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일상 X 마음대담] 기술에 대한 탐구와 호기심 IT마인드로 시대를 앞서갈 것

人사이드인터뷰

2024.04.05

법원 디지털화를 이끈 강민구, 이숙연, 권보원, 김진성 판사

올 1월 30일 정년퇴임한 강민구 前 부장판사는 임기 동안 10,201건의 판결문을 썼다. 한해 평균 380건 이상의 판결문을 쓴 셈이다. 36년간 전무후무 어마어마한 업무량을 처리할 수 있었던 데에는 성실함과 실력이 밑바탕이 되었지만 무엇보다 기술의 힘이 컸다. 80년대 이미 스스로 컴퓨터 프로그램을 독학했던 강민구 前 부장판사의 기술에 대한 탐구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누구보다 빠르게 기술을 익히는 선배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은 후배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글 이재영 사진 조인기

대담이 끝난 뒤 강민구 前부장판사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GPT-4가 수행한 대담 정리 파일이었다. 1시간 30분 동안 치열하게 나눴던 이야기들이 주제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기술의 시대 사법부의 변화와 역할에 고민하는 후배 판사들과 앞서간 선배 판사와의 대담을 GPT-4는 이렇게 정리했다. “이번 대담은 사법정보화 및 인공지능(AI) 기술의 법원 업무 적용, 리걸테크의 발전 가능성과 과제, 판결문의 공개 및 접근성 문제 등을 깊이 있게 탐구하는 논의의 장이었습니다.”

강민구 : 법원에서의 36년이 3.6초처럼 지나갔습니다. 그 시간이 제 인생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아롱지게 남았어요. 오늘 청사에 들어오면서 만감이 교차하고 흐뭇한 기분이 들더군요. 익숙한 장소에 다시 오니 마음이 편안합니다. 후배님들께서 이렇게 시간을 내 함께 볼 수 있어서 더 좋고요. 자리를 만들어주어서 고맙습니다.
이숙연 : 안녕하세요. 특허법원 이숙연 판사입니다. 사법정보화 연구회 초기 멤버였는데 그때 강민구 원장님께서 많이 이끌어주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이후로 2006년
2007년에 법원행정처 정보화 심의관을 하면서 법관 통합 재판지원시스템을 개발하고, 종합법률정보 시스템 개선 사업에도 참여했습니다. 원장님이 주도하셨던 <인터넷 그 길을 묻다> 집필에도 참여했고요. 3년 전부터 인공지능에 관심을 두고 작년 말에 인공지능 연구회를 만들었는데 그 또한 원장님께 많은 영감을 받고 있어요. 특허법원 판사님들 주축으로 카이스트 학생들과 협업해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고, 인공지능 관련 소규모 모임이나 월간 세미나 등도 개최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렇게 법원 IT 강자로 알려진 원장님과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영광입니다.
강민구 : 불러줘서 제가 더 고맙지요. 지금 제 목이 좀 쉬었습니다. 양해 부탁해요. 지난 1월 30일 자로 36년 간 법원 생활을 마치고 쉬려고 했는데 단체나 기관의 요청으로 강의를 좀 많이 하다 보니 목이 잠겼습니다.
이숙연 : 저희처럼 디지털 지식을 얻고 싶은 사람들이 많군요.
강민구 : 최근에는 국방부 강연, 부산 변협 강연을 했어요. 이 대담을 마치고 저녁에는 상생포럼에 강연을 하러 갑니다. 다음 주에는 제주지방법원에 가고요.
김진성 : 인기가 엄청나게 많으시네요.
