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험난한 산길이라도 절벽과 산봉우리의 위치를 알면 힘차게 나아갈 수 있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낯선 길은 두렵다. 증인들이 법정에 들어가는 건 아무도 모르는 숲길 앞에 선 기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법정은 미지의 세계, 잘잘못을 심판받는 엄숙한 이미지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법원에는 증인지원관이 있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낯선 길 앞에 선 증인들의 두려움을 달래주고 손을 잡고 안내해 주는 사람들.
권언미, 윤지령, 김혜영 증인지원관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W. 정혜영 P. 조인기
일동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김혜영 두 분 멀리서 오셨으니 잠시 숨 돌리시고, 제가 먼저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저는 서울중앙지방법원 증인지원 업무를 맡고 있는 김혜영입니다. 2023년 1월, 증인지원관으로 발령받았으니 벌써 1년 8개월가량 지났네요.
윤지령 안녕하세요. 수원지방법원과 수원고등법원 증인지원 업무를 맡고 있는 윤지령입니다. 저는 비교적 초창기인 2016년에 증인지원관을 한차례 했었습니다. 2005년 입사해서 2016년 평택지원, 2022년 성남지원만 빼고 쭉 수원지방법원에 있었는데, 평택지원에 있을 때 증인지원관을 겸임했었어요. 한번 경험을 해봤지만 그때는 겸임이었고 작년 7월부터 지금까지 전담으로 증인지원 업무를 하고 있죠.
김혜영 경력자시네요.
윤지령 그런 셈이죠. 운이 좋았어요. 2016년 평택지원에 가기 전에 수원에서 증인지원관들이 바쁘시면 저한테 대직을 부탁하셨어요. 한두 번 정도 경험을 해본 거죠. 호기심을 가지고 있던 차에 평택지원에서 증인지원 업무를 맡게 됐죠. 해보니 저와 잘 맞더라고요. 권언미 계장님은 지금 증인지원관을 하고 계신 건가요?
권언미 지난 7월까지 근무했어요. 안녕하세요. 부산동부지방법원 민사재판부 참여관 권언미입니다. 7월에 인사이동을 했는데, 대담자로 불러주셔서 와도 되는 자리인가 긴장을 많이 했습니다. 저는 서면으로 진행하는 줄 알았어요.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거라서, 사투리 쓰는데 괜찮냐고 여쭤봤지요. 하하.
윤지령 해주실 말씀이 제일 많으실 거 같은데요.
권언미 아닙니다. 오늘 오면서 뭐랄까 약간 증인의 마음을 알게 됐을까요? 어찌 보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뭔가 낯선 곳에서 처음 뵙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눈다니까 엄청나게 긴장이 되더라고요. 좋은 일로도 이러는데 하물며 꺼내고 싶지 않은 트라우마를 다시 생각해서 이야기해야 하는 증인들은 얼마나 힘들까, 역지사지가 됐습니다. 증인지원관을 떠나고 나서야 그분들을 이렇게 이해하게 되네요. 이 마음을 잘 기억해 뒀다가 기회가 되면 다시 한 번 해보고 싶어요.
김혜영 처음부터 엄청 잘하셨을 것 같은데요?
윤지령 맞아요. <그림으로 하는 아동 증인을 위한 안내>도 만드셨잖아요
권언미 아, 그건 제가 아동, 청소년들 문제에 관심이 많아요. 어린아이들에게 설명할 때 안내문 하나 주고 이해시키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눈높이에 맞춰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만들게 됐어요.
김혜영 증인지원관들은 다 아는 자료죠.
윤지령 정식 책자로 배포되기 전에 커뮤니티에 올리신 자료를 프린트해서 쓰고 있었어요.
권언미 안 그래도, 두 분이 댓글 달아주셨었더라고요. 이렇게 인연이 돼서 만나 뵙네요.
김혜영 직접 만드신 거죠?
권언미 제가 콘티를 짜고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여동생과 함께 작업하여 그림으로 구성했어요. 아무래도 아이들 눈높이에 그림 설명이 좋으니까요. 그 자료를 지난 8월 행정처에서 책자로 제작해서 배포하신 것이죠.
윤지령 처음 11세 아동 증인지원을 해야 할 때 아주 요긴하게 썼어요. 이걸 어떻게 설명하나, 저 어린 아이가 이해할까 막막했는데 쉽게 설명이 되어 있는 자료가 있어서 정말 반갑더라고요.
