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최다함 러시아어 통역인, 홍정인 중국어 통역인, 임동초 수어통역인, 권원섭 영어 통역인, 박서현 베트남어 통역인
지난 7월 1일 법정통역센터의 개소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도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기본 장치가 마련됐다. 센터의 중심에는 중국어, 러시아어, 베트남어, 영어, 수어를 담당하는 전문 통역인이 있다. 전문통역인들은 전국 법원의 영상 통역을 서비스하고, 공소장 통역, 출장 통역 등 법의 보호를 받는 일에 언어가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 법정통역센터가 문을 연 이후 모든 개인이 법적 시스템 안에서 동등하게 대우받을 수 있도록 법과 언어 사이 아름다운 개입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지금, 언어와 언어를 잇는 것 이상의 역할에 대해 늘 고민하는 전문 통역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글. 이재영 사진. 조인기
법정통역센터 문을 열다
임동초 새삼스럽게 다시 인사를 하려니 쑥스럽지만 처음 만났던 7월 1일이라고 생각하고 인사를 나눌까요?
홍정인 다시 떠오르네요. 부스도 다 만들어지지 않아서 회의실에 있다가 올라왔죠. 서로 정말 어색했는데 많이 가까워졌어요.
박서현 지금은 뭐 서로 없으면 안 되는 사이?
최다함 선생님들 도움 덕에 지금까지 왔다고 생각해요.
임동초 자, 그러니까 이제 인사를 합시다. 하하. 제가 먼저 할게요. 한국수어 통역 담당 임동초입니다. 법정통역센터가 생기기 전부터 법정에서 수어 통역을 좀 했는데요. 이렇게 전문센터가 문을 연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했어요.
최다함 안녕하세요. 저는 러시아어 통역 담당 최다함입니다. 저는 지난해 법정통역 인증을 받았고 올해 초 법정통역을 시작했어요. 법정통역을 하면서 다른 통역보다 흥미로워서 관련 정보들을 많이 찾다가 입찰 공고를 보고 꼭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직장에 다닐 때였는데 메일을 계속 확인했죠.
홍정인 연락이 바로 안 왔나요?
최다함 메일은 왔어요. 담당 실무관님께 전화를 했더니, 인증인지 준인증인지 물으시더라고요. 인증이라고 말씀드리니까 입찰 업체에서 연락이 올 거라는 데 또 그 연락이 안 오는 거예요. 회사생활 열심히 하자고 마음먹고 포기했는데 그제야 연락이 왔어요.
홍정인 아마 다들 기다리는 시간이 좀 있었나 봐요. 저도 샘플테스트와 면접 보고 연락을 기다렸거든요. 안녕하세요. 중국어 담당 홍정인입니다.
박서현 저도 소식 듣기까지 보름 정도 걸린 것 같아요. 안녕하세요. 베트남어 담당 박서현입니다. 저는 베트남에서 귀화한 한국인이다 보니, 센터에 들어오기 전에도 외국인 노동자 통역 봉사 등 다양한 곳에서 통역 업무를 한 경험이 있어요. 최다함 선생님도 거의 러시아 원어민과 마찬가지 아니신가요?
최다함 네, 아주 어릴 때 이민을 가서 초·중·고를 러시아에서 다니고 대학 시절에 한국으로 편입해서 재이민을 왔어요. 원래 통역을 했던 건 아니고요. 행정학을 전공해서 졸업 후 공공기관에서 일하다가 통역일을 시작하게 된 케이스에요.
홍정인 러시아에서 어린 시절을 다 보내신 거네요. 그런데 한국어가 완벽하세요.
최다함 집에서 늘 한국어를 써야 했고, 또 매일 한국어 일기를 썼어요. 언어는 쓰지 않으면 잊게 되는데 일기를 쓴 게 컸던 것 같아요.
홍정인 맞아요. 안 쓰면 잊혀지죠. 저도 4살 때 중국에 가서 중학교 2학년 때 왔는데 계속 공부하고 있어요.
임동초 홍정인 선생님도 언어를 익힐 중요한 시기에 중국에 계셨으니, 원어민처럼 중국어를 하시겠네요.