강민구 : 그런가요? 하하. 퇴임했지만 앞으로도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디지털 디바이드, AI 디바이드를 깨부수는 데 저의 열정의 일부를 쓰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권보원 : 강민구 원장님과 이숙연 부장님께서는 대본도 없이 말씀을 청산유수로 하십니다. 넋을 놓고 들었습니다. 저는 특허법원에 근무하는 권보원 판사입니다. 사법정보화 연구회와 이숙연 부장님께서 이끌어주시는 인공지능 연구회에서 총무를 맡고 있고요. 학부 때 계량경제학 공부를 못한 것이 아쉬워서 법관이 된 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통계학과에 입학해서 공부했습니다. 요즘 통계학은 컴퓨터 과학이기도 합니다. 그걸 계기로 IT 기술에 더 관심을 갖게 됐고 졸업 후 전산시스템 통합, 데이터베이스 관리, 보건의료 등 여러 직군에 계신 분들과 인공지능 코딩 겸 데이터 사이언스 스터디를 하고 있습니다. 오픈AI의 챗GPT 등장 후 네이버 하이퍼클로바 X, 앤트로픽의 클로드 3, 마이크로소프트 코파일럿, 구글 제미나이 등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를 업무와 생활에 다양하게 활용하기 위해 궁리하고 있습니다. 강민구 원장님 유튜브 구독자이기도 하고요. 알람 설정도 해두었습니다. 하하.
강민구 : 오, 제 채널 구독자군요. 반갑네요. 하하.
권보원 : 최신 동향을 많이 알려주셔서 늘 도움 받고 있습니다. 오늘 직접 뵙고 말씀 들을 수 있어 영광입니다. 선배님들의 깊은 통찰을 청취할 생각으로 기대하면서 왔습니다.
김진성 : 먼저 이 자리에 함께 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세 분 다 존경합니다. 권보원 판사님도 유명인이시더라고요. 저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근무하는 김진성 판사입니다. IT분야에 관심이 있는 상태에서 지난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왔는데요. 친구 판사에게 IT가 정말 중요한데 아직 법원에 관련 연구회가 없는 것 같다, 10년이 걸리든 20년이 걸리든 IT 관련 연구회를 만들어야겠다고 말하니까 이미 있다고 하더라고요. 하하. 다음날 바로 가입을 했고 운영진에 합류시켜 주셔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강민구 부장님이 지난해 인공지능 관련 강의하실 때 현장에 있던 팬이고, 이숙연 인공지능 연구회 회장님도 회원으로서 정말 존경하고요. 권보원 판사님께 영감을 받아서 저도 방송대 인공지능학과 학부생으로 1학년 1학기 수강 중입니다.
권보원 : 그러셨군요. 정말 뿌듯합니다. 동문으로 수학하는 사이네요. 반갑습니다.
김진성 : 저도요. 오늘 배우는 자세로 세 분 말씀 많이 듣겠습니다.

AI시대, 디지털 발전 속도를 따라가는 일
이숙연 : 그럼 본격적으로 질문을 좀 드려볼까요? 원장님 후배들이 항상 궁금했던 게 재판 업무로도 굉장히 바쁜데 그 와중에 여러 IT 기술을 먼저 섭렵하시고 소개도 해주시고 이런 것들이 어떻게 가능하신지요?