권언미 감사합니다. 사실 과연 활용이 될까 반신반의하면서 커뮤니티에 공개를 했거든요. 유용하게 쓰셨다니 다행입니다.
권언미 참여관(부산동부지원)
김혜영 제가 미성년 피해자 증언 안내 영상 제작 TF 위원인데요. 저희도 이 자료를 참고해서 영상을 만들고 있어요.
권언미 와, 반가운 소식이네요. 제가 편해지려고 만들었는데 이렇게 실제로 사용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감동입니다.
윤지령 아이들에게도 유용하지만 장애인 분들을 위해서도 아주 좋은 자료예요.
김혜영 맞아요. 장애인 분들께도 자주 써요.
윤지령 지적장애인인 분들의 경우 제가 어느 수준으로 맞춰서 설명을 해야 될지 가늠이 잘 안되거든요. 딸아이에게 하듯 설명해도 반응을 안 보여주실 때가 있어서 난감하고 어려운데 그럴 때 이 자료를 보여드리면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해하시더라고요.
권언미 장애인 분들도 설명을 해드리는 게 쉽지 않죠. 저는 정말 아이에게 하듯 했어요. 저 안에 들어가면 검은색 망토를 입은 사람들이 질문을 할 거라고 얘기하고, 우리만 아는 비밀 통로가 있으니까 조용히 하고 거기로 가보자고 하고요. 게임을 하거나 놀이하듯 하는 거죠.
김혜영 네, 그런 분들은 검은 물체만 봐도 소스라치게 놀라곤 하시더라고요. 복도에서 판사님이 지나가는데 놀라서 주저앉은 분도 있었거든요. 미리 여러 이미지에 대해 설명해 주는 게 필요하더라고요.
마음은 공감하되 전문가의 객관성으로
윤지령 궁금한 게 있는데, 계장님들은 처음 증인지원관할 때 어떠셨어요? 증인들한테 감정이입되고 그러지 않으셨나요?
김혜영 그런 면이 없지 않았죠.
윤지령 초창기 증인지원이라는 게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제가 첫 증인지원을 했었잖아요. 그때는 거의 성폭력 피해자들만 증인지원을 했었어요. 당시 증인 대부분 많이 불안해하시고 너무 긴장한 상태로 오세요. 그분들을 달래다 보니 저도 감정이입이 돼서 스스로 긴장을 하더라고요. 피고인이 법정에서 이야기하면 저건 아닌 것 같다고 혼자 의심하기도 하고 화가 나서 노려보기도 하고요. 솔직히 그때는 제가 증인한테 감정이 동화되었다고 못 느꼈거든요. 또 지적 장애인이나 미성년자, 근친 성폭행 사건 피해자들을 만나고 나면 며칠간 계속 생각이 나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런 공감하는 감정들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러면 안 되는 거더라고요.
권언미 저는 법원 직원으로 중립성에 대한 부분도 생각하려고 애썼어요. 증인들이 증인지원서비스 안내를 위해 전화를 하거나 이후에도 절차적인 질문을 하면서 간혹 변호사의 역할을 우리들에게 기대하는 경우가 있는데 증인이 증언을 완수하도록 하는 게 우리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추려고 했어요.
김혜영 저도 윤지령 계장님처럼 분리가 잘 안되더라고요. 공감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감정이입을 하니까 집에 돌아가서도 우울해지더라고요. 어느 때는 주말 내내 우울한 채로 보내기도 하고요. 증인의 마음을 공감하되 전문가로 더 나아가려면 어느 정도의 선은 있어야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일할 때의 마음과 일상에서 저의 마음을 따로 떼어 놓으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어요.
권언미 계속 가져가면 너무 힘들어지고, 오히려 그게 좋지 않은 방향으로 작용할 수도 있으니까요.
윤지령 저도 요즘 그러려고 많이 노력해요. 그런데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고 어떤 증인을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해요. 이제는 객관적으로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데, 작년 하반기에 증인과 함께 엉엉 운 사건이 있었어요.
증인, 당신은 소중한 사람입니다
김혜영 울 일이 많죠. 속속들이 알고 나면 정말 화도 나고 눈물도 나고 그러는 것 같아요.