홍정인 모든 언어가 그렇지만 중국어는 특히 배우면 배울수록 공부할 게 많은 언어예요. 그래서 중학교 때 오게 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늘 컸어요.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으면 그 수준의 중국어를 할 수 있을 텐데 하는 마음에 한국에 와서도 공부를 놓지 않고 계속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꿈이 통번역사여서 대학교도 통번역 학과를 갔죠. 자연스럽게 대학원도 통역대학원에 들어갔고요. 현재는 2학년 1학기를 마친 상태에요.
최다함 아직 졸업을 안 하신 거죠?
홍정인 교수님께서 미리 자소서도 써놓고 지원을 준비하라고 조언해 주셔서 그렇게 했는데, 합격해서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법정통역센터에 오게 됐습니다. 차차 마지막 학기를 마치고 졸업도 해야죠. 임동초 선생님은 수어를 언제부터 하게 되신 거예요?
임동초 저와 수어의 인연은 가위바위보로 맺어졌어요. 하하. 초등학교 6학년 때 동아리를 정하는데, 가위바위보에 져서 마지막에 남아 있던 수어동아리에 들어가게 됐죠.
임동초(수어 통역인)
박서현 운명적인 만남이네요.
임동초 그런 셈이죠. 처음엔 별생각 없이 시작했는데 하면 할수록 매력적이더라고요. 혀를 사용하지 않고 의사소통이 된다는 게 신기했어요. 재미있어서 배우다가 전공을 하고 싶어서 관련학과로 진학했고, 대학 진학 전인 19살부터 통역사로 스카우트 되어서 일을 시작했어요.
박서현 통역 경력이 오래되셨네요.
임동초 12년 차 정도 됐죠. 13살에 배워서 19살에 시작했고 지금까지 쭉 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다가 법정통역센터가 생기는데, 그 안에 수어가 들어간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신기했어요. 센터가 생기기 전부터 법정 통역을 돕곤 했지만 이렇게 공식적인 언어로 채택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홍정인 그전에도 법정 통역을 해본 경험이 있으신 거죠? 그때 통역사 자격으로 들어가신 건가요?
임동초 아니에요. 재정증인, 신뢰 관계인 이렇게 다양한 역할로 재판에 참여했어요. 재판부에서 수어 통역인을 통역인으로 인정해 주지 않았거든요. 통역사 자격증이 있다고 해도 한국에서 수어를 언어로 인정해 주지 않는 시대였으니까요. 2016년이 되어서야 한국수어언어법이 생겼는데, 관련 법령이 없을 때는 보증인처럼 참석해야 했어요.
홍정인 수어를 언어로 인정하고 여러 권리를 채워나간다는 점에서 법정통역센터에 수어가 있다는 게 의미가 크다고 봐요. 박서현 선생님은 한국에 어떻게 오셨어요?
박서현 2009년 한국에 와서 소개팅으로 남편을 만났어요. 딸을 낳고 그 후에 국적을 취득했죠. 아이가 중학교 2학년이 됐으니 벌써 15년이 훌쩍 넘었네요. 초반에는 혼자 낯선 곳에서 살아가는 게 정말 힘들었어요.
최다함 이방인의 삶이 쉽지 않죠. 저희 부모님도 러시아에서 그러셨던 거 같아요.
박서현 그래도 용기 내서 혼자 공부해서 2015년부터 지금까지 가톨릭 인천교구 외국인노동자 상담소에서 봉사하고 있어요.
홍정인 대단하시네요. 독학으로 하셨다니. 그렇게 자격증도 따신 거죠?
박서현 처음엔 자격증 없이 했고, 2023년에 법정통역자격증을 취득했어요. 그 후부터는 쭉 법정 통역, 난민 통역, 외국인 노동자 통역 등 이것저것 활동하고 있어요.
홍정인 검찰이나 경찰 등에서도 통역하셨죠?
