이득이나 손실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많다는 것을... 그러니 이쯤에서 양보하시고 편하게, 건강하게 오래 사시는 것이 좋은 일 하는 거지요.” 하면  수긍하기도 하고요,
배효정 I 코로나19가 없었으면 이 자리에 안 계셨겠어요.
안미영 I 무대에 계시지 않았을까요? 하하
김금남 I 그랬겠지요. 조금 아쉽지만,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하하.
한설혜 I 그래도 다시 법원에 오셔서 새로운 걸 얻으신 거잖아요.
김금남 I  네, 조정을 하면서 느끼는 건 코로나19가 제 삶도 바꿨지만, 사람들의 삶의 스타일을 바꾼 것 같아요.
이종훈  I  맞아요, 사건도 많이 바뀌었잖아요.
배효정 I 요즘 코로나19와 관련된, 그 여파로 생겨난 사건들이 많죠.
안미영 I 조정을 하면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사건을 통해 알게 되죠. 요즘은 건설 쪽이 정말 어려워요. 미분양, 공사대금 못 받은 것 등의 소송이 정말 많아요. 연극을 하셔서 아시겠지만, 엔터테인먼트 관련해서도 사건이 많고요.
김금남 I 문화예술계가 코로나19 때 많이 무너졌죠. 
배효정 I 임대료 관련 사건들도 많고요. 정말 사건들이 다 맞물려 있더라고요. 저는 코로나19 즈음에 부산에 내려갔는데 전셋값이 쌌어요. 지금은 확 뛰어서 두 배 가까이 됐죠. 임차인과 임대인들의 분쟁이 많아요.
안미영 I 전국적으로 다 비슷하겠죠.
김금남 I 사람들이 주로 집에 있고 외출을 안 하니까 소음에 민감해진 거예요. 저는 소액 전담이라 이런 사건들이 정말 많았어요. 이웃 간에 데시벨을 기록해서 손해배상 청구를 하더라고요.
이종훈 I 사건을 보면 사람들이 많이 예민해졌다는 걸 느껴요. 예전 같으면 모르고 지났을 일인데 다 거슬리는 거죠. 의료 쪽은 어떤가요?

 