윤지령 보고가 안 된 사건인데, 성폭력 피해자 딸이 있었고 엄마도 함께 증인으로 소환이 됐어요. 1층에서 기다리는데 엄마만 왔더라고요. 3층 증인지원실로 모셔서 취약 증인 관련해서 설명을 해드리려는데 갑자기 어머니가 저를 보시더니 딸이 꼭 와야 하냐고 물으시는 거예요. 그래서 보통 저희가 일반적으로 하는 이야기를 했죠.
권언미 형사 사건에서 증인이 엄청 중요하니까 꼭 와야 한다는….
윤지령 네, 한 번은 꼭 오셔야 한다고 하니까 어머니께서 딸이 그 사건을 겪고 큰 충격을 받아서 방 밖으로 아예 못 나오는 상태인데요. 지금 겨우 방 밖으로 나오게 됐다는 거예요. 어머니는 딸의 정신 상태에 대해 증언하려고 증인으로 채택된 거고요. 그런데 딸이 증인 소환장을 받고 얼마 뒤 손목을 그었다면서 저에게 딸이 있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저도 딸이 한 명 있다니까 그렇다면 이해하실 수 있지 않겠느냐면서 우세요. 당신은 이제 사건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면서요. 본인이 할 일은 딸을 지키는 것이라고 딸이 증인석에 서지 않아서 피고인이 무죄를 받아도 괜찮으니 딸을 살려달라고 우시는데, 남들 앞에서 우는 거 정말 싫어하는데 같이 펑펑 울었어요.
김혜영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윤지령 차마 딸을 설득해달라고 말을 못 하겠더라고요. 당사자인 딸이 안 나와서 어머니 증인 신문도 일단 연기하고 보내드렸는데 다행히 다음 기일에 딸이 나왔어요. 그때 제가 차마 따님을 데리고 오시라는 말은 못 하겠다고 말씀드렸는데, 어떻게 딸을 설득하셨나 봐요.
권언미 증인지원이 형사재판에 한정되다 보니 증인 중에 성폭행 피해자들이 많죠. 가슴 아픈 이야기가 정말 많아요. 저는 의붓아버지가 딸을 성폭행한 사건인데, 어머니랑 딸이 같이 증인으로 나왔어요. 저희가 지원할 동안 어머니가 굉장히 아이에게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차분하게 계시더라고요. 용기도 주고, 아주 의연하셨어요. 그런데 본인이 증언할 때 대성통곡을 하시더라고요. 그걸 보는데 가슴이 찢어졌어요. 당연히 이해되는데 저는 대기하고 있는 딸이 어머니가 무너져서 우는 모습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더라고요. 그래서 진정을 시키고 따님 생각해서 침착하셨으면 좋겠다고 하니까 수긍하고 잦아들더라고요. 어른들도 어른인데 아이들이 참 안타깝고 안쓰럽죠.
김혜영 3월부터 시작한 미성년 피해자 대상 증언 안내 영상 제작 TF도 아이들에 대한 염려와 걱정으로 시작됐어요. 아이들이 피해를 본 것도 안쓰러운데 법정까지 나와야 하니까 그럴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죠.
권언미 저는 청소년이나 아동 피해자들한테 마지막으로 꿈이 뭐냐고 꼭 물어봐요. 자신들의 잘못도 아닌 사건으로 아이들이 꿈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에서 묻기 시작했는데요. 아이들은 상처 입었더라도 꿈을 간직하고 있더라고요. 그걸 상기시켜 주는 거죠. 너는 꿈을 가진 소중한 사람이야, 라고요.
윤지령 좋은 아이디어네요. 저도 한 번 해봐야겠어요.
친절해서 고맙다는 말
김혜영 더라고요. 경계하고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어요. 자식들 걱정할까 봐 얘기도 안 하고 왔다면서 엄청나게 조심하셨죠. 음료수를 대접하면서 긴장 풀어드리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할머니께서 갑자기 제가 당신 손녀랑 너무 닮았다고 하시는 거예요. 손녀가 유학중이라면서 자랑을 좀 하시더니 법정에 들어갈 때 꼭 같이 가달라고 부탁하세요. 알겠다고 하고 조금 일찍 나가서 긴장도 풀어드릴 겸 빈 법정에 들어가 위치랑 구조를 보여드리는데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칠십 평생 법정을 TV에서만 봤지, 처음이라면서요. 너무 신기하다, 생각보다 너무 좋다면서 계속 감탄하셨어요. 시간이 돼서 법정에 들어가 증언 잘하고 가시면서 제가 만났을 때 드린 사탕하고 껌을 다시 저에게 주시더라고요. 고맙다고요.
