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보 업무를 맡은 법관과 법조기자단이 함께하는 독서 모임의 이름은 ‘살롱J’다.
18세기 유럽 문화교류의 장이었던 살롱과 Journalism, Judge, Justice의 앞자인 ‘J’를 합쳤다. 독서 모임을 만든 김진하 고법판사는 근대 시민사회가 형성되면서 시민공론장의 역할을 했던 살롱 문화를 구현해 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 안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소식을 알리는 근대 신문이 시작됐고, 인권에 대한 의식이 생겨나면서 근대 사법 체계가 형성됐죠. 살롱은 현대의 사법과 언론의 모태가 된 상징적인 시공간이기도 해요.” 생각을 나누는 건 손을 잡는 것과 같다. 다른 분야,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함께 책을 읽고 의견을 나눌 때 이해와 존중의 지평은 한없이 늘어날 것이다. 책을 읽고 서로의 세계에 스며들고 있는 ‘살롱J’ 멤버들을 만났다.
글. 이재영 사진. 김동관
김진하 이런 자리에서 보니 또 새롭군요. 기자님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법원사람들> 독자들을 위해 자기소개부터 할까요? 저는 서울고등법원 공보관 김진하 고법판사입니다. 기자님들께 판결에 대해 잘 설명하고, 기자님들께서 여쭤보시는 것에 답변 잘 해드리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 공보관으로 오면서 야심차게 독서 모임을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잘 되고 있어서 행복하네요. 그 덕분에 이렇게 기자님들과 대담도 함께 하고요.
이영섭 안녕하세요. 연합뉴스 이영섭입니다. 2022년 9월부터였으니 법원출입한 지 곧 2년이 다 되어 가는데요. 독서 모임이 생긴다고 해서 기쁜 마음으로 신청했습니다. 참여해보니 법원 취재만으로 다루지 못했던 인문학적인 이야기가 오가는 독서 모임이 정말 좋더라고요.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진기훈 안녕하세요. 연합뉴스TV 진기훈 기자입니다. 법원, 변호사 단체 등 출입하면서 그분들의 이야기, 재판과 소송에 관련된 이야기를 전하고 있고 이제 8개월 차입니다. 채 1년이 안 되었는데 그사이 굵직한 사건들이 많았어요. 여기 계신 기자분들과 공보관님들 도움으로 놓칠 수 있는 부분들 잘 챙겨가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오늘 대담, 함께 하게 되어서 기쁘네요.
김철희 안녕하세요. YTN 김철희 기자입니다. 1년 2개월 정도 법원 출입하고 있고요. 법원이라는 출입처가 정도 많이 오가고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곳이라 참 좋습니다. 저희 모임이 통신기자, 방송기자, 신문기자로 밸런스 있게 구성되어서 다양한 이야기 들을 수 있어서 독서 모임에 즐겁게 참여하고 있습니다.
유선희 안녕하세요. 경향신문 유선희입니다. 저는 여기서 출입 기간이 가장 짧은데요. 2월 말부터 출입했으니 이제 7개월 차입니다. 다행히 공보관님 오셨던 시기와 맞물려서 처음에 동질감이 느껴져서 많이 찾아뵀어요. 그때 책장에 책이 진짜 많아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후에 독서 모임을 한다고 하셔서 바로 신청을 했고요. 저희 조 멤버들도 너무 좋아서 열심히 참여하고 있습니다. 지금 헌법재판소 포함해서 법원 전부를 맡고 있는데 법원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하는 데 큰 도움을 받고 있어요. 모두 감사드립니다.
이종민 안녕하세요. 세계일보 이종민 기자입니다. 저는 1년 반 정도 법원을 출입하고 있고요. 공보 역할을 하는 판사님들께서 법원 소식을 잘 전달할 수 있게 저희에게 도움을 많이 주시는데, 이렇게 독서 모임도 만들어주셔서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모관님께서 어떻게 이 독서 모임을 만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해요.
진기훈 저도 여쭤보려고 했습니다. 어떻게 시작하시게 된 건가요?