박서현 예, 맞아요. 외국인 노동자 통역 봉사하면서 검찰, 경찰 많이 다녔어요. 인천경찰청 통역사 명단에 올라가 있어요. 어려서 꿈이 형사여서, 정말 재미있게 했죠. 베트남에서 가정 형편 때문에 꿈을 이루지 못했는데, 형사는 아니지만 꿈 근처에서 일하고 있는 거죠. 꿈을 이룰 순 없지만 관련 공부는 계속하고 싶어서 사이버대학교 경찰학과에 들어갔고 현재 4학년이에요.
홍정인 졸업 후에 경찰이 될 수도 있는 건가요?
박서현 하하, 안 돼요. 일단 나이도 있고 어렵죠. 하지만 해보고 싶은 공부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좋아요. 또 법정통역을 하면서 도움이 되기도 하고요.
언어별 통역의 차이
홍정인 저희가 7월에 개소하고 4개월 정도 일했는데 다들 어떠세요? 각자 언어에 따라 매달 차이가 있는데 최근에는 러시아어 통역이 압도적으로 많은 거 같아요.
최다함 중국어는 늘 많잖아요.
홍정인 네, 인구 자체가 많아서인지 사건도 많아요. 구치소 면담까지 해서 숨 돌릴 틈 없었던 때도 있었어요. 사실 건수보다 뭘 통역하는 지가 더 중요해요.
박서현 맞아요. 증인 신문, 피고인 신문할 때 가장 힘들어요. 법정에 들어가면 분위기 자체가 다르고, 부담감이 크죠. 검사님, 변호사님 말씀에 계속 답해야 하고, 그분들은 한번 전달하고 말지만 저는 계속해서 이야기해야 하니까요.
임동초 저는 기본적으로 전부 출장인데, 선생님들도 영상 외에 출장 많으시죠?
박서현 서울 내 법원들은 대부분 출장이고, 센터가 있는 서울동부지방법원은 가까우니까 전부 직접 참여하죠. 저희도 자주 움직이지만, 수어 선생님이 제일 바쁘신 거 같아요. 오늘도 끝나고 출장 가셔야 하죠?
임동초 맞아요. 저희는 영상이 불가능해요. 만약 영상 재판에서 수어통역이 가능해지려면 엄청나게 좋은 화소의 비싼 카메라가 있어야 해요. 그러니까 화면의 선명도가 일반 비장애인들 발음의 명료도나 볼륨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화질이 좋지 않으면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죠. 수어 통역할 때 잘 보시면 뒷 배경을 검은색으로 쓰지 않거든요. 시각적으로 녹색이나 파란색의 배경일 때 가장 잘 보이기 때문인데요. 지금 영상 재판 시스템은 화면이 선명하지 않아서 오역할 수 있는 위험이 있어요. 무슨 상황에서도 잘 전달하고 위증의 벌은 내가 받겠다는 선서를 하고 들어가는데, 그러기엔 너무 위험한 환경이죠. 그래서 전부 다 갑니다. 처음부터 말씀드렸어요. 직접 가서 통역을 하겠다고요.
박서현 지방도 출장을 가시죠?
임동초 네, 그걸 원칙으로 센터에 들어왔어요. 사실 우리나라에 외국인에 대한 배려는 다양해지고 있는데 아직 장애인까지 배려가 닿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많아요. 저희가 공소장 번역 업무도 지정 업무로 되어 있거든요. 수어 같은 경우는 지정 업무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제가 제안을 했죠. 수어를 쓰는 분들도 다른 언어 사용자니까 동등하게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공소장 수어 번역은 내년부터 시행될 겁니다.
박서현(베트남어 통역인)
홍정인 장애인 분들이 사각지대에 계시더라고요. 저도 와서 보기 전까지는 생각도 못 했는데, 센터에 와서 미미한 법 제도가 안타까웠어요. 우리는 통역인증 제도가 있어서 전문 통역인이 참석하는데, 수어통역은 신뢰관계인도 가능하게 되어 있는 것에 놀랐어요. 중립적으로 통역을 해야 하는데 친한 사람이 해줘도 된다는 게 좀 이상했어요. 중국인 분들 중 청각장애인들도 계셔서 수어 가이드라인 중국어 감수를 봤는데요, 보면 볼수록 보완해야 할 점들이 많더라고요.