권언미 무슨 의미로 그걸 주셨는지 알겠네요.
김혜영 네, 맞아요. 그걸 주시면서 말씀하셨어요. 사실 증인 소환장 받고 신고한 거 후회하고 계셨대요. 그런데 죽기 전에 사회에 도움 되는 일을 하게 된 것 같아 기쁘다면서 계속 고맙다고 인사를 하셨어요. 젊은 사람들이 해코지당할까 봐 신고해 놓고 너무 힘들었는데, 좋은 경험도 하고 마음도 풀렸다면서 가시더라고요.
윤지령 생각보다 고령의 증인 분들이 많으시죠. 저도 80세 이상 할머니 할아버지들과의 추억이 좀 있어요. 휠체어를 못 구해서 오신 어르신들께 제 팔을 지팡이 삼아 잡으시라고 하고 안아드리듯이 부축해서 법정까지 가곤 해요. 어느 할머니는 극존칭을 쓰시면서 손녀처럼 대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고 가시는 데 마음이 짠했어요. 꼭 우리 할머니 같으셔서 다칠까 봐 걱정되는 마음에 한 일인데, 굉장히 고마워해 주시더라고요.
윤지령 증인지원관(수원지방법원)
김혜영 어르신들이 정도 많으시고, 화나고 억울해서 오셨다가도 또 저희한테 의지하면서 잘 풀어지기도 하시죠. 한편으로 아이처럼 순수한 면이 있으신 것 같아요.
윤지령 어르신들과의 일화를 하나 더 이야기하자면, 고엽제 피해를 보신 할아버지가 친구분과 함께 오셨어요. 그분이 십 분에 한 잔씩 커피를 타서 드셔야 한다더라고요. 계속 커피를 드시는데 제가 잠깐 업무를 보느라 못 타드렸어요. 그런데 정수기가 버튼 누르는 전자식이다 보니 조작이 미숙하셨던 거죠. 뜨거운 물을 눌러야 하는데 찬물이 눌리고, 잘못 누른 줄 모르고 한 번 더 눌러서 바닥에 물이 흥건해졌어요. 업무를 마치고 돌아오니 두 어르신이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시길래 저도 자주 하는 실수라고 안심시켜 드리고 바닥을 닦았어요. 이런 상황을 엄청나게 고마워하시더니 가시기 전에 ‘친절 공무원’으로 게시판에 올려주신다고 하셔서 창피하니까 절대 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어요.
권언미 법원 업무하면서 ‘친절하게 해줘서 고맙다’는 얘기 잘 못 듣잖아요. 그런데 증인지원 업무하면서 정말 많이 들어요. 그게 우리 일의 보람인 것 같아요. 오실 때 정말 긴장된 모습으로 왔다가 끝날 때 홀가분하게 떠나는 뒷모습 보면 또 보람이 느껴져요.
피해자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는 일
윤지령 가슴 따뜻한 일이 많죠. 반대의 경우도 있고요. 하하. 저는 딱 한 번 경험했는데, 일반 증인지원을 할 때였어요. 법원에 사기 사건이 엄청 많잖아요. 피해자 중 한 분이셨는데, 일반 증인지원실에서 만나서 설명해 드리려고 ‘이제 앉으세요’라고 하는데 소환장을 제 얼굴에 던지시더라고요. 그러면서 ‘그래 한번 설명해 봐’라고 반말로 하시는데 그때는 내가 이런 수모를 당하려고 여기 있는 게 아닌데 싶더라고요. 속상하기도 하고 화도 났는데 제가 조금이라도 진정시키지 않으면 법정에 있는 다른 직원에게 무례한 행동을 할 수 있어서 마음을 가다듬고 차분히 설명을 시작했죠.
권언미 정말 극한직업 같은데요.
윤지령 맞아요. 그분은 끝까지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있다가 가셨어요.
김혜영 저는 어떤 증인 분이 되게 커다란 짐을 가져왔어요. 그걸 법정에 가지고 갈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여기 두면 다른 증인들이 들락거리니까 제가 도와드릴 테니 같이 올라가자고 했어요. 그랬더니 여기 두고 가고 싶다고 우기더라고요. 그러면서 가방에서 물건을 하나하나 꺼내서 확인시켜 주시더라구요.