예상치 못했던 뜨거운 반응
김진하 저는 기본적으로 책 읽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책 읽고 소통하는 건 더 좋아하고요. 혼자 읽는 것보다 함께 이야기 나눌 때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각 법원 다닐 때마다 독서 모임을 했어요. 고등법원에 와서 너무 바빠서 못하다가 공보관을 하게 되면서 기자님들과 독서 모임을 만든 거죠.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고 싶어서 만든 이유도 있고요. 조금 거창하게 국민들이 기자님들을 통해서 법원을 접할 텐데, 사법 업무에 대해서 좀 더 심층적으로 아시면 기사 쓰시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어요. 국민들은 판결을 직접 보는 건 아니니까 판결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기사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김진하 서울고등법원 고법판사(공보관)
이종민 조금 오그라들지만 국민 대표로 와 있다고 생각할 때도 있는데 모임을 하고 소통하면서 법원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고 말씀하신 것처럼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이영섭 다들 기다렸다는 듯 신청을 했잖아요.
김진하 책을 같이 읽으면 소통도 자연스러워지고 더 친해지잖아요. 그런 취지에서 몇 분께 말씀드리니까 너무 반응이 좋아서 공지를 올리게 된 거죠. 생각보다 커졌어요. 하하.
이영섭 전에 다른 법원에서 독서 모임을 가지셨다고 했는데요, 그때 판사님들과 주로 하신 거죠?
김진하 그렇죠.
이영섭 판사님들과 하실 때랑 저희와 할 때랑 차이점이 있으신가요?
김진하 음, 대답하기 어려운데… 일단 저는 지금 너무 재밌어요. 판사님들과 시선이 비슷했다면, 기자님들은 다른 시각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하시니까 그게 가장 큰 차이인 것 같아요. 독서 모임 각 조마다 담당 판사님들이 계신데 다들 만족스러워하세요. 기자님들의 생각을 듣는 것에 신선한 느낌을 받는 것 같아요.
진기훈 공보관님께서는 저희 조뿐 아니라 다른 조의 모임도 참여하시잖아요. 저희와 책이 다른 조도 있었을 텐데. 판사님들의 반응이 어땠는지 좀 궁금하네요.
김진하 다들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각 조별 판사님들과 깊게 얘기는 안했는데, 기억나는 반응 중 하나는 기자분들이 솔직하다는 거였어요. 아무래도 판사님들이 지금 기자님들보다 조금 연배가 높은 분들이 많다 보니 직설적으로 질문을 하고 느낌을 이야기하는 게 좋았다고 하시더라고요. 또 판사들이 활동 반경이 생각보다 좁아요. 처음엔 법조인 중심이었다가 갈수록 법원 중심으로 인간관계가 형성되거든요. 그래서인지 사회의 다른 목소리를 듣는 것 자체로 좋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그렇고요.
이영섭 판사님들께도 좋은 시간이 되었다니 다행이네요. 처음에 이렇게 모임이 많아질 거라고 생각하셨어요?
김진하 처음엔 7~8명씩 한두 팀 정도 생각을 했어요. 적은 인원이라고 해도 알음알음 모을 수는 없어서 기자단 간사님께 말씀을 드렸죠. 간사님께서 전체 공지로 전달해 주신 것 같은데 60분 정도가 하신다고 해서 당황했어요.
이종민 생각하신 것에 몇 배가 몰린 거네요.
김진하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죠. 그래서 생각한 게 팀을 짜서 오라는 거였어요. 저희가 임의로 하는 것보다 서로 마음 맞고 친분 있는 분들이 한 팀이 되는 게 좋을 것 같았거든요. 그러면 결국 몇 분 안 남지 않을까 했는데, 중간에 몇 분이 바뀌었을 뿐 결국 60분 전부 들어오셨어요. 9팀 정도 되죠. 거기에 제가 섭외한 책 좋아하는 판사님 6분과 저 이렇게 구성하게 됐죠.
이영섭 연합뉴스 기자
유선희 공보관님은 9팀에 다 들어가시는 거죠?
김진하 네, 다 들어가고 있어요. 하하.
김철희 정말 대단하십니다.
김진하 그래서 주기를 잘 정해야겠더라고요. 너무 자주 할 수는 없으니까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하는 걸로 해서 9주를 생각했고, 책 선정할 때 9팀 모두 다르면 힘들 것 같아서 5권 정도로 추렸어요. 제가 본 책 중심으로요. 하하. 책은 법원에 대한 이해 혹은 업무에 도움이 될 만한 책으로 골랐죠.
진기훈 판사님들도 흔쾌히 하겠다고 하신 거잖아요.