임동초 없는 게 정말 많아서 황무지라고 생각해요. 현재까지 수어 관련된 근거나 규정이 거의 없어서, 이번 센터 개소를 통해서 좀 많이 바뀌었으면 해요. 다른 선생님들은 영상재판할 때 어떠세요?
최다함 지방에서 양질의 통역서비스를 받지 못하던 분들에게 좋은 제도라고 생각해요. 각 지방의 재판에 참여하는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홍정인 좋은 제도이죠.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죠.
박서현 우리가 다들 생각하는 그거 말씀하시려는 건가요? 하하
홍정인 네, 부스 방음이 너무 약해요.
최다함 영상재판은 저희가 부스에 들어가 진행해야 하는데요. 부스 간 방음이 안 되니까 애로사항이 많죠. 영상 통역이 점점 늘고 난민 통역도 많아지는데 가끔 겹치는 부분도 있잖아요.
홍정인 절대적으로 안정적인 분위기에서 집중해야 하는데 퀼리티가 보장이 안 돼서 부스의 방음 보완이 좀 필요해요.
임동초 서울동부지방법원 직원 분들이 앞에 지나갈 때 정말 조심해서 지나가 주시잖아요.
박서현 그분들도 불편함 없도록 방음시설이 더 잘 갖춰져야 할 것 같아요.
홍정인 각 부스에 에어컨과 환풍기도 필요하고요.
박서현 맞아요. 아무래도 집중하고 긴장을 하니까 부스에 들어가면 땀이 더 나요. 선풍기가 있지만 바람 소리가 들어가서 잘 사용하지 못하겠더라고요.
임동초 저희 센터가 전국 법원에 유의미한 역할을 하기 위해서 앞으로 조금 더 보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박서현 이야기가 나왔으니 조금만 더 개선할 점에 대해 말씀드려도 될까요? 저는 통역이 필요한 사건 관련 서류를 공유해주시면 좋겠어요. 현재는 공소장만 보내주시는데 물론 그것도 감사하지만, 가끔은 이름만 올 때가 있어요. 그러면 좀 막막해요. 사건마다 표현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준비하면 훨씬 좋거든요. 실무관님이 많이 힘써주고 계시지만 저희에게 직접 조금 더 공유되었으면 해요.
박서현(러시아어 통역인)
좋은 통역을 위한 노력
임동초 그래서 선생님들 방청 많이 가시잖아요. 어떤 사건을 만날지 모르니까 다양한 사건을 참고하시려고요.
최다함 네, 다양한 케이스를 많이 보려고 하죠. 요즘 마약 사건이 많아졌는데, 용어가 다양해서 실제로 준비 없이 들었으면 못 할 수도 있었겠다 싶은 것들이 있어요.
홍정인 그렇죠. 이런 것이 증거로 쓰일 수 있구나, 저런 것들이 마약류의 종류구나 하는 것들을 눈여겨보죠. 실제 재판에서 바로바로 중국어로 치환이 안 될 수도 있으니까, 재판을 보면서 노트에 적고 속으로 통역도 한 번 해보고요. 연습하는 거죠. 직업병이에요. 하하.
박서현 선고도 잘 들어두었다가 모르는 전문용어가 나오면 적어두었다가 실무관님께 여쭤보고요. 그래야 좀 안심이 돼요. 저는 선생님들과 또 다른 입장이잖아요. 입사 하기 전에 너무 겁이 나는 거예요. 이제 곧 출근인데 혹시 한국어를 못 알아들으면 어쩌나 싶어서 집에서 가까운 인천지방법원에 보름 정도 매일 나갔어요.
임동초 대단하시네요. 보름 동안 열린 재판을 다 보신 거예요?
박서현 네, 일단 장소에 익숙해지려고 앉아 있었어요. 재판정이라는 곳이 낯선 공간이니까 익숙한 일터가 되려면 자주 가보는 수밖에 없더라고요. 또 모르는 단어들이 있으면 안 되어서 다양한 사건들을 다 들으면서 노트를 하나 만들었어요. 어떻게 진행되는지, 사건마다 어떻게 다른지, 판결 선고할 때 어떤 단어가 사용되는지 등등을 정리했어요. 그 노트가 일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죠.