권언미 어머 세상에, 그런 어르신이 있어요?
김혜영 아니요. 30대 여성분이셨어요. 굉장히 예민한 분이더라고요. 사기 사건 피해자였는데, 트라우마 때문인지 ‘CCTV가 있냐’고 확인부터 하고, 엄청나게 깐깐하게 구시다가 증언하러 올라가셨어요. 다 끝나고는 기분이 좋아지셨어요. 인사를 하러 오셨더라고요.
윤지령 별별 분 다 계시죠. 증언을 끝나고 나서 집에 못 간다고 버티는 분들도 계시잖아요. 법정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못했다고요. 조울증을 앓고 있는 증인이셨던 것 같아요.
권언미 피고인 반대 신문권에 대해 설명할 때 어떠셨어요? 피고인 방어권 때문에 피고인도 질문을 신문을 할 수 있다고 하면 엄청난 분노가 터져 나오잖아요. 그 나쁜 엑스가 무슨 방어권이냐면서 흥분하시고요. 또 특별 증인의 경우에는 선고가 되고 선고 통지를 해주는데 간혹 무죄인 경우가 있잖아요. 그러면 전화해서 왜 무죄냐고 불같이 화를 내시는 분들도 있죠. 그럴 땐 형사소송법에 따른 절차적인 설명을 하는데 힘들어요. 다른 분들은 어떻게 대처하시나요?
김혜영 저는 그냥 듣고 있어요. 나는 당신을 이해하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잘 설명하면 대부분 누그러지더라고요.
윤지령 그분들의 주장이 얼토당토 안 한 게 있긴 한데, 그래도 자세히 들어보면 또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요. 그 부분을 이해하고 표현해 주면 상대방도 느끼더라고요. 좀 수그러들고 해결이 되죠.
김혜영 증인분들 첫마디가 통화하기 힘들다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좀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걸 알기 때문에 일단 듣고, 도와드리지 못하는 거 죄송하다고 말씀드려요. 재판부와 통화를 많이 하시는데 재판부가 많이 바쁘니까 통화를 사무적으로 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상대적으로 저희가 친절하게 응대한다고 생각하시면서 조금 더 빨리 진정하시는 것도 있고요.
권언미 증인지원관은 민원 방지의 역할도 하고 있죠. 두 분은 평소에도 인내심도 강하고 관대해 보이세요. 증인들한테 뿐 아니라 모두에게 그렇게 잘 해주실 거 같아요. 저는 증인지원관으로서 일할 때는 자기 부인을 하면서 증인을 위해 더 나은 인격으로의 변신도 필요한 것 같더라고요. 얼마 전에 드라마 <굿파트너>에 인격 분리라는 표현이 나오기에 그런 생각을 해봤어요.
증인의 안정을 위해 하는 일
김혜영 저는 증인이 처음 오시면 편하게 해드리려고 아이스브레이킹(ice breaking,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에, 어색하고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깨뜨리는 일)을 하려고 노력해요. 아침에 출근하면서 유튜브 영상에서 재미있는 소재를 찾거나, 날씨 뉴스를 꼭 체크하고 어린 친구들이 오는 날에는 유행하는 아이돌 노래를 찾아서 제목을 외워둬요. 간단한 이야기를 먼저 던지면 어색하고 서먹한 분위기가 깨지더라고요.
권언미 작은 공통 화제로 분위기가 달라지죠?
김혜영 오늘 너무 더우셨죠? 하면서 선풍기를 틀어드리면 활짝 웃음으로 시작이 되죠. 아이들에게는 ‘뉴진스 좋아하냐’고 하면 ‘너무 좋아한다’면서 흥얼거리기도 하고요. 지난번에 해바라기 센터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걸 좋아한다는 18살 아이를 만났어요. 아이가 우울해서 이야기도 안 하고 뭘 물어도 대답도 안 했는데 뉴진스 얘기를 하니까 눈빛이 변하더라고요.