김진하 네, 안 하신다면 어쩌지 했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어요. 다들 이런 모임을 기다리고 있었나 봐요.
유선희 처음에 이게 과연 흥행이 될까요? 라고 물으셔서 아마 줄 서서 신청할 거라고 했는데, 정말 그렇게 됐어요.
김진하 정말 그렇더라고요. 저희가 1순환이 끝났는데, 해본 결과는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토론 너무 재미있어요. 사실 처음 시작할 때 책 읽을 마음의 여유가 있었는데, 모임을 만들고 나서 굵직한 사건들이 터졌어요. 너무 바빠서 가능할까 싶었는데 잘 마쳤어요. 다행히 저는 5권의 책을 다 읽어놨던 거라 약속을 지킬 수 있었죠.
독서 모임이 필요했던 이유
이영섭 이쯤에서 여러분께 궁금한 게 있는데요. 다들 평소에 책을 좀 읽으세요? 사실 제가 이 모임에 참여한 큰 이유 중 하나는 책을 읽으려는 것이거든요. 평소에 워낙 안 읽으니까요. 그냥 단순 친목 모임이면 참여하지 않았을 거예요.
김철희 제가 모임에 참여한 이유도 마찬가지예요. 사실 취재할 때 법원이 너무 높아 보여서 판사님들이 어려웠거든요. 판사님들과 함께한다는 게 매력적이었고, 일로 만났지만, 사적인 대화를 하면서 서로를 알아간다는 것도 좋았어요. 공통적인 화제를 가지고 이야기하면 조금 더 깊이 알 수 있고 인간적인 모습을 볼 수 있으니까요.
진기훈 같은 생각이에요. 기자들이 취재원분들과 만남을 갖는다고 하면 친목 모임이 많잖아요. 간담회 등 공식적인 자리를 갖는다고 하더라도 결국 친목에 기대는 경우가 많은데 책을 읽고 만나면 이야기를 시작할 화두가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 되죠. 또 딱 책 이야기만 하게 될 줄 알았는데, 거기서 파생이 되어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것도 좋았어요. 독서 모임이니까 가능한 것 같아요.
이영섭 토론으로 시작해서 수다로 끝나죠. 하하.
유선희 저는 사놓고 안 읽는 책이 정말 많은데요. 이번에 함께 읽고 토론한 김영란 전 대법관님의 <판결 너머 자유>도 가지고 있던 책이거든요. 모임을 하면 읽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읽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참여했고, 역시나 읽게 되는 걸 보면서 잘 들어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모임에 들어올 때 친목을 다지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그런데 술자리가 아닌 독서 모임이라니까 더 좋았고요. 수다로 끝난다는 말씀도 하셨는데 수다도 버릴 것 없이 도움이 되고 있어요. 제가 경향신문 내에서 취재 일기를 쓰는데 독서 모임 때 방청석의 의미에 대해서 공보관님이 말씀해 주신 걸 언급했거든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할 의무가 있고 투명성 보장을 위해 열린 재판을 하는데 막상 비어 있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는 말씀을 하셨잖아요. ‘그 자리를 기자들이 채우는 것을 보고 기자들의 역할에 대해 알게 됐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인상적이었어요. 수다지만 자연스럽게 법원 이야기로 흘러가다 보니 이해도도 높아지고 배경지식도 많이 쌓이고 있어요.
유선희 경향신문 기자
이종민 <판결 너머 자유> 토론 때도 말씀드리긴 했는데, 법원에 판결문만으로 설명이 안 되는 것들이 있잖아요. 책을 읽고 판결문이 나오기까지 정말 수많은 고민이 있었는데 짤막한 기사로 다 표현하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그런 것들을 잘 전달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평소에 공보관님께 사소한 것까지 물어보는 게 너무 바보 같아 보이는 건 아닌지 주저하는 때도 있었는데, 그것보다 중요한 건 제대로 알리는 거라는 깨달음을 얻었죠. 내가 궁금하면 다른 사람도 궁금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좀 더 편하게 묻게 되고, 친절한 기사를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아직 잘 못하고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다짐하고 있고요, 이 독서 모임이 그 다짐을 현실로 만들어줄 것 같습니다.
이영섭 이종민 기자님은 평소에 책 좀 읽으시나 봅니다.
