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세상 X 낭만필객②] 홋카이도 800km 자전거 여행

HEALTH

2024.07.08

글 심은섭 사무관(인천지방법원)

여행의 최고는 걷기 여행이다. 옛사람들이 ‘주마간산(走馬看山)’ - 달리는 말 위에서 산(세상)을 본다.’라는 표현을 남겼다. 빠른 속도와 흔들리는 말 때문에 놓치는 것이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말(馬)의 최고 속도는 시속 60~70km/h 정도 되지만, 보통 달리는 속도(구보)는 평균 20km/h 정도 된다. 하루에 200km 정도까지 갈 수 있다고 한다. 자동차 여행 이후에 남는 것은 점(點)으로 된 추억일 뿐이다. 바쁜 일상 때문에 걷기 여행은 못 하지만, 선(線)으로 연결될 수 있는 여행을 꿈꾸며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연초에 법원 자전거 동호회 ‘동테’에서 외국으로 자전거 여행을 하자는 제안을 총무인 탱크(닉네임, 서울중앙지방법원 이형준 사무관 이하 탱크)가 했다. 다들 바쁜 업무 때문인지 탱크와 나 둘만 가게 되었고, 장소는 일본 홋카이도로 정했다. 나도 바쁜 업무 때문에 여행 준비를 전혀 못 했으나 탱크가 비행기에 자전거를 싣기 위한 포장방법, 준비물 등을 알려줘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학교 다닐 때 공부했던 형법책의 서문에 일본의 법학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일본어와 일본 법학을 공부하지 않고 독일 법학을 공부했다는 내용을 읽고 나도 일본어를 공부하지 않았다. 한자를 좀 알면 뜻이 통하기 때문에 필요성도 많이 못 느꼈다. 하지만 언어는 달랐다. 둘 다 처음 가보는 홋카이도란 곳으로 무모한 도전을 시작했다. 탱크는 틈틈이 일본어 공부를 해 두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 ‘아는 만큼 들린다.’라는 말이 ‘아는 것만 보이고, 아는 것만 들리는’ 상태를 초래하지 않기 위해 전혀 모르고 몸으로 부딪쳐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이란 위안을 갖고 탱크만 믿고 따라갈 수 있었다.

인천공항에서 설렁탕 한 그릇을 먹고(이것이 이날 제대로 된 식사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줄을 누가 알았으랴) 출발하여 두 시간 남짓 날아 신치토세(新千歲) 공항에 도착했다. 일본 세관 검색대에서 미리 작성한 서면을 근거로 입국심사를 하는데, 자전거 여행은 하루 이동 거리가 유동적일 수 있기에 우리는 숙소를 미리 예약하지 않고, 대략 어느 지점까지 이동할 것만 정하고 현지에 도착해서 숙소를 구하기로 했고, 입국심사 카드에 숙소(호텔)와 전화번호를 적지 않았는데, 이것이 문제였다.
입국심사를 하다가 한쪽에서 기다리도록 하더니 다른 승객들이 다 빠져나간 입국 심사대에는 탱크와 둘만 남고, 세관 직원들 5~6명이 모여들어 이것저것 묻기 시작한다. 불법체류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는지, 인천으로 귀국하는 항공권을 보여 달라고 한다. 귀국 예약 항공권과 준비해 간 홋카이도 자전거 여행 루트를 그린 지도를 꺼내 들자 다들 깜짝 놀라면서 그때부터는 우호적으로 변했다. 첫날 목적지 히다카(日高)에서 머물 것이라고 했더니 자기들이 구글 맵에서 검색되는 호텔을 찾아서 호텔 이름과 전화번호를 직접 기재하고, 여권에 입국 승인 도장을 찍어준다.