낭비를 최소화한 최대의 결과

한설혜 I 의료 쪽은 코로나19와 별개로,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좋지 않아진 걸 느껴요. 제가 처음 의사를 시작할 때 비해 지금 의료 환경이 많이 변했는데요. 뭐랄까 인권이 많이 올라간 측면도 있지만 사소한 것까지 분쟁으로 발전하게 되더라고요. 병원에 있을 때는 사건이 이렇게 많은지 사실 몰랐는데 정말 많더라고요.
이종훈 I 현장에서는 어쩌다 생기겠지만 여기는 전체 사건들이 다 모이니까 피부로 와 닿으실 거예요.
한설혜 I 네, 여기 와서 제대로 보게 됐죠. 의료가 사람 대 사람으로 상대해야 하는 감정노동이잖아요. 서로 신뢰가 없으면 힘들어지죠.
안미영 I 법원 일도 마찬가지죠. 저희도 감정노동이 잖아요.
한설혜 I 그렇더라고요. 법원은 판결하는 곳이라는 이미지였고 일반 사람들은 신문에 나는 큰 사건만 보니까 잘 모르죠. 저도 그랬고요. 와서 보니까 감정노동이 엄청 심한 공간이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조정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신뢰를 회복하고 갈등을 줄이는 데 좋은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사소하게 여기까지 안 와도 되는 게 많잖아요.
안미영 I 한설혜 위원님이 특히 분쟁이 많은 분야에 계셔요.
배효정 I 조정이 되면 법원 입장에서도 정말 좋죠. 당사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
안미영 I 종국적으로 분쟁 해결을 할 수 있고, 조정을 하면 한 문제에서 파생된 여러 문제를 다 같이 해결할 수 있잖아요. 경제적이죠.
한설혜 I 사회적 경비가 정말 많이 들더군요. 감정도 그렇지만 쓸데없이 돈이 나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시간도 돈이고, 이동도 결국 돈이잖아요. 사회적 낭비죠. 조정이 되면 감정적으로 해소되는 부분도 있고, 양측의 낭비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진짜 좋다고 생각해요.
안미영 ‌상임조정위원장안미영 I 결정문이 나가잖아요. 그러면 스스로 이행하는데요. 판결이 나면 강제집행해야 되는 상황이 있잖아요. 재산이 없는 경우도 있고요. 그럴 때 판결 받아봐야 쓸모가 없지만 조정을 해서 강제집행 단계까지 안 가고 스스로 지급하도록 하니까 서로 윈윈이고 만족도가 높아지죠. 말씀하신 것처럼 사회 경제적 비용도 굉장히 줄어들고요.
배효정 I 한설혜 위원님 말씀처럼 인권 향상의 결과일 수 있는데 불필요한 감정 소모가 좀 많아졌어요. 일단 소장부터 넣고, 나 홀로 소송을 해서 오시는 경우가 늘었죠. 로펌에 있을 땐 기업을 상대로 하니까 잘 몰랐는데, 조정을 하면서 보니 생각보다 정말 많더라고요. 인터넷 중고거래를 통해 개인적으로 거래하다가 사소한 일로 거래액보다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소송을 하는 거죠.
김금남 I 저도 유사한 사건을 했었어요. 요즘 많습니다.
배효정 I 아기침대를 샀는데 다리가 24개여야 하는데 22개만 받았다고 소송을 한 거예요. 매도인 측에서는 분명히 24개를 줬다고 하고요. 매수인은 어두울 때 건네받아서 확인이 불가했다고 하고요. 1심에서 조정을 했는데 조정이 안 돼서 결국 판결을 했어요.
안미영 I 판결이 어떻게 나왔어요?
배효정 I 청구기각이었죠. 항소심에 조정하러 왔는데 사실 1심 판결이 난 이후부터 아무것도 아닌 게 됐잖아요. 이 과정을 보면서 1심부터 재판을 위해 일하는 실무관, 판결문 쓴 판사의 시간은 물론이고 원피고가 매번 출석하기 위해 쓴 교통비와 시간이 정말 아까워요. 이런 분들을 보면 인터넷에 비전문가들이 써놓은 글을 무작정 믿는 경우가 있어요. ‘이렇게 하면 이긴다더라’는 글을 보고 오신 거죠.
김금남 I 감정을 누르지 못하고 그냥 끝까지 가자는 거죠.
배효정 I 결국에는 11만 원에서 5만5천 원 주고 끝내라고 했는데요, 가끔 이의신청하면 제 돈을 주고 끝내고 싶을 때도 있어요.
김금남 I 하하 맞아요. 그럴 때 있어요. 너무 답답하니까 그냥 내가 돈을 주고 끝내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배효정 I 당사자를 포함한 모두에게 경제적이지 않잖아요.
안미영 I 그래도 거기까지 가니까 조정이 된 걸 거예요. 결국 지쳐서 하는 거죠. 미리 하면 좋은데 말이죠.  조정의 좋은 점이 뭐냐면 판결 절차로 가면 한 사건당 얘기할 시간이 거의 없어요. 하지만 조정위원을 만나면 하소연도 할 수 있고, 감정 해소도 되잖아요. 사실 저희가 감정노동자예요.
일동 I 맞아요, 공감합니다.
안미영 I 한쪽 말만 들어서도 안 되고 양쪽의 말을 공평하게 들어줘야 하잖아요. 중립성, 형평성을 아주 잘 지켜야 하는 일이죠. 똑같은 시간을 할애하고 상대나 당사자를 비방하는 말 절대 하면 안 되고요. 중립의 위치를 지키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죠.