권언미 저는 증인지원실에 표어를 하나 붙여놨어요.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라고요. 그리고 비치해 둔 스케치북에 ‘나는 소중한 사람’을 좋아하는 색깔로 써보게 해놨거든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그걸 쓰셨어요. 어떤 분은 옆에 하트도 그리시고요. 솔직히 저희가 치유 업무도 있지만 시간과 전문성의 한계로 아쉬울 때가 있잖아요. 라포(rapport, 상담자와 내담자가 친근감 및 신뢰감 형성을 기초로 서로 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라고 하죠. 상담사와 내담자 사이의 라포가 되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저희가 만나는 건 신문 전 40분에서 1시간이니까, 짧은 시간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려고 노력했어요. 또 라벤더 향이 심신 안정에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로마 오일로 라벤더 향을 준비해 놓았더니 피해자 지원하는 국선변호인 분이 오셔서 보고 그쪽 사무실에도 쓰셔야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라면서요.
김혜영 책을 따로 비치하기도 하죠. 심리 안정에 도움이 되는 편안한 책들로 신경 써서 챙겨놔요.
권언미 책 이야기를 하시니까, 어느 날 생각하니 증인들이 긴장된 상태로 들어오는데 텍스트가 눈에 들어올까 싶은 거예요. 그래서 그림이나 사진 위주의 책들로 바꿔봤어요. 그랬더니 조금 더 편안하게 책을 읽으시더라고요. 지적장애를 가진 분 중 꽃을 주제로 한 그림책을 특히 좋아하셨던 기억이 있는데 참 잘했다 싶더라고요.
윤지령 만화책도 비치하죠. 그림책은 좋은 아이디어네요. 저희는 인형이 진짜 많아요. 성폭력 피해자분들이 그걸 안고 안정감을 느끼시는 경우가 많아서요. 문제는 자주 빨아야 한다는 거죠. 하하.
권언미 법정에 인형이나 담요를 가지고 가도 되는 것을 잘 모르더라고요. 그래서 법조문에 지참 가능하다고 적혀 있다고 얘기하고 필요하면 가져가라고 권할 때도 있어요. 물론 자주 빨아야죠.
김혜영 저희는 스타일러가 있습니다. 하하. 국장님께서 사주셨어요. 아주 잘 쓰고 있습니다. 저희가 2023년 상반기에 증인지원실 내, 외부 환경을 대폭 개선했어요. 법원장님, 국장님, 과장님이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셔서 증인지원실 선후배 모두 휴일 반납하고 회의하면서 가구, 조명도 직접 골라서 교체했어요. 액자나 작은 소품까지 신경 써서 밝고 쾌적한 환경으로 바꿨는데 어떠세요?
권언미 카페 같네요.
김혜영 증인이나 피해자 변호사님들이 아늑하고 쾌적하다고 칭찬해 주세요. 민원서비스 모범사례로 호평을 받고 있는데, 반납한 주말이 아깝지 않더라고요.
윤지령 공간이 주는 안정감이 있죠.
권언미 증인지원실 어디나 인형, 그림책 뭐든 증인 분들의 안정감을 주는 것이라면 다 준비하려고 노력하실 거예요. 사실 피해자로서 지난 일을 다 잊고 싶은데, 법정에 나오는 게 쉽지 않잖아요. 저희 업무가 서비스 안내를 위해 증인들께 연락하는 것부터 시작이 되는데, 출석을 꺼리고 회피하고 싶어 하는 분들도 많죠. 용기를 내서 법정에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저희 역할이잖아요. 안 나온다고 하시는 분들은 어떻게 설득하세요?
윤지령 증인을 설득해 달라고 재판부에서 요청을 하기도 하는데, 그럴 땐 다섯 번 이상 통화를 해요. 계속 연달아 하면 그분도 지치시니까 시간 되면 다시 전화드리겠다고 하고 텀을 두고 연락을 드리죠. 약간 라포가 만들어지게 천천히 가까워지는 전략으로 하는데, 그러면 결국 나오시더라고요. 혼자가 아니라 저희가 있다는 걸 믿고 나오시는 것 같아요.
김혜영 증인지원관이 안내하고 법원에 출석해서 귀가할 때까지 도와드리니까 아무래도 이 상황에서는 가장 믿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형사 재판 절차에 대한 것 안내해 드리고 법정에 들어가서 어떤 질문을 받고 내가 어느 자리에 있어야 되는지 검사랑 변호사는 어떤 방식으로 질문을 하는지 알려주고, 편안한 상태에서 증언할 수 있게 도와주는 조력자랄까. 증인 분들도 그걸 알아주시는 것 같아요.