홍정인 그 노트가 입사 초에 저도 큰 도움이 됐어요.
최다함 저도요. 서현 선생님이 만든 노트는 교재로 내야 해요. 진짜 너무 잘 만드셨어요.
박서현 모두에게 도움이 되었다니 제가 감사해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저의 소중한 재산이에요. 하하.
홍정인 우리나라 재판은 전부 다 공개 재판인데 사람들이 방청이 가능하다는 걸 잘 모르더라고요. 법정 통역 전문가들에게 재판 방청은 진짜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최다함 네, 그렇죠. 뭐든 경험하는 게 최고인 것 같아요.
임동초 법률 드라마 백 번 보는 것보다 실제로 와서 한 번 참석하는 게 훨씬 큰 공부가 되죠. 하하.
홍정인 생각보다 외국인 재판이 정말 많잖아요. 이름이 거의 가려져 있지만 딱 보면 외국인 이름으로 보이는 재판이 있잖아요. 그런 것들 많이 찾아다녔어요. 꼭 자기 언어가 아니라도 도움이 돼요. 내가 어디 앉는지, 언제 퇴장하는지 그런 사소하지만 꼭 필요한 공통적인 것들을 공부하기 좋더라고요.
홍정인(중국어 통역인)
임동초 수어 통역 준비하실 분들은 재판 견학도 좋지만 그 이전에 주눅이 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챙기시는 게 가장 중요해요.
최다함 수어에 대한 이해가 상대적으로 낮아서 해야 할 말씀이 많은 거죠?
임동초 수어가 음성언어가 아니라는 인식조차 안 되어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미처 생각하지 못하시는 거죠. 수어는 다른 언어처럼 나란히 앉아서 절대로 통역할 수 없어요. 마주 봐야 언어를 전달할 수 있죠. 통역사의 위치부터 달라져야 해요. 그럴 때 내가 왜 마주 보고 통역을 해야 하는지 떨지 않고 설명을 해야 하거든요. 소리 중심으로 된 상황에서 통역인으로 수어에 적합한 환경을 스스로 구성해 나가야 하죠. 재판장님이 제 위치를 고정하면 아무리 잘 준비해도 의미가 없어요. 필요한 걸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하죠.
박서현 임동초 선생님은 긴장하지 않고 말씀 잘하시잖아요.
임동초 저도 처음엔 엄청나게 떨었어요. 19살에 처음 통역으로 법정에 섰을 때는 바들바들 떨었던 기억밖에 없어요. 그때 나란히 앉아서 통역을 했는데 대상자가 고개를 돌려서 저를 봐야 하잖아요. 재판장님 말씀을 들어야 하는 순간이었는데, 시선이 저에게 고정되니까 왜 다른 곳을 보냐고 역정을 내셨어요. 수어의 특성을 잘 모르셨던 거죠. 그날 재판장님께 저분의 말을 들으려면 저를 봐야 한다고 말하지 못한 게 아직도 마음에 걸려요.
최다함 19살이 그 자리를 잘 지킨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죠. 지금은 전혀 그러지 않으시잖아요.
임동초 그렇죠. 하하. 지금은 하도 하다 보니까 익숙해졌죠. 다른 선생님들은 재판장님과 대화할 일이 그렇게 많지 않아 보이는데, 저는 들어가는 순간부터 재판장님께 이야기해야 해요. 자리 위치, 음성 위치, 또 손을 쓰면서 말해야 해서 핸드마이크도 필요하고. 말이 많을 수밖에 없어요. 잘못하면 통역인 오류로 고소 고발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더 말이 많아지죠.
홍정인 그런 일이 있었어요?
임동초 재판장님이 수어를 외국어랑 같은 언어로 생각하시고 녹음 명령만 내리신 거예요. 녹화시스템이 아직 도입되기 전이어서 통역 관련 이의 제기로 공격받았을 때 증빙할 자료가 없는 거죠. 대학생 때였는데 통역인에서 조사 대상자가 되니까 정말 힘들더라고요. 그때 통역인에 대한 보호 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도적으로 없으니까 스스로 먼저 챙기지 싶었죠.