종합적 해결이 가능한 제도   

이종훈 I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할 때 소모적인 감정적 논쟁을 줄이고 문제파악과 해결에 집중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진행했던 사건 중 전국에 흩어져 있는 5개 사건을 일괄해서 합의한 사건이 있었어요. 친족간 분쟁이어서 감정대립도 심했고 입장차이도 컸던 사건이었는데, 속행을 거듭하면서 합의점을 찾게 되어 결국 합의가 되었죠. 국가 경제적으로도 비용이 절감되고, 대화를 통해 감정대립이 해소되다보니 관계도 회복이 되어, 기억에 남는 사건 중 하나에요.
안미영 I 형사적인 문제도 있고 그다음에 또 가집행 사전 처분도 있잖아요. 이런 것들을 다 같이 조정 조항에 써서 해결하거든요. 근데 판결로 가면 민사만 해결되고 형사나 가압류 가처분이 그대로 있는 경우가 생기잖아요. 그러면  또 동의를 얻어야 하고요. 경제적으로 낭비죠. 그런 면에서 조정이 종합적으로 해결해 주는 장점이 있죠.
이종훈 I 맞습니다. 다만 조정에 적합하지 않은 사건들도 종종 있습니다. 당사자에게 조정의사가 없거나 감정 등 증거조사를 거치지 않으면 논의할 수 없다고 하는 사건들이죠. 이런 점에서 재판과 조정은 상호 보완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설혜 I 조정을 하면서 철학적인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의료 사건을 하면서 저는 환자들에게 제일 화나는 포인트를 물어봐요. 그분들이 변호사님들에게 말 못 한 것들이 있을 때가 있어요. 예를 들어 기관내삽관을 했는데 갑자기 빠졌어요. 주치의 선생님이 좋은데 병원이 소홀히 한 거에 화가 나는 거예요. 선생님께 감정이 있는 건 아닌데 억울해서 고소하는 거죠. 그럴 땐 진짜 화나는 부분을 짚어주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것 같아요. 선생에게 화나는 게 아니지 않느냐, 이렇게까지 할 생각이 없지 않았냐고 말씀드리면 수긍하세요. 사건들을 해결하면서 사는 게 뭔가, 억울한 게 뭔가 그 입장에서 생각하면서 철학적인 고민까지 하게 되더라고요. 사람들이 억울하다고 느끼는 건 뭘까? 그런 것들 말이죠.
이종훈 I 진짜 중요한 말씀을 하셨어요. 당사자들이 현실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을 찾기 위해서는 기록 이면에 숨어있는 동기나 이해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데, 당사자들의 말을 경청하고 공감할 때 합의를 위한 실마리를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안미영 I 사건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 되죠.
한설혜 I 조정이 불성립되더라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이종훈 I 불성립된 사건이 다시 조정이나 화해로 종결되는 경우가 종종 있더라구요. 그런 면에서 당장 조정이 불성립되더라도 그 과정은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한설혜 I 그렇게 직접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따로 의견서를 좀 더 자세히 써서 드리기도 해요.
안미영 I 엄청나게 도움이 될 거 같아요.
한설혜 I 이종훈 위원님 말씀처럼 조정은 불성립이 되더라도 의미가 있는 거 같아요. 당사자들 입장에서 세세한 게 전해진다는 게 큰 위안이 되지 않을까요? 저는 그렇게 이 사회가 화가 좀 덜 났으면 좋겠어요.
안미영 I 일단 법원에는 화가 잔뜩 난 상태로 오시죠. 
김금남 I 저도 일하면서 사람은 절대 이성적이고 합리적일 수 없는 감정적인 존재라는 걸 깨닫습니다. 5만 원짜리 소송으로 대법원까지 가는 게 사람 심리니까요.
안미영 I 소송비용이 더 커요.
김금남 I 소액 사건들을 보면 우리 생활이 다 묻어나거든요. 아무것도 아닌 거 같은데 법원까지 와서 깜짝 놀라는 사건이 많아요. 그럴 땐 입증 못 해서 지면 더 화가 날 텐데 여기서 손해를 조금 보시는 게 어떠냐고 설득하지만 절대 안 하려고들 하죠. 그냥 저 인간이 싫고 화가 나서 끝까지 가요. 그러면 두 분 모두를 만족시키는 판결은 쉽지 않을 거라고 말해주지요. 소송에서 졌다는 생각에 2심, 3심으로 가면 비용 때문에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기도 하고 에너지 소모도 많고요. 또 재판이 길게 가면 보기 싫은 사람을 더 많이 봐야 할 거라고도 말해주고요.
이종훈 I 조정이 성립되더라도, 과연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맞을까 고민하게 되는 사건도 종종 있어요. 지적장애를 가진 미성년자인 원고가 피고로부터 성폭행을 당해서 손해배상청구를 한 사안이었어요. 개인적으로는 피고가 엄하게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피고는 합의를 해서 형량을 가볍게 할 의도였고, 원고의 법정대리인은 형편이 어려워서 합의할 의사가 있었죠. 고심 끝에 조정이 불성립되어도 결국엔 손해배상판결을 받게 되므로, 피고가 원고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되, 사과의 자필 편지를 보내는 내용으로 합의안을 도출했습니다. 성년이 된 원고가 상황을 인지할 수 있을 때 피고로부터 사과를 받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어요. 어쩌면 판결을 받는 것보다 나을 수 있겠더라구요.
김금남 I 어떤 게 당사자의 이익인가 생각해 봐야 하니까요. 좋은 아이디어네요.