공항 주차장에서 자전거를 조립하고 여정을 시작한다.
1일 차는 오후부터 라이딩을 시작해야 되어서 100km만 달리기로 했다. 비 소식이 있었으나, 바닥이 살짝 젖은 정도이고, 비는 내리지 않았다. 이 정도면 자전거 라이딩 하기는 좋은 날씨다. 공항을 빠져나가 약간 한적한 도로에 들어서니 광활한 농장이 펼쳐진다. 밭의 크기는 우리나라 밭보다 10배 이상 커 보였고, 목장에는 말들이 한가롭게 뛰어노는 것이 미국의 농장 같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공항을 빠져나와 만나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생각이었으나 식당이 없다. 여행 내내 수많은 편의점을 만나게 되었는데, 1일 차에는 편의점도 안 보였다. 오늘 우리가 가는 길이 274번 국도인데, 산속을 통과하니 편의점이 있을 리 만무하고, 지역 특산품을 파는 곳에서 멜론빵을 하나 사먹고 출발하려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오늘의 목적지까지는 중간에 숙소로 삼을만한 곳도 없다. 우비를 입고 출발한다. 홋카이도의 기온은 모내기를 막 끝낸 봄 날씨였고, 우비를 입었지만 비를 맞으니 체온이 떨어진다. 춥고, 배고프고, 아 이런 개고생을 하려고 내가 여기에 왔나….
히다카(日高)에 도착했는데, 닛쇼(日勝)란 아담한 호텔이 보인다. 탱크가 여주인과 한참 대화를 하더니 계약이 성사됐다. 자전거를 로비에 보관하고, 방은 일본식 다다미방이었고, 공동 목욕탕이 있는데, 따뜻하게 목욕물을받아 놓아서 추운 몸을 녹일 수 있었다. 근처에 식당이 있는지 찾았으나 보이는 것이라고는 편의점이 전부였다. 편의점에서 두 끼 먹을 분량의 도시락을 사서 다음 날 아침까지 해결했다.

어제저녁 피곤한 몸으로 일찍 잠들었으므로 새벽 4시경 잠깐 잠에서 깼는데, 창이 환하게 밝았다. 가로등 때문인가 하고 창밖을 내다보았으나 아침이 밝은 것 같았다. 무슨 상황인지 잘 이해가 안 됐다. 날씨를 알아보기 위하여 일기예보를 검색해 보니 일출이 3:50분경으로 되어 있다. 아, 이것이 북위 43도의 위력이구나.
오늘은 현충일인데, 우리가 묵은 숙소가 일승(日勝)호텔이니 ‘해가 이긴다.’라는 뜻인지, ‘해를 이긴다.’라는 뜻인지, ‘일본이 이긴다.’라는 뜻인지 잘 모르겠으나 오늘 현충일이니 나의 마음가짐은 ‘일본을 이긴다.’로 정하고 마음속으로 선열들을 추모하고 오늘의 일정일 시작한다.
오늘은 274번 국도를 따라 시나누카(白糠) 까지 180km 거리를 가야 한다. 오늘 넘어야 하는 고개는 닛소고개(日勝峠, Nisso Toge, 해발 1023m), 정상에서 내려다보니 운무가 멋지게 피어오른다. 고개를 올랐으니 내리막이 있는 것은 당연지사. 산속에는 지난겨울에 얼었던 얼음이 아직도 안 녹은 부분이 있다. 멋지게 보이던 운무 속을 통과하는데 너무 추워서 잠시 쉬어서 간다. 특산품 판매점에 들러서 커피 한잔으로 몸을 녹인다. 커피점 주인이 대만에서 왔냐고 묻는데, 탱크가 한국에서 왔다고 답한다. 시즈미(淸水)를 거쳐 38번 도로를 따라 드디어 태평양을 보게 되었다. 우리 동해에서 보는 바다와 같은 풍경이지만, 여기서 보는 태평양이 진짜 태평양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왜 그런지 모르겠다.

시나누카(白糠)에 도착해서 자전거를 창고에 보관할 수 있는 호텔을 잡았고, 우리는 벌써 홋카이도의 4시 일출에 적응했으므로, 호텔 종업원에게 내일 아침 5시에 떠날 것이라고 했더니 그렇게 이른 시간에 떠나느냐고 다시 한번 창고 문을 열어줄 시간을 확인한다. 일본 시골 호텔프런트에서 영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못한다고 하는데, 영어로 얘기를 해도 다 알아듣는 것을 보고 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날씨도 맑았고, 식사도 점심, 저녁 다 제대로 된 식당에서 먹었다. 세탁기와 건조기가 비치되어 있으므로 어제 비 맞은 옷을 빨아서 건조시켰는데, 제대로 건조가 안 돼서 방에서 온풍기를 켜고 말리려다가 잠을 설쳤다. 온도와 습도가 함께 올라가서 열대야를 방불케 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시나누카에서 5시에 출발했는데, 쿠시로습원 국립공원에 너무 일찍 도착해서 전망대는 문을 열지 않았으나, 숲 사이로 안개 낀 공원을 통과해서 지나왔으므로 안개 속의 아름다운 모습을 상상속에 그리며 미련을 두지 않고 떠났다. 공원에서 처음으로 여우를 보았다. 시벳차(標茶)와 데시카가(弟子屈)를 지나는 풍경은 제주도 중산간 같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굿샤로호(屈斜路湖) 근처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어젯밤에 잠을 설친 후유증에 점심까지 먹으니, 눈꺼풀이 무겁다. 구글에 ‘JIJI cafe’가 유명하다고 해서 커피를 마시러 갔는데, 문을 닫았다.
비호로고개(美幌峠)를 올랐더니 일본 최대의 칼데라호 굿샤로호가 발아래 펼쳐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기타미(北見)까지는 긴 내리막이다. 차량 이동이 적은 농로길을 통과하려니 광활한 북해도 땅이 부러울 뿐이다.
기타미에서 내일 일정을 고려하여 시내를 통과해서 숙소를 구하려다가 약간 어려움을 겪었으나 지난 길을 조금 돌아온 것을 제외하고는 별문제는 아니었다. 저녁으로 숙소 근처 음식점에서 나가사끼 짬뽕을 먹었다.