이종민 아니에요. 절대 그런 건 아니고요. 최재천 교수의 <공부>에 보면 책은 짬 날 때 교양으로 읽는 게 아니라 굉장히 치열하게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김진하 최재천 교수의 <공부>를 읽으셨으면 평소에도 책을 자주 읽으시네요.
이종민 아닙니다. 작년인가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코너에 있어서 집어 들었어요. 깊이 있게 찾아 읽는 건 못하고 그 정도 수준으로만 읽고 있습니다. 어쨌든 최재천 교수님 말에 굉장히 공감하면서 그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대학 때처럼 의무적으로 읽어야 하는 게 아니니까 사놓기만 하고 끝까지 읽기는 어렵더라고요. 책에 대한 태도를 좀 달리해야겠다고 하던 차에 모임 공지가 떠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참여했어요.
쓰는 사람들에게 읽는 일이란
김진하 제가 모임을 시작하면서 느낀 거는 평소에 읽든 안 읽든 기자님들께서 책을 읽고 싶은 욕망, 욕구, 욕심이 엄청나게 크더군요. 그래서 더 선뜻 참여하신 게 아닐까 싶어요. 원래 운동도 헬스장에 등록해서 돈을 내야 하게 되잖아요. 다행히 저희가 읽는 게 업무랑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종합적으로 동기부여가 되는 형태로 받아들이신 거죠.
이영섭 우리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책을 안 읽던 사람이었으면 갈증이 없었을 텐데요. 저희는 입사 준비가 책 읽고 글 쓰는 거잖아요. 태어나서 가장 책을 많이 읽은 시기였는데 그때 스스로 유식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게 참 좋았는데, 입사하고 오히려 제가 속한 분야에 관해서만 기사를 쓰다 보니까 책을 읽지 않게 됐어요. 옛날의 그 유식해지는 느낌을 맛보고 싶어서 참여한 것도 있어요.
유선희 기자들이 사실 아웃풋을 내는 직업이잖아요. 계속 쏟아내다 보니 인풋에 대한 갈증이 있었어요. 해소하고 싶은데 피곤하다, 시간이 없다 이런저런 핑계로 미루다가 독서 모임을 만난 거죠.
이영섭 저도 피곤하다고 핑계대로 누워서 웹툰을 보는 쪽인데 실제로 주변에 퇴근하고 집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그런 사람을 이길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의무적으로라도 읽어야 한다는 걸 느껴요.
김진하 장기적으로 봤을 때 피곤하더라도 읽어두는 게 맞아요. 기자님들이나 판사들이나 아주 다른 것 같지만 뭔가를 이해하고 글을 쓰는 직업이라는 면에서 비슷하죠. 훈련의 포인트도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결국 어떤 텍스트를 보고 그 텍스트에 대한 자기의 판단이나 의견을 말하는 훈련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죠. 그런 공통적인 부분이 있어서 서로 의견을 나눌 때도 더 생각하게 되는 포인트가 있습니다. 지적 만족감도 얻어가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을 알아가게 된다는 것도 매력적이고요.
이영섭 밥 두세 번 먹는 것보다 깊이 있는 대화 한 번 하는 게 상대를 더 많이 알게 되죠.
진기훈 판결문이나 법원에서 통용되는 글 외의 것을 읽어야겠다는 생각도 있어요. 기사를 쓸 때 알아듣기 쉬운 표현에 대해 엄청나게 고민을 하거든요. 판결문은 판결의 요지를 설명하고 그 때문에 이런 결론이 나왔다는 것을 알려줘야 해서 조금 어려운 글인데요. 이걸 어떻게 쉽게 전할까가 숙제예요. 가끔 쉽고 좋은 표현을 보면 나는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싶어서 복기해보면 많은 글을 접하지 않아서더라고요. 늘 사용하던 텍스트 안에서 글을 고르게 되고, 낯선 법원 용어를 저만 친숙하게 생각해 표현하는 경우도 있고요. 다양한 책을 읽고 좀 더 쉽고 부드러운 표현을 익히는 것도 나의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정말 잘 안 읽게 돼요. 억지로라도 읽게 돼서 다행입니다.