더 많은 국민이 알 수 있도록   

김금남 소액전담조정위원한설혜 I 거시적으로 대한민국은 옳고 그름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잖아요. 누가 옳은가를 따져보자가 정서인데, 조정은 한국 사회에 부족한 토론을 활성화할 수 있는 제도라는 생각이 들고 실제로 활성화되어야 하는 제도라고 생각해요. 의료는 분쟁위원회가 따로 있는데 분야별로 1차적 조정기관을 많이 거쳤으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법대로 해보자, 하는 사회에서 분야별로 모듈레이션 할 수 있는 게 필요한 거 같고, 조정에 대해 법원에서 더 홍보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법 안쪽에 있는 사람이 아닌 제가 봤을 때 조정신청을 할 수 있다는 걸 모르는 국민이 많을 거예요.
안미영 I 홍보가 절실하죠. 인지대도 훨씬 싸고 쉽게 끝낼 수 있는 제도가 있는데 몰라서 이용하지 못하면 안타까운 일이죠. 법원 예산이 확보돼서 미디어 광고를 하면 좋겠지만 가능할까요?
김금남 I 전반적으로 판결만 인정하겠다는 인식이 팽배한데, 소송에서 이기고 진다는 개념보다 소모를 줄이고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해야겠다는 인식 개선이 필요한 것 같아요.
안미영 I 대국민 홍보가 필요한 거죠.
이종훈 I 조정이 성립되고 나서 이렇게 좋은 제도가 있는지 몰랐다는 분들도 있더라구요. 대한상사중재원처럼 법원 외부연계기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조정절차도 함께 알려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배효정 I 무조건 사법부 판결을 받아야겠다는 사람도 꽤 있지만, 조정 성립률이 전국적으로 30%가 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조정 성립이 되건 안 되건 객관적인 관점에서 재판에 도움이 될 만한 부분을 전달해서 의견을 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당사자들도 재판부에 자기 의견을 피력할 자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어서 조정위원이 이야기를 들어주고 비난하지 않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더라고요. 조정이 되면 더 좋고 안되더라도요. 너무 답답했는데 서면에 쓸 수 없는 얘기까지 들어줘서 고맙다고요. 이런 점이 조정이 필요한 또 하나의 이유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안미영 I 그래서 현재 조정전담변호사들도 많이 뽑고, 점점 확대되는 분위기예요. 저희 서울중앙지방법원에도 상임위원이 9분, 조정전담변호사가 5분, 소액조정위원이 4분 계시거든요. 위부 연계조정위원도 많고요. 상근 조정위원님만 해도 30분이 계시죠.
배효정 I 서울은 정말 많군요. 각급 법원에도 더 많이 확대되길 바랍니다.