기타미(北見)를 출발해서 39번 도로를 이용했으면 160km 라이딩으로 일정이 종료 되었을 것인데, 차량이 한적한 시골길을 택한다고 261번, 242번, 211번 도로를 달렸더니 오케토(置戸)로 왔다. 오케토 호수까지 올라왔는데, 길이 없어졌다. 다시 되돌아서 88번 도로를 지나 39번 도로를 따라 세키호쿠 고개(石北峠, 해발 1050m)를 넘었다. 긴 내리막에 아사히(旭岳) 산과 다이세쓰(大雪) 산, 아이베츠(愛別岳) 산을 바라보면서 라이딩하는 기분은 이번 라이딩의 하이라이트. ‘대설산에서 녹아내린 맑은 물에 삿포로 맥주가 탄생할 수 있었겠구나’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눈 덮인 설산은 겨우내 쌓인 눈이 절반은 남아 있어서 얼룩얼룩 마치 범고래가 무리지어 유영하는 모습같이 보인다.

3km 길이의 깜깜한 은하터널을 지날 때는 지옥으로 들어가는 문에 들어선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춥고 긴 터널이었다. 소운쿄 협곡(層雲峡)을 지나 아사히카와
(旭川)외곽 나가야마 역(永山駅) 앞에 있는 작은 호텔에서 머물렀는데, 70세 후반쯤 되어 보이는 주인장이 자전거를 역 앞 공터 울타리도 없는 개활지 주차장 철 기둥에 열쇠로 잠가두면 된단다. 비싼 자전거라 안 된다고 하는데도 별 반응이 없다. 일본사람들은 정직해서 자전거를 훔쳐 가지 않는다는 자신감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중에 대화를 조금 나누다가 기타미(北見)에서 세키호쿠 고개(石北峠)를 넘어 180km를 왔다고 하니 깜짝 놀라서 자기네 차량을 주차했던 차고에서 차를 한 대 빼고 그곳에 자전거를 세우라고 한다. 그 이후는 굉장히 우호적이다.

일기예보에 오후 3시경 삿포로에 비가 예보되어 있다.
3시 전까지 삿포로에 도착하기 위해서 12번 도로를 열심히 달렸으나 초속 8m, 태풍급의 맞바람을 뚫고 나가는 우리에게 자연의 벽이 높게만 느껴질 뿐이다. 삿포로에 가까울수록 차량이 자전거에 우호적이지 않다. 좁은 도로에서 자전거는 차량의 속도를 방해하는 장애물로 인식하는 눈치다. 비를 안 맞고 무사히 삿포로 시내에 도착하여 라이딩일정을 마무리하고, 다시 자전거를 포장했다. 이번 여행 중 제일 힘들었고, 제일 지루한 라이딩이었다.

어제 자전거는 다 포장해 두었으므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시내 관광에 나섰다. 오도리(大通) 공원에 홋카이도 개척사의 고문 역할을 했던 미국 농무장관 케프론의 동상이 세워진 것을 보고 첫날 홋카이도에서 미국 농장의 분위기를 느꼈던 것이 이해가 되었다. 삿포로-신치토세 공항은 기차를 이용했고, 그 외 일정은 일반 여행자의 모습과 비슷할 것 같아 이만 줄인다.

이번 여행 중 자전거 여행자는 3팀 정도를 만났는데, 일본인들은 안 보이고, 모두 서양인들이었다. 일본 사람들은 오토바이로 여행을 많이 다닌다. 힘 덜 들이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여행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으나, 내가 느낀 인상은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기상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행을 떠나기 전 설레는 마음으로 떠났으나, 여행 중에는 고생과 불편함으로 집이 그리워서 집으로 돌아오고, 조금 지나면 또 여행의 추억이 생각나서 다시 여행을 계획하고…. 그것이 우리들의 인생이 아닌가 생각한다. 좌측통행 800km를 달렸더니 좌우가 바뀐 것에 적응되어 이제는 우측통행이 조금 어색하다.

"HEALTH" 카테고리의 다른 글

1 2 3 4