김철희 공감합니다. 읽으면 달라지죠. 이번에 읽고 토론한 <판결 너머 자유>를 한정해 이야기하자면 제가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 기사도 가끔 쓰는데요. 제가 속한 언론사 특성상 빨리 쓰는 게 좀 중요합니다. 속고를 많이 하는데 그전까지만 해도 이해한 한도 내에서 기사를 처리하는 데 급급했어요. 책을 읽고 나니까 전원합의체에 담겨있는 일종의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친 판결 하나하나가 정말 중요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실제로 파견 노동자 관련 판결이나 동성부부 건보 관련 판결 기사를 쓸 때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썼는데 뭔가 효능감이 높아졌다고 해야 할까요? 그전까지 일로 대했다면 이제는 조금 더 중요한 사회적 의제를 생각하면서 기사를 쓰게 됐어요.
김철희 YTN 기자
김진하 판결의 의미에 대해서 좀 더 강하게 들여다보는 계기가 됐군요.
진기훈 예전에는 합의체도 몇 대 몇인데 몇 대 몇이다 이렇게 쓰거나 짧은 기사 같은 경우 그것도 안 쓰고 넘어가기도 했는데 <판결 너머 자유>를 읽고 그 몇 대 몇의 의미를 많이 생각했어요. 판결문이 나오기까지 반박 의견 재반박 의견이 그렇게 많이 달리는지도 몰랐어요. 알고 쓰는 것과 모르고 쓰는 건 정말 다른데 많은 공부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책을 읽는 시간
김진하 긍정적으로 생각하시니 다행입니다. 그런데 바쁜 중에 주로 언제 책을 읽으시나요?
김철희 주로 주말에 읽습니다. 전에 책을 읽을 땐 20분 정도 보다가 엎고 유튜브를 보곤 했는데 독서 모임 책은 제대로 완독해야 하니까 진득하게 읽게 되더라고요. 이종민 기자님이 치열하게 읽기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엄청나게 공감합니다. 모임을 하니까 좀 더 집중해서 정독하게 되고 제대로 읽으려고 노력해요. 그래서 상대적으로 한가한 주말에 읽으려고 해요.
유선희 저도 주말에 주로 책을 읽는데요. 사실 평일 저녁 퇴근 후에 읽어야지 마음먹지만 낮동안 제가 쓰는 기사든 다른 사람 기사든 활자를 너무 많이 보니까 저녁에는 안 보게 되더라고요.
이영섭 저는 주말에 카페에 책 들고 가서 책을 펼쳐놓고 웹툰 보는 걸 되게 좋아해요.
일동 웃음
이영섭 저 역시 평일에 퇴근하면 텍스트보다 영상이나 웹툰을 더 많이 봅니다. 주말마저 그런 걸 보면 너무 시간을 의미 없이 흘려보내는 건 아닐까 싶어서요. 주말에 책도 읽고 웹툰도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정서적으로 안정감이 들더라고요. 있어 보이기도 하고요. 또 카페에 다양한 사람들 관찰하는 것도 재미있고요. 저 커플은 오늘 첫 소개팅이군, 저 커플은 저래서 헤어졌군, 저기는 정당한 관계가 아니군 하면서요.
유선희 맞아요. 사실 그렇게 의미 없이 잘 흘려보냈는데, 독서 모임 한 후로는 알차게 보내고 있어요. 다른 분들은 언제 읽으시나요?
진기훈 저는 자기 전에 읽는 편이에요.
이종민 되게 좋은 습관이네요.
이종민 세계일보 기자
진기훈 그런 관점이 아니고 책을 빨리 잠들기 위한 수면제로 사용하는 거죠.
유선희 뭔지 알아요. 저도 아주 어릴 때는 시집을 보고 자는 게 습관이었어요. 그런데 <판결 너머 자유>는 어려워서 잠이 안 왔을 텐데요.
진기훈 맞아요. 솔직히 자기 전에 30분씩 읽자가 목표였어요. 그렇게 하면 일주일이면 다 읽겠다 했는데 자기 전에 읽을 책이 아니더라고요. 치열하게 봐야 할 책이었어요. 지금 두 번째 책은 일과 중에 살짝 쉴 때 읽고 있습니다. 이종민 기자님은 언제 읽으세요?
이종민 저도 일단 주말에 읽어요. 평소에 시간이 없냐면 그렇지도 않거든요. 물리적 시간은 언제나 충분해요. 우스개로 그 물리적인 시간을 모으면 대학원도 다닐 수 있다고 하는데, 그러니까 이건 개인적인 특성이긴 한데 잠깐 딴소리 좀 하자면요. 해도 될까요?