단체사진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사람들   

배효정 I 다들 어려움은 없으세요?
안미영 I 당사자 중에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분들이 계셔요. 최근에 조현병으로 구속된 분이 계셨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상대를 구속해야 한다고 112에 신고하라고 화를 내고, 소리를 치더라고요. 요즘 또 흉흉한 뉴스가 많이 나와서 조금 더 긴장하게 되더라고요.
배효정 I 저희도 그런 경우가 있어서 제가 개인적으로 3단 봉을 갖춰 놓았거든요. 환영이 보이는지 악마는 물러가라고 소리치시는 분들도 계셨고요. 총무과에서 비상벨을 설치해 주셨는데 그래도 걱정되더라고요.
김금남 I 저를 공격한 건 아니지만 당사자 중 치매를 앓고 있는 여성 분이 오셔서 남편도 들어오시라고 한 적이 있어요.그런데 그 분이 상대방을 보더니 다짜고짜 멱살을 잡고 때리려는 거예요. 이놈 때문에 가정이 깨졌다면서요. 지금 뭐 하시냐고 멈추시라고 크게 소리를 질러서 법정 경위가 뛰어왔어요. 덕분에 위기를 모면했지만, 자칫하면 폭력 사건으로 넘어갈 뻔했죠.
한설혜 I 저는 좀 다른 경우인데요. 원고들이 제가 병원 편이라고 생각을 해요. 하하.
안미영 I 생각도 못 했는데 정말 그럴 수 있겠네요.
김금남 I 조정이라는 게 결국 마음을 만져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법원에 오기까지 힘드셨죠? 먼저 마음을 다독여 주면 많이 풀어지시더라고요. 가끔은 따끔하게 바른말도 하고요. 학폭 같은 경우 가해자 학부모께서 끝까지 사과하지 않고 아이를 정신 상담 받게 해서 상담 이력을 들이미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땐 부모가 제일 바라는 건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 아니냐고, 잘못했으면 사과하는 법을 배워야 건강한 어른이 되지 않겠느냐고 해요. 그래서 가해자 부모님이 고개 숙이며 사과하면 사건 후 처음으로 사과를 받았다며 눈물을 흘리는 피해자 부모님도 계시고요. 간혹 손해배상 금액에 만족하지 못하시는 분들에게는 살아가면서 모든 손해를 다 보상 받을 수는 없으니 이쯤에서 접는 용기도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설득하지요. 그렇게 서로 마음을 만져주면서 저도 함께 지혜로워지는 것 같아요.
배효정 I 조정위원들은 돈이나 명예를 높일 기회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역량과 경험을 공익을 위해 사용하는 분들이더라고요. 저도 그분들처럼 공익을 위한다는 자세로 일하려고 합니다. 법원 내부에서도 조정위원 제도에 대한 긍정적인 면을 봐주시면서, 이 제도의 장점을 많이 활용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종훈 I 조정은 양측에게 조정의사가 있어야만 진행될 수 있다는 한계가 있지만, 조정에 적합한 사건인 경우 당사자들의 구체적 실정에 맞는 해결방안을 도출해서 분쟁을 조기에 종국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홍보가 잘 돼서 사건이 점차 증가하면, 인적, 물적 지원도 계속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안미영 I 마지막으로 제가 말씀드리면 우수한 자원들이 있는데 국민이 몰라서 이용을 못 하면 너무 안타깝잖아요. 홍보 많이 해주십사 부탁드리고요. 또 한 가지는 서울 중앙에 영상조정실이 설치되어 있어요. 지방에서 부득이 못 올라오시는 분들도 영상조정으로 조정을 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영상이 많이 보편화되고 익숙해졌잖아요. 이런 것들도 많이 홍보된다면 조정이 확대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한설혜 I 제가 마무리를 할까요? 법원에 와서 새로운 걸 많이 배웠습니다. 제일 크게 배운 건 세상에 말로 안 되는 일이 없더라고요. 안 되는 일도 없고 되는 일도 없고 진짜 이게 조정인 거 같아요. 다들 각자의 사정이 있고, 조정은 그런 부분들을 끌어내고 배우는 자리이고요. 배운다는 자세와 각오로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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