강민구 : 제 DNA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탐구심이 남다른 것 같아요. 군대 훈련 마치고 육사에 배치됐는데 서버 컴퓨터에 연결된 흑백모니터와 키보드를 보고 너무 궁금했어요. 군대에 있는 3년 동안 컴퓨터 언어를 배우며 가지고 놀아봤죠. 컴퓨터라는 게 이렇게 좋은 거구나 그때 알게 됐고 지금까지 그 사랑이 식지 않아요. 2022년 미국 시간으로 11월 30일 오픈AI가 챗GPT를 발표했는데 그날 미국에서 공부했던 처조카에게 전화가 왔어요. “고모부, 천지가 개벽하는 일이 생겼어요. 고모부 이거 보면 잠 못 잘 걸요?” 하더라고요. 그때 바로 챗 GPT를 팔로잉하고 구글 알리미에 들어가서 AI, Legal AI 두 키워드를 한글과 영문으로 분리해 새 뉴스를 받기 시작했어요. 이제 URL을 copilot에 복사해 넣고 ‘한글로 상세요약’ 명령하면 기사의 90% 이상을 한글로 번역하고 상세요약까지 해주잖아요. 꿈같은 세상이죠. 이걸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합니다. 개인적으로 거대언어모델 등장 이후로 매일 신규 정보를 학습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걸 여러 사람들에게 강연 형태로 알리고 있고요. 제 강연이 여기저기 올라가 있다는데, 2만 명 법원구성원들 모두에게 잘 닿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숙연 : 강연해 주신 것들 보고 제가 한 가지 배운 것이, 텍스트를 보이스로 만들어주는 기능이 있더군요. 그런 기능을 응용해서 업무에 연결하면 도움이 되겠더라고요. 이동시간에 자료를 들으며 움직이면 시간 절약도 되고 엄청난 생산성 향상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강민구 :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되도록 좀 더 알려드릴까요? 핵심 스마트폰 앱을 킬러 앱이라고 하는데 제가 매일 쓰는 킬러 앱이 구글 렌즈입니다. OCR기능이 탁월해요. 로컬 PC와 스마트폰을 동일한 와이파이망에 테더링하고 크롬 브라우저를 PC에 띄운 상태에서 구글 렌즈로 사진을 찍으면 카톡, 메일을 거치지 않고 가상 클릭보드가 연결돼서 바로 복사가 됩니다. 아주 편리해요. 말씀하신 운전 중이나 열차 안에서 엣지 브라우저의 텍스트를 스피치로 바꿔주는 기능(TTS)을 활용하면 기차에서 눈 감고 전자책 한 권을 완독할 수 있는 겁니다. 말이 글이 되고 글이 말이 되는 걸 생활화하니까 생산성이 정말 높아져요. 제가 10,201건의 판결문을 남겼는데, 유사 이래 최고라고 하더군요. 이렇게 스마트폰 킬러 앱, IT 마인드가 결합돼서 빠른 속도로 일 처리가 가능했습니다.
권보원 : 강민구 원장님, 이숙연 부장님처럼 선구적인 선배님들께서 환경을 잘 만들어 주신 덕분에 저는 전자소송 전담부에서 법관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전담부가 따로 있을 정도로 전자소송이 완전히 자리 잡지는 못한 상태였는데 지금은 보편화됐죠. 이제는 다른 차원을 고민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인공지능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원장님 말씀처럼 두루 알고 채택할수록 업무 효율이 높아지는 걸 경험합니다. 강민구 원장님께서 늘 빠르고 기민하게 업데이트하시는 것이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강민구 : 새로운 게 나오면 무조건 직접 해봅니다. 또 대부분 유료로 값을 지불하고 써요. GPT 4.0, 제미나이 어드밴스드 모두 2만9천 원 유료로 쓰는데 무료 보급형과는 퀄리티가 다릅니다. 특히 GPT 4.0은 상상을 초월해요. 얼마 전 42분짜리 방송사 인터뷰를 했는데 영상으로 10초 나가는 것이었거든요. GPT 4.0에 텍스트를 입력해 내용을 소목차 붙여서 3,000자로 요약하도록 하니까 완벽하게 나오더라고요. 촬영팀이 깜짝 놀라더군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지난주에 칠불사에 다녀왔는데요. 주지 스님께 신도들을 위한 안심 법문을 소목차 붙여서 3천 자로 만들어드리고, 그걸 그 자리에서 영어, 일본어로 번역해 메시지로 전달해 드렸지요. 이게 뭐냐고 깜짝 놀라셔서, ‘도깨비 입니다’라고 대답해 드렸죠. 하하.
김진성 : 21세기 도깨비 맞네요. 하하.
강민구 : 이 얘기를 들은 친구가 목사님은 왜 안 도와주냐고 해서, 베드로 가르침을 기본으로 하는 설교 3,000자를 만들어서 목사님께도 드렸죠. GPT4.0 덕에 요새 종교계를 접수하고 있습니다. 하하.