홍정인 다른 언어권 통역사도 비슷한 위협을 많이 받는다고 들었어요. 방청을 가면 통역인이 증인 심문 당하는 일도 많고, 조사인으로 나오기도 하고요. 실제로 겪은 건 아니지만 집으로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임동초 통역인들에 대한 보호장치가 절실해요.
박서현 오늘 이 대담을 보시고 수어와 통역에 대한 인식이 좀 바뀌었으면 하네요. 사실 저도 이렇게 함께 하면서 수어에 대해 또 다른 언어에 대해 알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뭐든지 경험이 중요하다고 하나 봅니다.
최다함 그것도 있지만 법정통역센터라는 한 공간에 있어서 더 깊게 알게 되는 것 같아요. 통역사로 일하면서 솔직히 다른 언어 통역사를 만날 기회가 거의 없잖아요.
홍정인 통번역대학원에서도 건물을 같이 사용할 뿐이지 교류가 없어요. 그런데 이렇게 다양한 언어의 통역사분들과 생활한다는 게 정말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최다함 재판장님마다 스타일이 좀 다르신데 관련해서 정보도 바로 얻을 수 있고요. 서로 기대고 의지할 수 있어서 좋아요.
홍정인 맞아요. 선고할 때 이야기 많이 하시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으시는지 이런 걸 알고 가면 훨씬 좋은 통역을 하게 되죠. 통역하면서도 항상 긴장하잖아요. 저는 가끔 한국에 유학온 중국인 유학생들 통역을 해줄 때 긴장되거든요. 진술할 때 학생이고 한국어도 어눌하다고 이야기해서 통역을 요청해서 제가 가는데, 이미 한국어를 너무 잘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 할 때는 뭔가 검증받는 느낌이라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해요. 최다함 저희 서로의 언어를 배우는 시간도 있잖아요. 5분 정도 짧은 시간이지만 정말 재미있어요. 하나둘씩 수어 표현을 익히는 것도 좋고요.
홍정인 좀 더 생활이 풍성해지는 느낌이죠.
좀 더 완벽한 통역을 위해
임동초 말 나왔으니 각 나라별로 어떤 사건이 많은지 이야기해 볼까요? 중국 분들은 워낙 많은 걸로 알고 있어요.
홍정인 일하러 오신 분들뿐 아니라 학생들도 많고, 보이스피싱도 많고요.
최다함 저희는 보이스피싱 관련된 사건이 요즘 좀 많아졌고요. 특수 상해나 운전자 폭행 같은 조금 폭력적인 사건이 많아요.
임동초 노동자분들이 좀 많으신 거죠?
최다함 요즘은 난민도 많아졌어요.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후에 난민 신청이 몇십 배 올라왔다고 해요. 여성분은 물론이고 징집 거부 사유로 난민 신청하는 남성분들도 많고요. 러시아어권 나라가 워낙 많으니까, 사건도 다양해졌어요.
임동초 요즘 난민 통역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신문으로만 봤지 실제로 그렇게 많을 줄은 몰랐어요.
최다함 러시아 쪽은 마약도 종종 있어요.
박서현 베트남은 이혼 사건이 가장 많지만, 마약 사건도 많아졌어요.
임동초 박서현 선생님은 귀화하셨지만 그래도 동포를 통역해 주시는 거잖아요. 거기에서 오는 어려움은 없으세요?
박서현 오히려 좀 더 차가워지는 것 같아요. 우리 법정통역 원칙이 있잖아요. 중립적이고 정확하게 전달한다는 원칙에서 벗어나서는 안 되잖아요. 법정에 들어갈 때 뇌와 감정을 밖에 두고 가려고 해요.
홍정인 뇌는 가져가셔야죠. 하하.
박서현 네네, 맞아요. 뇌는 가져가야죠. 법정에서만큼은 감정은 철저하게 꺼내두고 가요.