권언미 법원 내부에서도 우리가 무슨 일을 하나 싶기도 하실 거예요. 그냥 길 안내를 하는 건가? 하실 수도 있는데 말씀하신 것처럼 증인에게 사전 연락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법원 출석하고 나갈 때까지 모든 일을 하고 있죠.
진실되고 따뜻한 말 한마디가 주는 위로
김혜영 연락을 드리면 증인분들이 왜 증인이 됐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말씀을 많이 하세요. 법원에서 오라고 하면 일단 화가 나는 거죠. 잘못한 건 내가 아닌데 내가 왜 법원에 가나 싶으신 거예요. 그때 법률적인 전문 지식을 이야기하면 오히려 더 화를 내셔서 저는 간단하게 설명합니다. 진술을 직접 오셔서 확인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서 검사님이 증인으로 신청하셨을 거라고요. 진실을 알기 위해서 판사님이 얘기를 듣고 싶어 하신다고 하면 마음이 동해서 나오신다고 하셔요. 불출석한다고 얘기하고 나와야 할 것 같다고 나오는 분들도 계시고요. 처음엔 검사가 나를 어떻게 알아서 집 주소까지 알아내서 이런 걸 보내냐고 화내다가도 그 말씀을 드리면 80%는 알겠다고 하세요.
김혜영 증인지원관(서울중앙지방법원)
윤지령 말의 힘이죠. 출석이라는 단어가 부담을 주니까 돌려 말하면 반응이 좀 달라지죠.
김혜영 어떻게 하면 쉽게 설명할지 생각을 많이 해요. 소환이나 출석이라는 단어가 예민하니까 돌려 이야기하면 반감이 덜하죠.
권언미 그렇게 잘 설득해서 모셔 왔는데 재판이 연기되면 안타까워요. 특히 미성년 성폭행 피해자 증인이 연기될 때는 사정을 알면서도 좀 답답하기도 해요. 저는 지금 이 대담을 하러 오는데도 엄청 긴장을 했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얼마나 떨면서 왔겠어요.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에 관해 이야기해야 하는 부담감을 안고 잔뜩 긴장해서 왔는데, 그냥 가야 한다면 힘이 빠지는 일이잖아요. 물론 양해를 정중히 구하지만 재판부에서 일정을 잡을때 보호 증인이 있는 사건에 대해서는 시차 소환과 시간안배가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김혜영 가끔 재판이 밀려서 2~3시간 대기하는 경우도 있죠.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는 경우가 있으니까, 증인 분들께 라면이나 햇반을 제공 하기도 하죠.
윤지령 미리 설명을 해드리긴 해요. 특히 피고인 측 변호사님 같은 경우 언성을 높일 수도 있고, 강압적으로 들릴 수 있다고 말씀드려도 막상 법정에서 그걸 들으면 울고 나오세요. 마치 본인이 피고인이 된 것 같다고 화를 내시는데요. 아무리 진정시켜 드리려고 해도 이미 상처를 받았잖아요. 그래서 변호사협회나 검찰 쪽에 특히 나이 어린 여성 피해자 증인에게는 말을 좀 조심해 주십사 부탁드리고 싶어요.
권언미 제가 형사재판 참여관으로 재판부에서의 경험을 떠올리면 판사님들이 소송 지휘권을 행사해서 제지를 잘하세요. 만약 인권 침해적인 말을 한다거나 사건과 별로 상관없는 모욕적인 질문을 반복하면 소송 지휘권을 발동해서 정리를 하시는데, 증인이 받아들이는 것과 판사님 간의 간극이 있죠. 판사님은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실 수 있고 증인은 모욕적일 수 있고요. 저도 미리 들어가기 전에 예방 주사를 놓긴 합니다. 요즘은 인권 의식이 발달해서 변호사님도 조심하시죠. 그래도 너무 힘들면 손을 들고 재판장에게 의견을 얘기하라고요.
윤지령 예전에 형사재판 참여관으로 일할 때 인상적인 판사님이 계셨어요. 이규영 부장판사님이신데, 그 부장판사님은 성폭력 사건의 미성년 피해자 증인이 나오면 그 전에 검사님과 변호사님께 미리 말씀하세요. 성폭행 피해자이고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특히 질문하실 때 주의해달라고 당부하셨어요. 또 증인신문이 끝나면 증인에게 굉장히 편안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오랜 시간 동안 증언한 것에 대해 감사하고 고생 많으셨다고 항상 위로를 해주셨어요. 제가 그 부장판사님과 일하는 동안 정말 많은 감동을 받아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해요.