권보원 : 다양한 유료 서비스를 구독하면서 느끼는 바가 큽니다. 안 쓰고 못 배기는 강력한 서비스를 들고 나오는 기업이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원장님께서도 IT 구독료 지출이 꽤 되시지요? 그런데 안 쓸 수가 없습니다. 차원이 다르거든요. 챗GPT 같은 인공지능 챗봇도 다각도로 세밀하게 질문하고 출처를 확인함으로써 신뢰성을 검증해 볼 수 있어요. 이용자의 몫이 있긴 하지만, 때문에 저는 할루시네이션도 아주 큰 문제는 아니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편입니다. 저도 원장님처럼 챗GPT 프로, 클로드 3 등을 자주 주위에 전도하는데, 많은 분들이 할루시네이션, 그러니까 AI의 그럴듯한 거짓말에 대해 우려부터 하십니다. 그것이 첫 번째 진입장벽이 되곤 하는데 원장님께서는 그럴 때 어떻게 답해 주시는지요?
강민구 : 구독부터 이야기하면 제가 에버노트를 시작부터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어요. 2014년 6월 6일 첫 번째 기록을 시작으로 현재 19,000 꼭지를 넘겼죠. 대한민국에서 온리원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 에버노트 주인이 바뀌고 가격이 왕창 올랐어요. 그래도 쓰고 있죠. 그 외에 GPT4.0, 제미나이, 넷플릭스, 맥아피 등 IT 관련 구독료로 꽤 나갑니다만 저는 항상 가성비를 따지자고 말합니다. 지불하는 것 이상의 효용을 주니까요. 그리고 할루시네이션은 아직까지 조금 일어나고 있지만, 데이터의 질이 좋아지면서 점차 나아지고 있어요. 특히 유료 버전은 거의 없죠. 저는 누군가에게 권할 때 GPT3.5를 깔아주고 GPT4.0이 깔린 제 폰과 상대 폰 두 개를 동시에 놓고 질문을 합니다. 답이 하늘과 땅 차이로 나와요. 그걸 확인하면 구독료 아깝다는 소리를 안 하더군요. 챗GPT를 만든 오픈AI 수장인 샘 알트만이 저에게 감사 인사라도 해야 하는데 아직 만날 기회가 없네요. 하하.

법원의 미래, 법률 서비스와 기술의 접목
김진성 : 법조 전문 AI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으시죠?
강민구 : 물론입니다. 지금 법조 전용 AI 렉시스 플러스도 봤고, 로앤컴퍼니에서 만드는 슈퍼로이어를 2월에 시연을 볼 기회가 있었어요. 엘박스, 인텔리콘 등 국내 대부분의 리걸테크 회사들이 자문을 요청합니다. 우리가 가는 길이 맞는지, 추가할 건 없는지 등을 물어요. 4월에 법조인을 대상으로 하는 엘박스 AI와 로앤컴패니의 슈퍼 로이어가 동시에 나오는데 아마 법조인들이 깜짝 놀랄 겁니다. 이미 로앤굿도 일반인용 챗봇을 공개했지요. 범용 AI로 고소장, 고발장, 대여금 판결 정도를 보여줬는데 샘플이라 완벽하지 못했어요. 완전한 신뢰를 주지 않았죠. 그런데 엘박스 AI와 슈퍼 로이어가 나오면 강민구가 그 동안 괜한 소리 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제가 원하는 기능이 전부 다 있거든요.
김진성 : 어떤 기능들인지 궁금합니다.
강민구 : 가장 쉬운 예를 들면 ‘취득시효’라고 4글자만 치면 법조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문장을 한두 페이지에 걸쳐서 보여줍니다. 1초 만에 타이핑이 되죠. 답변서를 줄이거나 늘리는 것도 바로 가능하고요. 법조인들의 일을 효율적으로 서포트해 주는 다양한 기능들이 있습니다.