임동초 도와달라는 분들은 없었어요? 그래도 좀 반가워하고 안심할 거 같아요. 외국에서 자기 나라 사람을 만났다는 생각에요.
박서현 제 표정이 냉정한지 그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은 없었어요. 다른 베트남어 통역사 중에는 피고인 당사자가 아니라 가족에게 연락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분도 그 자리에서 거절했죠.
홍정인 혹시나 오해가 생길 수 있어서 더 신경이 쓰이시죠. 박서현 선생님이 따뜻한 분인데, 일할 때는 정말 정확하세요.
박서현 일은 일이니까요. 하하.
최다함 박서현 선생님은 진짜 뭐든 씩씩하게 해내시는 것 같아요. 어려운 점은 없으세요?
박서현 출퇴근 시간이 왕복 4시간이라는 게 어렵지만, 정신력으로 극복하고 있고요. 하하. 어렵다기보다 늘 고민인 건 베트남어가 세 가지 방언으로 되어 있어서 혹시 전달이 잘못되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죠.
임동초 세 가지 방언이면 제주도 방언 같은 느낌인가요?
박서현 아니요, 그것보다 더 심해요. 완전히 다른 언어에요. 발음도, 어휘도, 표현도 달라요.
홍정인 그럼 서로 알아듣지 못하겠네요. 중국어는 그래도 표준어가 있어서 각 지역 언어가 조금씩 다르다고 해도 경상도 사투리 정도거든요.
박서현 예를 들어 그릇이라는 단어를 보면 남부에서는 ‘짼’, 북부는 ‘빳’, 중부는 ‘떠’이라고 해요.
최다함 완전히 다른 언어네요. 선생님은 세 언어를 어떻게 다 하세요?
박서현 운 좋게 저는 아버지가 북부 분이시고 어머니가 중부 분이신데 남부에서 나고 자랐어요.
임동초 통역인으로 완벽한 환경이었네요.
박서현 다행인 거죠. 베트남어 통역하는 분들 보면 각 지역만 가능하신 분들이 있는데요. 저는 다 됩니다. 하하. 억양이나 뉘앙스로 어느 지역인지 파악하고 그 지역에 맞춰서 통역을 하죠. 그래서 저는 통역을 위해 통일된 법률 용어나 지침이 담긴 교재가 있었으면 해요.
홍정인 그거 정말 필요해요. 번역 교재마다 다르게 표기된 단어들이 있잖아요. 국선변호인이나 기소 같은 단어들도 정말 다양하게 나와 있더라고요. 하나로 통일된 교재가 꼭 나왔으면 합니다.
최다함 그래도 우리가 센터에 함께 있으니까 여러 문제점들을 보완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실무관님이 계신다는 게 든든하죠. 법 관련해서 전문 지식이 있는 게 아니라서 실무관님이 하나하나 설명해 주시니까 안심이에요.
임동초 일을 하면 할수록 법정통역센터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돼요. 현재는 저희가 외주 업체 소속으로 일하고 있는데요. 꼭 저희가 아니라도 앞으로 통역 인력이 사법부의 일원으로 활동했으면 해요.
홍정인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저희와 상관없이 긴 안목으로 봤을 때 법정전문 통역인력은 꼭 필요하니까요.
최다함 미국이나 호주, 캐나다 등 다문화 국가들이 통역 제도나 시스템이 발달되어 있다고 하잖아요. 이제 우리 사회도 다양한 분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만큼 통역 환경이 더 좋아졌으면 해요.
박서현 그런 의미에서 우리 법정통역센터가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홍정인 네, 특히 저는 이번에 수어가 포함된 게 정말 신의 한 수라고 생각합니다. 임동초 선생님과 함께 일하면서 비장애인으로 알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을 알게 됐거든요.
임동초 정말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이렇게 조금씩이라도 바뀌어 갈 거라고 기대해 봅니다.
최다함 저는 선생님들과 함께해서 통역인으로 더 성장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홍정인 모두가 같은 마음일 거라고 생각해요.
박서현 좋은 동료들과 의미 있는 일을 하게 되어서 기쁩니다. 법정통역센터가 더 발전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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