일동 네, 그럼요.
이종민 ‘금쪽같은 내 새끼’인가요? 그 프로그램의 숏폼 영상을 봤는데요. 어떤 중학생 금쪽이가 집에만 오면 항상 소파에 누워서 핸드폰만 보고 쇼츠만 보는 거예요. 그걸 보고 오은영 박사가 너무 당연하다고 하더라고요. 하루 종일 밖에서 내 통제 밖의 일들만 겪다가 집에 와서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걸 하면서 쉬는 거라고요. 결론은 평일에 퇴근해서 책을 못 읽는 건 정당한 사유라는 말씀을 드리는 건데요. 하하. 퇴근하고 집에 가면 치열하게 읽는 게 잘 안되더라고요. 뭔가 더 고민하고 싶지 않고 쉬고만 싶고요. 그래서 주말에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온전히 빠져들 수 있는 시간에 읽으려고 해요.
진기훈 대단하신데요? 저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놀고만 싶던데요. 하하. 그 시간만큼은 서초동과 분리된 다른 방향에서 지내고 싶다는 마음으로요. 주말에 잘 놀고 월요일을 맞이했을 때랑 아닐 때랑 많이 다르거든요.
유선희 체력이 좋으시네요. 노는 것도 체력이 따라야 한다는 걸 요즘 깨닫고 있어요.
진기훈 뛰어노는 건 아니니까요. 친구들 만나서 맛있는 거 먹고 이야기 나누는 정도니까 충분히 가능하죠.
이종민 ‘E’시죠?
진기훈 네, 하하.
사실로 쓰는 소설과 판사의 연작 소설에 대하여
김철희 저는 평일에는 쉬운 소설책을 많이 읽어요. 오래 집중하지 못하니까 머리를 많이 써야 하는 책은 주말에 읽고, 평일에는 간단한 소설책으로 재미있는 거 위주로 읽으려고 해요.
이영섭 좋은 습관이네요. 처음 입사했을 때 기자들이 책을 읽으면 사회과학이나 취재하는 분야에 관한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기사 잘 쓰는 걸로 정평이 나 있는 선배가 소설을 많이 읽으라고 하더라고요. 기사가 사실로 쓰는 소설이라면서요. 단편 소설의 구조를 익혀두면 기사 쓰는 데 정말 도움이 된다고 권하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좋아하는 소설은 판타지라 선배가 추천한 문학상 탄 소설들이 좀 안 맞더라고요. 그 뒤로는 그냥 사회과학 책을 주로 읽고 있어요.
진기훈 동감하는데요, 저도 수능 때 문학과 비문학을 비교해 보면 문학이 더 어려웠어요. 비문학은 답이 딱 정해져서 더 친절한 느낌이고 문학은 감정선을 따라가야 하니까 선악의 판단도 잘 안되고 참인가 거짓인가도 헷갈리고요. 감정이 깊은 소설을 읽는 게 어렵긴 해요. 특히 우리 직업은 자꾸 결론을 찾으니까 더 그런 것 같아요.
진기훈 연합뉴스TV 기자
이영섭 주제가 뭐지? 결론이 뭐야? 나무위키를 찾게 되고, 그렇죠. 하하
진기훈 저는 요즘 북튜버들의 리뷰 영상 많이 봐요.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었구나 공감도 하고 저런 생각을 할 수도 있구나 한 번 더 고민하기도 하고요.
이영섭 김철희 기자님은 요즘 소설 무슨 책 읽으세요?
김철희 최근에 <풀이 눕는다>라는 한국 소설을 읽었는데 처음에 너무 재밌었어요. 남녀 주인공이 가난 속에서 사랑하는 내용인데 흡입력이 좋아요. 그런데 절반쯤 되니까 똑같은 이야기가 나오는 거예요. 기승전결 없이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는데 슬슬 주제가 나와야 할 텐데 싶더라고요. 원래 소설을 좋아했는데, 직업병이 생긴 거 같아요. 판사님도 재판하실 때 그런 답답함 느끼세요? 이제 슬슬 주장을 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나요?