권보원 : 인공지능은 결국 데이터 싸움이잖습니까? 리걸 AI에 뛰어든 업체들도 저마다 확보한 판결문 등 데이터가 기반이 되었을 텐데요. 어느 날 문득 법의 세계에서도 승자독식의 문법이 적용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먼저 앞서간 오픈AI나 엔비디아가 네트워크 효과, 규모의 경제로 우위를 가지듯이 재판 등에 인공지능 활용이 보편화되면 영어를 쓰지 않는 나라에서는 법의 진화가 더뎌질 수 있겠더라고요. 한국에서는 아무리 좋은 판결을 해도 공개가 충분히 되지 않고, 번역기로 돌린다 해도 고뇌가 담긴 판결 원문의 참맛은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 한계가 있지 않습니까. 얼마 전 인도에 다녀왔는데 영어로 판결을 내기 때문에 웹에서 쉽게 찾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인공지능의 학습 데이터로도 쉽게 쓰이겠지요. 그렇게 앞으로 법률 지식이 주로 영어로 확대 재생산된다면 우리나 일본, 독일, 프랑스 등 일국 단위에서는 경쟁력 있는 판결을 하던 나라들이 규범과 문화의 공진화에서 뒤처지지는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우리 판결도 웹에서 쉽게 검색될 수 있게 해야 하고, 영문 번역의 품질에도 신경 써야 할 것 같습니다. 게다가 우리 사법부에서는 보안에 대한 우려로 최신 기술을 선뜻 선택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는데 원장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강민구 : 제가 종합법률정보시스템을 총괄 기획했습니다만, 그때의 DB 자체가 이미 수명을 다 했어요. 바깥에 있는 엘박스 검색 엔진과 대비하면 부끄러울 정도로 업데이트가 안 되어 있습니다. 외부 기술을 차용하더라도 일단 검색엔진 자체를 하루빨리 갈아엎어야 합니다. 바깥과 같이 발전하려면 판결문 공개가 필수예요. AI가 자동차의 엔진이라면 판결문은 휘발유입니다. 휘발유를 공급 안 하고 나아갈 수 없잖아요. 판결문 공개에 관한 입법을 빨리 추진해야 합니다. 제가 퇴임 전에도 글이나 강연을 통해서 ‘백설공주 깨우기’ 프로젝트라는 표현을 자주 썼습니다. 판결문이 백설공주인거죠. 그걸 깨우지 않고는 어떤 것도 할 수 없어요.
이숙연 : 원장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판결문이라는 건 재판의 결과물로 형성된 것이잖아요. 공적 기록이면서 공공재이죠. 다만 관련해서 몇 가지 우려가 있는 것 같아요. 우선 그것으로 판사의 성향을 분석해서 공격을 한다든지, 사소한 오류를 침소봉대 한다든가 또는 개인정보를 모아서 공격을 하는 등의 우려가 있어서 판사님들 사이에서도 여러 의견이 오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과연 정당한 우려인지 아니면 기우에 불과한지, 그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더 높은 가치 실현을 위해 감수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강민구 : 정당한 우려죠. 100% 동의합니다. 그와 같은 부작용은 입법할 때 법률을 세밀하게 잘 만들어서 최소화해야 합니다.