권언미 좋은 판사님이시네요. 요즘 대부분 판사님들이 인권 감수성이 높으시죠. 마지막에 피해자 증인에게 따뜻한 멘트 한마디 꼭 해서 보내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김혜영 사실 그게 제일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판사님의 진실되고 따뜻한 한마디에 잘 왔다고 생각하고 가시더라고요.
증인지원, AI 대체 불가 업무
윤지령 증인분들에게 수고하셨습니다, 그 한마디가 굉장히 고마운 일이라고 해요. 그런 걸 보면 우리 증인지원 업무가 서비스직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을 대하는 게 잘 맞는 분들은 이 업무를 한 번 해봐도 좋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국민참여 재판 실무관을 해봤는데 그때 법원에 대한 이미지가 바뀌는 효과를 느꼈거든요. 증인지원도 비슷하게 법원에 대한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꾸고 있어요. 정말 보람된 일이라 다양한 분들이 이 업무를 해보셨으면 해요.
김혜영 법원에서 단순히 증인을 법정에 모시고 가는 직원으로 인식이 되어 있잖아요. 하지만 전문성이 있어서 법률적으로 알아야 할 것도 많고 심리적으로 공부도 많이 해야 하고요. 그래서 자기 역량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 같고, 무엇보다 시작한 지 이제 12년밖에 안 된 블루오션이라 관심 가지고 해보시길 저도 권하고 싶어요.
권언미 어디서 봤는데 법조 업무에서 AI가 대체할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증인지원 업무라고 해요.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저는 해보니까 전문성이 절실한 분야더라고요. 우리 법원 포함 여러 법원들이 시행하고 있듯이 전문성 강화를 위해서 최소 2년을 임기로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첨언하자면 우리가 전문가가 아니니까, 성폭행 피해자 증인에게는 상담받고 있는지, 기관의 도움을 받는지 꼭 물어보고 만약 안 받는다면 권유했으면 해요. 우리가 다 커버할 수 없는 부분은 다른 도움을 받도록 안내를 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어요. 아 그리고 업무상의 공지 메일 하나에도 따뜻한 멘트 잊지 않으시는 ‘증인지원관들의 지원관’으로 항상 수고하시는 정수경 사무관님께도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아동증인을 위한 자료 배포와 이번에 영상자료 제작에서도 많은 수고를 하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안 보이는 데서 하는 일이 많은데 그래도 보람도 크고, 이렇게 동료들 간의 따뜻함도 있고요. 앞으로 증인지원관으로 오실 후배님들 응원합니다.
윤지령 상반기에 저희 형사합의과 조진만 과장님께서 증인지원 업무 관련 법원 바깥에 현수막, 청사 안 배너를 설치해 주셔서 증인지원 요청하시는 분들이 많이 늘었어요. 방문도 많이 해주시고요. 법원의 여러 분들이 활성화에 도움을 주시고 계셔서 참 감사드리고요. 오늘 대담을 통해서 저희가 드러나진 않지만 그래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쓰고 있다는 것 알게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쉬워 보여도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까 절대 쉽지만은 않거든요. 미숙해도 열심히 노력 중이라는 거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김혜영 네, 저도 두 분 말씀에 공감하고 또 동의하고요. 저희 TF에서 제작 중인 증인지원 국민 홍보가 많이 알려지도록 여기저기 소문내주시기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해바라기센터 내 전문가 심리상담 활성화로 증인 트라우마 극복 등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법원 연계시스템 구축 방안을 마련하고 싶어요. 증인지원에 특화된 전문공무원으로 역량을 펼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이런 노력이 다른 분들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또한 늘 든든한 지지를 보내주시는 저희 형사합의과 박성한 과장님과 서울중앙지방법원 증인지원관 가족들과 함께 법원에 방문하시는 증인들이 좀더 편안하게 증언하실 수 있도록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생각이예요. 오늘 부산과 수원에서 와주셔서 감사해요.
윤지령 온라인에서만 뵈었는데 오프라인에서 만나 이야기할 수 있어 즐거웠어요.
권언미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증인지원 업무하는 모든 분들 파이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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