김진하 너무 많죠. 앞에 두 장은 빼고 하면 좋겠다는 생각할 때도 있고요. 말씀하신 것과 관련해서 아주 유명한 법철학자인 로널드 드워킨이 판사는 연작 소설가라는 말을 했어요. 기자님들도 우리 판사들도 앞의 수많은 판결과 사건들의 전승을 받아서 쓰는 거잖아요. 제가 추천한 5권의 책 중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이 쓴 <시적 정의>라는 책의 주제가 문학적 재판관이에요. 재판에 있어서 문학의 쓸모에 대해 다룬 책이거든요. 누스바움은 이 책에서 판사를 합리적 감정을 지닌 관찰자로 표현해요. 소설 독자와 재판관이 비슷하다는 거죠. 합리적 감정을 가지고 참여했다가 다시 빠져나와서 모두에게 공정한 판단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그러니까 공적 영역에서의 합리적 감정의 쓸모에 대해 길게 이야기했어요. 아마 기자님들이 읽으셔도 공감이 되실 거예요.
이종민 세 번째 책으로 읽으면 좋겠네요.
진기훈 듣고 나니까 <시적 정의>를 두 번째 책으로 해도 좋았겠어요. <판결 너머 자유>는 사회적 이슈가 되고 논쟁이 치열했던 판결에 대해 존 롤스의 관점에서 법관들이 어떻게 판단했는가를 보는 책이었잖아요. 그런데 문학적 관점에서 어떻게 보이느냐에 대한 책이니까 이어서 이야기 나눠도 좋겠다 싶습니다.
김진하 법조 선배들도 아까 이영섭 기자님 선배처럼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소설 많이 읽고 시 많이 보라고 하세요. 저희 두 번째 책 제목을 참 말하기 그런데 <개소리에 대하여> 다들 잘 읽고 계시죠?
일동 아직 앞부분 조금씩 읽고 있습니다.
언론과 사법이 살롱에서 깔롱하게
이영섭 공보관님 저희 조 이름 알고 계세요?
김진하 그럼요. 깔롱살롱이잖아요.
이영섭 공보관님께서 독서 모임을 ‘살롱J’로 명명하셨잖아요. 너무 멋지더라고요. 그래서 살롱에 어울리는 멋지고 간지나는 의미의 단어로 뭐가 있을까 하다가 깔롱지다가 떠올라서 깔롱살롱으로 지었습니다.
진기훈 단톡방이 깔롱살롱 독서 모임으로 되어 있는데, 톡방을 열 때 그 단어를 보면 자꾸 영섭 기자님 음성지원이 돼요. 텍스트에서 소리가 들린다고 할까요.
김진하 깔롱살롱 좋습니다. ‘살롱J’를 기억 못 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감사해요.
이영섭 ‘살롱J’에 담긴 의미가 정말 좋더라고요.
김진하 Journalism, Judge, Justice의 앞 자인 ‘J’를 땄고 살롱의 의미를 살리고 싶었어요. 18세기 새로운 시민사회가 생겨날 때 살롱에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소식을 전해야 하니까 신문이 생기고, 각자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근대 사법 체계가 형성됐잖아요. 개인이 발견된 공간이죠. 어떻게 보면 현재의 사법과 언론의 모태가 된 시공간인데 그 모형을 지금 구현해 보고 싶었고, 또 나름의 사명감도 있었어요. 요즘 우리 사회가 대화가 많이 부족하잖아요. 언론과 사법이 먼저 대화를 나누는 공론장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극화되거나 갈라진 공론장이 아니라 사심 없는 공정한 마음에서 함께 공동체 문제를 생각해 보는 그런 장이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유선희 깊은 뜻이 있었네요. 더 뿌듯해집니다.
이종민 이름도 정말 좋지만 저는 저희 모임 분위기가 참 좋아요. 공보관님께서 제안하셔서 모임을 할 때 직함 다 떼고 이름 옆에 ‘님’자를 붙이잖아요. 서로 동등하고 편안한 관계에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게 우리 모임의 좋은 점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영섭 좋은 모임인데요. 독서 모임은 판사님의 공보 업무가 끝나면 없어지는 건가요?
김진하 계속될 거라고 장담은 못 하겠지만 다른 형태로 이어질 수도 있고요. 제 뒤에 오는 판사님이 발 벗고 이어나가실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요. 저는 필요하다면 언제나 브리지 역할을 할 생각은 있어요.