이숙연 : 그런데 그런 우려 때문에 판결문 공개 단계까지 가지 않는다면, 말씀대로 가장 우수한 리걸테크 업체를 들여와서 내부 판결문으로 학습을 해서 그 파라미터를 우리 법원이 공유해 내부 서비스를 하고 외부 업체들과도 공유해 전체적인 리걸테크의 수준을 높이는 방안을 제안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강민구 : 그 방법도 맞죠. 여러 의견이 있다는 걸 잘 압니다. 우려되는 것이 있지만 그래도 빨리 의견을 모아서 내부 AI를 작동시켜야 합니다. 저는 항상 주장하는 게 내부용 AI에서 판결문만 올릴 게 아니라 2000년부터 지금까지 코트넷에 잠자고 있는 수만 건의 회색 자료 즉, 공개되지 않은 연구 파일, 논문 단계나 논문 전 실무 자료 등의 문서를 판결문과 같이 학습시키자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무적함대의 데이터가 되겠죠. 그 방대한 데이터를 어느 정도 범위 안에서 적절하게 컨트롤해서 공유하는 겁니다. 지금 각 로펌들이 고유 AI를 도입해 튜닝하는 추세인데 사법부 내부 AI가 하루빨리 작동되어야 합니다. 적어도 내년 상반기 중에는 판결문 작성 AI 도우미가 법원 내부에서 가동되어야 해요. 시급한 일입니다.
권보원 : 회색 자료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못했는데 동감합니다. 판결문이 전면 공개되어 작은 오류부터 시작해서 여러 이유로 자주 공격에 노출된다면 법관들이 판결을 쓸 때 훨씬 많은 품을 들일 수 있어야 할 텐데, 저희는 현실적으로 늘 마감에 쫓기며 공장처럼 판결을 양산해 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그 점에서도 심리적 위축이나 저항이 있는 것 같습니다. 판결 공개와 관련하여 법관에 대한 제도적 보호책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강민구 : 제도도 중요하지만 기술로 가능합니다. 법원 내부형 맞춤법 프로그램을 돌리면 결정적 실수는 기계적
으로 다 잡히지요. 어떤 인공지능 프로그램이든 내부 AI에 판결문을 검토하는 로직을 학습시켜서 법관이 판결문을 만들어 업로딩 했을 때 잘못된 것을 도출하라고 명령하는 겁니다. 이런 기술의 바탕 위에 판결문의 줄거리만 인간 판사가 쓰고 관련 서류를 학습한 AI가 전개 과정을 검토해서 살을 붙이도록 하는 거죠. 저는 AI를 이용하면 레고 블록 조립하듯이 판결문을 작성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데요. 비판론자들은 창의적인 판결이 안 나오고 천편일률적으로 공장이 찍어내는 판결이 나온다고 걱정합니다. 하지만 국민은 창조적인 판결을 원하는 게 아니라 신속하고 자기가 이기는 판결을 원하거든요. 우리 내부용 AI가 나오면 판사들이 판결문 작성을 대하는 태도나 업무 환경이 상전벽해가 될 겁니다.
권보원 : 많은 예산을 들여서 시스템을 개발하더라도 끊임없이 발전하는 기술에는 계속 뒤처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도 고민거리 같습니다. 계획을 짜고 막대한 예산을 들여 개발이 완료될 때쯤에는 이미 훨씬 발전한 기술이 시중에 나와 있는 식의 시차가 계속 발생할 텐데,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강민구 : 100% 동의합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사법정보화실하고 기조실에서 고민을 해서 예산 당국을 설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진성 : 조금 현실적인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저는 놀기 좋아하고 쉬는 걸 좋아해서 제가 워커홀릭인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법원생활 10년이 지나니까 일만 하고 있더라고요. 일 처리를 마쳐도 집에서 또 일을 하고 주말에도 일을 하는 새로운 저를 발견하고 있습니다. 워커홀릭이 된 입장에서 궁금한 건 이런 겁니다. 앞으로 성공적으로 AI가 도입돼서 업무 효율이 오르고 시간이 절약된다고 했을 때 어떤 변화가 올까요? 구성원들이 연구 분야나 체력 유지 등에 시간을 쓰면 좋을 거라고 생각되지만 사법부에서 구성원을 줄이는 쪽으로 가진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강민구 :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죠. AI가 도입되면 같은 에너지로 3, 4배의 효율이 달성되기 때문에 법원 내부 지휘부나 정부 예산 당국에서는 AI를 도입하는 대신에 판사 숫자를 고정하거나 줄이려고 하는 욕구를 많이 가질 수 있습니다. 그때 판사들이 뭉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관은 일정한 비율로 증원을 해야 된다, 늘려야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해야 합니다. 그 요구는 내부에서 계속해야 됩니다. AI로 인해 효율이 높아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원을 늘려 좀 더 창조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계속 주장해야 합니다.
김진성 : 원장님 은퇴 후 연구소를 하신다고 들었는데, 크게 확장돼서 저희 후배들 좀….
전원 : 웃음

적선지가필유여경(積善之家必有餘慶)의 마음으로
강민구 : 그건 차후의 숙제지요. 하하. 전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상당수의 법조인들이 AI 몰라도 밥벌이에 지장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것 없이도 일 잘했는데 굳이 구독료 들여서 새로 알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거죠. 과거의 습관을 깨야 합니다. 여기 계신 후배님들처럼 기술이 얼마나 파워풀한가를 알면 가슴이 떨릴 거예요. 시도해야 합니다. 제가 너무 답답해서 요즘 여기저기에서 말해요. 나를 TV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시켜 달라고요. 법조인들에게 AI가 얼마나 중요한지 제대로 알리고 싶어서요.
권보원 : 아내도 법원에 있어서 서로의 지방근무로 줄곧 주말부부 생활을 했습니다. 우스개입니다만, 그러다 보니 하루에 가장 많이 대화한 상대가 챗GPT 등 AI였던 것 같은 날이 있습니다. 일과 생활에 여러모로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존재임이 분명합니다. 하하.
김진성 : AI에 대해 궁금한 점들만 물었는데, 원장님의 판사 생활도 궁금합니다.
강민구 : 저는 처음부터 호기심도 많고 엉뚱한 젊은 판사였어요. 성남에 있을 때 형사단독 850건이 상시 미제였는데 일주일에 40건 이상을 털어내야 했죠. 법정이 시장처럼 시끄러웠어요. 안되겠다는 마음에 집에서 오디오 시스템을 뜯어와서 법정에 가져다 놨어요. 오전 9시에서 10시, 오후 1시에서 2시, 음악 법정을 만들었죠. 그리고 나서 항소율이 10% 이상 떨어졌어요. 2014년 창원법원장으로 가서는 로컬 작가들 그림을 걸고 예술 법정사업을 했죠. 북유럽 시찰을 갔는데 모든 로컬 법정에서 지역 작가들 그림을 방마다 가득 채워놓았던 걸 벤치마킹했어요. 기존에 없던 걸 많이 했죠.
이숙연 : 엉뚱하다고 표현하셨지만 더 좋은 문화를 만드셨네요.
강민구 :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습니다. 엉뚱한 짓을 한 것도 결국은 호기심이었어요. 4년 동안 법원장을 하면서 월요일마다 통신문을 보냈는데 400쪽이 모이면 PDF로 해서 전자책을 만들었어요. 7,800쪽을 했더라고요. 최근에 2년 만에 9건의 전자책을 정리해서 국민들에게 무료로 오픈했죠. 재판도 열심히 했는데 돌아보면 법원에서의 일들이 전부 너무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권보원 : 그중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이 있으세요?
강민구 : 오래된 어려운 사건들 처리한 게 기억에 남아요. 크리넥스 아기 기저귀 특허 분쟁 10년짜리, 레이크사이드 골프장 10년짜리 분쟁, 허원근 일병 33년 분쟁, 구로공단 43년 농민 토지 수용 손실보상금 사건, 녹십자 혈우병 약품 에이즈 오염 사건, 4대강 한강수역 사건 등 제 손으로 선고하거나 조정했죠. 법원에서 일하면서 후배들에게 늘 판사들의 가장 정확한 평가자는 상급법원이나 대법원장이나 법원장이 아니고 그 재판부를 이어받는 후임 재판부원들이라고 말했어요. 한 달만 있으면 앞의 재판부원들이 얼마나 놀았는지, 아니면 지극정성으로 처리했는지 다 안다고요. 그 평가를 30년 넘게 해마다 받는데 그걸 무서운 줄 모르는 판사들이 너무 많아요. 자기의 가장 엄정한 평가자는 후임자예요.