유선희 법원 출입하시다가 출입부서 옮긴 기자분들 중에 계속 독서 모임 참여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수요가 확실하다는 건데 계속되면 좋겠네요.
김진하 다 좋지만, 이 모임을 통해 기자님들끼리 서로 친해지는 게 보기 좋더라고요.
진기훈 기자실 풍경이 살짝 바뀌긴 했어요. 책을 읽고 있는 기자님들이 많이 늘었어요. 하하.
김진하 가끔 전투적으로 읽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김철희 이 모임을 하고 나서 회사 동료나 친구들과 독서 모임을 만들까 생각했어요. 아직 시도는 안 했지만 언젠가 하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진기훈 출입처 독서 모임 간다고 하면 회사 동료 기자들이 신기해해요. 그리고 무슨 얘기 하냐고 물어봐요. 당연히 책 얘기한다, 그리고 파생돼서 일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가 오간다. 출입처 간담회 모임보다 더 많은 얘기를 한다고 하면 부러워하죠. 출입처 독서 모임이라니까 처음엔 딱딱할 거 같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김진하 의무적 관계의 모임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법관에 대한 선입견도 있고요. 그래서 더 이런 모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기자들의 세계가 있고 법관의 세계가 있는데 서로의 생산물만 보고, 밥만 먹는 것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워요. 어떤 텍스트를 두고 각자의 세계관을 나누면 빨리 깊이 이해하게 되죠. 저는 선배들이 덕업일치를 이뤘다고 해요. 책을 읽고 소통하는 거 좋아하는데 이런 모임을 만들어서 하고 있으니 그런 말이 나온 거죠. 함께 해주시는 기자님들 모두 감사하고요. 긴 시간 말씀 나눴는데 이제 마무리 인사를 할까요?
이종민 살롱에 대한 역사를 짚어주셔서 모임에 대한 무게감이 더해집니다. 공보관님 말씀대로 저희가 분열된 사회에 살고 있고 언론도 문제의식을 가져야 하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분열에 이바지하지 않는 기사를 쓰기 위해 노력해고 고민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고요. 또 이 모임도 그런 차원에서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즐겁게 책 읽고 이야기 나누었으면 합니다.
유선희 우리 사회에서 각자 말할 권리가 너무 중요해졌고, 또 말할 수 있는 창구도 많아진 이때 재판부의 역할, 판결의 역할, 기자의 역할의 기준을 좀 더 잘 세워야 한다고 봐요. 이 모임을 계기로 각자의 공간에서 말할 권리에 대해 더 고민하고 그것이 독자에게 가닿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독서 모임 만들어주셔서 감사해요.
김철희 저는 기자 일도 참 잘 맞고, 또 법원 출입도 재미있고 즐거운데요. 최근에 내가 너무 일처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됐거든요. 그런데 독서 모임을 하면서 좀 더 다른 관점으로 일에서 벗어나서 의미를 찾게 되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이 모임을 하면서 정형화된 텍스트인 판결문만이 아닌 좀 더 다양한 글을 읽도록 노력하려고 합니다. 함께 읽어봐요.
진기훈 저희는 늘 써내고 송출하는 역할이라고만 여겼는데, 생각해 보니 저희가 정말 많이 들어야 하는 직업이더라고요. 듣는다는 게 꼭 누군가에게 듣는 것만이 아니라 글로도 생각을 들을 수 있는 거잖아요. 모임을 하면서 늘 일로 접하는 글을 보기만 한 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했어요. 책은 누군가의 이야기인데 그걸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못 했구나 싶더라고요. 많이 듣는 연습을 좀 해야하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됐고, 판결과 관련된 책뿐 아니라 다양한 글을 접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영섭 언론사 입사 준비하면서 느낀 건데 잘 쓰려면 많이 읽어야 하더라고요. 옛 현인이 다독 다작 다상량이라고 했잖아요. 저희 일이 다작하고 다독도 할 수 있죠. 그런데 상량을 충족하기가 어려워요. 다행히 이 모임을 하면서 다독과 다상량을 다 채우고 있습니다. 기사 쓰는 데도 도움이 되고 있고요. 앞으로도 열심히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겠습니다.
김진하 긴 시간 이야기 나눠서 즐거웠습니다. 덕업일치 중인 저는 요즘 참 행복합니다. 이제 두 번째 책으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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