이숙연 : 정말 맞는 말씀이시네요.
강민구 : 최근 2, 3년을 빼고 그 전에 재판부 인수인계할 때는 재판부의 특수한 매뉴얼 북을 500쪽 이상씩 만들었습니다. 디지털 파일 자료 10GB 이상씩 다 줬어요. 심지어 조사심의관을 그만둘 때 1997년, 1998년 조사심의관 매뉴얼 북을 수백 페이지로 만들었는데 이번에 퇴임 기념 조사심의관 모임에서 그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법원사 사료집으로 달라고 말이죠. 법원도서관에 그 유인물을 넘겼는데, 그 조사심의관 매뉴얼 북이 족보로 15년간 쓰였다더군요. 그런 식으로 판사 생활을 했습니다. 모든 판사들이 저처럼은 못 하더라도 후임 재판부의 그 냉정한 평가에 자기가 노출된다는 걸 생각하면 어떻게 일해야 할지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실 겁니다. 그리고 하나 더 당부하자면 나의 이익을 위해 동료를 힘들게 하지 마세요. 극소수지만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후배들을 보면 가슴이 터질 것 같습니다. 적선지가필유여경(積善之家必有餘慶) 주역 문헌전에 나오는 말인데, 선한 일을 많이 한 집안에는 반드시 남는 경사가 있다는 뜻입니다. 꼰대 소리가 아니라 살아보면 그걸 느껴요.
권보원 : 부모님께서 당부하시는 것과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이익처럼 보여도 결코 이익이 아니고 손해라고 생각되는 일이 감사한 일일 수 있다고 말씀하시거든요.
강민구 : 진짜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뺀질거리는 행동이 당장은 이득 같지만 이득이 아니에요.
권보원 :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인데, 체력 관리를 어떻게 하시는지요? 타고난 체력만 믿고 이 일 저 일 마다하지 않다 보니 일이 자꾸만 쌓입니다. 전에는 이틀에 한 번 자다시피 해도 괜찮았는데 점점 체력의 한계를 느낍니다.
강민구 : 과거에는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안 되겠죠. 일론 머스크 스타일로 일하셨군요. 하하.
권보원 : 지금은 어렵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한대서 덜컥 맡았다가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하고요. 여기 계신 이숙연 부장님께서도 평소 많은 조언을 해주십니다만, 안배가 참 어렵습니다. 원장님께서는 어떻게 시간 배분을 하고 체력을 관리하시나요?
강민구 : 제가 초임 지방부장 때 무리해서 일하다가 병원에 실려 간 적이 있어요. 그 이후로 108배를 꾸준히 하면서 몸을 회복했죠. AI가 생기기 전에 살아 있는 AI처럼 일하면서 내 몸을 망가뜨렸어요. 나는 내 몸을 혹사해서 수업료를 냈지만 권 판사는 지금부터 잘 관리하세요. 뭐든 반드시 수업료가 있습니다. 남들보다 10~20% 더 하는 것 정도는 괜찮지만, 너무 자신을 혹사시키지는 마세요. 요새는 하루에 1만보를 걸으려고 노력합니다. 운동 애플리케이션에 함께 걷는 친구그룹이 있거든요. 각자 그날 걸은 것이 기록이 돼요. 그런 것들 이용해서 운동도 하고 쉬기도 하세요.
김진성 : 오늘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워낙 말수가 없기도 하고 좋은 말씀 듣겠다는 생각으로 와서 질문을 많이 드리진 못했는데요.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는 말씀드리고 싶고요. 곧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원장님 출연 요청이 올 것 같은데 그 전에 뵙게 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원 : 웃음
이숙연 : 건강하시고, 앞으로 사법부의 정보화 과정에 계속해서 고견 부탁드리겠습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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